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일본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번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여행 목록에 포함했다. 일본에 관한 여행기사에 빠지지 않는 도다이지를 방문하고픈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 마지막 날, 마침내 나라를 향했다. 생각보다 교토에서 가까웠고 전철을 타고 갈 수 있었다. 오사카역도 어마어마했지만 교토역의 규모도 대단했다. 서울역은 비교가 안될 정도다. 일본이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역내에 인파가 넘친다. 이곳이 외국인들에게만 인기가 있는 곳이 아니라 일본사람들에게도 그만큼 인기 있는 여행지라는 방증이다.
교토역
도다이지를 가기 전에 나라공원을 들렀다.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공원 입구에 일본 특유의 문양이 생긴 석조물이 양쪽에 서있다. 인사동 초입에 있는 붓조형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길거리에는 상인들이 사슴에게 줄 전병을 팔고 있었다. 우리도 10개 정도 묶인 전병을 200엔을 주고 샀다.
숲에 사슴들이 무리 지어 누워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람들도 가득하다. 사슴들은 꽤 컸고 동그란 눈망울을 지니고 몸에는 흰 점이 아로새겨져 있고 우아한 뿔을 달고 있다. 보기에 고운 꽃사슴이다. 우아한 자태로 앉아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얌전해서 다가가도 미동이 없다. 전병을 내밀었지만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워낙 많은 이들이 전병을 주고 있기 때문으로 배고프지 않은 것 같았다. 여기저기 배설물이 있고 냄새도 많이 났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전병은 받아먹는데 우리가 산 전병은 냄새를 맡고는 고개를 돌린다. 몇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먹지 않아 실망을 했다.
사슴들은 생기가 없어 보였다. 다른 관광객들이 주는 전병을 받아먹는 사슴도 배고파서 먹기보다는 습관처럼 먹는 듯했다. 사슴은 초식동물이라 전병을 계속 먹으면 좋지 않을 것 같다. 이따금 풀을 뜯는 모습도 눈에 띄지만 초지가 많지 않아 제대로 먹고 사는지 걱정도 들었다. 사슴들이 모두 둔해 보이는 게 안타까웠다. 관광상품도 좋지만 사슴의 건강도 돌보아야 할 것 같다.
사슴에 흥미를 잃고 고후쿠지를 향했다. 티켓을 끊어야 해서 지불을 하고 들어갔더니 중금당이라는 전각만을 보는 용도였다. 밖에서 봐도 충분했는데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옛 건물도 아니고 최근에 지은 것인데 좀 씁쓸했다. 일본의 사찰의 전각은 하나같이 웅장하다. 사찰이기보다 궁궐의 크기다. 중금당도 매우 컸다. 신사처럼 기둥은 붉은 칠이고 금박이 되어있다. 지붕 끝의 금빛 치미가 우리나라 백제나 고구려의 양식과 닮았다. 중금당 내부는 화려한 금빛 장식만 있을 뿐이다. 중금당을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의 팔각정이 아름답다.
고후쿠지 중금당
뒤편에서 목조 삼층탑을 만났다.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였다. 안내판에 일본 국보라고 쓰여있다. 괜히 기분이 좋다. 숨은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우리나라에는 목탑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데 이곳에서 보게 된 것이라 기쁨이 되었다. 법주사에 있는 팔상전과 유사한 양식이다. 우리나라에 목탑이 남아있다면 아마도 이런 형식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보았다. 화려하면서도 정갈하고 균형미를 갖춘 아름다운 목탑이다.
삼층목탑
고후쿠지 너머로 호수가 있었다. 내려가서 둘러보았다. 산책하기 좋은 장소였다. 날씨가 흐리지만 호수에 비친 반영이 아름답다.
여행은 발로 하는 것이다. 많이 돌아보아야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미처 생각지 못한 장면을 마주친다. 그것이 여행이 주는 반짝임이다. 꼭 유명한 곳만이 관광지가 아니라 거리를 걷다가 마음이 끌리는 데가 바로 진짜 여행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