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도 한동안 지속이 되면 사람들은 쉽게 흥미를 잃는다. 고운 계절은 순식간에 우리 곁을 떠난다. 그래서 오월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이 계절을 빛내는 것은 꽃만이 아니다. 내가 봄을 특히 애정하는 이유는 봄나물을 만날 수 있어서다. 여기서 만남은 산야로 나가서 직접 채취하는 것을 말한다. 봄나물에는 자연의 정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봄나물의 진객은 두릅이다. 두릅은 내게 봄을 알리는 전령의 또 다른 이름으로 해마다 두릅을 따러 시골에 간다.
정겨운 시골 풍경
두릅철이 지나면 아쉬움이 크다. 나물과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자에는 오월에도 두릅과 꼭 닮은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대나무의 어린순인 죽순을 따는 기쁨이다. 몇 해 전에 전남 곡성군 석곡면에 사시는 동서를 통해 죽순을 직접 캐보았다. 죽순은 봄이 무르익는 오월이 되어야 난다. 해마다 죽순을 따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한동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올해 다시 그 기쁨을 누렸다.
대밭
대나무는 독특한 식물이다. 나무도 풀도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무도 되고 풀도 된다는 뜻이리라. 대나무는 벼과 식물로 나무처럼 목질부가 있지만 나이테로 대변되는 비대성장을 하지 못한다. 새싹인 죽순의 굵기가 대나무의 굵기로 정해진다. 대나무는 우리 조상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늘 푸르고 곧게 자라서 선비의 기품을 상징하는 나무였고, 생활가구를 만드는 요긴한 재료로 대나무가 쓰였다. 게다가 죽순은 귀한 식자재다. 대나무도 여러 종류가 있다. 왕대, 맹종죽, 솜대가 대부분인데 죽순대로 알려진 맹종죽의 죽순이 가장 맛이 있다고 한다.
죽순에는 단백질을 비롯한 비타민 B군의 함량이 풍부해서 원기를 북돋아 주고 식이섬유도 많아 다이어트와 변비에도 좋은 음식이다. 부드럽고 담백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일품으로 육류와 궁합이 잘 맞고 볶음, 조림요리도 맛있다.
죽순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새벽 댓바람에 서울을 떠나 전남 곡성군 석곡면에 도착했다. 시골은 언제 찾아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시골집 마당에 선 고운 자란과 자주달개비가 꽃단장을 하고 자태를 뽐내고 있고 무성한 뜰보리수 잎 사이로 푸른 열매가 알알이 맺혔다. 감나무에도 감꽃이 풍성하게 맺혀 올해에는 감도 많이 열릴 것 같다. 자연의 경이를 온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도 시골을 찾는 즐거움이다.
자란
자주 달개비
간단히 늦은 아침을 먹고 형님과 대밭으로 향했다. 집에서 꽤 떨어진 곳이라 차를 타고 간다. 준비물은 죽순을 담을 비닐 가마니와 채취에 필요한 낫과 칼 그리고 장갑이 전부다. 풀밭에 들어가야 하기에 장화나 등산화는 필수다. 산비탈에 있는 대밭은 밭과 연결되어 있다. 경작할 일손이 없어서 밭은 묵힌 상태여서 잡초가 무성하다.
대밭 풍경
밭두둑에 튼실한 죽순이 눈에 들어온다. 낫으로 잘라도 되지만 손으로 꺾어도 쉽게 부러진다. 대밭 한가운데보다는 대밭 주위에 죽순이 많이 자란다. 형님과 나는 죽순을 따고 아내와 조카는 죽순 껍질을 벗겼다. 죽순 껍질은 끝없는 겹겹으로 일일이 벗기는 작업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내용물보다 껍질이 2-3배가 많다. 그래서 죽순을 다듬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아주 손쉽게 했다. 죽순을 칼로 반을 가른 후에 알만 쏙 빼면 된다. 껍질채 가져가면 양도 무게도 엄청나다. 이렇게 내용물만 꺼내는 것은 삶의 지혜였다.
죽순
채취한 죽순
반으로 가른 죽순
알맹이만 꺼낸 죽순
누군가가 죽순을 한 무더기 따놓은 것을 발견했다. 전부 반이 갈라져 있다. 아마도 몰래 죽순을 따가려다 주인의 발소리에 놀라 내버려 두고 간 듯했다. 만약 오늘 우리가 오지 않았더라면 죽순 구경을 못 할 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밭을 샅샅이 뒤져서 너무 커버린 것은 빼고 적당히 자란 것들을 부지런히 찾았다. 햇살이 강렬했지만 대숲에는 그늘이 져서 그다지 덥지 않았다. 멀리서 뻐꾸기 소리도 들렸다. 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이 내준 귀한 선물을 수확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가져온 가마니에 죽순을 다 채우고는 남는 시간에는 쑥을 뜯었다. 허리만큼 자란 쑥의 윗부분을 손으로 일일이 땄다. 쑥떡을 할 요량이다. 쑥대밭에서 쑥을 뜯으니 훨씬 간단했다. 여기저기 엉겅퀴 꽃도 피어 아름답다. 엉겅퀴 꽃 피는 풀밭이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면 너무 어울릴 것 같다.
엉컹퀴
뜯은 쑥
채취한 죽순은 시간이 지나면 뻣뻣해지기 때문에 바로 삶아야 한다. 양이 많아서 실내에서 삶기는 어렵다. 밖에 걸어놓은 큰 솥에 불을 때서 삶는다. 솥에 물을 조금 붓고 죽순을 차곡차곡 쌓고는 불을 땐다. 수증기로 죽순을 익히는 것이다. 땔감은 마른 매실나무 가지다. 형님이 매실농사를 짓기에 전지한 가지를 모아 놓은 것이다. 금방 불이 붙었고 화력도 좋았다. 한참 불을 때니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마치 옥수수를 삶는 것 같다. 푹 삶아서 익은 죽순을 건져 찬물에 헹군다. 물에 헹구는 동안 질긴 부분은 잘라서 버린다. 너무 자란 죽순은 나무 같아서 먹을 수 없고 너무 어린 죽순은 내용물도 작고 연해서 식감도 별로다. 죽순에도 적당한 중용이 필요하다.
찬물에서 건져낸 죽순은 물을 빼기 위해 바구니로 옮긴다. 물을 적당히 뺀 후에는 보관하기 편하게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소분하여 비닐봉지에 담는다. 냉동실에 보관해 놓으면 필요한 만큼 꺼내 1년 내내 요리해서 먹을 수 있다. 간단하지 않은 작업이 끝났다.
죽순 골뱅이 무침
파드득 넣은 죽순 된장국
식탁에 죽순요리가 올라왔다. 골뱅이를 넣고 초장으로 버무린 죽순회무침이다. 골뱅이의 쫄깃한 식감과 죽순의 아삭함이 환상이다. 죽순으로 된장국도 끓였다. 파드득나물을 함께 넣으니 아욱국 같이 부드러워 숟가락이 자꾸 간다. 죽순으로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 들깨를 갈아넣고 볶아도 되고 생선찜을 할 때 무우처럼 죽순을 깔고 요리해도 별미다. 수고가 작지 않았지만 두고두고 귀한 음식을 즐길 수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월을 기다리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자연을 가까이하고 누리는 삶이 바로 이런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