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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길 위에서

서울 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를 다녀와서

by 정석진

서울 시립 미술관 전시회에 대한 안내 메일을 받았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 화랑을 자주 찾는 편이다. 그러면서 간간이 시립미술관에도 들렀었다. 그런 연유로 정기적으로 시립미술관 전시회 소식을 받는다.


이번에는 에드워드 호퍼 특별 전시가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잘 알지 못한 화가였지만 전에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래서 동시대에 활동한 미국이 대표적인 리얼리즘 화가이고 도심 풍경을 모던하게 그려낸 점이 비슷하게 느껴져 딸에게 함께 보러 가자고 권유했다. 딸은 엄마도 같이 가기를 원했는데 아내는 집에서 쉬고 싶다고 해서 둘 만 예약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깜박 잊고 있다가 딸이 언질을 줘서 전람회 예약한 사실이 생각이 났다. 아내는 전시회도 보고 맛있는 점심도 함께 먹으며 딸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전시회는 함께 보지 못해도 식사를 같이 하려 했으나 아내는 둘만 오붓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오전 11시 예약으로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하여 길을 나섰다.


오월의 마지막 날이 후덥지근해서 한여름에 들어선 기분이다. 모처럼 딸과 함께 데이트를 하게 되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에 비친 모습에 활짝 웃는 얼굴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길을 걷는 딸의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하다.


1호선 전철을 타고 서울 시청역에 내려서 지하도를 한참 걸어야 했다. 찾아간 미술관은 녹음으로 덮여 있었다. 생각보다 관람객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종이 티켓을 발급받으며 한여름에 들어선 미술관의 여유로운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입구에서 각기 손목에 인식표를 감아주었다. 입구의 전시회를 알리는 글자 앞에서 젊은 커플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그 대열에 동참해서 사진으로 추억을 담았다. 간단한 도록을 받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인기가 많은 전람회인지 관람객이 줄지어 천천히 들어가야 했다.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많은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방문객들을 보며 왠지 뿌듯한 마음이다.


초입에는 호퍼의 데생과 자화상이 전시되어 있다. 손과 얼굴을 꼼꼼하게 스케치를 한 흔적들이다. 전시회를 돌아보며 그가 습작을 매우 진지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이라는 작업이 영감을 받아 즉석에서 창조해 내는 창작품이 아니라 세밀하게 계획하고 구성해서 노력이 더해져야 얻는 결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자화상은 단순한 외모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의 성품을 담아 내 그가 진지하고 사려 깊은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노트에 요약해서 일일이 기록으로 남긴 성실하고 철저한 사람이었다.

자화상

그가 '무관심으로 흘려버리는 평범한 것'에 시선을 두고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담아냈다는 설명을 보며 예술이 지향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똑똑히 인식하게 된다. 글 쓰는 작가도 마찬가지일 게다.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길어내는 일이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호퍼가 도심의 단조로운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을 그려내듯 매일의 반복되는 삶에서 반짝이는 것을 찾아 글로 전하는 삶을 나 또한 꿈꾼다.

초창기에 그는 일러스트 화가로 활동했었다. 그의 일러스트도 대단히 흥미롭다. 초기에 그가 화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해 생계수단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명성을 다졌다. 거의 사진과 다름없는 완성도 높은 일러스트들은 그의 가진 재능을 십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그가 그린 삽화

그가 그리는 풍경은 화려하거나 특별한 점이 별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심플하면서 마음을 머물게 하는 묘한 기운이 담겨 있다. 피사체를 단순히 그리는 것을 넘어 자신의 내면을 담아서일까?

그림이 주는 감명은 딱딱한 건물을 그렸을 뿐인데 서정이 풍겨난다는 사실이다.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각진 콘크리트 건물들이 정적이면서 마음의 여운을 남긴다. 낯선 장소이면서 낯익은 느낌이랄까? 삭막한 도심을 그렸지만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잘 정돈된 풍경은 도회 생활에 익숙함으로 우리에게 친근함을 주며 한 편으로 정겨운 느낌도 든다. 마치 도심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와 편안한 자리를 잡고 들어와 앉은 것 같다.

도시의 지붕들

여행하면서 풍경을 그린 그림은 도심의 풍경과는 다른 목가적인 풍경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가 그린 전원의 풍경에도 도심의 건축물을 그린 것과 톤이 같은 집들이 등장한다. 도심 경치와 다른 느낌이지만 그가 기조에 깔고 있는 단조로움 속에 담긴 서정은 여전하다.

도로와 집 사우스 루르

노을 지는 그림이 담아내는 하늘빛은 참으로 신비롭다. 철길을 배경으로 펼쳐진 하늘에는 모든 빛과 색깔이 담겨 파노라마처럼 색과 빛의 향연을 펼친다. 그의 작품에는 빛이 풍성하게 담긴다. 초창기 작품에는 인상파의 영향으로 빛을 다양하게 그렸다. 이후에도 빛은 그의 작품의 주된 모티브가 된다. 아침의 고요한 정경을 담아낸 건물의 풍경이 신비롭기도 하고 고요함을 전해지는 것은 전적인 작가의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철길의 석양

그의 작품에서 독특하고 빼어난 점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작가가 살았던 도심풍경과 여행지의 추억을 보이는 대로 그려냈을 뿐이다. 하지만 유행하는 조류에 맞서 뚝심 있게 자신의 화풍을 지켜냈고 일관되게 주변 풍경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의 일대기에 대한 영상을 보는 것도 흥미가 있었다. 그가 아내이자 예술의 동반자였던 조세핀 호퍼와의 동행과 삶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겼다. 관람이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탤런트 유지태가 도슨트로 참여해서 해설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주요한 작품마다 그림의 배경과 의미를 들을 수 있어서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시간을 들이고 돈을 지불한 보람이 차고 넘친다. 재미있는 것 하나는 유일하게 촬영이 허락된 그의 아내를 그린 햇빛 속의 여인의 그림 배경을 재현해 놓고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다. 아내가 서 있는 위치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작품 속에 들어 가 있는 기분이 난다. 즐거운 추억이 아닐 수 없다.

햇빛 속의 여인

관람을 끝내고 딸아이와 먹는 점심도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행복한 오월이 간다.


(그림에 대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도록에서 옮기다 보니 화질이 많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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