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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16. 2023

칭찬에는 환자도 춤을 춘다

나의 자원봉사기

내가 다녔던 직장인 신한은행에서는 퇴직자 모임을 지원하고 후원하고 있다. 기본 입회비를 내고 모임에 가입하게 되면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퇴직 동우회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이 되고 있다. 대부분 취미활동을 지원하는 것에 사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면 골프, 당구, 탁구, 자전거 같은 운동 동호회를 지원하기도 하고 등산, 트레킹, 문화답사 분야도 있다. 독서와 글쓰기 모임도 있고 최근에는 합창단도 꾸려졌다. 간간이 영화와 연극도 보고 문화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그리고 교육 강좌도 열린다. 열심히 참여하면 한 달은 금방 지나갈 정도다. 기본적으로 1만 원을 참가비로 내고 나머지는 동호회에서 주관하여 진행한다.

최근에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게 되어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었다. 주로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참여했는데 동우회에서는 대외 봉사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몇 번 공지를 보면서 의무감이 들었지만 여의치 않아 마음에 짐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집 근처에서 김장봉사를 한다는 안내를 받고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잘 걸리지 않던 감기를 앓았고 그 와중에 김장하는 날이 겹쳤다. 몸이 안 좋다고 불참을 통지할 수도 있었지만 심한 증세가 약간 호전되어 좋지 않은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나갔다.


봉사활동 장소는 신내동에 위치한 꽃동네 요양원이었다.  몸 상태도 그렇고 날씨도 차가워 옷을 단단히 입고 집에서 가까운 6호선 돌곶이 역에서 전철을 탔다. 당연히 신내역이라고 단정을 짓고 전철에 올랐다. 몇 정거장 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시간상 좀 빠듯하게 도착할 것 같았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혹시나 하고 일정을 확인해 보았더니 신내역이 아니라 한 정거장 정인 봉화산역이 내릴 역이었다. 그런데 어쩌나 봉화산역을 지나고서야 그것을 보았으니.... 이미 전철은 신내역을 향해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도착 시간도 얼추 가까워 왔는데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도착한 종착지에서는 순환열차라고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속이 답답하고 기가 막혔다. 이렇게 구멍이 많은 데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게 놀랍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총무에게 전화가 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결국 꼴찌로 봉사장소에 갔다.

꽃동네 신내요양원

건강이 취약한 분들이 계신 곳이어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고 남자들은 방호복 수준의 옷을 입어야 했다. 많은 분들이 눈에 보였다. 나도 복장을 갖추고 무엇을 할까 돌아보았다. 원래 남자들은 무거운 것들을 옮기거나 들어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을 찾다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는 다 여자들이었고 나와 동료 한 사람만 남자였다. 김장 양념을 날랐다. 그리고 다른 일이 없어서 김치를 버무리는 일이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나는 의외로 이런 일에 소질이 있다. 호기롭게 돌산 갓김치를 버무리는 일에 도전했다. 손이 빠르고 눈치가 있어서 휘리릭 하다 보니 근처에 있던 원장 수녀님의 눈에 띄었다. 일을 너무 잘한다는 칭찬이 곧바로 들려 왔다. 주위 분들도 덩달아 추켜 세워 주니 신이 났다. 없던 힘을 내게 되고 거침없이 열정을 가지고 버무렸다.

 

남자들은 정말로 단순하다. 여자들의 칭찬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평소에 잘하지 않은 일임에도 마치 내일처럼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내가 딱 그랬다. 갓김치가 끝나고 쪽파 김치를 담았다. 그 일에도 놀라운 실력으로 빛나는 성과를 냈다. 계속되는 칭찬에 허리도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미친 듯이 김치를 버무렸다. 사실 나는 환자인데.....


김장이다 보니 양도 산더미 같았다. 쪽파를 버무리고 나니 이제는 알타리가 쏟아졌다. 알타리는 무를 칼로 쪼개야 했는데 그 일도 척척해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곳은 거의 다 끝나고 정리 중이었고 내가 자리한 곳만 남았다. 다른 봉사자들은 일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주역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최후에 깍두기 버무리는 일을 마치고 나서야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방호복을 벗으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다 나은 감기가 너무 몸을 혹사해서 다시 도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겨우 옷을 벗고 식당으로 향했다. 자원 봉사자들은 모두 자리를 잡고 한참 식사 중이었다. 총무가 나를 보더니 먼저 간 줄 알았단다. 지금까지 일하고 있었다고 억울한 심정을 표출하고 자리를 잡았다.

너무 힘이 들어서 밥 맛조차 없었다.  속배추쌈과 삼겹살 수육에 겉절이 김치 그리고 전과 된장국이 메뉴였다. 후식으로 대봉 감이 나온 맛깔스런 점심이었는데 힘들게 먹었다..


그렇게 봉사활동이 끝이 났다. 좋은 일을 하고 났지만 마음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너무 무리를 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엄청 핀잔을 들어야 했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 시선은 안중에도 없던 사람이 그렇게 타인을 의식해 무리를 했냐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열정이 차고 넘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나도 남자라 여자들의 칭찬에 약한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결국 드러눕고 말았다. 아! 나의 어리석음이여......


#에세이 #자원봉사 #김장 #꽃동네신내요양원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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