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마지막 날, 아내는 늦게까지 일을 하고 이제야 퇴근한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휴가였던 난 밀린 집안 일과 저녁 준비를 마치고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승진했어"
"오! 축하해! 파티하자, 파티파티!"
집으로 오던 아내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저녁 메뉴를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오늘 저녁은 외식하자며, 아내에게 먹고 싶은 걸 골라보라 했다. 아내는 얼마 전부터 먹고 싶다 했던 조개탕을 말했다. 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아내를 마중 나갔다. 집 앞 횡단보도 저 멀리서 아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다.
"승진해서 부담만 늘어나는 것 같아. 승진했는데 더 묶인 느낌이야"
푸짐한 조개탕과 소주잔을 앞에 두고 아내가 말했다. 아내에게 승진은 기쁨보다는 무게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렇다고 승진한 아내를 위로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아내가 말하는 부담감과 걱정을 들으며 소주를 따라주었다. 아내는 한동안 직장 생활을 버거워했다. 빠듯한 일정, 바쁜 업무,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허덕였다. 집을 나서는 표정은 좋지 못했고, 집에 돌아오는 어깨는 처져있었다. 그래서일까. 아내는 연말에 받은 승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승진해서 다닐 앞으로의 회사 생활을 불안해했다.
우린 추운 겨울 2025년의 마지막 날, 보글보글 끓는 조개탕의 온기와 소주가 전하는 취기를 더해서 회사 생활의 뒷담과 결혼 생활의 앞담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리에겐 부족할 것 없는 생활들이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함도 있었다. 이렇게만 하면 괜찮은 걸까, 무언가 더 해야 하는 건 없을까,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 우린 어디로 향할까. 우리의 술자리는 지금을 이야기하다 미래를 이야기했고, 미래를 이야기하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봤다.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가 다 그렇듯, 두서없는 대화를 풀어내고 또 풀어냈다. 그러다 아내도, 나도 올 한 해가 참 빨리 지나갔다는 데 서로 동의했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잘 버텨왔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무탈해서 시간이 더 빨리 간 것처럼 느껴진 걸지도 몰라."
내가 말했다. 아내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낸 한 해라서 참 다행이었다며, 내년에도 올해처럼 무탈하고 건강하자 말했다. 무탈하다는 안정감과 불투명한 앞날이 주는 불안함 사이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안정감에 취해있다가도 곧 흔들릴지 모를 앞날을 동시에 떠올린다. 결국 지나가고 나면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시간들인데도, 우리는 종종 현재를 온전히 기뻐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처럼 하루를 함께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무탈한 한 해를 보내 수고했다. 우리 같이 새해 복 많이 받자. 칼칼한 조개탕 국물과 소주 두 병을 말끔하게 비우고 우린 자리를 떴다.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