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하늘을 날아서!
Chapter 2: 하늘을 날아서!
궤도 열차는 로켓처럼 발사되었다. 그 덜컹거림은 영혼을 뒤흔드는 대단한 것이었다. 멀리서 빛나던 터미널의 불빛이 일렁이는 반짝임으로, 현란한 선으로, 명멸하는 폭발로 바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열차는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우아하리만큼 조용한 구름들 사이로 우리가 평생을 사랑해온 도시의 불빛이 빛났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토록 거대한 철제 상자가 하늘을 꿰뚫으며 날고 있다니. 평화의 손을 꼬옥 잡으며 그렇게 하늘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4번째 구름 지대를 통과할 때 즈음해서는 열차의 움직임이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초반의 무시무시하고 불안정한 덜컹거림은 많이 잦아들었고, 창밖을 보지 않으면 이곳이 배 위인지 기차 안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고요함이 서서히 찾아왔다. 천장 위에서 노오랗게 불이 들어와 있던 ‘안전띠 착용’ 사인이 어느새 불이 꺼져있었다. 좌석 사이사이로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며 음료수와 물을 건네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엄청난 출발이었어! 배고프다.”
“벌써 밥 생각이 나?”
“응. 긴장했거든.”
멋쩍게 웃는 평화의 표정을 보며 나 역시 배고프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은 어쩌면 생각보다 참 많이 단순한 걸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가신 뒤에는 살아야겠다는 강한 욕구, 먹고 사랑하고 웃어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게 된다. 가방을 주섬주섬해서 과자봉지를 꺼내며 우리는 함께 씨익 웃을 수 있었다.
기차 안은 어느덧 삶의 다양한 모습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안대를 하고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좌석에 매달려 있는 리모컨을 돌려보며 새로운 실험들을 하고 있었다. 승무원이 나누어준 기차모양의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있는 아이들도 많았고, 창밖의 풍경을 지그시 바라보며 감상에 젖은 표정을 짓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언젠가 고등적인 동물의 가장 큰 특징은 ‘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침팬지는 퍼즐을 즐겨 풀고, 돌고래들은 술래잡기를 하며 논다. 사람들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하길 좋아하지만, 어쩌면 시간을 헛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걸지도 모른다.
평화는 기차 안을 쭉 둘러보고 오더니 말했다.
“저쪽에 전망칸이 있는데 되게 예뻐.”
“그래?”
“응. 통유리로 4면이 다 만들어져 있는데 분위기가 좋더라. 카페처럼 의자도 만들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많아!”
“조금 있다가 같이 가볼래?”
“응! 점심시간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던데? 가서 그림 그릴래!”
전망칸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듯 반짝거렸다. 점점 높은 하늘로 올라가며 햇살은 싱그러운 보석 같은 것으로 바뀌고 있었고, 그 영롱함은 수십 겹의 강화유리에 깃들며 전망칸을 더없이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창밖의 풍경은 온통 넘실거리는 구름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연한 하늘빛으로 가득했다. 그 풍경 앞에선 그 누구라도 설렐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설원에 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숨쉬기 힘든 장대한 사막 앞에 서있는 기분도 들었다. 압도적인 그 대자연의 풍경 앞에서 우리는 잠시 호흡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 빛깔 속에서 평화는 짧고 강렬한 감상평을 남겼다.
“하늘을 나는 것 같아!”
“실제로 날고 있는걸.”
“그래도! 저 구름 봐!”
전망칸에는 카페처럼 예쁜 테이블과 의자들이 창문 옆에 설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바깥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기타까지 가져와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노래하고 있었다. 경직되어 있는 사회분위기에서 살아온 나와 평화에게는 신기하기만 한 풍경이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서 풍경의 일부가 되어보았다.
“저쪽에 카드놀이하고 있는 테이블도 구성이 되게 신기하다.”
정장을 빼어 입은 아저씨는 대단히 사무적인 표정으로 덱(deck)에서 카드를 빼어 들고 있었다. 표정이 심각한 걸 보니 아주 좋은 패를 빼어 들었거나, 아주 나쁜 패가 걸린 것 같았다. 그의 맞은편에서 싱글거리고 있는 동양인 소녀는 아직 채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것 같은 앳된 모습이었고, 그녀의 오른편에서 시끄럽게 훈수를 두고 있는 20대 청년은 카우보이 모자와 거창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어딜 봐도 어울릴 구석이 없는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서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조금, 자유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뭔가 답답한 기분이 많이 들었는데, 지금 이 풍경을 보니 좀 마음이 편해져.”
“사람들 간에 격식도, 위계질서도 좀 덜해서 그런가 봐. 출발한 지 30분도 채 안되었는데 벌써 정말로 여행을 온 기분이 드네.”
“우리한테도 누가 다가올까?”
“그럼. 앉아 있다 보면 금방 이런저런 사람들과 친해질 것 같은데.”
“다른 나라 말로 대화하기 무서워. 못한다고 비난하면 어떡하지?”
“잘할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가 살고 있던 나라의 분위기는 너무나 경직된 것이라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에 대해서도, 어디서 실수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많은 걱정을 하게 만들곤 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매서운 눈길로 감시하고 있으며, 행여나 상대방이 튀어 보이는 행동을 하거나 집단적 의식에 배반하는 행동을 할까 두려워하곤 했다. 수도인 소울의 길거리를 걷다 보면 그야말로 수없이 많은 ‘훑는 시선’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너무나도 많이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도 없고 자의식만 과잉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냉혹한 것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상관관계에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궤도 열차의 전망칸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봄날의 화초처럼 싱그럽게 내뿜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르는 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상대방의 모습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도 관대했다. 좁디좁은 우리나라 안에는 사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집단적인 감시 성향이 짙은 편이었다. 어딜 봐도 검은색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선 붉은 머리카락 파란 눈동자인 사람이 튀어 보일 수밖에 없고,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서로와 다르게 생긴 이곳에선, 서로가 서로의 다름에 대해 관대할 수 있었다. 엔젤피시 가득한 어항에 개구리를 넣어놓는다면 이상하겠지만, 뿔 난 뱀도 있고 날개 달린 물고기도 있는 대자연 속에선 개구리가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특이한 자유를 만끽하며 우리는 하늘을 나는 열차 안에서 평온을 찾았다.
우리는 앉아서 전망칸 카페테리어의 별미인 ‘하늘 속의 작은 구름’이라는 이름이 붙은 커피를 마셨다. 이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맛이어서 평화도 나도 깜짝 놀라며 서로를 쳐다보고 말았다. 그런 우리를 보며 뒷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큭큭 웃었다.
“‘하늘 속의 구름’을 처음 먹어보는 모양이지 자네들은?”
“네. 특이하네요. 커피 안에 솜사탕을 넣은 것 같기도 하고요.”
“총 19층까지 있는 구름층 중, 9번째 구름층은 특이한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네. 이 커피에 들어간 특이한 향은 그 9번 구름층에서 채취한 것이지.”
“왜 9번 구름층에는 특이한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있죠?”
“그 높이에 사는 운해어 중에는 사향(司香)을 지닌 녀석들이 많거든. 그 향은 몇 천 km 떨어진 곳에서도 맡을 수 있는 것들이라네. 자연스레 구름에 녹아들 수밖에 없지.”
아닌 게 아니라 바깥의 구름 속에선 거대한 운해어들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때때로 작은 도시보다도 크게 자라는 이 운해어들은 아직 인간이 채 풀지 못한 자연의 신비 중 하나였다. 그 거대한 몸집에 비해 운해어들은 구름층 위에서만 존재하는 수분과 박테리아만 먹고살았으며, 특이하게도 단 한 번도 그 사체가 지상에서 발견된 적이 없었다. 하긴, 수천만 톤에 달하는 물고기 시체가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그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장면이기는 할 것이다. 비록 그 물고기가 아무리 동글동글하고 푹신푹신하게 생겼더라도 말이다.
평화는 신이 나서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명품 향수의 향을 채취(採取)하는 구름층이 바로 저 9번 구름층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특히 동부 구름층에 서식하는 운해어 중에 구름까치라는 녀석의 향은 너무나 독특해서 한번 맡으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고. 우리 집사람도 구름까치 향으로 만들어진 향수를 사달라고 야단법석을 떠는데, 이게 보통 비싼 게 아니라야 말이지.”
평화는 계속해서 아저씨와 이런저런 특이한 운해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드넓은 하늘 아래, 우리가 찾는 그 풍경이 있을까?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와, 일렁이는 절벽,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나무가 있을까? 그 풍경을 찾는다면 왠지 아주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는 아직까지도 미지수였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열차는 어느새 14번째 구름층을 통과하고 있었다. 책에서나 읽었던 연보랏빛과 홍금빛 섞인 구름이 14번째 구름층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곧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올는지, 멀리서 황금빛 광채로 구름의 물결이 갈대밭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짐이 잘 있나 확인해보러 자리에 돌아가 보니 옆자리 꼬맹이들은 어느새 세상모르게 잠들어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몰라도 왠지 행복해 보였다. 조곤조곤 흔들리는 열차의 박동 소리에도, 그들은 깨지 않을 듯 깊은 잠을 누렸다.
객실에는 불이 꺼지고 커튼이 쳐져 있어서 평온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전망칸으로 돌아오니 밤이 다가온다는 것이 보다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햇살은 빠르게 구름의 산 사이로 도망쳤고, 침묵을 동반한 어둠이 열차 위로 찾아들고 있었다. 삶을 덮는 암흑의 부드러운 다가옴은 왠지 모르게 평온하고 설레는 기분을 마음에 남겨두었다.
아저씨는 지나가는 얘기처럼 말을 하셨다.
“예전보다는 많이 안전해졌다고들 해도 밤의 궤도 열차는 여전히 좀 위험한 편이지.”
“왜 그렇죠? 앞이 안 보여서 그런가요.”
“그건 아니지만, 드물게 창공에 용이 나타날 때도 있고, 굶주린 마(魔)가 열차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고 덤벼들 때도 있거든. 그 외에도 밤이면 늑대고기나 변종 대형 조류가 열차에 달려들 때도 있고.”
“이 높이에도 용이나 마(魔)가 사나요?”
“그럼. 용 같은 경우엔 운해어를 주로 먹고 사니 이 높이에도 드글거릴 수밖에 없지.”
그 말에 평화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고,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걱정은 안 해도 될 걸세. 보호구역 내 영공에서 용이나 마같은 괴물을 만날 가능성은 대단히 낮으니. 몇 안 되는 대륙 간 운송수단이니 만큼, 보호는 철저한 편이라고들 하더군.”
“그래도 만약 그런 괴물들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떡하긴, 하늘에 빌어야지. 아주 고명한 기사를 보내서 지켜달라고.”
아저씨는 그 뒤에도 여러 가지 기묘한 생명체들과 전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수십만 km 상공에서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위성 잔해나 고대 함선 파편을 물어뜯기를 좋아하는 늑대고기에 대한 이야기나, 20년쯤 전에 탑승객 2만여 명이 완전히 사라진 채로 궤도 정거장에 도착한 AA29 열차에 대한 이야기는 평화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환상을 일깨웠다. 아침 서광 속에서 가끔 그 모습이 보인다는 커다란 붕(鵬)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도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그 날개는 얼마나 크기에 구만리 너머에서도 서광으로 보이는 걸까. 용을 잡아먹는다는 그 전설적인 새의 모습을 나도 한 번쯤은 두 눈에 담고 싶었다.
“그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영물들이 18계의 창공을 누비는 것을 보면 새삼 인간이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곤 한다네.”
아저씨의 잔잔한 그 말은 오래도록 여운이 되어 여행하는 내내 내 마음 깊은 곳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은 불이 꺼진 열차 안에서 깊게 졸고 있었다. 창밖에 밤이 새카맣게 내리자 빛나는 것이라곤 저 멀리의 별들뿐이었다. 짙은 밤을 가르고 별을 향해 뻗어나가는 열차에선 은하철도 999 같은 느낌이 났다. 그 느낌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이미 노래고 이미 서사시였다. 별들 아래서 노래하며 사랑을 속삭이던 고대의 시인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시의 여운은 몇 천 년이 지나도 사람의 마음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같은 여운 속에서 우리는 소리 없이 하늘을 날았다. 짙고 달콤한 꿈이 우리가 날고 있는 그 느낌 그대로였다.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