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 벽돌 책 돈키호테를 읽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스웨덴 독서법을 아는 작가님으로 부터 소개를 받았다. 독서법 내용을 간추리면 먼저 책을 대략 훑어 보며 윤곽을 잡고난 후, 각자의 느낌을 나누고, 다시 읽으며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면서 책을 깊이 있게 탐독한 뒤 심도있게 토론을 함으로 책을 소화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훓어보겠다는 심정으로 781페이지나 되는 돈키호테 1권을 편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스웨덴 독서법이 유투브를 통해 소개되었는데, 좀더 빨리 읽는 방안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안구를 좌우로 움직이며 책을 훑는 것이다. 그전에도 책을 단시간에 보려할 때 이미 해봤던 방식이었기에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 이해하고 깨닫는 정도와는 별개로 두꺼운 책을 좀더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책 표지에 저자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에 대해 간략한 소개가 있다. 이름이 그렇게 길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온다. 1,547년에 스페인에서 태어나 1,616년에 사망했으니 거의 70년을 살았다. 그당시로 따지면 꽤 장수를 한 것 같다. 50살에 감옥살이를 하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고 58살에 출판을 했다. 아주 늦은 나이에 그 열정이 놀랍지 않은가? 주인공 돈키호테의 나이도 50으로 되어 있어 이와 무관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의 열정이 넘치는 삶의 결과물로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모험을 벌이게 되는 돈키호테를 탄생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서문에서 "만물은 자신과 닮은 것을 만든다는 자연의 순리를 저 역시 어길 수 없었습니다."라며 자신의 삶이 투영된 소설임을 밝히는데, 실제로 그는 여러 곳을 전전하고, 감옥살이도 했으며 군인으로 참전하여 부상을 당하고, 해적선의 습격을 받아 노예로 살다가 자유의 몸이 되는 다채로운 모험을 겪었다.
그러한 그의 삶의 흔적들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든 글은 결국 자신의 삶이 기반이 되어 출발하게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살아온 경험들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 되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소설 속에서 그는 신부를 통해
"비록 신분이 천한 사람이라도 아름답다는 특권에 정결한 성품까지 동반되면 어떤 높은 신분으로도 올라갈 수 있고 동등해질 수 있다는 것을 분별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며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신분에 따른 차별은 옳지 않음을 내비치고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귀족과 평민의 사랑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재미 있는 것은 그의 여성관이다.
"여자란 불완전한 동물이라네! 그러니 부딪치거나 넘어질 수 있는 장소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되며, 오히려 길에 있는 어떠한 장애물이라도 치워서 여자들이 완벽해지는 길로 아무런 걱정없이 가볍게 달릴 수 있도록 깨끗하게 해줘야 한다네."
이 시대의 여성들이 듣게 되면 들고 일어날 구태의연한 생각이지만 그 당시에는 여성이 꽃처럼 남자들의 자존심을 세우는 존재로 자리 했고 소설 속에서도 여성은 주로 사랑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물론 뒷부분에서 등장하는 소라이다처럼 예외적으로 가족과 나라를 버리고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여성도 있기는 했지만.
주인공 돈키호테는 이달고이다. 이달고는 하급 귀족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의 이달고는 나이가 쉰에 가까웠고, 얼굴과 몸이 말랐고, 체형은 꼿꼿했고, 아침 일찍 일어났고, 사냥을 좋아했다."
특기할 사항은 그가 1년 내내 기사소설을 읽는 데 푹 빠져서 일상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망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 망상은 그의 현실이 되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색다른 세계를 그는 살아간다.
"정말이지 그는 이제 분별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세상 어느 미치광이도 하지 못했던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명예를 드높이고 아울러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 편력 기사가 되어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읽었던 편력 기사들이 행한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실천해 보자는 것이었다. 모든 종류의 모욕을 쳐부수고 수많은 수행과 위험에 몸을 던져 그것들을 극복하면 영원한 이름과 명성을 얻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편력 기사가 갖추어야 할 준비를 하게 되는데, 증조부의 창과 투구를 갖추고 피부병에 걸린데다 삐쩍 마른 자신의 말을 '로시난테'로 부르고 자신의 이름도 새로 '돈키호테'라 명명하고 무훈을 전할 귀부인으로는 근처 농사꾼 처자를 '둘시아네 델 토보소'라고 정한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돈키호테는
"실행이 늦어질 수록 세상이 입을 손실이 크다"는 생각으로 모험을 떠났고
첫번 째, 객주집에서 황당한 사고를 치게 되고 결국 만신창이가 되어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와 회복을 하면서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한 농부"인 산초 판사를 종자로 삼고 다시 본격적인 모험을 나선다.
그가 보는 세상은 현실을 벗어난 전혀 다른 세계다.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대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매사가 진지하며, 생생한 현실이고 투철한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의연한 인물이다. 환경의 영향을 받아 흔들리지 않으며 그에게 물러섬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고난과 어려움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부러지고 꺾이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조차 보여준다. 비록 허황되기는 하였어도 사명에 불타는 사람의 특질을 그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그렇게 된 원인은 기사소설을 지나치게 탐독한 결과였다.
실제로 저자인 세르반테스도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고 하는데 그가 소설에 깊이 빠져 공상의 세계를 이미 경험했기에 돈키호테의 모험을 그릴 수 있었겠다는 추리를 할 수 있다.
독서는 힘이 있다. 다양한 독서는 다채로운 경험을 낳게 하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 하지만 편향된 독서는 편향된 사고를 낳는다. 우리의 의식은 무엇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획일화된 사상은 획일화된 인격을 만든다. 주인공인 돈키호테도 기사도에 대한 지나친 몰입과 편향이 그를 사로잡아 황당한 상황 속으로 그를 밀어 넣는다.
사람들은 그가 유식하고 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기사와 연관이 되면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소설 속에서 그가 생각하는 불의에 대해서는 절대 물러섬이 없다. 부조리한 것을 타파하고 악인을 처단하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죽음을 넘나들어도 추호도 물러섬이 없다. 그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의 신념에 합치 될 때뿐이다.
또 다른 면을 보면 그는 참으로 용기가 있고 굳센 의지의 사람이다. 그의 삶은 보는 관점에 따라 낭만적이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고 전부를 바칠 수 있는 용기가 가상하지 않은가!
과장하면 공자가 이야기한 "군자가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경지가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닐까?
무엇인가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삶은 나름의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종자 산초는 그를 섬기는 주인으로 인정을 하면서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를 이해시키려 애를 쓰지만 자신도 모르게 돈키호테에게 홀려 어처구니 없게도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아주 단순한 그는 불편하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천진스럽게 산다.
"주인이 깨우지 않았더라면 얼굴로 떨어지는 햇살도, 새로운 하루를 노래하는 수많은 새들의 즐거운 노랫소리도 그의 잠을 깨우지 못했을 것이다."
험한 모험 속에서 그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로 고난을 당하면서도 때때로 당나귀를 타고 가며 자루에 담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누릴 줄도 안다. 단순한 삶에는 고민이 깃들 틈이 없다. 오히려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는 한가지 길이다.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얽히게 되는 일이 많고 신경쓰이는 일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별 수없이 파생된 문제들 가운데 붙들리게 되고 복잡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야기 속에도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음 날 그는 4천 에스쿠도를 받았는데, 그것은 4천 가지 고민거리를 받은 것과 같았다."
산초는 모자란듯 하지만 때때로 번뜩이는 기지를 선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나름의 통찰은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 행운이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그렇게 자주 나오는 것인 줄 아십니까?"
"시기심이 있는 곳에서는 덕이 살 수 없고, 째째함이 있는 곳에는 너그러움이 없는 법입니다."
생각보다 지혜롭지 않은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돈키호테에게 봉변을 당한다. 하지만 그를 용납하는 이들은 무탈하게 지나가는 부조리한 모습도 연출 된다.
소설 중간에는 단편소설들이 돈키호테의 모험 사이사이에 삽입되어 흥미를 돋운다.
기상천외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실한 사랑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있다.
어리석은 행동이 빚어내는 씁쓸한 결말과 사랑으로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차서 정신조차 흐려지지만 마지막에는 아름다운 결실이 이루어지는 사랑의 이야기들이 소설을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이야기의 플롯이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우리 삶 자체가 서로 얽히고 섥혀 있음을 고려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로 황당한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럴싸한 상황이 전개 되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딱한 결말을 보게 되지만 저절로 실소가 터져 나온다.
때로는 너무 웃겨서 웃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그가 살아온 삶의 여정에서 몸소 겪은 다양한 경험과 사건들이 이야기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인생은 언제나 탄탄대로일 수 없다. 때로 순탄한 길이 있기도 하겠지만 거친 황야를 만나기도 하고 오르막 길을 만나 쉼없이 올라가야 하기도 하고 막다른 길도 마주치게 된다. 그렇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겪고 경험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 우리가 만나는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