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찬가

처가에서 누리는 자연 속의 기쁨

by 정석진

시골집 뜨락에는 보리수가 익어 간다. 농익은 보리수는 루비보다 영롱한 빛을 품었다. 제일 고운 알을 따서 새콤달콤함을 맛본다. 맛에 이끌려 자꾸 손이 간다.

뜰보리수

울에는 자란이 꽃을 피웠다. 새침한 아가씨의 도도한 매력을 풍긴다. 채마밭 담장 밑에는 바위취가 소박한 꽃을 달고 수줍게 웃고 있다.

자란
바위취

마당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가 자란다. 튼실한 상추를 솎고 쑥갓도 따고 부추도 자른다. 미나리도 한 줌 따고 깻잎도 몇 잎 담는다. 마당 수돗가에서 야채를 씻어 점심상을 차린다. 삼겹살과 앞다릿살을 굽는 동안 밥솥에서는 향기로운 백세미 밥이 익어간다.

나물과 부추겉절이 그리고 멸치볶음과 토하 장조림이 곁들인 반찬이다. 햇양파와 생마늘 그리고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놓은 쌈장도 빠질 수 없다.

푸짐한 점심 한 상

집 근처에서 일하시는 처형과 광주에 간 동서도 제시간에 맞춰 함께 식탁에 앉았다. 반가운 정을 나누며 먹는 음식은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장거리 운전한 수고에 주어지는 넘치는 보상이다. 성남에서 식당 하느라 짬이 없는 처형도 모처럼 함께 해서 더 즐거운 시간이다. 배불리 먹은 후에는 속살이 꽉 찬 수박이 후식이다. 달콤한 과즙이 주는 즐거움에 배부른 것을 잊고 손이 자꾸 간다.


식후에는 대나무 밭으로 향했다. 들에 나갈 차비를 단단히 갖췄다. 긴 팔과 모자 그리고 장갑과 장화를 신고 벌레 기피제도 뿌렸다. 죽순을 따러 왔는데 아쉽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작년에는 가마니로 채취했는데 대밭을 온통 뒤져서 실하지도 않은 죽순을 조금 땄을 뿐이다.

죽순

죽순이 없어 풀이 죽었지만 집으로 돌아와 보성강으로 다슬기를 주울 차비를 하며 생기를 되찾는다. 강가로 나가는 길에 장모님 산소에 들렀다. 산마루에 오르니 청 미래 열매가 커가고 산딸기가 익어간다. 비탈 공터에 고사리 밭이 있었다. 아직 어린 고사리가 눈에 띄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손이 바빠진다. 고사리밥도 따고 고사리도 딴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금방 한 손 가득히 땄다. 취에 이력이 난 결실이다.

청미래덩굴/ 산딸기

산소를 돌아보다 뜰보리수를 또 만났다. 처형네보다 더 잘 익은 열매가 우리를 유혹한다. 질리도록 따 먹으며 하산하는 길에 장모님 집터에도 들렀다. 마당 한켠에는 돌나물이 무성하게 자라 노란 꽃밭이 되었고 황량한 집터에는 대나무가 자라났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단물을 내주던 샘은 다행히 그대로 남았다. 우거진 수풀 속에 맑은 물이 여전한데 주인이 떠난 빈자리에 가재 한 마리가 살고 있다.

돌나물 / 샘터
데친 죽순과 고사리

드디어 보성강에 나왔다. 이곳은 "다진 바우"라는 이름이 있는 곳이다. 시골 사람들은 논과 밭 그리고 특정 장소에도 다 이름을 지어 주었다. 모랭이, 갱변, 우묵배미, 바우배기, 신여울, 터우... 향토색 짙고 토속적인 순우리말이 너무도 정겹다. 땅을 사랑하고 아낀 이들의 마음을 느낀다.

보성강

키만큼 자란 수풀을 헤치고 강에 들어선다. 여울물이 힘차게 흘러간다. 물살로 인해 맨눈으로는 다슬기를 찾을 수 없다. 거울을 대고 물 안을 들여다보면 아주 잘 보인다. 다슬기 채취용 도구다. 허리춤에 주머니를 두르고 본격적으로 다슬기를 찾아 나선다. 물 때 낀 돌 위에 하나 둘 붙어 있는 녀석들이 보인다. 제법 실한 다슬기다. 허리를 굽히고 물에 반쯤 잠겨 작업을 하지만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작업은 계속 이어진다. 옷은 흠뻑 젖고 허리가 아프지만 일어서서 허리를 한 번 켜면 그만이다.

한참을 줍다가 강안 풍경에 빠져든다. 잔잔한 수면 위에 중첩된 푸른 산의 실루엣이 꿈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강변의 수풀과 나무들은 푸르름으로 아름다운 전원을 이룬다. 반쯤 물에 잠긴 아내의 모습이 너무도 평화롭다. 해거름이 되면 다슬기들이 많이 올라온다. 덕분에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 많이 보인다. 그만 가자는 성화에도 쉬 멈추기 어렵다.

다슬기 채취중인 아내

꽤 수확한 다슬기로 수제비를 끓였다. 다슬기는 미리 삶아 이쑤시개로 일일이 까야한다. 지루한 작업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하면 끝이 난다. 작업한 다슬기는 다슬기 장과 수제비로 거듭난다. 아내를 도와 처음으로 수제비 떠 본다. 쉽지 않지만 즐거운 경험이다. 감자와 부추를 넣은 수제비는 푸른 국물이 우러나 진미로 탄생했다. 큰 대접으로 한 그릇씩 퍼서 후후 불며 게눈 감추듯 먹는다. 열무김치와 부추겉절이를 더하니 그야말로 꿀맛이다.

다슬기
다슬기수제비

고향의 전원이주는 멋과 맛에 빠져든 하루다. 쉴 틈 없는 하루가 힘들었는지 눈이 자꾸 감긴다. 이런 처가가 있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전원 #고향 #처가 #시골 #다슬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