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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n 26. 2024

보리밥 한 그릇이 주는 삶의 기쁨

맨발 걷기 후 맛있는 보리밥을 먹으며

맛있는 음식은 삶의 활력소다. 맛은 환경도 중요하지만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같은 음식이라도 누구와 언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먹는 즐거움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유행을 좇아 맛집을 열성적으로 찾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오늘 점심으로 먹은 보리밥은 행복하다고 느껴질 만큼 정말 맛이 있었다.


맛집 열풍은 놀랍다. 한두 시간 대기하며 먹는 것이 통과의례인양 보인다. 매스컴 영향과 SNS가 지대한 역할을 한다. 평소에 관심이 없다가도 화면에 비친 먹방은 호기심과 먹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먹는 일에 지나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삶의 활력을 위해 가끔은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꼭 유명한 맛집에서만 그런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늘 찾아간 곳은 골목에 위치한 평범한 식당이었지만 맛은 평범하지 않았다.


오늘은 아내와 맨발 걷기 후에 보리밥을 먹기로 했다. 지난번 동원시장 안에 있던 보리밥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 오늘도 점심으로 보리밥을 먹기로 한 것이다.

삼태기숲

아내가 출근을 하지 않은 날이라 집에서 가까운 삼태기숲으로 맨발 걷기를 하러 갔다. 삼태기숲은 천장산과 홍릉수목원 사이에 자리한 조그만 숲으로 주로 유아 숲체험장으로 많이 사용되는 곳이다. 의외로 숲이 우거져서 하늘을 가릴 만큼 키 큰 나무들이 빼곡하다. 비 오는 날에만 흐르는 건천이 있어서 물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맑은 새소리는 물소리만큼 청량하게 울려 퍼진다.

오전 열 시쯤 따릉이를 타고 숲나들이를 갔다. 햇살은 따갑고 대기는 맑은 전형적인 한여름의 날씨다. 뭉게구름도 피어난 하늘도 참 예쁘다. 아내는 들어서자마자 맨발로 씩씩하게 숲길을 걷는다. 숲에는 숲체험 하는 유아들 무리가 여기저기 보인다.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은 씩씩하게 답하는 소리가 숲에 가득하다. 발바닥이 아프지만 걸을만하다. 하지만 밍기적밍기적 걷는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내를 쉬 따라갈 수 없다. 두 시간이 채 못되게 걸었더니 배가 고프다.

집에 가는 길에 식당이 있다. 따릉이를 타고 가려다 자전거 반환장소가 마땅치 않아 걷기로 한다. 따릉이는 편리하지만 반환장소가 많지 않은 점은 불편하다. 이왕 걷기로 한 것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다. 아내가 보리밥집을 수년 전에 가보고 그 이후로 못 가봐서 장소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안 보이면 집에서 먹는 것으로 했다. 걷다 보니 야채와 과일가게가 북새통이다. 우리도 구경해 보니 과일이 아주 저렴하다. 자두 한 박스를 9천 원에 그리고 방울토마토 두 박스를 5천 원에 샀다. 꽤나 무게가 나간다. 그렇게 걷다 보니 골목에 식당이 보인다.

보리밥

마치 빈자리가 있어 자리를 잡았다. 보리밥은 9천 원, 보리밥 정식은 15천 원이다. 정식에는 돼지불고기가 나온다. 가볍게 먹고 싶은 마음에 보리밥을 시켰다. 곧바로 나온 찬이 정갈하다. 보리밥집의 시그니쳐 열무김치가 자르지 않았는데 아삭하고 간도 맞고 적당히 익어서 입맛에 딱이다. 그리고 이어서 비빔밥 나물이 나왔다.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볶음이 한 접시에 담겼고 가지나물과 무 생채 그리고 취나물이 각기 다른 접시에 담겨 나왔다. 우거지 된장국도 나왔는데 맛이 있다. 찬들을 집어서 맛을 보니 간도 딱 맞고 입에 착 감긴다.


큰 그릇에 보리밥을 내왔다. 열무를 필두로 모든 반찬들을 골고루 한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맛깔난 고추장을 더하고 참기름을 듬뿍 두른다. 숟가락으로 쓱쓱 비비는데 침이 고인다. 인내심을 가지고 나물과 밥과 양념이 잘 섞이도록 열심을 낸다. 마침내 다 비벼졌다.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안에 가져간다. 정겨운 토속적인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문득 행복한 마음이 일면서 자연스럽게 '맛있다!"는 감탄사가 분출된다. 별로 기대하지 않은 놀라운 맛이 주는 기쁨이 흥겹다. 정신없이 먹다가 계란 프라이를 추가로 시킨다. 단백질도 챙겨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 시켰으면 좋겠지만 늦은 들 어떠랴! 반숙 계란이 더해지니 비빔밥이 더 풍성해졌다. 곁들여 먹는 우거지 된장국이 밥맛을 돋운다. 맛깔난 열무김치를 추가로 시켜서 함께 먹으니 더 꿀맛이다. 나온 찬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야말로 싹싹 비웠다. 시장기도 한몫을 했겠지만 정말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었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맛있는 보리밥집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맛있는 한 끼 식사가 주는 효용이 생각보다 크다. 아내는 함께 걷고 함께 먹는 시간이 너무 좋다고 한다. 내게도 묻는다. "당신도 좋지?'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해?" 함께 지내는 시간이 사랑의 언어인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 생활하다 보면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아내가 행복해야 남편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내의 필요를 잊지 말고 지혜롭게 시간을 내야겠다. 보리밥에 갖가지 나물과 채소가 양념과 어우러져 빚는 맛의 하모니가 삶을 즐겁게 한다. 우리네 삶도 보리 비빔밥 같은 조화를 이루며 살기를 바란다. 독불장군은 맛도 없고 오히려 입맛에 쓰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보리밥 #비빔밥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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