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해낸 게 별로 없었다.

by 물고기

돌이켜보면 나는 늘 시작에 능한 사람이었다. 기세 좋게 도전하길 좋아했고, 쉽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마치 양은냄비처럼 관심과 열정은 빠르게 끓고, 또 금세 식었다. 크게는 앞으로의 진로부터 작게는 소소한 취미까지. 내 관심은 늘 샛길로 샜고, 사고뭉치처럼 이것저것 손을 대지 않은 게 없었다. 하지만 그 많은 시작들 속에서 어떤 결과에 도달했던 경험은 매우 드물다.


한동안은 나의 이런 모습이 그저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행동력은 있지만 금방 열정이 식어버리는 어리숙한 인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먼저 난 끝까지 밀어붙일 체력이 부족했다. 어떤 일이든 과정이란 게 있다. 반드시 지나야 할 과정. 나는 늘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처럼 말하면서도, 그 과정을 오래 견디는 일에는 유난히 쉽게 지쳤다. 결국 우여곡절을 지나는 인내심이 없다는 말과 같다. 인내심은 체력과 결부된다. 길든 짧든 끝에 도달하는 과정을 버텨낼 그 힘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잘하려는 마음이었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다는 걸 알면서도 유독 나 자신에게만은 그 관대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언갈 시작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는 티끌이라도 하나 보이면 그 자리에 멈춰 온종일 그것만 들여다봤다.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실수와 실패가 더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소한 흠집 하나에 금세 질려했다.


그래서 난 끝까지 해낸 게 별로 없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살아가다 죽겠구나 싶다.




글쓰기도 그랬다. 열다섯 살, 중2병 한복판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열정의 소진과 부족한 체력, 완벽해야 한다는 욕심 사이를 오가며 쓰다 말다를 반복했다.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방치된 글은 외장하드 속에 쌓여갔고, 그마저도 대부분 쓰다 만 초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럴싸한 제목만 남은 파일들은 식혀진 의지와 함께 저장돼 있었다.


이제 서른 중반에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며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끝까지 해본 것이 거의 없었던 내 인생의 속죄에 가깝다. 동시에 이제 도전이라곤 없을 것 같던 내 인생에 아직 식지 않은 열정이 남아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지금도 얼마든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 끝을 볼 수 있다는 희망.


그래서 나는 약간의 강제성을 선택했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기계적으로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쓸 말이 없어도 무언가를 적는다. 일상에 흘러가는 작은 감정의 파편을 붙잡아 이렇게 주절주절. 글쓰기의 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살면서 어떠한 의지를 가지고 내 성에 다 찰만큼 지독히도 붙잡고 산 게 하나 있다는 성취감을 얻고 싶은 게 아닐까.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