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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May 11. 2024

(독서일기)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문미순

성북구한책 후보 도서를 읽다

지금은 모두가 살만한 세상이라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문미순의 소설은 지금도 여전히 음지에서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사회에 그늘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책을 읽었다. 뉴스를 접했던 기억도 났다. 연금을 수령하는 부모가 사망하면 자녀들이 이 사실을 숨긴 채, 수년간 부정 수급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내용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괘씸하게 여겼다. 이 책은 그 내용을 다룬다. 책을 읽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수긍하게 되었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읽기 불편한 소설이다. 지지리 궁상맞은 내용에 암울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 삶의 기쁨이나 희망은 자취도 보이지 않고 암울하다. 답답한 심정에 체한 기분도 든다. 책 분위기에 젖어 나 스스로도 우울해졌다. 나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의무적으로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끝부분에서는 일말이나마 숨통이 트인다. 웃픈 상황이지만 나름 해피앤딩이다. 고창으로 여행 중에 책을 읽었고 종착지에서 책 읽기를 마쳤다. 도착한 곳은 햇빛이 쨍쨍했고 신록이 넘치는 오월의 찬란한 날이었다. 그곳에서 우울한 감정을 떨칠 수 있었다.


명주는 이혼녀다.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했지만 딸을 지키는 조건으로 위자료 한 푼 없이 쫓겨났다.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딸은 비정하고 교활하다. 고등학생인데도 유부남을 유혹해서 돈을 뜯어내는 골칫덩어리다. 직장을 옮기지만 더 나락으로 떨어진다. 일하다 화상을 입고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딸을 남편에게 보내고 치매를 앓는 모친에 얹혀살게 되는 데, 모친의 연금으로 모녀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러다 모친이 급사한다. 그녀는 살기 위해 모친을 미라로 만들고 연금을 받지만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불안한 매일을 보낸다.


그녀 이웃에는 준성이라는 젊은이가 뇌출혈로 쓰러진 부친을 돌보며 살고 있다. 그는 바르고 착실한 청년이다. 주간에는 부친을 간병하고 밤에 대리기사로 뛴다. 부친은 알코올 중독으로 아들 몰래 술을 마시다 쓰러져 상황은 더 악화되고 준성은 외제승용차를 몰다 사고가 나는 바람에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직장도 나가지 못하고 하루종일 부친을 간병하다 자신의 실수로 부친이 절명한다. 모친을 매개로 준성과 아는 사이인 명주는 겁에 질린 준성에게 모친과 똑같은 방식으로 부친의 죽음을 숨기게 한다.


그 와중에 명주의 딸은 외할머니 부재에 의심을 품고 모친을 협박하기에 이른다. 결국 살고 있는 월세방의 보증금을 딸에게 빼앗기고 모친이 사놓은 시골집으로 옮기며 두 구의 시신도 함께 떠난다. 준성이 운전하고 가던 이삿짐 실은 트럭에 근처 요양원의 치매 환자인 할머니가 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명주는 어머니로 함께 사는 것으로 하자며 준성과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소설은 끝이 난다.


생존이 힘든 상황에 처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애쓰고 살아보려 발버둥을 치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두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는 모습에 부정하다고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법은 이들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테두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 위로 내려앉는 한 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명주가 바라던 것은 이렇게 소박한 삶인 데 이런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없다는 환경과 여건이 너무 가슴 아프다.

"아버지는 살면서 한 번도 확 피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꽃들도 활짝 꽃을 피우는 시기가 있고 계절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데 아버지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반짝 빛나던 때가 없는 것 같아요." 준성이 아버지를 잃고 울며 나누는 이야기도 애달프다.   

"아버지의 말이 다르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살아낸 인생은 그것대로 하나의 인생이니, 너도 네 삶을 네 스스로 짊어지고 가라는 의미로, 화려하지 않아도, 드러낼 만한 인생이 아니어도 모든 삶은 그대로 하나의 인생이니까."


마지막 문장은 울림이 크다. 누구의 삶이든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약자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시각이 아닌 공감하고 이해하는 눈으로 소외받고 절망에 빠진 이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최소한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이들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미물보다 나은 것이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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