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싫었다. 무거운 쇳덩이를 드는 것도, 공을 쫓아다니는 것도 하기 싫어했다. 운동에서 재미를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고통이었다. 운동이라는 고통에서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럼에도 막연하게 건강을 위해서 운동에 취미를 두고 싶었다. 다만, 운동이 나의 취미가 되기 위해서는 꽤 까다로운 조건들을 통과해야만 했다. 먼저 많은 준비가 필요 없는 운동이었으면 했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들이는 투자가 적었으면 좋겠고, 꾸준히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했으면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쟁을 독촉하는 운동이 아니었으면 했다. 운동의 결과가 꼭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닌 운동말이다.
나름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통과하는 운동을 생각해 봤을 때, 남는 건 달리기 뿐이었다. 달리기는 운동화만 있다면 어디든 그저 내달리기만 하면 된다. 들어가는 투자가 적다. 그리고 정직하고 단순한 운동이다. 운동을 위해 어딜 찾아가거나 배우러 다닐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경쟁이 없다. 달리기 경주를 한다면 경쟁이 되지만, 나 홀로 달리는 달리기는 경쟁이 아니다. 그래서 달려보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다. 신발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운동화를 꺼내 들었다. 작심삼일이 되어도 일단 해보자.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집 앞 천길을 따라 달려본다.
100m는 달렸을까. 벌써부터 숨이 찬다.
500m는 달렸을까. 벌써부터 그만 뛰고 싶다.
1km는 달렸을까. 생각보다 멀리 온 것 같다. 되돌아가자.
2km는 달렸을까. 너무 힘들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뛰자. 집에 가자.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썩 괜찮다. 아침부터 땀을 빼니 은근 개운한 것도 같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기를 틀면 노곤해진 몸과는 반대로 정신이 투명하게 깨어나는 이질적인 감각이 찾아온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 이상하게 집중이 잘되는 느낌이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다.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일찍 침대에 눕는다. 아침 일찍부터 뛰어서일까, 기분 좋게 피곤하다. 내일도 뛸 수 있을까. 그래도 시작했으니까 내일도 뛰어보자. 허벅지가 배긴다. 소소한 근육통이 기분을 좋게 한다. 오늘 하루가 밀도감 높게 꾸덕하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 보니 몽롱하다.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심삼일로 끝날 줄 알았던 달리기는 어느덧 1년을 넘겼다. 그동안 러닝화는 2개나 더 늘어났고, 4개의 마라톤 메달이 생겼으며, 러닝 워치를 차는 왼쪽 손목에는 햇볕에 타지 않은 하얀 시계 자국이 훈장처럼 남았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하루에 두 번이고 뛰었다. 달리다가 차는 숨의 리듬이 좋아서 13km를 더 내달린 적도 있었다. 여행을 가도 가보지 못한 곳을 달리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하기 싫은 날은 억지로 하지 않았다. 힘들게 얻은 운동이란 취미였기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비가 오는 날에도 달리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면 기꺼이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달리기의 매력은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이 너무나도 큰 운동이란 점이다.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받는 보상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 얕은 잠은 깊은 안식으로 바뀌었고, 평범한 밥상은 성찬이 되었다. 무엇보다 달리기가 주는 가장 큰 보상은 피로감이다.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찾아온 피로는 이전의 그것과는 달랐다. 예전의 피로가 삶에 짓눌려 소진된 방전의 감각이었다면, 달린 후의 피로는 나 스스로를 태워 만들어낸 충전의 감각에 가까웠다.
그리고 피로감의 주인이 나라는 점이 좋았다.
2km도 겨우 달리던 내가 마라톤 하프 코스를 완주하고 다음 달이면 풀코스에 도전한다. 막연하게 몸을 위해 시작했던 달리기는 어느새 일상의 빈 곳을 채우는 소중한 취미가 되었다. 이제는 뛰는 날보다 뛰지 않는 날이 더 어색하다. 내가 그토록 이해하기 어려웠던 운동이란 고통 속에서 재미를 찾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제 숨이 가빠올수록 살아있음을 느끼고,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나를 다독여준다. 이제 달리기는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작은 의미가 되었다. 내가 살아있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작은 의미.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