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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Apr 16. 2024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전철 안에서 생긴 일

적지 않은 무게로 봄비가 내리는 날이다. 거의 여름날같이 치솟은 전날의 고온을 식히려는 듯 비가 온다. 우산을 쓰고 걷는 하늘은 잔뜩 흐려 우중충하다. 하지만 주변은 전혀 딴 세상이다. 봄비가 반갑고 즐거운 나무와 꽃들은 생기가 넘친다.  그 들뜬 분위기가 주위를 물들여 환하다. 초록빛으로 성장한 나무들과 한창 피고 있는 철쭉의 빛깔이 선명하게 빛나는 까닭이다. 비 오는 날은 흐린 날이라는 사고는 꼭 들어맞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시내에서 약속이 있어 전철을 타러 다. 늘 간당간당하게 나서는 버릇이 있는 데, 오늘은 서둘러 나와 모처럼 발걸음이 여유롭다. 시내를 오가며 한동안 교통카드가 인식이 잘 안 되어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서 애를 먹었다. 카드를 교체한 후라  단번에 통과를 하니 기분이 좋다. 별 것 아닌 작은 일에도 불편을 겪다가 편한 이유다.


전철 노선에서 사고가 있었는지 열차 지연 안내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서 전철이 연착이 될 줄 알았는 데, 다행히 곧바로 탈 수 있었다. 가야 할 구간이 길어서 책을 읽고 싶어 빈자리가 있었으면 했지만 전철 안은 승객들로 붐벼 서서 가야 했다. 그런데 임산부 배려석에 젊은 외국인이 앉아 있다. 눈에 거슬리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괘씸한 마음이 들다가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 먹었다. 좌석에는 군인들도 앉아 있었다. 편견일 수 있겠지만 차 안이 붐빌 때, 한창인 젊은 군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모습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운 좋게 자리가 나서 앉아서 책을 읽고 가는 중에 전철이 역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군인들이 급하게 뛰쳐나갔다. 내릴 역을 지나칠 뻔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시에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던 외국인이 인상을 쓰며 일어난다. 그리고는  옷을 닦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았더니 바닥에 노란 토사물이 흐른다. 군인이 차멀미로 토하며 내린 것이었다. 떨어져 있는 내게까지 역한 냄새가 풍겼다.


그대로 앉아있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다음 역에서  지긋한 나이의 승객이 들어와 토사물을 밟은 채 아무렇지 않게 선다. 의외의 광경에 경악스러웠다.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더럽다는 생각에 자리를 피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게 된 것이다.


그때 원효대사의 일화가 문득 떠올랐다.  잠을 자다 깜깜한 밤중에 목이 말라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는 다음 날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역겨움에 토하다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난 것이다.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비위가 약해 그 자리를 떴다. 그 승객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아연실색하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모르긴 해도 그다음 승객도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설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다.


모든 것은 정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백화으름덩굴

#에세이 #전철 #생각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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