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군대에 있었을 때였다. 이등병이었던 난 막 자대배치를 받았다. 막연하게만 듣던 진짜 군대 생활이 시작된다는 긴장감이 바짝 들어있을 때였다. 한창 선임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생활 교육을 받을 때, 내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감기였다. 그것도 지독한 독감. 속으로 왜 하필 지금 독감에 걸렸을까 하며 내 몸을 원망했다. 하루하루 열이 오르고, 목이 자갈판이 된 듯 아파와도 멀쩡한 척 참아냈다. 그러다 결국 체온이 41도까지 올라 응급실에 실려갔다. 자대배치받고 일주일도 안된 시점에.
막 자대배치받고 온 이등병이 군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은 은근한 놀림거리였다. 이등병은 아프면 안 되고, 무엇보다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되는 존재였다. 폐급 병사 혹은 관심 병사. 이런 꼬리표가 달리기 딱 쉬웠다.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부대로 복귀한 후, 난 당연히 중대 선임들에게 놀림거리였다.
"이등병 나부랭이가 아프게 되어 있냐?"
"의무대대에서 꿀 잘 빨고 왔냐?"
"쟤 뭐 시키지 마라. 또 실려갈라"
장난 섞인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날 주눅 들게 만들었다. 모든 중대원들이 날 폐급 병사로 보는 듯했다. 난 군생활 시작부터 망했다고 생각했다. 날 하찮게 보는 수많은 시선들 속에서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두려웠다. 완벽한 군생활을 계획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폐급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부터 엉켜버린 폐급 이등병이라는 어떻게 하면 낙인표를 떼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중대원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소대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면담을 하자는 것이었다. 중사 계급에 부소대장은 아무도 없는 생활관에 나를 앉혀 놓고 물었다.
"니 열이 41도였담서? 왜 아프다 말을 안했노!?"
다소 험악한 듯한 경상도 사투리를 가진 부소대장의 질문은 '이등병이 아프게 되어있냐?'와 같은 놀림보다는 '이등병이 왜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아프다고 말을 안 했냐?'는 조금의 핀잔 같았다. 그 핀잔이 난 걱정으로 느껴졌던 걸까? 당시엔 하늘 같이 높아 보였던 중사 계급장을 단 부소대장에게 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막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이 아프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고. 아프다 말하면 중대원 모두가 안 좋게 볼 것 같았다고. 그래서 그냥 참았다고. 부소대장은 어리숙한 내 고백을 가만히 다 듣고선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야. 다 잘 보일 필요 없다. 군생활하면서 니 싫어하는 새끼도 있겠지. 근데 니 싫어하는 새끼한테도 잘 보일래? 뭐 한다고? 엄한데 힘 빼지 마라. 니한테 잘해주는 사람한테만 잘하면 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괭- 하고 징소리가 나는 듯했다. 맞다. 내가 뭐 한다고 40명이 넘는 중대원들 모두에게 다 잘 보이려고 했던가. 그럴 필요가 있는가. 아니 그게 가능은 한가. 이등병이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놀려대던 중대 선임들 사이에서도 분명 몇몇은 괜찮냐고, 다음부터 아프면 바로바로 말하라며 걱정하고 돌봐주던 선임들도 있었다. 부소대장의 말처럼 난 지금까지 날 하찮게 취급하는 사람들의 시선만을 두려워했다. 나를 위해 걱정해 주는 시선보다 나를 깎아내리는 시선에 더 신경 썼던 거다.
동네 형처럼 툭 던진 부소대장의 해답은 어리숙했던 21살의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왜 내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면 되지. 내 아픔을 놀림거리로 생각하는 얄팍한 사람들에게 내가 왜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선전해야 하나. 그런 노력을 할 시간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더 아끼자. 가뜩이나 힘든 군생활에 정말 엄한데 힘 빼지 말자.
생각이 그렇게 흐르자 마치 완전 군장을 내려놓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이후 난 이등병 생활을 하며 '이등병 주제에 응급실 실려간 폐급 병사'라는 놀림을 받아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굳이 바꾸려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 더 노력하는 자세를 가졌다.
결국,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럴 필요도, 그게 가능하지도 않기에.
엄한 곳에 힘 빼지 말고 내 옆을 지켜준 이들을 위해 노력하자.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