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교 라이딩
활짝 갠 날씨를 사랑한다. 해맑은 하늘이 간직한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명징함이 좋고 순수함이 좋다. 화창한 날이 주는 밝은 분위기는 공연히 마음까지 들뜨게 한다. 마치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반면에 흐린 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흐린 날은 괜스레 마음까지 흐려지는 기분이다. 이런 날은 밖으로 향했던 시선이 안으로 움츠러든다. 번거롭게 일을 만들어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그냥 하릴없이 실내에서 소일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 날씨가 딱 그랬다. 온통 잿빛 하늘이었고 빗방울을 머금은 전형적인 찌푸린 날이었다. 오후에는 결국 비도 내렸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우산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야외 나들이하기에는 분명 불편한 날이었다.
이런 음울한 날이 오늘은 결론적으로 아주 좋은 날이 되었다. 싫은 날씨라도 상황과 여건에 따라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100% 일 수는 없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적당히 섞여 있는 것이 우리네 살아가는 인생사일지 모른다.
오늘 날씨는 자전거 타기에 최적이었다. 장장 왕복 90킬로미터 거리를 달렸다. 중랑천에서 한강으로, 한강에서 구리를 거쳐 팔당대교를 지나 양평 철교까지 달렸다.
달리는 내내 해가 구름에 가려 따가운 햇살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덕분에 후덥지근한데도 자전거 타기가 한결 수월 했다. 오후에는 비마저 내렸다. 처음에 비가 걱정스러웠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거추장스럽기는커녕 땀에 젖은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좋지 않은 날씨로 인해 통행객도 많지 않아 길도 한가했다. 모든 상황이 라이딩하기에 아주 좋았다.
자전거가 달리는 길가 풍경도 기대이상이었다. 운무가 낀 강안 풍경은 신비로웠고 낭만이 흘렀다. 잔잔한 수면 위로 산그림자가 드리웠다. 간간이 작은 섬들도 자리해서 단조로울 수 있는 화폭에 변주를 주었다. 물가에 자라는 나무도 무성한 잎을 달고 물에 비친 제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참 평화롭다. 평소 보기 드문 해오라기가 물길을 헤치며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강변에는 수많은 꽃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쁨이 반짝인다. 언덕마다 금계국이 한창이었다. 서울을 벗어나 구리에 접어들자 풍경이 바뀌었다. 온통 꽃양귀비다. 강렬하고 요염한 붉은빛이 마치 불꽃같다. 이어서 수레국화의 부드러운 남빛 꽃길이 길게 이어진다. 파스텔톤의 은은한 빛깔이 매혹적이다. 우아한 자작나무 숲이 배경이 되어 한층 분위기 있는 정경이다. 자잘한 흰꽃송이가 한들거리는 안개꽃밭도 볼거리다. 여러 가지 꽃들이 섞여 다채로운 것도 아름답지만 한 가지 꽃송이가 무리를 지어 군락을 이루면 또 다른 특별한 멋과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눈이 호강하는 시간이다.
주행하는 동안 눈은 즐거웠지만 몸은 많이 힘들었다. 평소에 장거리 라이딩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복장도 평상복을 입는 바람에 엉덩이도 많이 아팠다. 동행하는 분들은 나보다 많은 연배임에도 끄떡없었다. 체력들이 대단했다. 힘든 오르막길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기를 쓰고 쫓아가는 나는 무지 힘이 들었다. 가다 쉬자고 하는 것도 대부분 나였다.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을 일을 함께 해서 해냈다. 힘에 겨웠지만 이끌어 주는 이들이 있기에 따라갈 수 있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 에 따라 삶의 결은 달라진다. 선과 악이 다 나의 스승이라는 말에는 큰 의미가 담겨있다. 하물며 나보다 훌륭한 이들과 동행하며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좋은 날씨라는 의미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고정관념은 삶을 메마르게 한다. 매사에 폭을 넓게 가지고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