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을 나서면 여행의 즐거움이 있다
이른 아침 서울역이다. 전철역에서 내려 서울역으로 이동하는 길, 아침을 맞는 서울 도심 풍경이 새롭게 다가온다. 연한 아침빛을 받아 부드럽고 맑은 기운이 감돈다.
늑장을 부려 기차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다소 마음이 바쁘지만 외국의 어느 낯선 도시에서 아침을 맞는 것처럼 마음이 살짝 들뜬다.
서울역사 주변은 어디론가 떠나는 이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여행하는 이들은 저마다 제 삶의 무게를 끌고 종종걸음을 걷는다. 길치인 나도 백팩을 메고 혹시나 잘못 왔으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플랫폼을 향한다. 다행히 제대로 잘 찾아왔고 늦지 않았다.
플랫폼 좌우로 길게 이어진 철로가 마음을 끈다. 어릴 적부터 철도길은 미지의 세계를 꿈꾸게 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오랜만에 철길을 보니 접혀있던 책의 한 페이지가 펼쳐지듯 아련한 동심을 불러낸다.
어릴 때부터 멀리 가는 것을 좋아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의 피가 내재된 것일까. 그래서 지금도 사는 곳을 벗어나 멀리 떠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가방에는 책 세 권과 과일 그리고 스낵 한 봉지를 담았다. 이동하는 시간을 위한 준비다.
KTX를 타고 전주로 내려가는 길인데 광명까지는 좌석이고 그 뒤로는 입석이다. 평일인데도 오가는 이들이 많은 듯 좌석이 매진이었다.
창가 좌석을 찾아 짐을 풀고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으니 마음이 여유롭다. 기차가 출발 후 지나가는 차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침 안개가 묻어있는 희끄무레한 풍경이 조금은 권태롭다. 강한 햇살에 차창 가림막을 내리고 가져온 책을 꺼냈다.
덕후들의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남의 말이 아닌 자기 언어를 찾아 글을 써야 자신의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단다.
그 첫걸음은 클리셰를 버리고 문장에 공을 들이는 일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습관적으로 상투적인 표현들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너무 쉽게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을 반성한다.
노력과 관련하여 인용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도 마음에 박힌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깨달음을 얻는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 값지다. 사과 한쪽과 단감 한쪽을 먹으며 시간의 풍미를 더한다.
중간에 입석을 좌석으로 교체하여 편안하게 전주에 도착했다. 최종 목적지 진안은 만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봄보다 더 화려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멀리 떠나와 만나는 뜻밖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진안 누님이 차려준 밥상은 완전 호사다. 된장배춧국에 칼칼하고 고소한 배추김치, 부드러운 속배추 나물, 감칠맛 나는 구운 김, 짭조름하고 쫄깃한 꼬막무침, 식감을 그대로 살린 황태채 무침, 간이 딱 맞는 쇠고기 장조림 그리고 고소한 배추쌈에 갓 지은 찰진 쌀밥까지...
해야 할 일이 있어 이곳을 찾았지만 오늘 일정은 실속 있는 종합선물세트를 받아 든 것처럼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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