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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14. 2023

첫사랑의 추억

내게도 첫사랑이 있었을까?

오늘은 평소 써보지 않은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다. 아는 작가님이 자신의 연애사를 풀어낸 새로운 연재를 읽어 보며 나도 한 번 써볼까? 하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래서 이참에 써보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늘 같은 범주로 안정적인 글만 쓰다 보면 보수적으로 굳어지는 현상이 고착되고 모험을 기피하게 되어 불확실한 가능성에는 전혀 도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간 한 번도 다룬 적이 없는 나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한다.

내 삶에 첫사랑이라는 기억이 뭐가 있을까를 되돌아본다. 의외로 남녀 간의 연애사적인 면에서 남보다 무디거나 좀 더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풋풋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얼른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되돌아보자면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대단하고 가슴 설레는 것이 아닌 평범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하나의 사건이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1,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 정말 숫기가 없었다. 아주 내성적이었고 남들 앞에 나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존재감 없는 아주 조용한 아이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장난꾸러기에다 극성스러운 형들이 있어 기를 펴지 못했고 천성적으로 순하고 얌전한 아이였었다. 우리 시대에 다들 그랬듯이 부모님도 생계를 이어가느라 바빠 자녀들을 거의 방목한 이유도 단단히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 배경하에 초등학교를 가게 되었고 짝을 배정받았다. 그 당시에는 남아와 여아를 함께 앉게 했다. 물론 짝이 맞지 않은 아이들은 그럴 수 없었지만 대부분 그렇게 앉았다. 선천적으로 여자 아이들은 같은 나이의 남자아이들보다 발육도 빠르고 지적인 성장도 빠르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을 쉽게 쥐락펴락 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더 순진하고 어리숙했으니 딱 여아들의 밥이 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내 짝꿍은 눈이 큰 데다 머리를 꼭 묶어 딱 봐도 야무진 티가 나는 아주 영악해 보이는 여자 아이였다. 그런 그 아이 눈에는 순둥이이고 순박하기 그지없는 내가 성에 차지 않은 존재였나 보다. 그 얘가 밉지는 않았지만 약간 사납게 느껴져 은근히 겁이 났다. 그런 내 속마음이 보였는지 나를 아주 우습게 보았던 것 같다. 큰 눈을 부릅뜨며 내게 협박과 위협을 했다. 책상에 제 맘대로 줄을 긋고 절대 넘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어린 나는 쫄대로 졸아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 두려운 마음에 최대한 넘지 않으려 애썼지만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 무서운 아이는 나를 인정사정없이 꼬집었다. 꼬집힐 때 아픔에 울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한동안 공포에 시달려 학교 가기가 싫었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일은 주기적으로 짝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정해진 짝은 그다지 특별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얌전하고 착한 여자아이였던 것 같다. 그 사건 이후로는 여자아이에게 혼난 기억이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를 꼬집었던 여자아이는 나를 좋아하는 표현을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다. 자신의 관심을 반대로 표출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미움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아주 귀여운 남자아이였다. 아마도 그 얘는 나에 대한 호감을 괴롭힘으로 표출한 것으로 여겨진다.


반백을 돈 시점에서 소싯적 아련한 기억이 몽글몽글 하게 가슴을 적신다. 나에게 그 추억은 아직도 선명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전체는 흐릿하지만 그 아이 눈매만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게 그렇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나는 나의 첫사랑을 두려움으로 만났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첫사랑이기보다 그 아이의 첫사랑이 나였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 추억으로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는 분명하게 있었다는 방증이다. 슬프지만 그게 나의 첫사랑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에세이 #첫사랑 #추억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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