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았고, 내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은 참지 않았다. 그래서 말과 행동에는 늘 확신이 묻어 있었다. 나와 다른 생각은 틀린 것처럼, 내가 옳다는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땐 그게 주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또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믿어왔던 주관이 생각보다 얕았다는 걸. 경험도 성숙도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내 기준은 쉽게 흔들렸다. 조금만 다른 상황을 만나도 허점이 드러났다. 그때 처음으로 질문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온 이 확신은 과연 어디서 온 걸까.
곰곰이 돌아보니 답은 의외로 분명했다.
나는 남의 시선을 지독히도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워, 그들의 눈높이에서 나를 정리하고 포장했다. 버릇처럼. 적당히 좋아 보이게, 무난하게 괜찮은 사람처럼. 그게 내 기준이었다. 그 기준은 평균쯤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꽤 높은 기준이었다. 모두에게 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마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데, 그 사이 어딘가의 평균을 찾아 나를 맞추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 애매한 선 위에 나를 세워두려 애썼다. 튀지도, 밀리지도 않게. 그럴싸하게.
문제는 그렇게 완성된 기준과 주관이 결국 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남의 시선을 과하게 해석한 내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까웠다. 그래서 매번 선택의 순간마다 부딪혔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설명하지 못한 채 모든 결정에 의심을 달고 살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건, 그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말과 행동, 가치관까지도 남의 기준에 맞춰져 있었다. 그럴싸해 보이기 위해 만든 생각과 주장들. 아니라고 믿었던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 생각의 방향, 나의 시선.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건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내가 생각보다 많이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내 기준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남의 시선으로 만든 주관을 내려놓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게 내가 처음으로 나에게 솔직해진 순간이었다.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