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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를 통해 삶을 관조하다

아트스페이스호화 기획전 Deep Layer 전시회를 관람하고

by 정석진

그림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경험이다. 그림을 이해하는 깊이는 부족하지만 그림이 주는 느낌을 좋아한다. 가까이 화랑이 있을 때는 마음만 내키면 갈 수 있었는데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한다. 감사하게도 전시에 대한 안내 메일을 받는다. 이를 통해 잊고 있던 그림에 대한 기억이 화랑으로 발걸음을 인도한다.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 일을 본 후, 받은 메일이 생각나서 서울프레스 센터를 찾았다. 호반그룹의 메세나 활동의 일환인 THE SPACE HOHWA 화랑은 역량 있는 신인작가들을 발굴하여 인상적이고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를 보러 지난번에 들렀을 때 준비 중으로 허탕을 친 적이 있어서 이번 전시에 대해 좀 더 기대감을 안고 찾았다.

전시회 제목은 DEEP LAYER였다. 제목이 지니는 의미는 바다의 심해층을 의미한다. 그곳은 자유로운 이동의 공간이며 현실과 가상의 이분법적인 경계를 무너뜨리는 곳으로 자아와 세계를 확장하는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BLUE 색을 모티브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온통 푸른빛 세상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참여 작가는 네 명으로 한국인 세 명 외국인 한 명이었다.

신건우 작가는 조각작품을 선보였다. 지극히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과 더불어 작품 일부에는 식(蝕)이라는 부제가 붙는 작품이 함께 전시되었다. 식은 월식과 같이 줄어들거나 좀먹는 의미로 조각품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형상을 보여준다.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라진 일부분은 여백으로 남아 생각거리를 남긴다. 유일하게 브론즈 작품인 Incredulite라는 제목의 작품은 의족을 끼고 깊은 생각에 잠긴 남성 입상인데 역시 가슴 한편을 베어냈다. 삶의 고뇌를 웅변하면서도 공허함을 안고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면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고 다가온다.

온통 밝은 청색으로 조형된 조각은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세속적인 모습이 함께 담겨 있다. 후광을 배치해 놓아 성모 마리아 같기도 하고 수월관음상의 자태로도 보이지만 현대의 세련된 여성의 조각이다. 조각을 보며 성스러움과 속된 것은 하나이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 허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처의 머리문양을 모티브로 한 Blue spiral은 만다라 같은 부조가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느낌을 동시에 선사하면서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신건우 작 Kanon-2
신건우 작 Incredulite

최지원 작가는 도자 인형을 모티브로 한 회화작품을 선보였다. 빛나는 얼굴에 색조화장을 해서 화려하지만 사람의 아닌 인형이라는 사실이 공허함을 불러오는 묘한 감성을 준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이 내면에 담고 있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그림의 배경에는 창에 드리운 버티칼이 등장한다. 세상과 차단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을 내다보는 문의 이중적인 의미가 느껴진다. Blue moon이라는 작품에서는 창 밖을 통해 바라본 검은 푸른빛의 신비로운 풍경이 희망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최지원 작 Blue moon


이동혁 작가는 추상화를 선보인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은 큰 화폭에 담긴 연한 푸른빛이 감도는 '시계는 가고 시간은 멈춘 곳에서'라는 작품이다. 접은 종이배를 뒤집어쓰고 바다를 향해 발길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발걸음이 느껴지는데 안타깝게도 주위는 바닷물이 말라버린 소금산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믿음의 힘이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게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닐까? 결과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이동혁 작가를 통해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작가님은 그림의 의미도 필요하겠지만 그림 자체로 보며 감상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굳이 그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그림이 주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눈을 갖기를 소망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욕'이라는 작품은 난해하지만 독특하게 표현된 질감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동혁 작 시계는 가고 시간은 멈춘 곳에서
민족의 욕 / 배꼽을 메운

마지막으로 외국작가인 Kostas Papakostas의 작품은 일필휘지의 역동성이 흘러넘친다. 푸른 선들이 선명하게 휘감기며 굽이치는 문양으로 화폭을 꽉 채우는데 그 기운이 그림 밖으로 확장되는 느낌마저 든다. 실제로 자신의 힘과 정기를 축적하고 응집해서 한 번에 붓질로 작품을 완성한다고 한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휘몰아치는 문양을 어떻게 붓질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었다. 화면이 꽉 차있지만 여백이 느껴지는 것도 신기하다. 그가 동양적인 미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의 작업 방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다양한 작업 방식 가운데 상대적으로 수월하겠다는 생각이다. 화가에 따라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요하는 단순 반복적인 작업들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사람 살아가는 방식도 그런 것을.... 쉽게 사는 이도 있고 고된 나날을 살아가는 이도 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금수저들은 결핍을 모른다. 결핍을 모르기 때문에 충일함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일탈을 꿈꾼다. 느껴지는 대로 드는 생각이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Kostas Papakostas 작 Secret of the sea

Blue라는 색조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신비하기도 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명쾌함을 담기도 하지만 우울함도 함께 있다. 맑고 밝지만 외로움도 묻어난다. 우리네 삶도 다양한 얼굴이 있다. 삶과 죽음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가 아닐까? 아름다움 속에서 상실을 느껴보는 특별한 시간이다.


행복하게도 오늘은 큐레이터가 화가들을 소개하고 작품의 개관을 들려주는 오프닝이 있는 날이었다. 작가들과 더불어 함께 할 수 있었고 담소를 나눌 수 있어서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간단한 캐터링이 준비되어 즐길 수 도 있었다. 삶은 이처럼 때때로 선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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