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 계곡(Val Ferret), 그랑페레 고개
오늘의 트레킹 행선지는 페레 계곡(Val Ferret)과 그랑 페레 고개(Grand Col Ferret)다. 고개는 해발 2,537미터 높이다. 이 고개를 기점으로 이탈리아와 스위스로 나뉜다.
이른 아침 상쾌한 길을 나선다. 어디서나 아침 자체가 신선하지만 청정한 알프스의 아침은 격이 다르다.
오늘도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다채로운 야생화들이다. 고지대로 식물들이 살기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기 삶을 씩씩하게 이어가는 것을 보면 작은 꽃 하나하나가 대견해 보인다. 몽블랑트레킹은 웅장한 산세도 대단하지만 낮은 곳에서 힘껏 살아가며 지면을 물들이는 꽃들도 대단한 볼거리다. 한 송이로도 충분하지만 다 같이 모여 피면 장관을 이루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긴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는 일은 힘들다. 고도가 높아 호흡도 가쁘다. 몸은 지쳐가고 힘도 점점 빠진다. 그럴 때마다 지천으로 핀 꽃들은 지친 이들을 어루만진다.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높은 곳을 향해 꾸준히 걷다 보면 주변 풍경은 계속 달라진다. 알프스는 경이로운 풍경이 쉼 없이 이어진다. 대자연의 장엄한 위용 앞에 서면 저절로 겸손해진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자각하고 깨닫는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생각보다 훤씬 높은 곳에 올랐음을 문득 알게 된다. 내려다보는 풍경은 이미 지나 거쳐 온 길이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트래킹 하는 이들이 머물다 가는 엘레나 산장이 보인다. 곤한 몸을 쉴 수 있고 식사도 제공되는 반가운 곳이다. 이곳에서 묵을 수도 있지만 그런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은 사안이다. 몽블랑트레킹이 전 세계인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무려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겨우 숙박이 가능하다.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산장은 생각보다 너른 공간이다. 탁 트인 전망을 앞에 두고 편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는 호사와 여유를 누린다. 무거운 등산화도 벗어버린 채 달콤한 쉼을 누리는 것이다.
이태리 사람들은 개를 좋아해서 트레킹에도 동행을 한다. 오는 길에 멋진 달마시안을 만나 사진에 담았다. 빅토리아라는 예쁜 개는 훈련도 잘 되어 포즈도 취해 주었다. 산장에서도 품종은 알 수 없는 크고 멋진 개 두 마리가 보여서 반가운 심정으로 주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단 번에 딱 한 마디 No! 가 돌아온다. 아마도 이 여인은 트레킹이 목적이 아니라 인스타에 게재할 사진을 찍으러 온 모양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똑같은 봉변을 당한다. 괜히 씁쓰레하다. 개주인에 따라 달라도 참 다르다.
산장에 느긋이 앉아 경치를 관조하는 시간을 갖는다. 걸으면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과 황량한 산 분위기와는 다르게 녹색으로 뒤덮인 봉우리가 색다른 경관을 선사한다. 이곳까지 자동차가 다닌다는 것이 신기하다. 걷는 것도 벅찬 일인데 멀리 암벽등반 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의 끝없는 모험심이 참으로 놀랍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들은 매우 다양하다. 인종, 국적, 연령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놀라운 것은 지긋한 연령대의 사람들이다. 70 중반이 훌쩍 넘었음에도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거침없이 트레킹을 즐긴다. 평소에 그만큼 체력이 단련이 된 까닭이리라. 나도 그분들처럼 그 나이에 이르러서도 고산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노년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살지 않을 것 같아도 식물들이 자라고 꽃을 피운다. 거친 황무지와 씩씩한 꽃들의 대조가 참으로 아름답다.
마침내 목적지에 올랐다. 많은 이들이 휴식 중이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목적지에 도달한 뿌듯함을 안고 휴식을 즐긴다. 건너편 산자락이 스위스 알프스라는 사실이 경이롭다. 그랑 페레 언덕에는 소박한 탑이 있다. 이태리와 스위스의 경계를 알리는 표석이다. 돌에 새겨진 I 는 이태리 S 는 스위스 땅을 알려준다. 커다란 십자가도 서 있다. 화환을 두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 트레킹이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알프스 지역을 도는 것이어서 스위스 알프스 지역은 빠진다. 그래서 잠시나마 스위스 땅을 밟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일행과 헤어져 스위스 알프스 둘레길을 걸았다. 특별히 달라진 풍경은 없지만 스위스 땅이라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30분 정도 걸어서 산너머까지 다녀왔다. 그 정도로 충분하다 여겨져 발길을 돌린다. 돌아가는 걸음은 아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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