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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Sep 05. 2024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독서노트

예전부터 책 제목이 흥미로웠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얼마나 파격적인 제목인가!  바로 소설을 읽지 못했지만 제목은 확실히 각인되었다.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책 제목에서 고양이가 주인공인 이란걸 미루어 짐작했다.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다. 책제목만으로도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저자인 나쓰메 소세키는 근현대 일본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작가다. 메이지 시대인 20세기 초에 쓰였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이 작품은 세련된  현재의 감성과 감각을 보여준다. 그 시대에 고양이의 시선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파격은 그가 아마도 영국 유학을 통해 열린 사고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고양이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변혁기의 일본의 시대상과 동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관조하듯 바라볼 수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많은 공감을 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고양이의 행동거지와 독특한 특성과 습성을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하여 소설에 담았다.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이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전반적으로 지루한 감이 었다. 나른한 책이라는 느낌이 맞을 것 같다. 그다지 긴장감 없는 평범한 일상의 나열이 주된 줄거리다. 그래서인지 읽는 속도가 더뎠다. 극적인 요소가 없으니 궁금증이 일지 않는 것이다.  막바지 2 권에 들어서야 빵 터지는 재미가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의 지루한 전개가 오히려 위트의 포인트가 되었다. 종국에 술에 취해 물독에 빠진 고양이가 사투를 벌이다 결국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평안을 누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죽음도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주인공 고양이는 이름도 없다. 더구나 길고양이로 선생님 댁에 빌붙어 사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꿀리거나 비루하게 살진 않는다. 똑똑해도 너무나 똑똑하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 앉아 논다.


원래 고양이는 독립적인 동물로 사람들에게 구속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을 일컬어 '집사'라고 부른다. 고양이가 주연이지 사람은 그저 돌봐주는 들러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하녀는 고양이를 구박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고양이는 자유롭고 유유하다. 주변의 고양이들과도 처세술을 발휘하며 어울려 살아간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슬렁 거리며 사람들의 행동을 관조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예리한 비평을 서슴지 않고 쏟아낸다.


고양이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제 투성이고 어리석다. 우습게도 고양의의 시야에서 사람들의 숨겨진 본성을 볼 수 있다. 특히 주인인 구샤미 선생은 인물도 인품도 성격도 못났다. 겉으로는 선생인체 재지만 빈껍데기다.  문학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허울뿐이다. 책을 끼고 생활하지만 읽지는 않는다. 그저 구색에 불과하다. 그는 머리에 든 게 없고 귀가 얇아 짓궂은 메이테이 선생에게 매번 놀림을 당한다. 선생님이지만 사명감도 없고 지식도 빈약하다. 결혼을 해서 아내도 있고 딸을 셋이나 두었지만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없고 권위도 부족하다. 결정적으로 아내를 무시하고 존중하는 모습도 없다. 자녀들에 대한 따스한 사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존심은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교류하며 천연덕스럽게 살아간다.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메이테이는 박식하지만 매사에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다. 미학자를 자처하는 그도 고양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이다. 인습과 관습에 매이는 것이 없다. 결혼도하지 않았고 일정한 직업도 없다. 구샤미와 어울리며 그의 알맹이 없는 허식을 가차 없이 드러내고 그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그치지 않는다. 그의 취미는 구샤미 선생을 속이고 놀리는 것이다.


구샤미 선생의 문하생인 간게쓰는 이 시대의 젊은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평범하게 보이는 등장인물이다. 물론 그에게도 기행의 모습이 있다. 박사학위를 얻기 위해 유리알을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박사학위라는 것이 부잣집 딸과 결혼을 위한 전제였지만 사실 그는 주변의 영향에 별 영향 없이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부자인 가네다의 딸과 혼담이 오가지만 재산에 휘둘림이 없이 시골 처녀와 결혼을 한다.


또 다른 젊은이는 도후다. 그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다. 낭독회를 열고 간게쓰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흠모한다. 간게쓰가 주관이 분명한 것과는 달리 도후는 주관이 없다. 다테이 산페이는 회사원으로 가장 현실적인 젊은이다. 이들을 통해 급변하는 시대에 처해 살아가는 무기력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도쿠센은 구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옛날에 매여 공염불만 외친다. 젊은이들은 그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세대와 소통하지 않는 전형적인 고루한 모습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맛이다. 괴상하고 비뚜름하지만 결코 악하지 않은 평범한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변주가 지금 우리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시대의 리얼한 현실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느 시대건 사람들은 제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삶은  살아지는 것이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 비친 사람들의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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