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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할마 Nov 02. 2021

도토리 묵을 쑤다

요리는 과학이고 창의력이다

  남편과 동네 뒷산을 자주 간다.  올해 산 중턱에 소방도로가 생기면서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다.

바람이 많이 분 뒷날 길에 도토리와 상수리가 가지채 많이 떨어져 있어서 주웠다.  배수로에 떨어진

것은 이미 싹이 나거나 썩고 있었다.  집 옆에 있는 도토리도 모아 채반에 널어놓았다.

고추 따는 일이 바빠 도토리 껍질 까는 걸 미루고 있었다.

 

예상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다.  남편이 죽마고우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쓰러졌다.

시국을 논한 것도 격론을 한 것도 아니고 "우리 나이에 건강 조심하여야 해" 하는 말을 하면서 앞으로

통나무 쓰러지듯 넘어져서 안경알이 깨지고 코, 입술, 턱을 다쳤다.  

친구 말에 의하면 3초 정도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 전조 증상도 없이 의식을 잃은 거라 본인도 친구도 많이 놀라고 졸다가 깬 나도 당황했다.

119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병원 응급실로 가서 검사를 하였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원인을 찾기

위해 5일간 입원하여 여러 검사를 하였다.  


5일 만에 집에 오니 마당에 잡초는 무성해지고 도토리는 벌레가 많이 생겼다.

남편의 식단을 짜면서 인스턴트 음식을 배제하고 제철 음식을 먹이기로 다짐한 터라 힘들어도 묵을

쑤기로 맘을 먹고 도토리 껍질을 쪼그리고 앉아 깠다.  껍질이 안 벌어진 것은 무거운 냄비로 눌러

문질러 깠다.  상수리는 커서 주울 때는 옹골졌지만 껍질이 단단하여 까기가 힘이 들었다.  

알맹이를 모아 물에 담갔다.   쓴맛과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차례   물을 갈아주었다.

 물에 불은 도토리를 믹서기로 갈아서 큰 대야에 넣고 앙금을 가라앉혔다.

 윗물은 버리고 가라앉은 전분으로 묵을 쑨다.

 여기서 물의 양과 젓는 게 중요하다.  

7:1 비율로 끓였다.  젓는데 팔이 아팠지만 원을 크게 빠르게 저어 완성되기 전 들기름 한 스푼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유리그릇에 넣고 굳혔다.

도토리 찌꺼기가 아까워서 빵을 만들어 보았다.  

전분이 거의 빠져나가 찰기가 없는 도토리 찌꺼기에

달걀 두 개와 통밀가루, 약간의 단맛을 위해 설탕 2스푼을 넣고 맨 위에 호두를 장식하여 에어 프라이기에 25분간 구웠다.


와우!   통밀과 도토리 찌꺼기의 조합은 상상 이상이었다.


"난 요리 천재인가 봐 버려야 하는 도토리 찌꺼기로 빵을 만들다니."  ㅎㅎ


며칠 전 만들어 놓았던 생강청에 따끈한 물을 부어

샐러드와 도토리 찌꺼기 빵을 먹었다.

샐러드도 텃밭에서 가꾼 것이고 드레싱에 쓰인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만 산 것이다.

바다를 보면서 아침 식사를 한다. 지중해에서 먹는 식사가 부럽지 않다.

바다에 배가 한 척 지나고 백야교가 선명하게 보이는 청명한 가을날이다.

귀촌한 것이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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