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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n 04. 2024

(독서일기) 부활 - 톨스토이

민음사 부활 1, 2권을 읽고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다. 신한은행퇴직동우회 글사랑책사랑 모임의 6월 필독서다. 책 읽기도 가끔은 강제가 동원될 필요가 있다. 두꺼운 책은 쉽사리 손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은 오래전에 읽었거나 내용만 아는 경우가 많아 정독하며 을 필요가 있. 이 번 기회에 민음사에서 출판된 두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부활은 톨스토이의 말년에 쓰인 책이다. 그의 사상이 오롯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활이라는 단어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일반적인 의미는 아마도 인간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난다는 부활일 것이다. 저자도 성경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기록한 것으로 보아 소설에 그와 같은 비의를 담았다고 보인다.


부활의 전제는 죽음이다. 이 소설에서 죽음은 무엇에  대한 죽음이종국에  맞이하는 부활은 어떤 의미 갖는 것일까? 이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책을 읽어 보았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기대하던 결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심 바랐던 것은 신분과 세간의 평판을 넘어서는 네흘류도프와 카츄샤의 동화 같은 결혼의 결말을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할 뿐 드러내지 않는다. 카츄샤는 네흘류도프를 깊이 사랑했지만 그를 위하는 마음에서 그를 밀어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네흘류도프도 그녀의 진심을 알았지만 그녀의 뜻을 존중했고 그녀의 결정에 순순히 따랐다. 그들의 사랑은 에로스를 뛰어넘은 필레아로 승화된 사랑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사람의 본성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일까?  

성장하는 데 환경이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인 것일까?


먼저 카츄샤를 보면 그녀는 천성적으로 착함과 순진함을 타고난 것 같다. 비참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그녀는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양육자들의 상반된 처우에도 그녀는 바르게 잘 자랐다. 네흘류도프에게 순결을 짓밟히고 버림을 받았지만 그녀는 악해지지 않았다. 타고난 사람을 끄는 매력으로 인해 그녀는 숱한 남자들에게 정욕의 희생이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유곽에 몸을 담게 되고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음에도 착한 심성은 그대로다. 그녀보다 여건이 나은 이들이 오히려 돈에 대한 탐욕으로 사람을 죽이고 돈을 훔치고 타인에게 죄를 덮어 씌우기까지 한다. 그녀는 돈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 없다.


감옥에서도 그녀는 의연할 뿐 아니라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는 심성으로 죄수들에게도 사랑을 받는다. 그녀는 훌륭한 인격자인 정치범 마리야 파블로브나를 만나 많은 영향을 받는다. 아울러 네흘류도프의 한결같은 진심에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자포자기했던 자신의 삶을 추스르고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나아간다.


그녀는 네흘류도프로 인해 타락했고 방탕한 사회는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누명은 그녀를 감옥으로 이끌었고 그것은 사실상 죽음이었다. 그러나 가장 낮은 그곳에서 그녀는 네흘류도프를 만났고 또 다른 바르고 훌륭한 이들을  만난 후 그들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부활을 맞이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도 중요하고 함께하는 이들의 영향 절대적라는 사실이다.


네흘류도프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군대에 가서 세상에 물들어 타락의 길을 걷는다. 방탕한 삶을 살지만 그에게도 양심이 있어서 마음 한편은 괴롭다. 카츄사에 대한 죄책감은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지만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며 그녀를 만나게 되고 잊고 지냈던  죄악의 기억으로 충격에 빠진다. 처음에는 회피하고 싶었지만 양심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양심에 따라 그녀를 돕기 위해 감옥에 드나들면서 소외받는 민중들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겪으며 상류사회의 위선과 죄악 된 삶을 깨닫게 된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불의와 불법을 보며 그는 심각한 회의에 빠진다. 


그는 공직자들의 무자비하고 비양심적인 태도에 분노하며 근본 이유를 발견한다. 그들은 사람을 보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의무가 아닌 직무와 규범만을 보았다. 그리고 그 규범을 사람보다 우선시했다. "어떤 예외적인 경우에라도 무엇이든 인간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인간들에게 어떤 범죄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목도한다. 결국 제도와 법이 아닌 동정과 사랑의 힘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근본임을 깨닫는다.


 그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삶의 중요한 본질 깨닫는다. 물질이 아닌 사람을 보게 되고 사람들의 평판이 아닌  아닌 양심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또한 위선으로 점철된 타락한 상류사회를 깨닫고 환멸을 느끼게 되고 가난하고 버려진 사람들과 함께하며 살아 있음과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네흘류도프는 귀족으로 당연하게 누렸던 안락하고 풍요로운 자리를 버린다. 그리고 고통받고 버림받는 이들의 낮은 삶으로 나간다.  방탕하고 위선적인 삶을 버리고 진실한  삶을 선택한다.  그의 깨달음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영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의 물질과 지위를 활용하여 죄수들을 적극 돕는 삶을 살아간다. 결국  죄수들과 카츄샤를 통해 그도 구원을 받고 부활하게 된 것이다.


#독서일기 #부활 #톨스토이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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