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게 주변 풍광을 즐기며 산길을 걷는 트레킹을 제대로 다녀왔다. 제대로라는 말은 등산처럼 정상을 향해 부단히 오르지 않고 유유히 숲길을 즐겼다는 의미다.
오늘 다녀온 대관령 국가숲길과 선자령 트레킹은 평탄한 능선으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숲 길이었다. 한낮의 무더위가 작열하는 시간이었지만 대부분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이었고 오르막 내리막이 없어서 동네 마실길처럼걸었다.
선자령 계곡
오늘 코스는 옛대관령휴게소에서 출발하여 대관령전망대를 지나 선자령에 오르고 재궁골삼거리와 양떼목장을 지나 출발지로 돌아오는 11킬로미터로 약 네 시간이 소요되는 길이다.
서울 종합운동장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한 버스는 평창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막힘 없이 달려 오전 9시 반에 옛대관령휴게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장대하고 새하얀풍력터빈이 우리를 반긴다. 대관령에는 풍력터빈이 많이 설치되어 낯선 풍광을 연출한다. 한낮이 아니었지만 햇살이 따가웠다. 계속되는 무더위로 트레킹이 만만하지 않을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해발 800미터인 출발지는 바람이 심한 곳으로 숲에 인공 조림을 했다고 한다. 그런 결과로 보기 드문 전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숲길에 들어설 때는오르막 길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른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걷기에 좋은 길이라 공짜 선물을 받은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전나무숲
전나무 숲길은 아름다웠다. 전나무는 수직으로 자란다. 마치 일직선을 자로 그은 듯하다. 전나무가 소나무같이 주위에 흔했더라면 올곧은 자태로 소나무를 제치고 사군자에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창한 숲에는 관목들과 초본류가 무성하다. 나물채취금지라는 푯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산나물도 많이 자라는 것 같았다. 반가운 야생화도 만났다.가장 반가운 식물은 싱아였다. 소설가 박완서의 대표작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언급된 그 싱아다. 싱아는 마디과 풀로 잎과 줄기에서 신 맛이 난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줄기는 찔레처럼 꺾어 먹는다. 군락을 이룬 싱아가 너무 신기해서 줄기를 꺾어 먹어보았다. 신 맛이 침을 돌게 했다. 동행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싱아
야생화로는 붉은 토끼풀이 초입에 한창이었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기린초도 만발했다. 노루오줌풀도 주인공이다. 걷다가 심심할 때면 풀숲에서 손을 내밀어 우리를 반긴다. 이곳에는 터리풀도 많았다. 노루오줌풀과 꽃이 흡사하지만 햇살을 받아 빛나는 꽃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봄에 잎만 무성하던 산비장이도 노란 꽃망울을 달고 숲을 빛낸다. 참조팝도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활짝 핀 것보다 덜 핀 참조팝꽃이 훨씬 아름답다. 이곳에는 특이하게 속새도 군락을 이뤘다. 잎도 없이 줄기만 빼곡한 풍경이 낯설다.
붉은 토끼풀
기린초
산비장이
터리풀
노루오줌
속새가 자라는 숲
숲길이 기분이 더 좋았던 것은 바람이었다. 청량한 숲의 바람은 땀에 젖은 몸을 식혀주었고 자연의 부드러움을 선사했다. 여정 내내 맑은 바람이 불어 덥지만 산뜻한 트레킹을 만들어 주었다.
선자령을 앞두고 너른 초지가 우리를 맞는다. 탁 트인 풍광에 산 마루에 도열한 풍력 터빈이 보인다.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시게 하얀 자태에 저절로 탄성을 내지른다. 구불구불한 길과 터빈이 한 폭의 그림이다. 대관령 목장도 보인다. 여기저기서 멋진 경치를 사진에 담느라 분주하다. 나도 폼을 잡고 대열에 동참했다.
선자령에 도착했다. 백두대간선자령을 아로새긴 큰 바위가 선자령을 알린다, 그늘을 찾아 목을 축인다. 마음이 넉넉하고 고운 이들이 내어주는 오이와 얼음물과 과일 그리고 오미자가 오가며 갈증을 해소해 준다.
다시 숲길을 걷는다. 참나무 군락으로 이루어진 숲은 그늘로 이어져 편안한 여정이다. 이따금 햇살이 쏟아지는 길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다. 걷기에 그만인 코스가 마음에 쏙 든다.
하산길에는 반가운 친구가 따라온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다. 거기에 산새들의 노래도 조화를 이룬다. 자연의 하모니가 절정을 틀려준다.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길이다. 거기에 더하여 나무들이 내뿜는 신선한 산소와 계곡물이 흐르며 발생하는 음이온으로 청정한 싱그러움이 넘친다. 게걸스럽게 숨을 들이마시자고 농을 건넨다.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 작은 폭포가 빚어내는 물소리와 맑은 물이 쉬었다 가라고 세이렌처럼 우리를 유혹한다.
그 마법에 걸려 일행 모두 계곡에 내려가 탁족 하는 시간을 가졌다. 차가운 물이 지친 발을 어루만져 주었다.걸으며 누적된 발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다. 예서 시 한 수를 읊으면 신선이 따로 없겠다. 계류에 비친 초록 숲의 반영이 환상이다. 오늘의 가장 멋진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다.
다시 힘을 내서 숲길을 걷는다. 미역줄나무가 무성한 솦길에 야생화가 반기는 길을 수월하게 걷는다. 오래된 참나무들이 동화 속 세상을 그려낸다. 곧바로 요정이 튀어나올 것 같은 나무 밑동이 오묘하다.
미역줄나무
대관령 목장을 끼고돌았지만 철조망이 가로 막혀 시야가 답답하다. 양 떼가 풀을 뜯는 광경이 보이지만 눈으로만 즐기고 사진에 담지 못했다. 그렇게 출발지로 되돌아왔다.
지쳐 나는 푸른 숲과 속 깊은 오솔길이 이어진 여정은 유월의 자연을 맘껏 누리는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굴곡 없는 숲길도 좋았다. 때로는 그런 평탄함도 고단한 여정에 때때로 필요한 법이다. 살아가며 누릴 필요가 있다.다른 계절에 찾아와도 좋을 숲길을 만났다. 오늘 받은 자연의 선물로 유월이 풍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