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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an 23. 2023

끝인 듯 보여도 시작이야

퇴직에 대하여

일에 치인 젊은 세대가 빨리 퇴직을 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하면서도 생각만큼 퇴직은 단순하지 않은 문제다.


거의 사십 년 가까이 한 직장을 다니다 명퇴를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맞이한 첫날 아침,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느긋함이 주는 여유가 좋았고 마음이 참으로 편안했다.

어깨에 차꼬처럼 채워져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홀가분함이 있었고 오랫동안 매어 있다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로움도 넘쳤다.


한동안 허니문처럼 기분 좋은 자유를 만끽하다 불현듯 가슴 한편으로 허전함이 밀려왔다.

그 당시 가장 크게 다가온 느낌은 상실감이었다. 소속감이 없어진다는 것이 삶에서 그렇게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항상 나를 대변했던 직장과 직위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나를 특정했던 것이 없어진 것이다. 나 자신의 일부가 소멸된 느낌이었 친밀했던 것들로부터 소외되는 것 같았다. 잘 알고 끈끈했던 많은 이들과 관계가 서먹해지게 되었 종국에는 잊히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잊힌다는 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우리는 사람들과 연결된 관계 속에 긴밀하게 살아간다.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대한 파장을 가져온다. 더구나 정해진 일과가 없고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 없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무력감이 깃든다. 그런 무력감을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마음에 아픔을 주는 스크래치는 처음에는 사소한 상처일 뿐이지만 두게 되면 덧나고 곪게 되어 쉽게 아물지 않는 병이 된다. 무력감은 나도 모르게 내 의식의 아래로 침잠하여 삶의 의지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쌓이다 보면 우울증이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돌볼 줄 알아야 한다.

방치를 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 주기적으로 마음에 젖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말리는 일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넘어질 때가 있다. 넘어진 그대로 머무르면 편할 것 같아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관성의 법칙은 하던 행동을 지속하게 만든다. 일어서기가 더 어렵게 된다. 하지만 넘어질 때 힘 있게 떨치고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넘어지고 일어서는 일이 별 것 아닌 일이 된다.

조용한 시간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고 보듬어 주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살뜰히 챙기는 방법은 심신을 돌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도 퇴직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불안에 빠져 을 먼저 찾게 된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발동을 하고 우리를 짓누른다. 그간 항상 바쁘고 힘들게 끊임없이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쉬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이 주어지면 불안하다. 퇴직 후의 남은 시간은 더 그렇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몸을 추스르는 일이다. 건강이 소중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언제나 뒷전인 것이 우리의 일상이었. 하지만 퇴직  후에는 다르다. 우선순위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 간단하고 용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머무는 공간에서 최소한의 소재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했던 것들은 먼저,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요가를 따라 했다. 운동을 하기 전에 스트레칭을 대신하기 위함이었다. 원래도 유연성이 없어 힘이 곱절이나 들었다. 어려운 동작이 아닌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특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할 수 있을 만큼 꾸준히 따라 했다. 지속하다 보니 확실히 진전이 있었다.

의외의 소득도 생겨났다. 유연성이 좋아졌고 놀랍게도 코어근육이 생기는 또 다른 선물도 받았.


요가를 하고 난 후에는 몸으로 할 수 있는 훈련을 했다.  상하체를 단련할 목적으로 스쿼트와 푸시업을 병행했다. 운동은 3회를 반복하는 것으로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각각 270번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꾸준히 운동 시간을 일과처럼 수행을 했다. 결실은 분명했고 몸이 튼튼해지고 단단해졌다.

그렇게 요가와 운동이 삶의 루틴이 되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독서와 글쓰기를 했다.

홀로 독서를 하게 되면 지속하기가 힘들다.

또한 책을 단순하게 읽는 것으로 끝내면 얻는 것이 별로 없어 남는 게 없다. 독서 모임이 꼭 필요한 이유다. 지정 도서를 통해 다양하게 책을 읽을 수 있고, 기한이 정해져 있어 규칙적으로 책을 읽게 되는 장점도 있다.

독서 모임에서는 책을 읽고 난 후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토론을 위해서 책을 정독하게 되고 자신의 감상을 정리하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 토론을 통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듣게 되고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독후감을 쓰는 일도 꼭 해야 한다. 쓰는 일은 정리를 해 줄 뿐 아니라 사고의 깊이를 더하게 해 준다. 읽은 책을 갈무리하는 것이다. 독후감을 쓰고 나면 토론도 풍성해지고 기대감도 생기고 독서를 즐길 수 있게 만든다.


글쓰기는 블로그를 통해 시작했다. 글에 어울리는 사진도 곁들이며 사진 찍는 취미도 생겼다.

블로그 이웃을 맺으며 다른 이들이 쓰는 글을 만나고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블로그는 쓴 글을 카테고리별로 정리도 가능하고 영구 저장할 수 있으며 수시로 찾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체력을 단련하고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하면 심신이 건강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기하게도 글쓰기를 통해 지난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퇴직은 결코 끝이 아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끝은 오직 한 번 있을 뿐이다. 퇴직은 또 다른 시작이다. 

우리의 긴 여정에서 하나의 매듭이 지어졌을 뿐이다. 매듭이 늘어나면 결속이 되고 단단해진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여명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퇴직은 제2의 인생의 출발점이다. 이미 한번 살아봤기에 두 번째의 삶을 훨씬 더 잘 살 수 있다.

마음이 가는 대로, 가슴이 뛰는 대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무엇이든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이 활짝 펼쳐져 있는 이 시점에 후회 한 점 남지 않도록 힘차게 출발의 깃발을 올리자!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준비가 바로 운동과 독서 그리고 쓰기다.

물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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