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식탁에 마주 앉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by 물고기

아내의 회사 근처에는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있더라도 대부분 거리가 멀었다. 평소 뭐든 천천히 먹는 아내에겐 짧은 점심시간과 긴 이동 시간은 늘 가혹했다. 그래서 아내는 종종 배달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곤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배달 메뉴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고, 높게 오른 물가에 배달비까지 더해지니 부담도 컸다. 결국 우리 부부는 방법을 찾다가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로 했다. 도시락 준비는 아침잠이 많은 아내 대신 나의 몫이었다.


우리 집 냉장고는 크지 않다. 집과 함께 딸려온 조촐한 냉장고를 열어 당장 내일 아침에 싸갈 도시락 재료를 찾았다. 뭐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급하게 핸드폰을 켰다. 도시락 거리가 될만한 재료를 검색해 찾기 시작했다. 평소 아내는 뜨끈한 국물, 칼칼한 찌개를 좋아했지만, 출근 지옥철에 국물이 담긴 도시락을 쥐어 보내기엔 불안했다. 도시락 메뉴는 당연히 맛도 중요했지만 도시락을 열었을 때 제법 그럴싸해 보여야 했고, 아침에 준비하기에 수월하지만 적당한 노력이 돋보일 수 있는 메뉴여야 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첫 번째 아내의 도시락 메뉴는 떡갈비와 계란말이였다.




새벽 다섯 시 반, 잠든 아내를 뒤로하고 방 문을 나와 향한 곳은 주방. 컴컴한 새벽에 킨 밝은 주방 조명 빛에 아직 적응하지도 못한 찡그린 눈을 비비며 쌀을 퍼 담아 씻는다. 압력 밥솥이 밥을 만드는 동안 나는 서둘러 아침 운동을 다녀온다. 새벽 냉기 속에서 땀을 낸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집 안 가득 밥내음이 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다시 주방으로 간다. 어제 새벽 배송으로 시킨 떡갈비를 에어프라이기에 넣는다. 그리고 계란 3알을 깨어 잘게 썬 청양 고추와 베이컨, 액젓 조금 넣고 잘 풀어 미리 불에 달아 올린 사각 팬에 과감 없이 붓는다. 사각 팬에 퍼져 빠르게 익어가는 계란물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처음 뒤집는 모양은 이상해도 마지막 모양만 잘 잡아주면 된다. 계란말이의 매력은 만드는 노력에 비해 정성이 더 부각된다는 것이다. 각 잡아 구운 계란말이를 먹기 좋게 썰어주면 에어프라이기에 있던 떡갈비도 완성된다. 아내의 점심과 나의 점심을 분리해서 도시락에 담아주면 끝. 꽤 괜찮은 남편이 된 거 같다.


우리의 점심을 위해 시작된 요리는 자연스럽게 저녁으로 이어졌다. 내일 먹을 것을 고민해서 장을 보고,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가 비워내는 일련의 순환 과정이 재밌다. 우린 간편식에서 밀키트로, 밀키트에서 새로운 레시피로 발전해 갔다.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 뭐 먹을래?' 하며 물으면 '아무거나'라고 답하던 우리가, 이젠 퇴근하고 돌아와 각자 포지션에서 작전을 수행하듯 저녁을 차렸다. 나는 느끼하고 퍽퍽한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 아내는 얼큰하고 아삭한 음식을 좋아했다. 이런 둘이 완성한 식탁은 참치김치찌개와 오일파스타, 비빔냉면과 바비큐폭립과 같은 형태로 가끔 동서양의 신조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를 아내와 나눠먹고 이야기하며 보내는 시간이 행복했다. 하루는 아내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대창을 사 와 집에서 구워 먹다가 곁든 소주에 취해 내가 말했다.


행복하다고. 너와 함께 먹을 음식을 요리하고, 같이 나눠 먹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고.

이렇게 감정 가득한 표현을 하면 아내의 반응은 늘 한결같다.


'다행이네'


싱겁긴.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의 책 <행복의 기원>에는 '인간은 왜 행복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복잡한 이야기 다 생략하고 내가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생존 도구'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결국 동물이기에 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잘하도록 유도하는 미끼일 뿐이라 설명한다. 그래서 한 번의 큰 행복보다, 생존을 위해서 하는 소소한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로또 한 방보다 생존을 위해 먹는 식사와 번식을 위한 사랑이란 관계에서 우린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말미에 그는 명쾌한 통찰을 탁월한 문장으로 제시한다.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심리학, 진화론까지 빌려와 설명했지만,

결국 난 너와 식탁에 마주 앉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