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은 환경의 재앙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책 제목이다. 자연 생태계가 살아 있는 곳에는 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새와 곤충이 사라진 곳에는 생명이 넘쳐나는 봄이 와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침묵은 죽음이 빚어내는 고요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지으신 후, 인간을 으뜸으로 삼으시고 자연만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셨다. 그런데 만물을 돌보지 않고 인간들의 오만과 이기심으로 폭정을 휘둘러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죄에 물든 탓인지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자연을 거스른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은 이를 거부한다.
평소에 일상 속에 쏟아내는 생활 쓰레기들의 홍수를 몸소 경험할 때마다 걱정이 되곤 한다. 결코 썩지 않는 이 많은 쓰레기들은 어디로 갈까? 대부분 파묻고 있는데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고 후대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다. 하지만 이런 쓰레기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해충을 박멸한다는 거창한 기치로 마구 뿌려대던 독성물질이 땅을 오염시키고 강을 오염시켜 생명체들을 멸절시키는 수많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살충제의 남용과 오용이 불러온 재앙과 참사의 생생한 기록이다. 책을 읽는 내내 농약이 품고 있는 독성과 해악이 끼치는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해충을 처리하기 위한 화학물질이 익충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람들까지 해치고 있는 기가 막힌 현실이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무지와 만용이 빚어내는 생태파괴의 현장 기록은 섬뜩했다. 동식물이 중독되어 죽어가는 환경에서 사람들도 결코 예외가 될 순 없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농약을 뿌리는 웅에 주로 중독이 되는 줄 알았다. 놀랍게도 정원을 가꾸거나 집안에서 벌레를 잡기 위해 뿌리는 약품들로 독성이 심각했다. 약물의 해악은 작은 양이라도 축적이 되면 암을 불러온다.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암은 발암물질의 영향이 가장 크고 그 중심에 살충제를 비롯한 화학물질 성분에 있다.
해충을 처리하는 화학방제는 일견 손쉬운 방법으로 사람들이 너무도 간단하게 시행할 수 있다. 당장은 해충들이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놀랍게도 해충은 살아남을 뿐 아니라 약에 내성이 생긴다. 내성이 생긴 후에는 동일한 약제는 효과가 없다. 영향이 해충에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충제는 해충뿐 아니라 그곳에 살아가는 생명체 전부에게 해악이 끼친다. 빈대 잡으려 초가 삼 칸을 다 태운다는 속담이 딱 그렇다.
방법은 있다. 화학방제에 대한 대안이 엄연히 존재한다. 자연을 활용한 방안이다. "방제 대상이 되는 유기체와 이 유기체가 속한 전체 생명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생물학적 해결법이다. 새로운 방식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곤충의 생명력을 사용해 그 곤충을 없애는 것이다." 천적을 이용하거나 해충의 수컷을 불임화하여 방사를 하면 무정란이 만들어지고 곤충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 책이 불러온 센세이션으로 많은 독극물이 추방이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농약의 문제는 우리 곁에 있다. 그녀의 말대로 "오만하게도 자연을 지배하려 한 전후 과학계의 분위기는 이문제의 철학적 근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부분이 생존하려면 결국 전체가 건강해야 한다."
여전히 인간들의 탐욕이 불러내는 지구 종말의 시그널이 넘쳐난다. 전체가 바뀌려면 개인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습관적으로 편한 방법에 의존하여 약물을 남용하지 말고 조금은 불편해도 자연친화적인 방안을 따라 불편한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양성이 건강의 길이지 지금처럼 종의 개체 수가 줄어드는 현실은 심각한 병증이다. 삶의 방식을 근복적으로 진지하게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