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걷다 미술관에 가기

국립현대미술관 관람기

by 정석진

화랑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미술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높은 식견으로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기호식품처럼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화랑의 분위기와 미술작품이 빚어내는 아우라가 좋다.

시내 나들이로 화랑이 밀집한 경복궁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화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일행들이 있어서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화랑을 지나치고 국립현대미술관에 이르러 함께 가자고 권했더니 한 두 분이 호응을 해주어서 관람을 결정했다. 무료 전시는 없었고 저렴한 관람료로 질 높은 미술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다섯 명이 일행이었는데 한 분은 경로우대 다른 한 분은 국가유공자로 세 사람만 1인당 2천 원의 정말 가벼운 비용으로 예술작품을 둘러보게 되었다.

전시는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로 시대별 분야별 대표 작가들의 대표 소장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전위적인 설치미술 작품들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회화작품에 더 눈이 갔다.

거친 직물인 마를 캔버스 삼아 모던한 조형미와 동양적 색채가 어우러진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칸딘스키 작품 분위기를 닮았지만 붉은색이 우리의 고유한 정서와 닮아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따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또 다른 추상화는 세세히 보면 거칠고 투박한 선들로 불규칙하게 화폭을 채우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푸근하고 은근한 정감이 좋다. 색채가 사람들의 감정을 안온하게 만든다. 그림 치유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물방울이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 그림은 언제 봐도 늘 신기하고 재미있다. 한 주제에 천착하여 대가를 이루는 삶을 만나는 것이리라.

이응노 화백의 군상은 묵으로 그려낸 수많은 사람들이 떼거리로 화폭을 채운다. 절절한 몸짓들이 마치 시위현장 같다. 하나같이 치열한 몸짓으로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것이 전장 같다. 검은색의 사람들과 흰 여백의 대조가 더 도발적으로 긴장을 조성한다.

흥미로운 설치작품도 있다. 조약돌을 실로 묶어서 늘여놓았는데 돌의 중앙을 오목하게 다듬어서 마치 둔부처럼 보인다. 아주 한국적인 작품도 있다. 상을 탑처럼 높게 쌓고 매 층마다 그릇들을 빼곡하게 채웠다. 잔칫상 같기도 하고 부잣집 살림살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묘하게 우리의 옛 정서가 풍긴다. 지난 시절의 아련한 자취에 젖게 만드는 것이다.

가장 놀라운 작품은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일일이 그려낸 추상 수묵이다. 몽유도원도 같은 몽환적인 산수화인데 손가락에 먹물을 묻혀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예술가들의 창조력과 기발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삼라만상이다. 일단 스케일에 놀란다. 아주 작은 캔버스에 그림들이 어마어마한 화폭을 모자이크처럼 일일이 벽면을 채웠다. 화폭이 커서 크레인으로 설치했다고 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작품 전면에 반가사유상이 삼라만상의 모든 번뇌를 다 안고 피안에 드는 평화로운 자태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예술감상의 길은 멀지 않다. 기회가 있을 때 지나치지 말고 화랑의 문을 두드려라. 낯섦은 자주 접하면 친근해진다. 감상은 각자의 몫이다. 작품에 대한 이해에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다. 본인이 느낀 대로가 전부다. 예술작품은 메마른 심성을 촉촉하게 만든다. 삶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매력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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