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이유를 스스로 지운 브랜드

여성을 위한 앱이 여성에게 욕먹었다

by 브랜딩하는 물고기

2024년 5월, 미국 전역 길거리에 범블 광고판이 걸렸어요.


"금욕이 답이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수녀가 되겠다고 연애를 포기하지 마세요."

202406251633336279_img_00.jpg ⓒ Bumble

범블은 데이팅 앱이에요. 그것도 "여성을 위한" 데이팅 앱이에요. 그 앱이 여성한테 이런 말을 한 거예요.

반응은 즉각적이었어요.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원래 범블이 어떤 브랜드였냐면

범블은 2014년 휘트니 울프 허드가 만든 앱이에요. 틴더 창업자 중 한 명이었던 그녀가 성희롱 문제로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나온 뒤, "여성이 먼저 말을 거는 앱"을 만들겠다고 시작했어요.

1655962122aefcee4a6c78042d57c6bb1ea400f4ac.png ⓒ Bumble

당시로선 파격적인 아이디어였어요. 데이팅 앱은 항상 남성이 먼저 접근하는 구조였거든요. 범블은 그걸 뒤집었어요. 매칭이 되면 24시간 안에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야 했고, 여성이 침묵하면 대화가 사라졌어요. "여성이 주도하는 안전한 데이팅"이라는 메시지가 먹혔어요.


2021년 나스닥 상장 당시 기업 가치는 13조 원. 창업자 휘트니는 최연소 여성 CEO로 회사를 상장시켰어요.




근데 2024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사용자가 줄기 시작했어요. 특히 여성 사용자들 사이에서 "연애 자체가 피곤하다"는 피로감이 퍼지고 있었어요. 아예 연애를 안 하겠다는 여성들이 늘고 있었고요.


범블은 이 흐름을 보고 판단했어요. "이 여성들을 다시 앱으로 불러들이자."

그래서 나온 광고가 "금욕은 답이 아니에요"였어요.

ⓒ Bumble

의도는 이해가 돼요.

"연애가 힘들어서 포기한 거 알아요. 근데 범블은 달라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근데 소비자가 읽은 건 달랐어요.

"여성이 연애 안 하겠다는 선택을 비웃는 앱."


틱톡에서 불이 붙었어요. "여성 공감 마케팅 한다는 앱이 여성한테 '연애해라'고 명령하냐"는 반응이 폭발했어요. 배우 줄리아 폭스는 "금욕 2년 반째인데 이게 최고예요"라는 영상을 올렸어요. 종교 단체들도 가세했어요. 광고가 "반카톨릭적"이라는 비판이 나왔어요.


범블은 며칠 만에 광고를 내리고 공식 사과를 올렸어요.

"실수였어요. 현대 연애에 지친 분들의 공감을 얻으려 했는데,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어요."




근데 이게 광고 하나의 실수가 아니었어

같은 해 범블은 또 다른 선택을 했어요. 브랜드의 핵심 기능이었던 "여성이 먼저 말 걸기"를 없앴어요. 남성도 먼저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바꾼 거예요.


이유는 이랬어요. 여성 사용자들이 먼저 말 거는 걸 "부담스럽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그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였어요.


근데 결과는 반대였어요. 범블을 쓰는 이유 자체가 사라진 거예요.

"남성도 먼저 말 걸 수 있으면 틴더랑 뭐가 달라?" 주가는 광고 논란 이후 반 토막이 났어요.


창업자 휘트니는 2024년 초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2025년 초 다시 돌아와야 했어요.




이 이야기가 전하는 것

범블이 실수한 건 광고 카피 하나가 아니에요. 자기 브랜드가 누구 편인지를 스스로 흔들었어요.


범블의 존재 이유는 "여성이 주도하는 데이팅"이었어요. 여성이 연애를 피곤해하자 그 여성들을 설득하려 했고, 여성이 먼저 말 거는 게 부담이라 하자 그 기능을 없앴어요. 매번 사용자 불편을 해소하려는 선택이었는데, 그 선택들이 쌓이자 브랜드가 무엇인지 모르게 됐어요.


소비자가 떠난다고 해서 브랜드의 철학까지 바꾸면, 남아있던 사람들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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