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버린 다는 건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것.

by 물고기

평소 깔끔한 아내는 가끔 집 청소를 하다 몇몇 내 물건을 들고 와 묻곤 한다.

"이거 계속 써? 안 쓰면 버리고."

그럼 나는 답한다.

"일단 둬봐."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엄마를 닮은 건지 나 역시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물건을 아끼는 검소함이라기 보단 물건에 대한 미련의 문제였다. 특히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은 더 그랬다. 이제 쓰지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음에도 미련을 남겼다.


대학원 다닐 때 썼던 노트북은 이제 간신히 전원만 켜짐에도 내 책상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10년 전 아르바이트비 탈탈 털어 산 메이커 운동복은 이제 사이즈가 맞지 않음에도 옷장에 한 구석을 지키고 있다. 그 밖에도 태어나 처음 맞춘 양복, 예전에 쓰던 스마트폰들, 아내가 처음 사준 필름 카메라까지 모두 지금 맞지도, 쓰지도 못하면서 미련으로 간직한다.


그렇게 미련 쌓인 물건들은 내 공간을 잡아먹듯 채워갔다. 아내는 침범해 오는 내 미련 가득한 물건에 답답해하면서도 끝내 인내해 준다. 이 물건들이 나를 구속함을 난 알면서도, 미련 쌓인 물건들이 우리의 공간을 잡아먹는 것을 느끼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미련하게.




반면 아내는 뭐든 잘 버렸다. 가끔 버리는 물건에 내가 놀랄 때도 있었다.

"이거 아끼던 거 아니야? 이렇게 그냥 버려?"

그럼 아내는 답한다.

"어차피 자주 쓰지도 않는데, 공간만 차지하고, 버려!"


아내는 작은 물건에 미련 같은 걸 두질 않는 듯했다. 비싼 물건도 아끼면 똥 된다며 잘 썼고, 보기 싫게 짐처럼 자리 잡은 물건은 가차 없이 집에서 쫓겨났다. 그럴 때마다 좁은 집에 뭐 하러 짐을 쌓아두냐 던지듯 말했지만, 현명한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미련은 삶을 구속한다는 것을. 미련은 일상을 무겁게 한다는 것을.


미련은 삶을 구속한다. 미련 가득 쌓인 물건들이 내 공간을 잡아먹듯. 그래서 미련은 지워야 한다. 놓아야 한다. 버려야 한다. 그게 물질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지 말이다. 미련이 가득한 마음은 앞을 향하지 못한다. 미련은 근본적으로 앞이 아닌 뒤를 향해있기 때문이다. 좋은 추억은 추억으로, 미련은 미련으로 털어내야 한다.


결국 잘 버린다는 건,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것.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건, 시간이란 흐름에 잘 놓아준다는 것.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