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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l 10. 2024

연꽃이 불 밝히는 세미원의 여름

연꽃축제 중인 양평 세미원에 사진을 찍으러 가다

연꽃을 배부르게 봤다. 수련도 있었지만 연꽃이 주연이었다. 연꽃과 수련은 수련과 식물로 영어로는 lotus로 같이 쓴다. 이 둘의 차이는 잎이 물에 떠있으면 수련이고 연꽃은 긴 줄기 끝에 잎이 달려 잎이 물 위에서 자란다. 수련은 밤에 꽃잎을 오므려 잠을 자는 연꽃이라는 의미.

연꽃
수련

연꽃만큼 사연도 역사도 많은 꽃도 없다. 연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 속에서 사랑을 받아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연꽃과 태양신을 동일하게 여겼다. 고대 동양에서는 석가모니가 태어나 처음 밟은 곳마다 연꽃이 피어났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연꽃은 불교와 뗄 수 없는 꽃이다. 연꽃은 인도와 베트남, 스리랑카·몽골의 국화이고 수련은 이집트, 카메룬, 캄보디아의 국화다.


종교적인 색채를 많이 지녔지만 연꽃은 독특한 면이 많다.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고 더러운 곳에서도 잎이 항상 깨끗하며 맑은 꽃 피운다. 연잎에는 수많은 돌기들이 있어 물방울이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내린다. 이때 표면의 먼지까지 함께 씻겨나가기에 늘 청정하다. 연꽃은 체온을 스스로 조절하는 고등식물이다. 평소에는 변화가 없지만 개화기 동안에는 꽃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주변 기온이 10℃ 이하로 떨어져도 개화기 연꽃 온도는 32℃를 유지한다. 딱딱하고 튼튼한 껍질로 둘러싸인 씨앗은 수 백 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싹을 틔운다. 또한 꽃부터 뿌리까지 사람들에게 먹거리가 되고 약이 되니 참으로 놀라운 면모를 가진 꽃이다.

연꽃이 한창인 양평의 세미원을 방문했다. 좀 어이가 없지만 원래 은행퇴직동우회에서 사진 출사하기로 한 곳으로 날짜를 착각해서 혼자 오게 되었다.


세미원은 경기도 지방정원 1호로 수생식물을 이용한 자연정화공원이다. 연못 6개를 설치하여 연꽃과 수련·창포를 심어 연못을 거쳐 간 한강물이 정화되어 팔당댐으로 흘러들어 가도록 구성하였다. 공원은 크게 세미원과 석창원으로 구분되는데, 세미원에는 100여 종의 수련을 심어놓았다. 세미원이라는 이름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세미원 입구에는 작은 수경정원이 있다. 색색이 고운 수련이 꽃을 피웠다. 자태도 색감도 고운 꽃들이 물을 배경으로 빛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니 더 좋다.  단단한 꽃이다.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당당하니 말이다.

수련

표를 끊고 연꽃 박물관부터 들렀다. 연꽃이 품은 역사와 우리 삶 속에 깊이 스며든 연꽃을 만나고 역사를 알게 되다. 연꽃을 찬양한 시도 있었다. 애련설을 쓴 주돈이는 연꽃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고, 줄기는 비었어도 외형은 바르고, 덩굴도 가지도 뻗지 않고,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다고 연꽃의 덕을  밝히며 군자와 같은 꽃이라고 노래했다. 

연꽃문양/ 카페

1층에는 작은 북카페가 있어 식물에 관한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박물관을 뒤로하고 불이문으로 들어섰다. 개울에 돌다리를 놓아 굽어진 길을 는다. 신선한 발상이다. 그 길을 걸어가면 돌로 조성된 작은 정원이 있다. 숲이 두른 비밀의 정원에는 수련들이 손도손 자란다. 자연스러운 곡선의 조형이 숲과 조화롭다.

그 너머에는 항아리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고 있다. 장독대 분수는 창의적 공간이다. 옛 정취를 담은 연출이 신선하다. 드디어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정자를 두고 펼쳐진 백련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푸른 잎들도 싱그럽다. 날이 흐리지만 연등이 불을 밝혀 환하다. 가슴 떨린 설렘처럼 꽃봉오리에는 붉은빛이 돈다. 연꽃은 꽃의 탄생부터 아름답다. 꽃의 수술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태양을 낳는 꽃이라는 별칭이 딱 들어맞는다. 순백이 주는 정결함에 마음을 정하게 씻는다.  

이어지는 홍련은 정말로 조명이 켜진 착각이 든다. 백련과 다른 고혹적인 색감이다. 강렬 하연서도 결코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태어나고 자라고 피고 소멸하는 꽃의 일생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꽃이 떠나가는 길도 아름답다. 꽃을 감상하고 있는 데 꽃잎이 툭 떨어진다. 자연의 신비를 목도하는 떨림을 맛본다.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연꽃은 참으로 흠모할만한 꽃이다.


연못마다 녹음이 드리우고 꽃이 불을 밝힌다. 연꽃은 뒷면의 자태도 빠지지 않는다. 잎맥이 지닌 고운 선들과 원형의 잎들도 고유한 미를 지녔다. 물에 비친 모습도 신비롭다.


다양한 주제로 설계된 연못마다 독특한 분수가 있다. 용과 큰 도자기 화병이 물을 뿌리고 그 아래에는 연꽃과 수련들이 편안히 자리 잡았다. 어리연, 연이 자라고 멸종식물인 가시연도 있다. 수련 중 으뜸인 빅토리아 수련도 넓은 잎을 드리웠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어리연 /개연


연못  정원의 끝자락에 김정희의 세한도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가장 뛰어난 문인화인 세한도의 역사와 미적 가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세한도 한 폭에 담긴 문화가 놀랍다. 마당에는 세한도에 등장한 소나무가 그림의 분위기를 담고 서있다. 아름다운 공간이고 쉼을 누리기 참 좋은 공간이다.  

세한도 기념관

두물머리로 가는 배다리 밑에는 연과 마름이 자란다. 마름은 잎이 마치 장미꽃처럼 펼쳐져 하나의 꽃송이를 이뤘다. 식물의 세계는 참으로 신비롭다. 배다리를 건너서도 연꽃은 여전히 꽃을 피운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매혹을 당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꽃송이 송이를 한참 바라다본다.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꽃이다.

마름

비가 많이 내려 한강에는 쓰레기들이 떠다닌다. 그래도 운무를 드리운 강안 풍경은 아름답다. 우람한 나무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항상 감동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거른 점심을 연잎 핫도그 하나로 마무리를 하고 세미원으로 다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 풍경도 이미 지나왔지만 다시 새롭다.


돌아가는 길에 세족대에서 지친 발의 피로를 푼다. 시원한 물이 더위를 삭힌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연꽃들의 풍경도 좋다. 마무리로 카페에 앉아 감상을 글로 써보려 했지만 주변이 시끄러워 집중이 되지 않는다. 돌아갈 차비를 한다. 홀로 돌아본 여정이었지만 여유로웠고 보고 싶은 것들을 실컷 보았으니 되었다.  세미원의 의미처럼 물에 마음을 씻고 꽃으로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풍족해진 시간이다.

세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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