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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n 13. 2024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의 산 청량산

경북 봉화의 청량산을 만난 기쁨

경북 봉화는 오지로 꼽힌다.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이다. 올해는 인연이 있었는지 오월에 이어 연달아 그곳을 방문다. 지난달에 백두대간수목원을 가는 길에 주 산세가 아주 독특해서 마음에 갈무리해놓았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둥근 멋진 암봉들이 아름다웠다. 이 멋진 풍광 꼭 다시 오리라 다짐 했.

 

은행퇴직동우회에서 매달 등산을 가는 데, 선착순로 참여할 수 있기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신청을 한다. 유 월 산행 장소가 바로 이곳 청량산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가는 날이 다 되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못내 뻤다.


당일치기 산행이라 집에서 다섯 시 오십 분에는 나와야 버스 탑승 시간을 맞춘다. 오늘도 그렇게 출발했는데 신이문역에서 전철이 연착이 되는 바람에 7시 정각이 되어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로 가는 중간에 아침 식사를 하고 11시에 입석 주차장에 도착했다. 청량산은 암이 아름다운 산이다. 그곳에 깃든 역사도 많고 명소도 많다. 이곳에서 등반을 시작하여 정상인 장인봉을 다녀오는 코스로 약 6.1킬로미터 거리를 세 시간 반에 걸쳐 등반한다.


주차장 입구에 자리 잡은 바위 무더기가 입석이었다. 처에 작은 솟대  무리를 조성해 놓아 예스런 환영인사를 받은 느낌이었다. 입석 주차장 해발 400미터로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 싸인 깊은 산속이다. 우거진 숲과 깊은 계곡이 심산에 왔음을 알린다.

입석
솟대

곧바로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키 큰 굴참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가파른 산길로 진입이다.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해맑아 기분 좋은 출발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길 오른쪽이 깎아지른 암벽이다. 좀 더 걷다 보니 왼쪽은  낭떠러지다. 절벽과 암벽 사이에 난 오솔길이 마치 범접하기 어려운 심산을 너그럽게 맞이하는 배려 같다. 그만큼 산이 험하다. 신기한 것은 경사가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량산이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어 그런 것은 아닐까?

힘이 덜 들다고 하지만 오르막을 계속 올라서 호흡이 가빠진다. 산마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히 이어지는 길이 높은 산에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금탑봉의 독특한 자태가 나무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인다. 숲속에서 암자를 처음 만난다. 예전에는 청량산 전체가 사찰로 암자들이 수두룩 했다고 한다. 암자 앞마당에는 밭이 있다. 수려한 기암 밑에 자리 잡아 산속에 안긴 자태다. 이곳에 은거하는 삶에는 세상은 아무 미련도 남지 않을 것 같다.

조금 더 가면 응진전이 나온다. 응진전은 청량산에서 손에 꼽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역시나 기암과 어우러진 멋진 장면을 보여준다. 이곳은 단풍이 들면 더 기막힌 경치가 될 것 같다. 단체로 등반을 하게 되면 마음이 바쁘다. 발걸음도 빨라지고 목적지만 보인다. 그래서 주위를 충분히 감상할 여유가 없다. 이곳은 그렇게 지나치기에 아까운 곳이다. 뒤처질 수도 있지만 과감하게 가는 길에서 벗어나 들른 곳이 자소봉과 풍혈대다.

응진전

몸은 힘들지만 눈이 즐거운 시간이다. 풍혈대는 암벽 사이에 난 창이다. 풍혈은 바람이 통하는 굴을 뜻하는 데 신라시대 명필 최치원이 독서와 바둑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로이 독서를 즐기기에 제격인 장소다. 가는 길에 금탑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낮이지만 그늘이 깊어 더위를 식혀주는 숲길이다.

풍혈대

어풍대에서는 유서 깊은 절 청량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금탑봉 밑에 자리한 가람이 방금 세수를 마친 어린아이의 얼굴처럼 단정하다. 청량사는 경치는 물론이고 이야기를 담은 명소가 많아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크다. 신라시대 명필이 공부했다는 김생굴과 마시면 총명해진다는 총명수가 샘솟는 샘물도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름에 약하다. 총명해지는 샘물이라는 데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원한 샘물이 정신을 깨운다. 김생굴은 굴이라기보다 비를 피하는 장소 정도이지만 정말로 김생이 이곳에서 공부했다면 그는 지금 말로 관종이 아닌가 싶다. 지나가는 누구나 보이는 열린 곳이기 때문이다.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총명수 / 김생굴

길을 벗어나 자소봉에도 오른다. 경관이 탁 트여 시원하다. 바위로 이루어진 뾰족한 봉우리가 작은 산 같다. 산 정상에 서있는 소나무들은 운치가 있다. 고고한 곳이라 그럴까? 이름 있는 유적을 위주로 걷다 보니 산을 오르면 늘 만나던 야생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곳 자소봉에서 해맑은 기린초를 만났다. 그 후로 여기저기 기린초가 눈에 띈다. 양지꽃도 돌틈 사이로 꽃을 피웠다. 반가움에 마음이 더 간다. 어디서나 자기 본분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자소봉
기린초/ 양지꽃

탁필봉과 연적봉을 연이어 오른다. 명필들과 연관이 많은 산이라서 봉우리 이름에도 글씨와 연관이 있다. 탁필봉은 길가에 선 커다란 바위로 연적봉에서 바라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일행이 역적봉이라고 잘못 전달해서 역적들만 오르는 봉우리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며 오르는 데, 올라보니 연적봉이다. 고사목이 멋진 자태를 뽐낸다. 죽어서도 아름다움을 지니는 나무들은 참으로 멋진 존재다.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 되는 곳이라 좁은 장소가 북적인다. 나도 이곳에서 한 컷을 남겼다.

탁필봉
연적봉

험한 산이라 오르내리는 길이 직각이다. 철제구조물로 놓인 사다리길이 아찔하다. 뒤이어 만나는 하늘다리는 국내에서 가장 크고 높은 현수교라는 데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아마도 바닥이 불투명해서 그런 것 같다. 하늘다리 자체보다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이 더 대단하다. 신선이 머물듯한 봉우리들이 그림같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다리

산행의 목표인 장인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는 길 사위가 아찔하다. 천길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풍경이 서늘하다. 오르내리며 도착한 장인봉은 너무 단순했다. 나무들에 둘러싸여 시야가 막혀있고 오로지 장인봉이라는 바윗돌 하나만 덩그러니 서있다.  정상이라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 곳이다. 그나마 바위에 새겨진 글자가 명필 김생의 집자라는 설명으로 위안을 받는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량사로 내려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경사가 심한 돌길을 걸어야 한다. 등산스틱은 그래서 필수다. 새로 장만한 스틱이 안전한 하산 길을 지탱해 준다. 일행이 돌을 잘못 밟아 손목을 삐었다. 산에서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청량사는 말 그대로 청량한 절이었다. 분위기가 정갈했고 어느 한 곳도 정성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빗물이 흐르는 길조차 기와로 정성스럽게 단장을 했다. 가람 배치도 산 경사를 따라 정갈하게 자리를 잡았다. 항아리를 놓은 곳도 세심한 손길이 느껴진다. 탑을 전망이 좋은 곳에 배치해서 독보적인 풍경을 빚었다. 아름다운 사진이 카메라에 담긴다. 문화재로 지정된 유리보전 안에는 건칠불이 있다. 건칠불은 옻칠을 삼베 위에 두껍게 바른 뒤 건조해 만든 불상으로 남은 작품이 희귀하다. 문외한이 보기에는 여느 불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유리보전은 팔작지붕을 가진 아름다운 전각이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청량이 주는 이름의 힘일까? 내려가야 하지만 조금 더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고운 절이다. 내려오는 길에도 통나무로 물길을 낸 수로가 마음을 붙든다. 참 마음에 남는 절이다.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청량산은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절경은 물론이고 명소가 곳곳에 있어서 지겨울 틈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험한 산인데도 힘이 들지 않는다. 청량한 산의 기운이 몸과 마음을 북돋운다. 품은 이야기도 풍성하다.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이 국립공원이 아니라는 것이 의아하다. 다시 찾고 싶은 아름다운 곳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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