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 와본 교토 청수사를 다시 찾았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사찰 난간에서 바라본 숲의 이미지였다. 높은 곳에서 바다처럼 펼쳐진 푸른 숲을 바라본 광경이 선명히 뇌리에 남아있다. 지금도 예전과 다를 바 없는 곳이겠지만 그때는 단체로 정신없이 눈도장만 찍고 가는 상황이라 제대로 보진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여유를 가지고 둘러봐서 그런지 새롭고 다양한 고찰의 면모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들었던 말은 너무 더울 것이라는 우려였다. 물론 여행 내내 덥고 습도까지 높아 후덥지근했다. 그런데 청수사를 찾아가며 만난 수많은 인파는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열기였다. 절을 찾아가는 1차선 길이 오가는 이들로 꽉 찼다. 더위쯤은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거침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길가에는 다채로운 가게들이 성시를 이룬다. 각양각색의 간식과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이 관광객들의 눈과 발을 붙잡고 있다. 만날 수 있는 유적이 잘 보존되어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광경을 보니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절 초입에 들어서면 인상적인 목탑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사찰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중국처럼 사찰에 붉은 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높다란 목탑이 뛰어난 조형미를 가지고 강렬한 원색을 입고 있으니 시선이 안 갈 수가 없다.푸른 숲을 배경으로 빨간 전각이 도드라져 보인다. 일본의 색감은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우리는 은근한 멋이 있지만 일본은 직설적이다. 그래서 화려하고 간결한 정제미가 있다.
본전 주변 전각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서 있다. 각자 개성을 가지고 고유의 감성을 표출하며 당당하게 손님을 맞는다. 정갈하게 정돈된 단정함은 일본 고유의 특징이다. 그래서 그런지 편안함 보다는 약간의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경내에 작은 연못이 숨어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연못에는 잉어가 한가로이 노닌다. 찾는 이들이 별로 없어 마음이 차분해진다. 연못으로 가는 길 언덕에 작은 돌에 조각된 돌부처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옷을 입혀 놓은 게 앙증맞다. 귀여움에 미소를 짓는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다.
전란으로 인해 청수사도 많은 화를 입었고 지금의 절은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쓰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본당은 일본의 국보로 노송의 나무껍질로 지붕이 덮여있고 전각에는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목재를 짜 맞추는 방식으로 건축되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보이는 139개의 높다란 기둥은 느티나무로 만들어졌다. 난간 위에 이런 대찰이 지어진 사실도 놀랍다.
본당에 들어서면 석가모니가 아닌 시커먼 얼굴에 약간 우스꽝스럽게 생긴 인물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일본 사람들은 많은 미신을 믿는데 그 일환으로 보인다. 본당내부는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우람한 기둥들만이 위압감을 준다. 본당 앞에는 무대가 넓게 조성되어 있다. 무대는 절에 안치된 십일면천수천안 관세음보살에게 바치는 춤이나 공연을 하는 자리다. 지금은 여러 행사를 하는 공간으로 이곳이 가장 유명한 장소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푸른 숲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다. 멀리 붉은 목탑이 아스라이 보여 아름답다. 많은 이들이 이 경관을 즐기느라 분주하다.
숲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건너편 목탑을 보러 가는 길에 본당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웅대한 규모와 뛰어난조망이 사람들이 찾는 명소답다.
절의 이름은 오토와 폭포에서 흐르는 맑은 물에서 유래되었다. 본당 아래에는 세 줄기로 물을 흐르게 만들어 마시면 운이 좋다는 속설로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나 이런 이야기들이 꼭 등장한다. 천재지변이 잦은 나라의 환경이 빚은 문화다.
숲에는 양치식물이 무성하게 자란다. 고온 다습하여 이런 식물들이 잘 자라는 것 같다. 독특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본당 건너편 산중턱에 아담한 목탑을 찾아 바라다본 절의 경관은 또 다른 느낌이다. 숲 속에 붉은 목탑이 우뚝 서있고 옆으로 전각이 다소곳이 자리 잡아 정적이고 정숙한 분위기를 풍긴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일본 불교는 신도와 민간신앙이 혼재해 있다. 절에 신사도 있다. 돌아가는 길에 개를 위한 사당 같은 곳도 보인다. 숲 언저리에 옷을 입은 동자상이 정말 귀엽다.
11층 석탑도 있다. 우리 절의 탑과는 사뭇 다른 형식의 탑이다.
아래서 위로 보는 목탑의 자태도 새롭다. 무성한 나뭇잎들과 어울려 더 아름답다.
절구경을 마치고 청수사 근처 예스러운 거리를 구경했다. 마치 우리 서촌이나 북촌 같은 느낌이다. 니넨자카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좁은 골목길이다.
덤으로 예쁜 길을 만났고 인근의 신사도 들를 수 있었다. 신사에 안치된 화려하게 장식된 물건이 신앙의 대상인지 축제용 물건인지 궁금했다. 이곳 기온의 마쓰리축제는 일본 3대 축제로 꼽힌다.
옛 거리를 벗어나 교토 중심거리를 거닐었다. 옛 정취를 품고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기대이상의 시간이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느긋하게 둘러봐야 한다. 찬찬히 둘러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그 느낌이 오늘의 감상이다. 많이 걸어 발바닥은 불이 났지만 마음에는 고운 감성이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