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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수정 Mar 02. 2022

벗과 함께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봄맞이 집안 청소를 하다가 퇴임 전 친구들과 2박 3일 지리산 부근 여행을 하면서 적어 놓은 메모를 발견하고 잠시 그때로 돌아가 추억에 잠겼었다. 그 중 한 명은 이미 하늘나라로 갔고, 우리 추억의 한 장면을 남기고 싶어 기억을 더듬어 글로 써 보려고 한다.


전라도가 고향인 친구가 계획을 하여 구례터미널에서 만나 차를 렌트하여 명소를 찾아 나섰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메모에는 사성암(四聖庵), 화엄사(華嚴寺), 화개장터, 최참판댁 구경, 운조루(雲鳥樓), 곡선재, 서시천 둑방길을 다녔다고 적혀 있다. 메모를 보면서 그때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올려졌다.


사성암(四聖庵)은 도선국사가 풍수를 연마한 곳이며 원효, 의상, 진각 대사가 와서 공부했다고 한다. 사성암 주위에는 도끼로 찍어 다듬은 듯한 바위들로 가득하다. 사성암 산왕전 자리한 터는 좀 섬찟하여 가까이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사성암 앞으로는 넓은 구례평야가 펼쳐져 있고 섬진강이 사성암을 활처럼 둘러싸고 흐른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 조용헌의 <휴휴명당(休休明堂)>에 구례 지리산 사성암이 기운 솟는 명당 22곳에 포함되어 있어 놀라웠다. 평사리 문학관의 최참판댁은 구경하는 입장료가 1인당 5,000원. 그당시는 좀 비싼 편인데 워낙 유명한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집이라 구경하기로 했다. 소설 속 최참판 댁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화개장터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며 한곳에 어우러져 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경상도가 고향인 친구가 찐쌀을 보고 반기면서 한 봉지 샀다. 나는 찐쌀을 그때 처음 먹어 보았다. 먹은 음식값, 입장료, 교통비 등이 간단하게 메모가 되어 있어서 내 머리 속에 간직되어 있었던 추억들이 밖으로 나와 활자가 되도록 도움을 주었다. 메모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당시 친구들의 표정 하나하나, 즐거움에 활짝 펴진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감흥에 젖는다. 지금도 내 지갑 속에는 그때 산 지리산 야생화향수 '노고단'을 지니고 있다. '노고단은 옥잠화, 원추리 꽃에서 향을 추출하여 만든 향수로 지리산의 풋풋함과 맑고 달콤하며 은은한 꽃향이 일품입니다. 옷속, 지갑, 명함 등에 넣어서 사용하시면 오랫동안 향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향이 다 날라가 맡을 수 없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러간 것이다. 대신에 추억의  향은 그대로 묻어있다.



지리산 야생화향수 '노고단'



숙소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그것이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를 말하면서 우리도 '오우회'라 이름을 붙이면서 각자 닮고 싶은 사물을 말하자고 했다. 유독 정이 많고 감성이 풍부한 J는 대(竹), 마음이 여리고 지금도 소녀같은 Y는 솔(松), 주관이 뚜렷하고 멋지며 우리의 롤모델인 N은 달(月), 고등학교때 문학소녀였으며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고, 지금도 시를 좋아하고 작품을 쓰고 있는 H는 물(水), 그리고 나는 바위(石). 각자 다음을 위하여 건강에 신경을 쓰자고 다짐하며 모두 "진달래"(진실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를 외쳤다. 모처럼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양한 술(산수유술, 석류술)도 마시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었다.


청소를 하다가 문득 떠올려진 10년 전 친구들과의 추억. 오래도록 만나 즐겁게 지내자고 했지만 J는 3년 전에 제일 먼저 하늘나라로 갔고, 우리의 오우회는 흐지부지... J와 나는 대학 졸업 후에 같은 학교에서 4년동안 근무를 같이 했으며 공통된 공감대도 갖고 있었던 친구였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런 이별을 만나고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가슴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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