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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 시치올드로의 꿈을 엿보다

호반아트리움을 찾아서

by 정석진

그림을 잘 알지는 못해도 미술에 대한 관심이 크고 그림을 접할 기회가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보러 가는 편이다. 그래서 때때로 화랑에 그림을 보러 간다.

호반아트리움

호반 갤러리 The Space 호화가 광화문에 있을 때는 전시가 있을 때마다 들르곤 했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꽤 알찬 기획 전시가 이어졌고 관람할 때마다 만족도 컸다. 그런데 어느 날 갤러리가 문을 닫았다. 광화문에 가면 즐겨 찾던 마음에 꼭 드는 장소가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후에 메일을 통해 과천에 호반아트리움으로 재 개관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소식에 반가우면서도 너무 멀리 떨어진 장소여서 아쉬움도 컸다. 그렇게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눈길을 끄는 전시회가 그곳에서 준비 중이었고 개막하는 날 행사에 초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술관이 있는 과천에는 아주 친한 친구가 콩나물공장을 하고 있어서 때때로 들르는 곳이다. 그래서 친구도 만날 겸, 전시회도 참관할 겸 두 사람 참석 신청을 했다.

기쁘게도 답신 메일이 와서 알고 지내던 화백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그분은 인사동 화랑에서 만나 꾸준히 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알렉산드로 시치올드로의 "고요한 빛, 황홀의 틈( Gleam of a Silent Ecstasy)"개막전에 참석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고전 회화 기법과 몽환적인 상상력을 결합한 독창적 작업을 하는 현대미술작가다.

그곳에서 작가도 직접 만났고 간단한 다과도 즐겼다. 작가는 젊었고, 그의 말과 태도를 통해 예술에 대한 열정과 진지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설픈 영어로 작가와도 몇 마디 나눴다.

알렉산드로 시치올드로

그의 그림은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 분위기를 풍긴다. 주제만 다를 뿐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림처럼 친숙하게 다가온다. 색조나 인물의 복식이 중세 풍이라 아주 유사한 느낌을 준다. 이 시대의 젊은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이 신기하다. 전반적으로 인물 위주의 구상화가 대부분으로 감상하기에 거리감이 없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폭에는 일상의 모습보다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담겨있다. 색채가 화려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깊이가 있고 귀족적인 격조가 풍긴다. 인물들의 외모는 그리스 조각상을 닮았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고 중성적인 이미지다. 쓰고 있는 모자나 복장은 제의에 참여하는 복식이다. 그래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고 숙연한 경건함이 풍긴다. 딱히 기독교적이라고는 느껴지지는 않고 오히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벽화와 조각에 등장하는 이교도적인 경향을 띄었다. 아울러 고대 설화가 모티브인 점도 보인다. 스핑크스를 닮은 괴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시대의 성곽과 그 시대 의사가 착용했던 새부리 마스크도 있어 시대상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림을 통해 받은 인상은 장중한 고요함이다. 등장인물들의 표정은 근엄하고 진지하다. 칙칙하고 가라앉은 무채색과 정반대로 진한 원색계열의 강한 색채로 구성되었지만 들뜸이나 흥분의 기운은 없고 되려 진중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그림에서 빛도 중요한 소재다. 강렬한 빛은 아니지만 은은한 빛이 화면에 담겨 따스하고 밝은 이미지를 통해 신비로움을 연출한다. 그림 앞에 서면 그림에 이끌려 머물게 된다.


대부분 유화지만 수채화도 있다. 수채화를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유화는 얼마든 덧칠을 할 수 있지만 수채화는 덧칠을 통해 수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작가의 수채화는 유화와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하다. 그가 대단한 화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필로 그린 작품은 또 얼마나 섬세하게 그렸는지 그림에 매혹된다.

수채화


그렇게 전시를 보고 왔는데 이 전시를 배경으로 명상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해서 다시 화랑에 들렀다. 한 시간 남짓 명상 프로그램은 나름 신선하기는 했지만 기대만큼 큰 인상은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실내가 더워서 집중하기 어려웠고 급기야 졸기까지 했다. 졸만큼 편안한 경지에 들어섰으니 명상의 가치는 누린 셈이다.

화랑을 찾아 두 번이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좋았다. 발품을 판 여정이었지만 귀한 작품을 보며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어 행복했다. 관계자들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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