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직장은 야근과 주말 출근이 잦았다. 야근을 넘어 밤샘 철야 근무를 하는 날도 많았다. 첫 직장이라는 설렘은 몇 달을 버티지 못했다. 밀려들어오는 업무와 살벌한 눈치 속에서 회사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피로감을 이기지 못했다. 고정되지 못한 근무 시간과 휴식 시간은 일상을 뒤튼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일상에도 나름의 일정한 템포가 필요하다는 것을.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습관처럼 시계를 봤다. 출근 전까지 몇 시간을 더 잘 수 있는지, 얼마나 더 쉴 수 있는지를 계산했다. 마치 무엇엔가 쫓기듯. 바쁘게 일한 만큼, 쉬는 일도 바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았다. 늘 휴식이 모자라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쉬는 날 뚜렷하게 무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주말 출근이 없는 날이면 오후까지 잠만 잤다. 그렇게 시작한 주말은 이미 반쯤 지나 있었다. 무엇을 할 의욕도 없었다. TV를 틀면 대게 평일에 이미 방송된 드라마 재방송이 한창이었다. 채널을 돌려봐도 이미 봤던 영화가 나오거나, 여러 패널들이 관심 없는 주제로 떠들어대는 프로그램들이 전부였다. 또 시계를 쳐다본다. 벌써 오후 4시. 아니 잠깐, 4시라니! 벌써부터 초조하다. 틀어놓은 TV에서 일요일 저녁 예능이 시작되면 벌써 하루가 끝나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결국 불편한 마음으로 쉬는 날을 또 흘려보낸다.
보상받으려는 듯 쉬면 늘 부족하다.
야근과 철야, 주말 출근으로 쌓인 피로는 몸보다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늘 보상을 원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힘들었던 만큼 뭔가 보상을 받고 싶어 했다. 더 정확히는 일한 만큼 같은 크기의 휴식을 원했던 거 같다. 쉬는 날의 나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요구하고 있었다. 내 피로를 말끔히 씻어 달라고. 그러면 어딘가 신이 나타나 수고한 자에게 선물처럼 개운한 휴식의 축복을 내려주지는 않을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어딘가에 보상을 기대했다. 마치 어리광을 부리듯.
그렇게 쉬는 날을 보내고 다시 출근을 하면 피로에 피로를 더 얻는 느낌이었다. 피로라는 무거운 짐을 무엇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다시 질질 끌고 들어 와 그 위에 더 올려두는 느낌. 그럴 때면 이상하게 억울했다. 왜 나만 이렇게 피곤한 건지. 앞으로 이렇게 계속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 건지. 한탄했다. 자꾸 어딘가 탓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그 기분.
그런 불규칙적인 생활도 익숙해질 무렵, 오랜만에 주말 출근이 없는 어느 일요일이었다. 새벽 6시, 엄마는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깨웠다. 산책을 가자는 것이었다. 평소 아침잠이 없는 엄마는 늘 새벽에 일어났다. 엄마랑 함께 산책을 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 새벽에, 그것도 금 같은 주말 출근 없는 일요일 아침에 날 깨운 것에 짜증이 났다. 좀 더 자겠다고, 오랜만에 주말 출근 안 하는 날이라고, 오후에 산책 가자고, 제발 내버려 두라고 했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물러나던 엄마가 그날은 달랐다. 일어나라고, 오늘은 아침에 나가자고.
엄마의 압박에 못 이겨 반 강제로 끌려 나온 나는 아직 아무도 없는 아침 거리를 산책했다. 평소에도 엄마와 함께 동네를 누비며 '이 건물은 요렇게 생겼네', '저 건물에는 무슨 장사를 하네'하며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아침의 거리는 낯설 만큼 조용했다. 막 떠오르는 햇빛, 몇몇 어르신들의 느린 걸음, 닫힌 가게들, 비어 있는 도로. 조금만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 기필코 마저 채우지 못한 잠을 자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그 낯섦에 빠져들었다. 집에 돌아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샤워까지 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또 시계를 봤다. 오전 9시. 아니 잠깐, 아직도 9시라니! 아직 서프라이즈도 시작하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뭔가 시간을 더 번 것 같다. 부족하다고 느끼던 주말의 시간이, 처음으로 넉넉해 보였다.
난 그 이후 주말에 늦잠을 자는 일이 드물어졌다. 야근과 주말 출근, 철야를 하지 않는 직장으로 옮긴 덕분도 있겠지만, 이제는 보상을 받듯 쉬기보다 일하며 주지 못했던 내 시간을 건네듯 하루를 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십 년. 일 할 때와 쉴 때를 구분할 줄 아는 노련함이 생겼다. 무엇이든 부족함만 바라보면 삶은 늘 모자라 보이듯, 부족함 속에서 채울 수 있는 것을 바라보려 한다. 조금 더 성장한 것 같다.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