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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Feb 22. 2024

영화 감상 '추락의 해부'

남편의 죽음으로 해부되는 아내의 삶-결혼 생활의 민낯을 만나다

광화문 시네 큐브에서 "추락의 해부"라는 영화를 봤다. 평론가와 함께 보는 영화 이벤트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수작이다. 아카데미에도 5개 부문이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작품성이 인정된 영화다.

광화문 씨네큐브

상업성과는 별개로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을 주로 상영하는 영화관 특성으로 재미가 있을 거라고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장르도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가 아닌 스릴러가 가미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였다.


하지만 보고 난 소감은 기대이상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여주인공의 탁월한 연기력을 통한 내밀한 심리묘사였다. 흡인력 있는 연기로 영화시간 내내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한 방향으로 흘러가던 극의 흐름을 뒤집는 마무리의 반전도 놀라웠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아내와 아들, 변호인, 검사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주인공이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구성에다 사건도 단순하다. 뻔한 결말을 연상할 있는 남자의 죽음을 두고 긴장감 넘치게 스토리를 끌어가는 것은 바로 감독의 뛰어난 역량이라 수 있겠다. 한 여성의 삶이 파헤쳐지는 과정이 대단한 몰입을 가져다 주었다. 상영시간이 두 시간이 훌쩍 넘는 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 내내 과연 아내가 범인이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스토리는 이렇다. 설원이 펼쳐진 한가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개와 산책하는 아이가 등장한다. 아이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산책에는 자유롭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빠의 주검을 마주친다. 남자가 추락사한 것이다. 죽은 사무엘은 11살의 남자아이를 가진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다. 평화롭던 분위기는 긴장으로 180도  전환이 된다. 사인을 자살로 볼 수없다는 부검결과가 나온다. 그렇다고 타살의 확증도 분명하지 않다.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단어 하나는 모호함이다. 자살과 타살의 경계가 애매하고 범인도 분명하지 않다. 정황과 추측만이 상황을 지배한다. 외동아들은 사고로 인한 시각장애인으로 영화에 모호함을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여러 정황이 부각되면서 아내인 산드라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그렇다고 결정적인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정황과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수사의 초점은 산드라에게 집중된다. 이로 인해 부부관계가 핵심 쟁점으로 등장하면서 이들의 내밀한 결혼 생활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잘 나가는 작가인 아내와 역시 작가를 꿈꾸지만 글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좌절하는 남편이 있다. 아들의 실명사고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고 설상가상으로 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도 겪고 있다. 아들의 실명사고를 자신의 책임으로 지나치게 괴로워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 아내를 탓하는 남편을 산드라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남편으로 인해 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런 갈등이 극에 달한다. 남편은 매우 감성적 사고를 지녔고 아내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사고 전날 심하게 다툰 사실이 녹음된 테이프가 증거로 제출이 된다. 서로를 탓하며 극단적으로 싸우며 폭력이 행사되는 갈등의 끝을 보여준다. 아내가 양성애자로 외도한 사실도 드러난다. 치열한 검사와 변호사의 논쟁이 이어진다. 검사는 아내가 범인임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많은 정황이 아내에게 불리하게 흘러간다. 이런 상황을 목도하는 아들은 혼란스럽다. 엄마를 믿을 수 없다. 재판은 종국으로 향하게 되고 아들의 증언이 변수로 등장한다. 변론을 앞두고 아들은 엄마와 함께 지내는 것을 거부한다. 아들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 산드라는 절망한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아들 다니엘은 아빠가 음독자살을 시도했다는 엄마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하고 결정적으로 아빠에게 자신의 자살을 암시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 불리한 모든 정황을 뒤집고 산드라는 무죄로 판명이 난다.


영화에서 특기할 사실 하나는 다니엘의 시각장애에 대한 두 시선이다. 엄마인 산드라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자신의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하에 아들을 양육한다. 이미 벌어진 과거의 사건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아빠는 그러질 못한다. 아들의 장애를 불행으로 여기고 과거에 사로잡혀 자신을 자책하며 현재를 살지 못한다. 또 한 가지 사실은 스눕이라는 개의 역할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극 중 아빠를 대변한다. 영화를 감상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용납되지 않을 때 초래 되는 비극을 본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했지만 그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불행에 대한 정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니엘의 실명사고를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받아들인 남편은 자책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내는 달랐다. 결혼이라는 전제하에 어느 누구도 아무 문제가 없이 사는 부부는 없다. 누구나 저마다 문제를 안고 산다. 완전한 사람이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용납하고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소통이 막히면 결국 파국을 피할 수 없다. 결혼해서 지금 까지 잘 지내온 것은 나를 받아주고 이해해 준 아내의 덕이다.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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