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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l 17. 2024

교토의 특별한 야경 -후시미 이나리 신사

아들과 함께하는 일본여행 4 교토의 여우신사를 가다

교토에 숙소를 정했기에 느긋하게 늦은 시간에도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 관광지는 오후 6시가 되면 관람이 끝나지만 신사는 밤에도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다. 교토에서 수많은 도리이로 유명한 여우 신사를 방문했다. 도리이가 천 개가 넘는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만 개에 가깝다고 한다. 이곳은 낮보다는 밤에 가는 것이 아름다운데 실제로 해가 진 뒤 신사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여우신사로 알려졌지만 후시미 이나리 신사가 정확한 명칭이다. 이곳이 여우로 잘 알려진 곳이라 그런지 주변에 여우 그림이나 문양이 많이 보였다. 전철역뿐 아니라 심지어 화장실에도 여우를 형상화한 디자인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디자인이 뛰어난 나라답게 여우의 특징을 살리면서 사랑스러움까지 담은 일러스트가 매력적이다.


여우 신사라는 별칭은 여우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이나리 신의 사자가 여우이기 때문이다. 이나리 신은 일본 신들 가장 으뜸 신이다. 일본에는 무려 3만 개의 이나리 신사가 있는데 이곳이 본점이라고 한다. 이나리 신은 원래 풍요를 관장하는 농업신이었지만 상업번창, 사업융성, 가내안전·교통안전, 예능향상의 수호신으로서 추앙받았다. 그래서인지 신사에는 없이 많은 도리이가 있다.


도리이는 신성함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관문이다. 속세와 신성한 곳을 구분 짓는 경계로 대부분 신사의 입구에는 도리이가 세워져 있다. 도리이는 우리나라의 홍살문과 유사하다. 홍살문은 신성한 곳이나 예절을 갖춰야 하는 곳의 표식으로 주로 향교나 왕릉에 세워졌다. 중국에도 이와 유사한 패방이 있다. 도리이나 홍살문 그리고 패방의 기원은 인도의 토라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스투파(탑) 앞에 세우는 문이 바로 토라나다.


해 질 무렵 여우신사를 찾아가는 길에 마을 입구부터 커다란 도리이가 서있다. 저 멀리 도리이와 신사 전각이 이곳에 신사가 있음을 알린다. 경사길을 좀 더 올라가면 신사 특유의 온통 붉은빛으로 칠해진 높다란 전각이 당당히 서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각이라 조명이 밝진 않아도 건물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붉은 건물이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자꾸 보니 일본 스러운 것으로 눈에 익어서인지 자연스럽다. 여우 신사답게 입구 양쪽에 여우 조각이 각기 다른 물건을 입에 문 체 매섭게 내려다보고 있다. 전각은 외부뿐 아니라 내부도 온통 붉은빛이 가득해 현란하다. 전각에는 중국식당에 달려있는 것 같은 빨간 등이 걸려있다. 우리의 연등처럼 헌등이라고 쓰인 것이 아마도 헌물을 바치고 걸어놓은 것 같다. 점점 어두워지며 등불이 선명해져 전각이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전각들을 지나 산길에 접어들면 줄지어 선 도리이가 보인다. 한자로 봉납이라고 쓰인 것을 보면 도리이가 사람들의 기부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독특한 디자인을 한 문인 도리이가 터널을 이루고 있고 그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간다. 도리이 숲이 시작되었다. 붉은 기둥들이 열주처럼 서 있는 광경은 정말 특별하다. 도리이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도 예쁘다. 터널 같기도 하고 동굴 같기도 하지만 도리이 사이가 벌어져 있어 답답한 느낌은 없다.

도리이 회랑이 끝나는 곳에 전각이 하나 서있다. 주위는 더 어두워지고 불은 밝아져 분위기가 더 신비로워진다. 그 뒤로 또다시 도리이 길이 나온다. 산길을 따라 도리이가 끝없이 서 있다. 염원도 이 정도라야 하늘에 닿는 것일까? 일본인들은 집요한 특성이 있다. 이곳의 끝없이 이어진 수많은 도리이도 마치 집요함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다.

도리이 길이 끝나고 산길이 나온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중간에도 어김없이 도리이가 서있다. 중간에 만난 전각 안에는 정말로 흰여우 두 마리 조각이 모셔져 있다. 신의 사자라 여느 여우와는 달리 보이지 않거나 흰여우로 나타난다고 한다.

어두운 숲길을 돌아 나오면 도리이로 빽빽한 길이 다시 나온다. 처음과는 달리 도리이 사이에 틈이 없이 거의 겹쳐진 상태고 크기도 작다. 완전히 도리이 숫자를 채울 심산으로 세워놓은 느낌이다. 그래도 단조로움은 피하고 싶었는지 높낮이는 조금씩 다르다. 완전히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독특한 풍광이 펼쳐졌다. 밤과 조명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그림자가 빚어낸 문양이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품었다. 하늘에는 푸른 밤이 걸려있다. 머나먼 이국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풍경을 실컷 마음에 담는다. 아들도 인스타에 올릴 멋진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이곳에서는 어떻게 찍어도 작품이 된다.

긴 도리이 순례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는 여명이 남았는지 환한 느낌이다. 길가에 전각에도 불이 켜져 더운 밤인데도 따뜻한 느낌이 든다. 나오는 길에도 여우 조각상이 서 있다. 사람들의 안녕을 지키는 것일까? 마치 개처럼 당당히 앉아 주시하는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하다.


조명이 환하게 불을 밝힌 전각의 분위기는 처음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밤에 조명에 비친 서울의 궁궐은 격조가 느껴지는 데 이곳은 신사고 붉은빛 일색이라 그런지 예쁜 분위기로만 비친다. 일본 전통 문양이 새겨진 등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마치 떠있는 듯한 전각의 지붕이 신비롭다.

일본 신사의 독특한 분위기와 전경을 실컷 눈에 담았다. 여행은 낯섦과 조우다. 여우 신사는 매우 낯선 풍경으로 색다른 경험을 하게 했다. 특별한 풍경에 눈이 신이 났다. 카메라에 담은 사진도 기대이상으로 마음에 든다. 기대하지 않은 신사의 밤 야행은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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