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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n 09. 2024

일요일 오전에 누리는 작은 기쁨

홍릉수목원을 걸으며

일요일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다른 일정을 거의 못 잡는다. 그런데 예배 시간이 오후 두 시 인지라 부지런을 떨면 오전 시간에 짬을 낼 수 있다.


오늘 아내가 홍릉숲을 걷고 싶어 했다. 홍릉까지는 집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걸어서 가기는 쉽지 않아 따릉이를 탄다. 아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게 굉장한 장점이다. 기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집을 나오는 데 아내의 옷 참견이 시작된다. 운동하러 가는 차림이라 숏팬츠를 입고 가면 시원하고 편한데 아내는 너무 짧다고 타박이다. 아내는 외출할 때마다 남편의 복장 불만이다. 그래서 외출할 때 자주 티격태격이다. 오늘도 트레이닝 숏팬츠를 입고 가벼운 차림으로 가려했는데 아내가 싫어하는 눈치라 얼른 갈아입지만 기분이 상한다. 왜 옷 입는 것에 예민한지 모르겠다. 불만이 가득해서 입이 산만큼 나와가지고 미적대는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그렇게 뚱한 채로 따릉이를 타러 간다. 의외로 날이 무덥다. 반바지를 입기는 했어도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아 기분이 더 나쁘다. 따릉이를 함께 타고 예종을 넘어 외대를 지나고 경희대를 지나 가면 홍릉수목원이 나온다.


아침부터 수목원에 사람들이 많다. 아내는 맨발 걷기를 좋아한다. 나도 같이 걷고 싶은 데 발바닥이 예민해서인지 너무 아파 맨발로는 잘 못 걷는다. 아내는 맨발로 나는 운동화를 신고 숲으로 들어간다.


우산나물이 꽃대를 올리고 한창 꽃을 피우는 중이다. 꽃은 참 다양한 얼굴을 가졌다. 우산나물은 피기 전에는 너무 예쁜데 막상 피고 나면 별로다. 차라리 꽃봉오리가 예쁘다. 그래서 사진에 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우거진 숲길을 걸으니 마음이 저절로 부드럽게 풀린다. 싱그런 나무들과 풀들이 햇살에 싱그럽게 빛난다. 넓지 않은 수목원이지만 코스가 다양하다. 항상 들르는 초화식물 쪽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봄에 주로 꽃 피는 산야초가 많이 자라는데 이제는 우거진 풀숲이다. 그래도 늦게 꽃 피우는 아이들이 있어 반갑다. 큰까치수영과 범꼬리가 비슷한 자태로 꽃을 피우는 데 흰나비도 같이  날아든다.

범꼬리
까치수영

일월비비추가 꽃대를 뻗고는 귀여운 꽃망울을 달고 있다. 바위취도 만발했다.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 꽃이 눈부시다.

일월비비추
바위취

아내는 걷느라 바쁘지만 나는 꽃을 보느라 처진다. 약모밀도 귀여운 십자화를 달고 그늘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숲에는 딱총나무 붉은 열매가 꽃처럼 주렁주렁 열려 푸른 숲에 채도를 높인다.

약모밀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을 따라 발걸음도 가볍다. 맨발로 걷기 좋은 곳을 골라 걷는다. 발이 많이 아플 것 같은데 아내는 괜찮은 모양이다. 산길을 돌면서 낯선 나무들도 많이 만난다. 뽀뽀나무, 까마귀밥나무, 숲해설을 공부했지만 모르는 것이 태반이라 부끄럽다.

나오는 길에 오늘의 하일라트를 만났다. 개오동나무에 탐스러운 꽃이 만발했다. 꽃이 다발로 피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마치 난처럼 꽃잎이 혀 같다. 꽃의 세계는 참으로 신비롭다. 한참을 머물다 아쉬움을 안고 자리를 뜬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까운 풍경이라 사진에 많이 담았다.

개오동나무

뒤늦게 핀 철쭉도 눈길을 끈다. 산철쭉과 다른 꽃모양이고 더 우아한 자태로 화려하다. 조금 늦었다고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 빛난다.


돌아가는 길은 마음에 그늘이 없다. 숲이 마음을 정화해 주었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지금 여기에' 머문다. 지금 이 시간이 바로 현존의 이다. 사랑과 감사가 노니는 마음밭을 기경하는 시간이었다.


#산책 #홍릉수목원 #야생화 #숲속걷기 #맨발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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