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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에서 맛본 캠핑의 즐거움

자라섬 카라반에서 캠핑을 즐기다

by 정석진

캠핑을 했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경험한 적이 있지만 근자에는 보기 드문 여가 활동이다. 그간 매스컴을 통해 차박 열풍을 들으며 나와는 무관한 남의 이야기로 여겼고 관심도 별로 없었다. 캠핑에는 많은 장비가 필요하고 또 현장에 가서 설치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데, 나는 이 일을 그다지 잘할 자신이 없다. 장비를 다루는 것이 힘들고 번거로울 뿐 아니라 장비를 다루는 재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창단 친구가 내게 몸만 오면 된다고 해서 가평에 있는 자라섬으로 캠핑을 따라나섰다. 라반을 빌려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일행은 친한 합창단 동료들 3인이었다.

차로 도착한 자라섬은 겨울이라 그런지 잔디는 누렇게 말라있었고 나무들도 잎을 다 떨구어 을씨년스러웠다. 그래도 괜찮은 환경은 캠핑장 주변을 강물이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캬라반


실제로 현장에 와서 보니 우리가 지낼 라반이 겉보기와 달랐다. 너무 협소해 보여서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실내는 넓고 쾌적했다. 더블침대와 이층 침대가 비치되어 4인 이상이 충분히 잘 수 있는 공간이었고 샤워할 수 있는 깨끗한 화장실도 있었다. 히터가 빵빵하게 작동했고 이층 침대에는 열선도 깔려있다. TV에 냉장고, 밥솥, 전자레인지를 갖춘 부엌에 조리도구와 식기류가 구비되어 완벽했다. 여느 콘도와 다를 바가 없이 편리하고 편안한 환경이었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짐을 풀고 간단한 간식 시간을 가졌다. 솜씨 좋은 선배가 준비해 온 떡볶이와 어묵탕을 뚝딱 요리했다. 야외에서 먹는 음식은 왜 이리 입맛에 착 들러붙는지 참 모를 일이다. 간식 후에는 자라섬을 둘러보았다. 섬은 꽤 넓었다. 너른 빈 공지마다 꽃밭이 조성중이다. 지금은 썰렁하지만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이 오면 아주 장관일 것 같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작은 연못 주변과 강안의 수변 풍경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산책 막바지에 찬비가 뿌렸다.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고 우박과 눈이 간간이 흩날렸지만 심하지 않아 밤에는 오히려 장작불이 더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음악을 들으며 불을 피웠다. 불을 직접 대하는 일은 참 흥미롭다. 가벼운 흥분이 일고 동심과 추억이 함께 떠오른다. 땔감은 장작뿐 아니라 집에서 가져온 말린 귤껍질과 밤껍데기도 있었다. 춥고 스산한 밤, 어둠을 밝히며 나무가 활활 불에 타는 것을 바라보는 일도 좋았지만 귤껍질의 향기로운 내음과 밤껍데기의 타닥타닥 하는 소리로도 힐링하는 시간이 되었다.

캠핑을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캬라반 앞에서 장작불을 피워 불멍을 하며 바비큐를 즐기는 일이었다. 친구가 경험이 많아 일사천리로 저녁이 진행되었다. 저녁 메뉴는 돼지고기와 가리비였다. 먼저 야채샐러드로 전채를 즐겼다.


불구경을 실컷 하는 동안 장작이 다 타고 숯불만 남았다. 숯불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였다. 여기에 석쇠를 얹고 얇게 저민 연탄구이용 돼지고기를 올렸다. 양념이 된 고기는 전문가의 손길을 따라 타지 않게 적당하게 구워졌다. 익은 고기를 야채와 곁들여 쌈을 싸서 먹었다. 숯불에 구운 고기는 부드럽고 고소하며 달착지근해서 쉬지 않고 입으로 향했다. 몸이 저절로 들썩이는 맛이었다. 1차로 고기로 배를 채우고 난 다음에는 싱싱한 가리비 차례였다. 붉은색의 가리비는 불에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나 둘 입을 벌렸다. 바다 내음을 품은 잘 익은 가리비 속살은 짭짤하면서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배가 불렀음에도 가리비는 유혹적인 맛으로 중간에 그만 먹을 수가 없었다. 먹다 보니 10시가 훌쩍 지나갔다.

돼지고기/가리비


기분 좋게 포식을 하고 잘 익은 파인애플을 후식으로 먹었다. 배가 부르니 추위와 피곤이 함께 몰려왔다. 캬라반 안은 후끈했고 잠자리도 뜨끈해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함께 놀다 자려고 했는데 졸려서 그러질 못했다.


친구 덕분에 엄두가 나지 않았던 색다른 경험을 했다. 추운 겨울밤에 야외에서 불을 피워놓고 친한 이들과 함께 즐기는 만찬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도 아름다웠다. 하늘에서 우박이 내려 까만 밤의 화폭에 흰 선 긋기를 한듯한 장면도 놀라운 순간이었다. 이렇게 갖춰진 시설이라면 나도 해볼 만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실제로 오게 되면 시행착오를 많이 겪겠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


#캠핑 #캬라반 #자라섬 #모닥불 #바비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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