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이버섯 산행기
어제 능이를 따온 후, 옷이 땀에 젖고 수풀을 헤집고 다닌 터라 옷을 갈아입어야만 했다. 러닝도 해야 했기에 씻기 전에 뛰러 나갔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황강변의 코스모스 축제장까지 다녀왔다. 이곳도 역시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달리기 열풍은 분명하다.
높은 산을 오르느라 많이 지친 상태라 말 그대로 슬로러닝을 했다. 살살 뛰니 그다지 힘이 들지는 않았다. 코스모스가 꽃이 반겨주는 강변길은 아름다웠다.
저녁을 먹자마자 피곤이 밀려와 바로 쓰러져 버렸다. 일찍 자는 바람에 다음 날은 새벽에 눈이 떠졌다.
오늘은 동서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본격적인 능이산행을 나서기로 했다. 간식과 밥도 준비했다. 반찬이라고는 풋고추와 된장이 전부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려 했는데 내가 글을 쓴다고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많이 지체되었다.
오늘은 능이가 많이 나는 곳을 찾아 차를 타고 꽤 멀리 나갔다. 산기슭에 접어들어 임도를 따라 한참 산을 올랐다. 산마루에 가까워지자 세워진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전부 능이를 따러 온 사람들의 행렬이란다. 놀란 나를 보고 처형은 이 정도는 약과도 아니라고 했다. 때로는 입구부터 차가 늘어선다고 하셨다. 우리도 겨우 주차를 하고 기대 반 우려반 심정으로 능이 선행에 나섰다.
동서가 익히 아는 곳이라 오늘 산행은 수월할 것 같았지만 이곳도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돌 밭을 지나고 잡목 숲을 지나고 산죽 숲을 지나서 8부 농산에 겨우 이르렀다.
주변 환경은 분명 능이가 있을 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능이는 보이지 않았다. 능이버섯을 하나도 따지 못해 우리가 실망할까 봐 처형은 우리더러 그냥 산에 놀러 왔다고 편히 마음을 먹으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
많은 차들로 산속에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았지만 산이 워낙 넓어서인지 사람들의 자취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우리처럼 능이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나도 아내도 신통치 않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무렵 "이리 오세요"하는 동서의 소리가 들렸다. 이 말은 능이를 찾았다는 은어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능이가 있는 곳을 큰소리로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으로 뛰어가니 탐스런 능이가 자라고 있었다. 동서는 일부러 내가 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손맛을 느끼라는 배려다. 귀한 능이를 소중하게 채취하고는 꼬투리를 잘 흔든 다음 땅을 잘 덮어 주었다. 내년에도 다시 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이어 처형도 능이를 발견했다. 이리 오세요가 또 들린다. 신이 나서 달려갔다. 채취하는 것은 여전히 내 차지다. 버섯이 아주 크지는 않았다. 크고 좋은 것은 아마도 누군가가 미리 땄거나 아니면 아직 다 자라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후로도 몇 번번의 "이리 오세요"가 들렸다. 나도 간절하게 이리 오세요를 외치고 싶었지만 그날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질 않았다. 끝까지 허탕이었다. 초보자의 운은 어제 하루로 족한 모양이다.
그렇게 능이를 즐겁게 따고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오전 8시에 산을 올랐는데 벌써 12시가 지났다. 시장기가 몰려와 준비해 온 밥을 먹었다. 풋고추 한 가지였지만 꿀맛이었다. 아내도 옛날에 새참으로 이렇게 많이 먹었다며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지름길을 통해 산을 빨리 내려오려고 했다. 그러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 그야말로 원시 밀림 같은 가시숲에 들어선 것이다. 앞에서 길을 잘못 인도한 동서에게 체형은 마구 화를 냈다. 너무 힘든 처형은 두 번 다시 능이를 따러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을 했다. 정말로 길을 헤쳐 나오느라 무진장 애를 먹었다. 가시에 긁히며 겨우 길을 찾아 산을 내려왔다.
길을 잘못 찾는 바람에 희극이 비극이 되었다.
다행히 그 여파는 오래가지 않았다. 능이를 땄다는 뿌듯함이 우리의 기분을 돌려놓았다.
집에 와서 곧바로 처형은 능이 손질에 나섰다. 시골의 일은 끝이 없다. 지금까지 딴 능이버섯 중에 가장 부실한 것 같다고 하셨다. 비가 계속 내려서 능이가 튼실하지 않은 것이다. 버섯 꼬투리 하나하나마다 흙을 제거하고 이물질을 떼어내고 물로 깨끗이 씻었다. 처형이 능이를 보관하는 방법은 버섯을 잘게 찢어서 말리는 것이다. 그런 후에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서 요리에 넣거나 물을 달여 마신다. 채취한 양이 작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늘어놓은 능이로 집안에는 진한 향기가 가득하다.
능이버섯이 있는 곳에는 싸리버섯도 난다. 싸리버섯도 꽤 땄다. 싸리버섯을 잘 다듬어서 저녁 식사로 싸리버섯 찌개를 했다. 물론 능이도 조금 넣었다. 버섯찌개는 역시 훌륭했다. 쫄깃한 식감과 부드럽고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곁들여 보리굴비도 찌고 노각 오이도 무쳐서 풍성한 저녁을 먹었다. 식사 때마다 과식을 해서 살이 저절로 찐다고 아내는 푸념이다. 나도 그간 달리기로 나온 배가 들어갔는데 도로 볼록해졌다.
능이를 만난 기쁨이 힘든 산행을 잊게 했다. 올해 가을에도 멋진 추억 하나가 생겼다. 사과대추도 따고 알밤도 줍고 고구마도 캔 일은 덤이다.
시골이 있어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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