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거지와 천국
Chapter 3: 거지와 천국
하늘 위의 도시에 도착했을 때엔 평화도 나도 꽤나 꾀죄죄한 몰골이 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궤도 열차 안에선 씻는 것에 대해 제한이 많았다. 몇 백만 원씩 하는 숙박 칸이 아닌 이상에야 씻을 수 있는 공간이라곤 단칸 화장실뿐이었고 한 사람 남짓 들어가면 꽉 들어차버리는 그 공간에서 청결을 완벽하게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샤워보다는 세면과 양치만으로 버티곤 했다. 기껏해야 50시간, 3일 남짓 걸리는 거리였기에 약간의 불편함은 다들 참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기차에서 내렸을 때 우리의 머리카락은 기름기에 절은 새집 같은 모양이 되어있었다. 평상시라면 그저 부끄러움만을 안겼을 그 꾀죄죄함은 그날에는 꽤나 거창한 사고의 이유가 되고 말았다.
궤도열차에서 산 샌드위치가 행여나 상했을까 봐 비닐을 열고 킁킁대던 차였다. 평화는 갑작스레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저 경찰들이 우리 보고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잠깐 샌드위치에서 코를 떼고 그쪽을 보았지만, 경찰이 보고 있는 방향에는 우리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확신할 수가 없었다. 평화 뒤의 수상쩍게 큰 가방을 짊어진 청년은 불안한 듯 다리를 연신 떨고 있었고, 그 뒤의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은 과일이라도 썰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날카로운 코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흉기 비스무리한 것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괜히 두려워하며 긴장할 이유도 없었다. 다시 코를 샌드위치 봉지에 박았다. 냄새가 조금 수상한 것이 어째 먹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신경 쓰지 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경찰이 우리를 왜 신경 쓰겠어.”
하지만 잠시 후 평화의 목소리는 조금 더 다급해지고 말았다.
“아냐! 이제 우리 쪽을 가리키면서 걸어오고 있단 말야! 무슨 일 있나 봐!”
경찰들은 정말로 우리를 가리키며 뭐라고 하고 있었다. 그 말은 나로서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Menschliches!”
경찰들은 곧 우리 곁으로 와서 그다지 정중하다고는 하기 힘든 태도로 함께 가줄 것을 요청했다.
“두 분께 질문할 것이 있으니 순순히 줄 바깥으로 나와 주시죠."
"뭐가 문제죠?”
하지만 아무리 물어보아도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단 따라오라는 강압적인 말속에서 우리는 입국심사 줄을 떠나와 궤도 승강장의 취조실을 향해야만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인가 봐.”
“그러게. 뭘까? 머리카락 색이 까매서 잡혀가는 건가?”
취조실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간단하고 무례한 질문들을 받아야만 했다. 왜 입국을 했느냐-부터 시작해서, 머물 곳은 있는지, 돈은 얼마나 들고 왔는지, 정상적인 행동을 할 지적능력이 되는지, 대부분 꽤 모욕적인 질문들이었다. 평화는 내 뒤에 숨어서 빼꼼히 두 눈만 내밀고 있었고,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을 하면서도 이 옳지 못한 대우에 큰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대개 그런 상황에서는 분노하고 불쾌하다고 한들, 그 폭력적인 권위 앞에서 저항하기 어렵다. 까닥 잘못했다간 불순한 의도로 입국한 것으로 몰려서 쫓겨날 수도 있는 이런 상황에선 함부로 목을 길게 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취조실에 잡혀왔는지 그 이유는 심문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등장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쓸모없고 불쾌한 질문들이 끝난 뒤에야 경찰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물어보았다.
“소지품 중에 약이 있습니까?"
나는 의례 묻는 상이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며 아니라고 대답했건만, 경찰들은 내 대답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살벌한 태도로 다시 물었다.
“다시 반복하겠습니다. 소지품 중에 불법적인 약품이 없습니까?”
그제야 나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내 행동들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 경찰들은 무서운 태도와 집념으로 내게 마약이 있는지 추궁하고 있었고, 그건 어떤 근거가 없이는 갖기 힘든 확신이었다. 대체 내 어떤 행동이 그들에게 의심이 아닌 확신을 갖게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들이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은 깨달을 수 있었다.
고민을 하느라 대답을 보류하자, 경찰들은 무섭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재차 추궁했다.
“본 경관은 아까 당신이 줄에 서서 '킁킁거리는' 것을 봤습니다. 이실직고하시죠.”
그제야 지금의 이 상황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킁킁거리는 행동은 마약 중독자들이 마약을 흡입할 때 주로 보이는 행동이었다. 코카인이나 크랙 등의 마약이나 최근 들어 무섭게 퍼지고 있는 엑스타시, 크루드로 같은 최신 마약들은 모두 코로 흡입하여 효과를 보는 가루형 마약이었다. 경관들은 샌드위치가 상했는지 냄새를 맡아보는 내 행동을 보고 마약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가방에서 샌드위치 봉지를 꺼내며 말했다. 눅눅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상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전 이걸 킁킁대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상한 것 같긴 하지만 정 킁킁거리고 싶으시다면 하게 해 드리죠."
경찰들은 모욕받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본인들의 실수를 알았기 때문에 특별히 더 큰 문제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입국심사를 거치며 우리는 하늘 위의 도시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천국의 문, 천사들의 도시, 천공의 이데아라는 거창한 이름이 따라다니는 하늘도시는 전 세계에서 그 주거 공간이 땅 위에 지어지지 않는 유일한 도시였다. 하늘 도시는 대륙 간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인 궤도열차 환승역이 있는 곳인 동시에 그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했다. 가장 드높은 고층의 건물들과 아름다운 건축조형적 예술들이 도시의 품격과 가격을 높였다. 당연하게도, 그래서 이 도시에 사는 일은 까다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하고 영예로운 이들만이 이 천상의 신민으로 발탁되어 올라올 수 있었고, 그 특혜를 받은 거주자들은 대단한 자긍심 속에서 도시를 돌보고 발전시켰다. 덕분에 그리 고결하지도, 품위가 있지도 않은 나와 평화 같은 여행객들은 천덕꾸러기 대우를 받았지만 말이다.
하늘도시에서의 곤혹은 터미널을 나서서, 묵을 장소를 찾아가는 그 첫 번째 여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저기, 죄송한데 길을 좀 물어보아도- "
사람들은 내가 채 질문을 끝마치기도 전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멀어져 갔다. 그중 압권은 온화해 보이시던 백발이 성성한 노파였다. 질문을 걸려고 다가서자, 그 나이 든 여인은 얼굴을 마귀처럼 일그러트리며 손을 마구 내저었다.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여전히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그것이 매우 강한 거부의 반응이라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치 구걸하는 비렁뱅이를 쫓아버리는 듯한 할머니의 손사래에 무척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뒷걸음질을 쳤다. 평화는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댔다.
“너 실제론 서대륙어 못하는 거 아냐? 저 할머니가 경기를 일으키시잖아 너 말 듣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 내가 돈 달라고 하는 줄 아셨나? 이상한 동네야.”
“머리를 안 감아서 거지로 보이나 봐!”
평화는 얄밉게도 계속 까르륵 웃으면서 놀려대었고, 나는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고작 며칠 씻지 않았을 뿐인데도 마약중독자에 비렁뱅이 취급을 받았으니, 인간다운 품위, 존엄성이라는 것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실제로는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과 씻는 것 사이에 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씻지 않았을 때 우리는 인간성이 크게 훼손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씻는 것 외에도 많은 무가치한 일들이 그렇듯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인간의 존엄한 가치로 착각되곤 하며, 그것은 계급구조가 투철한 사회일수록 더 심한 일이었다. 집이 없거나 차가 없으면, 깨끗한 피부나 멋진 핸드폰이 없으면 사람답지 못한 것 마냥 자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착각마저도 인간 고유의 것이라 우리는 궤도 정류장 세면장에서 몰래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며 다시 인간다움을 되찾은 듯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된 것 같아!”
“그 전에는 뭐였는데?”
“오물.”
“심했다.”
“아까 경찰들과 할머니가 우리를 대하던 태도가 그랬는걸!.”
“아무래도 이 도시는 외모지상주의가 심한가 봐.”
그것은 외모지상주의와는 다른 하늘 도시만의 고결한 특징이기도 했다. 우리는 바뀐 모습으로 거리에 나오자마자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단순히 겉모습이 깔끔해진 것만으로도 하늘도시 사람들의 대우는 무척 달라져서 우리는 더 이상 주목도 배척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길을 지나다니는 이들은 머리카락에서 산뜻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서로 정중히 인사했고, 우리에게도 온화한 미소로 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예의와 도덕성이라는 가치를 아주 중요시하는 것 같았고, 그 가치들은 아무래도 외모의 깔끔함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천천히 도시의 불빛 사이를 걸으며 평화와 나는 생경한 특별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지상으로 내려가는 궤도 열차는 1주일에 각 대륙별로 한 대씩 밖에 없었고, 평화와 나는 3일 뒤에나 서부 대륙으로 내려가는 열차를 탑승할 예정이었다. 사실 환승시간이라고 보기에 3일이란 시간은 꽤 긴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 불만을 갖는 거의 사람은 없었다. 하늘도시는 살면서 쉽사리 올 수 있을만한 곳은 아니었고, 3일 동안 머무르며 돌아볼만한 곳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유서 깊은 박물관과 미술관들, 아름다운 도시 내 공원, 예술의 반열에 오른 건축물과 세계에서 가장 고품격이고 상류층이라는 도시 신민들의 문화.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3일 동안 보고 싶고 담고 싶은 천공의 도시의 풍경이었다. 평화는 어느새 들떠서 무거운 가방에도 불구하고 방방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기 봐! 마천루야!”
“뛰지 마. 넘어질라.”
“도시가 별보다도 밝게 빛나!”
“뛰지 말래도.”
짐승 같은 무게의 가방을 짊어지고 평화의 경쾌한 발걸음을 뒤쫓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헉헉대며 뒤처진 내게 평화는 별빛 같이 빛나는 눈으로 웃음을 지어주었다.
“빨리 와. 세상에는 볼 것이 너무나도 많아.”
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되새길 때마다 나는 그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앞에서 나를 부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녀는 언제나 앞서 나가며 빨리 오라고 손짓하곤 했다. 지금도 세상의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내게 찾아오라며 손짓하고 있는 것 같아서, 곁에 없는 그녀에 대한 아득하고 아픈 그리움이 마음을 온통 채우고 말았다.
평화가 걷는 길 앞에서는 세상 그 어느 도시들보다도 높고 황홀하다는 마천루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허영심과 순수한 소망이 건물들 속에 상징화되어 빛났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부시게 빛나는 거대한 삼각뿔 모양의 탑은 주변 모든 고층건물들보다도 거의 두 배 이상의 높이를 자랑하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평화는 그 황금빛 건축물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저기 저 탑 보여?”
“도시 정중앙에 있는 거 말야?”
“응.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
“응. 잘 보여. 내가 여태까지 본 건물들 중에선 가장 높아 보이는데.”
“저 탑 이름이 뭐였더라? 특이한 이름이었는데. 여튼 저 탑의 꼭대기에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추앙하는 신이 산대.”
“정말? 막 기적을 행하는, 물고기와 빵을 만들고 사나흘 만에 부활하는 그런 신인 거야?”
“아냐. 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실존하는 신이지. 신이기도 하고 신의 대리자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한 그런 신.”
“그런 걸 왜 만들었을까?”
평화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방글방글 웃기만 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마치 ‘원죄의 인간에게는 기도하고 속죄하며 헌화를 바칠 영원 무구의 아버지가 필요하니까-’라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지혜와 사람의 신을 곱씹으며 불빛 깃든 거리를 거닐었다.
사실 평화가 가리켜 보인 ‘순환하는 기표의 탑’에 대해선 평화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인류의 문화와, 역사와, 신앙과, 철학에 바치는 위대한 헌화였다. 특수공법으로 제작하여 텅 비어있는 탑의 중심부를 축으로 대략 700여 개에 이르는 구조물들이 공중에서 서서히 돌면서 탑을 이루고 있었다. 어떤 조각들은 부유하며 꼭대기 층을 향해 올라갔고, 또 다른 조각들은 서서히 하강하며 탑을 구성했다. 어느 하나 똑같이 생긴 조각도 없고, 똑같은 궤적을 그리는 조각도 없었지만, 탑의 조각들끼리 충돌하거나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자유롭게 떠다니던 조각들은 다른 조각과 접촉할려치면 미끄럽게 비켜가거나 궤도를 변경하며 순환을 거듭했다. 아주 멀리서도 탑의 조각들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선명하게 보였다. 그 조각 하나하나가 실제로는 몇 층에 달하는 주거공간이자 편의시설임을 떠올리며 새로운 경탄을 마음에 새겼다. 새삼, 사람과 사람의 업적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평화는 내게 으쓱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우리의 목적지도 저곳이야.”
“왜? 신을 만나서 재워달라고 할 거야?”
“아니이. 아는 목사님이 저기에 사시거든. 빨리 가자!”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건너던 중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하늘 위의 도시에는 ‘물이 흐르는 강’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만큼 물이 풍족하지도 않았고, 강이 흘러야만 할 이유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설계자들은 ‘정서적인 이유’에서 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하늘이 흐르는 강’ 이 탄생하고 말았다. 도시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강 속에는 그 어떤 액체도 흐르지 않았지만, 텅 빈 아름다운 허공이 변화하며 흘렀다. 그 밑으로는 온 대륙이 다 내려다보였고, 모였다가 흩어지고 비가 되어 내리는 현란한 구름층들이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세상 그 어느 강보다도 아름다운 그 풍경 앞에서 우리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강과 일렁이는 대륙 사이에 ‘그것’이 있었다.
평화는 기묘한 목소리로 ‘그것’을 가리켜 보였다.
“저거 보여?”
살짝 내비치는 달빛 사이로 악마가 모습을 완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태동하는 공포였다. 원초적인 두려움이고, 심장을 움켜쥐는 악몽이었다. 아주 멀리서 눈에 담았음에도, 비릿한 두려움이 입 안을 쓴 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실제로 두 눈으로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기저의 악마(惡魔)라고 불렀다. 실제로도 그것은 억겁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서도 악마 같은 완벽한 검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그것을 다가올 파멸이라고 그랬고, 어떤 이들은 경외와 신비를 담아 그것을 떠있는 죽음이라고 불렀다. 그 모든 명칭들은 ‘그것’의 실제 위용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는 걸 직접 눈에 담은 순간에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도시 아래 20km 밑에서 장대한 몸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검은 용(龍)이었다. 그것도 몇 안 되는 마지막 남은 고룡인 그것은 도시 그 자체만큼이나 대단한 위압감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늘 도시의 주민들은 발밑에 죽음을 두고 살아간다더니 사실이었네.”
“죽은 걸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하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겠지?”
그러자 평화는 재치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죽음이 죽어있는 셈이네.”
물론, 용들은 때때로 심박과 호흡이 완벽하게 정지해있는 생물학적 죽음의 상태에서부터도 깨어나는 기괴한 생명체이었기에 ‘죽음은 잠들어 있는 셈’ 이기는 했다.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알려주어 평화를 겁에 질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만히 기저의 공포를 누에 담으며 하늘이 흐르는 강의 다리를 건넜다. 발밑에서 일렁이는 하늘빛과 공포의 조화가 마음에 짙은 색채를 남기고 있었다. 어쩌면 하늘 도시의 사람들은 그리도 두려운 죽음을 발밑에 두고 살아가기에 그리도 높은 탑들을 쌓아 올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드르륵 거리는 여행용 트렁크 소리와 함께 우리는 도시의 심장부로 접어들었다. 신이 사는 도시답데 곳곳에 경건하고 우아한 조각상들과 잘 정리된 아담한 공원들이 눈에 띄었다. 간판들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았고, 광고는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았다. 길거리 그 어디에도 선정적인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는 그 흔한 술집 하나 찾아볼 수 없었기에 신기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온화하게 행동했으며 우아하고 신사적으로 걸어 다녔다. 많은 면에서 우리가 여태껏 경험해온 삶, 살아온 정신없는 도시와는 다른 곳이었다. 도시의 곳곳에서 삶을 향한 온건하고 강렬한 예배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은 우리의 도시보다 많이 선진화된 것 같아. 언젠가 우리도 이런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평화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해야만 했다.
“더 선진화된 걸 어떻게 알아?”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친절하잖아. 많은 진보를 이룬 거지.”
“그럼 우리가 살던 도시는 어땠기에?”
“사람들은 획일화되어 있고, 그래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신경 쓰고 불편해하지. 그래서 서로를 억압하고, 불친절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말야. 그러다 보니 그 마음이 표출되어 거리도 더러워져.”
다른 건 몰라도 사람들이 훨씬 신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는 것은 피부로 와 닿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람답게 대해주는 것은 내가 늘 희망해오던 사회의 모습이기도 했다. 어쩌면 스스로의 경건함과 올곧음, 강박관념 속에서 친절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던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평화에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획일화되어있지 않을수록, 그러니까 더 다양할수록 더 건강한 사회라는 거지?”
“응. 획일화된 것은 일단 폭력적인 것은 둘째 치고, 위기에 대해서 대응이 약해. 위협이나 위기에 잘 대응할 수 없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보기는 힘들지. 능동적으로 유연하게 반응해야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니까.”
“음, 가령 자가 분열한 아메바의 집단이 외부 바이러스에 의한 멸종에 취약한 것처럼 말이지?”
“응! 맞아!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니까 뭔가 모순이 느껴진다. 요새 하늘 도시에서는 좋은 유전자를 복제하고 이식하는 유전자 우생학이 유행이라던데.”
“그럼 하늘도시도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획일화되고 경직된 모습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거네.”
우리의 걸음은 변화와 획일성, 흐름과 경직에 대한 삶의 고민들로 가득 차고 말았다. 우리가 살고 싶은 이상적인 세상을 생각하며,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를 끊임없이 걸었다. 도시의 우주 위로 예전보다 가까워진 별빛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별이 빛나 보이는 것은 세상이 어두워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고 말았다.
순환하는 기표의 탑은 가까이에 도착하니 더 장관이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황금빛 조각들은 마치 시계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기분도 들게 했고, 어떤 신화적 생명체의 태동을 바라보는 것도 같았다. 일층은 일층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고, 끊임없이 순환하며 70층이 되기도 하고 332번째 층이 되기도 했다. 그 흐름은 어떤 중요한 의미를, 삶의 핵심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이 거주한다는 가장 꼭대기 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층이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평등했다. 변화하는 층과 고정된 축, 그리고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닿을 듯한 천상이 만들어내는 평등의 의미는 웅장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 의미 앞에 경도당하며 우리는 경비실에 들어가 여권을 맡기고 목사님을 기다렸다.
목사님은 환한 미소를 띤 채로 우리를 맞이하러 내려오셨다.
“어서 와 평화야.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보네.”
“그간 안녕하셨어요?”
“그럼 그럼. 같이 온 친구도 어서 오렴.”
텅 빈 탑의 중앙을 따라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아찔한 속도로 발밑에서 멀어지는 대지와, 놀라우리만큼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하늘에 대해 경탄을 질러야만 했다.
“엄청 빨리 움직이네요!”
“이 진공 엘리베이터는 초속 50m의 속도로 탑의 최상과 최하층들을 이어준단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높은 탑에 사는 사람들이 불편하겠지.”
그렇게 말하는 목사님의 말투에는 묘한 자부심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다행히도 엘리베이터는 가장 드높은 창공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지상 80층가량에서 멈추었다. 깔끔하고 삭막한 복도를 지나니 거대한 금고문을 연상시키는 육중한 강철 문이 나타났다. 목사님의 목소리 인식, 지문인식, 망막 인식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친 뒤에, 문은 그제야 기괴한 기계음 속에서 열렸고 우리는 마침내 오늘 밤을 묵을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사님께서는 우리를 손님방으로 안내해주신 뒤, 곧 저녁식사가 시작될 테니 늦지 말고 함께 식사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덕분에 평화와 나는 약간 다급한 마음으로 짐을 풀기 시작해야 했을 뿐이다.
손님방은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아담하고 청빈했다. 한쪽 벽에는 2층 침대가 놓여있었고, 그 곁에는 글을 쓰거나 화장을 고칠 수 있는 책상이 놓여 있었다. 작은 옷장 하나를 포함해 그렇게 3개의 가구가 손님방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었다. 특별히 대단한 것도, 특별한 것도 없었지만, 이틀 밤을 지내기엔 충분히 넉넉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아주 어렸을 적 이후로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던 이 층 침대는 묘한 동심을 자극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평화는 어느새 짐을 다 풀고 옷마저도 편한 것으로 갈아입고 돌아와 있었다.
“옷은 어디서 갈아입었어?”
“바로 앞에 샤워실이랑 화장실이랑 연결되어있어!”
그 말에 나도 옷을 갈아입으러 방을 나서자, 온갖 향긋한 냄새가 저녁 식사의 분위기를 타고 콧속을 파고들었다. 문득, 크게 배고프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말았다.
네모난 테이블 위의 네모난 접시들, 그리고 그 위에 차려진 진수성찬은 정말이지 엄청난 것들이었다. 테이블을 가득 채운 산해진미를 두고 목사님 부인께서는 차린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겸양의 웃음을 지으셨고, 평화와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기분을 느꼈다. 목사님께서는 손수 우리들의 잔에 물을 따라주시며 저녁식사를 시작하셨다.
“하늘도시에 온 걸 환영한단다. 이 세상 어느 도시에서 와도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목사님. 이미 새로운 많은 것들을 느끼고 있어요. 이 물만 해도 하늘도시에선 꽤 귀한 거죠?”
“그렇지. 보통 땅에서는 이렇게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면 귀한 술로 대접하지만, 하늘도시에서는 물이 더 융숭한 대접을 받는단다. 술이 금지되어 있기도 하고.”
그 말에 우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기선 술이 금지인가요?”
“그렇단다. 너희들도 이곳에 오면서 느꼈겠지만, 이곳은 대단히 경건하고 신앙적인 곳이야. 범죄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고, 사람들은 그 어느 곳보다도 도덕적이지. 아마 자네들이 길거리에 지갑을 놓고 간다고 해도 이곳 주민들은 반드시 주인을 찾아 줄 거란다. 그리고 그렇게 경건한 도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주류에 대한 전면적인 금지야. 알코올은 사람의 자제력을 흐트러지게 만들고 실수를 하게끔 하거든.”
“그래도 주류 전면 금지라니 놀랍네요. 신기해요. 미성년자로 돌아온 기분도 들고,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나기도 하네요.”
그 말에 목사님은 크게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이 기회에 땅 위에서 얻은 세속과 잡념을 털어내고 다시 순수한 미성년자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미성년자나 어린아이만큼 순수하고, 신에 닿아있는 완벽한 존재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 말에 나는 문득 길거리의 분위기가 떠올라 목사님에게 물어보았다.
“오면서 보니까 길거리에도 화려한 광고나 대형 화면 같은 것이 없던데, 그것 역시 하늘도시만의 특징인가 보죠? 이 집에도 아마 TV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드네요.”
“바로 봤어! 이 곳 하늘도시는 선정적인 광고와 의미 없는 코미디, 쾌락 지향적인 오락을 지양한단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지양하는 정도가 아니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쾌락에 대한 추구와 그에서 비롯된 의미 없는 웃음은 진리를 망각하게 만들고 인간을 원시적인 상태로 이끌고 갈 뿐이니 말야.”
그 말에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그 유명한 ‘장미의 이름(Name of the rose)’라는 책이 떠오르고 말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부 희극론이 소실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 경건한 신앙에 웃음은 치명적인 해악이며, 내버려 두었다가는 지상은 악마의 복음인 웃음소리로 진동할 것이고,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는 망각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 수도사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희극론’ 원본에 독을 발라놓아 읽는 사람 모두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1부인 ‘비극론’은 현재까지도 남아 전해지지만, ‘희극론’ 만큼은 완벽하게 소실되고 말았다. 하늘도시의 사람들은 어째 장미의 이름에서 나오는 중세 수도사들을 닮아있는 것 같았다. 웃음 없는 사회가 경건한 사회라니, 과연 맞는 말일까?
목사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곳 하늘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의미 없고 쾌락적인 TV를 보고 있느니 차라리 독서를 한다네. 그래서 하늘도시의 도서관은 지상 그 어떤 도서관에도 비견될 수 없는 아름다운 장소이자, 엄청난 양의 장서들을 보유한 지혜의 보고이고 말야.”
그 말에 평화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안 그래도 하늘 위의 대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이번 여행에서 꼭 한번 들려보고 싶은 곳 1순위예요!”
“그럼 그럼. 하늘도시까지 왔으면 봐야 하는 게 딱 2개 있지. 기표의 탑과, 대도서관이 바로 그것이야. 기표의 탑에는 지금 이렇게 왔으니, 대도서관에도 꼭 가보길 추천할게.”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묵게 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목사님. 평생 하기 힘든 진귀한 경험이 분명해요.”
그 칭찬의 말에 목사님께서는 무척 기분이 좋아지셔서 신난 기색으로 자랑을 늘어놓으시기 시작하셨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탑은 정말 들어오기 힘든 곳이란다. 모두가 선망하는 곳이라 집값이 엄청나게 비싼 것도 있지만, 또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 실현된 이상적인 곳이기도 하거든. 시설마저도 초현대적인 것인데 이상적인 가치들마저도 구현하고 있고, 더군다나 건물이 아름답기까지 하니 세계 최고의 주거시설일 수밖에 없지. 그만큼 경쟁도 심하고 말야.”
“어째서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 실현되었다는 거죠? 집값이나 집 평수가 모두 다 같나요?”
“그렇게 단순한 차원의 평등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야. 그보단 훨씬 고차원적이고 멋진 일이 이 탑에서는 일어나고 있단다. 일단 탑을 구성하는 각 조각들은 제각기 다 다른 모양으로 4층에서 10층 정도의 크기로 구성되어 있거든. 그런데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 조각들은 느리면서도 확실한 방식으로 항상 움직이고 있어. 1년에 대략 10층에서 20층 정도의 높이를 오고 내려가지. 그러다 보니 고정되어 있는 상하관계가 없어진단다. 어제는 내 위층에 살던 사람이 또 몇 주 뒤에는 나보다 아래에 가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말야. 계급구조의 붕괴가 찾아오는 것이지. 높고 낮음이 더 이상 크게 관계없는 세상이 된 거야.”
“그럼 집값도 거의 똑같겠네요? 같은 값이면 바로 700층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나요? 그러면 경쟁이 생기고 상하가 또 생길 것 같은데.”
그 말에 목사님께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위아래가 거의 상관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집값이 똑같을 수는 없지. 아무래도 꼭대기 층에는 ‘신’께서 거주하시다 보니 그에 가까울수록 비쌀 수밖에 없거든. 더군다나 꼭대기에 가까운 100 층 안팎에는 도덕적으로 인정받은 뛰어난 사람들만이 살 수 있단다. 가격도 어마어마하지만 자격도 만만치 않아서 경쟁자가 그리 많지는 않지.”
“어차피 꼭대기에 가깝다고 해도 또 위치가 바뀔 텐데 왜 값이 더 비싼 거죠?”
“무작위로 바뀌는 듯 보여도 조각들이 움직이는 경로는 사실 아주 세밀하게 계산되어 있단다. 때문에 어느 조각이 몇 년 뒤에 상층부에 도착할지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조만간 최상층에 도달할 조각들이 값이 가장 비싸단다. 최상층부에 올라가기 시작하면 적어도 5~6년 내에는 내려올 일이 없으니 말이야.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내정된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고. 물론 그 조각들도 몇 년이 지나면 다시 하강을 시작할 테니 평등에는 문제가 없단다.”
결국 집값도 차이나고, 계급구조도 존재하는 것 같은데 그 구성원들만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희한한 인상을 받으며 우리는 저녁식사를 계속했다. 모든 조각들이 순환을 하는데 500년이나 걸린다면, 그놈의 평등도 구현되는데 500년이 걸리는 셈이다. 그건 전혀 평등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신난 목사님께 그런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있던 평화는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틈을 타서 목사님께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신과 가까운 곳에 사는 게 그렇게 영광스러운 일인가요?”
그 질문은 목사님을 정색하게 만들었고, 꽤나 진지한 태도로 답변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렇단다. ‘신’이라는 존재는 예전 고대 종교들에서 믿던 것처럼 절대자나 유일 무구한 존재, 혹은 세상의 창조자는 아니야. 그보다는 인간이고, 가장 완벽하고 존경받을만한, 모두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지. 사람이면서 가장 도덕적이라 사람을 초월한 이 만이 신이 될 수 있어. 혹시 옛날 종교 중 불교라는 종교에서 ‘부처’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이 있니?”
“네. 있어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들 하죠.”
“신 역시 그와 비슷한 것이야. 가장 도덕적이고, 가장 완벽한 깨달음을 얻어 우매한 인간들을 초월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존재가 신이란다. 선지자와도 같은 것이야. 누구나 선행과 경건함 속에서 신이 될 수 있고, 신이 되기를 갈망해야 한단다. 그 갈망 속에서 우리보다 앞서서 우리를 인도해주는 신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는 것이고 말야.”
그 말에 문득 의아해져서 물어보았다.
“그럼 신은 투표로 뽑나요?”
“그렇지. 검증된 신앙 지표와 도덕심, 인격과 포용력을 가진 대단한 후보들 중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큰 감명을 준 이만이 신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어. 현재의 신도 그런 포용력과 관대함으로 사람들을 감명시켜 신의 자리에 올랐단다.”
현재의 신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들은 적이 있었다. 12년쯤 전에 순환하는 기표의 탑은 끔찍한 사건을 겪었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반발한 고대 종교 세력들이 궤도열차를 납치하여 탑에 자폭테러를 감행했던 것이다. 다행히 탑 자체가 붕괴하지는 않았지만, 500층 이상의 탑 상층부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며, 신이 거주하던 최상층부는 그 형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랑하는 그들의 신과 천국이 무너진 것을 보며 도시의 신민들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수순이었을 것이다. 감정은 격해졌고, 전쟁, 응징, 보복 같은 과격한 단어들이 창공을 채우기 시작했다. 현재의 신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과격한 여론이 정점을 찍던 바로 그 시기였다. 그는 혜성처럼 등장하여 난폭함의 향연 사이에서 과감히 ‘용서’라는 키워드를 꺼내놓았다. 그는 가장 인간적인 대응이자, 가장 올바른 대응은 용서를 하는 것이고,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되려 지상의 다른 이들이 증오하고 질시하게 만든 하늘 도시 자체의 잘못도 크다고 역설했다. 평상 시라면 사람들을 더 화나게 하고, 안이하고 무른 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법한 그의 말은, 그가 폭발 속에서 어린 딸과 아내를 잃은 당사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용서는 하나의 구호가 되어 하늘을 울렸고, 인간다움 삶은 곧 용서할 줄 아는 것과 같은 말이 되었다. 그는 그렇게 도시의 다음 ‘신’이 되었다. 가장 인간다운, 가장 인간을 사랑하는, 그러면서도 무릇 보통 인간이라면 보일 수 없는 관대한 사랑을 보인 초월자로 추앙받으며 말이다. 그런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인간도 도덕적인 수양과 마음의 깊이를 얻으면 초인, 또는 신이 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 사실 종교의 역할은 모든 인간을 그렇게 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란다. 고대 기독교에서 신의 아들로 추앙받던 예수라는 선지자는 말했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너희도 할 수 있다.’라고 말야.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도 이렇게 말했어. ‘너희가 곧 부처다.’ 정치와 결합하며 지배계층을 위한 담론으로 변질되기 이전의 모든 종교, 인세의 진정한 선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던 것은 인간 안에, 인간의 본성 속에 이미 신이 있다는 거야. 우리는 그것을 갈고닦아 그 거룩한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지.”
목사님은 한참 동안이나 하늘도시의 신민들이 얼마나 고결하고 성스러운 마음 수양을 통해 신의 모습에 다다르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셨다. 목사님의 말을 들어보면 하늘도시는 인세에 다시없을 완벽한 사회인 것 같았다. 도시의 신민들은 욕을 하지도, 술이나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성폭행이나 절도, 살인 등의 범죄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보기 힘든 일로 전락했으며, 사람들은 근면 성실한 태도로 일을 하고 건실한 여가생활을 즐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말에는 종교활동에 참여했는데, 그중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회개의 시간’이었다. 매주 주일 오전 9시가 되면 죄를 지은 이들은 도시의 중앙광장에서 무릎 꿇고 신에게 죄를 사하여 달라고 간청했다. 목사님은 그렇게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바라는 인간이야 말로 참되고 올바른 인간이라고 하셨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는 있기에 참회하면 죄는 사하여지지만, 뉘우치지 않은 실수는 죄가 되고 악이 된다고 말이다. 목사님의 말은 길게 늘어져 하늘 도시의 주민들은 죄를 실수로라도 지으면 곧장 무릎을 꿇고 천공 위의 감시자인 신에게 끊임없이 용서를 간청한다는 내용을 감동 없이 반복적으로 연설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12시가 넘은 뒤에 평화는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내 어깨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귓가에 잠꼬대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어조로 웅얼거리고 있었다.
“음. 그래요. 아함. 그건 참 깊이 없는 사색인 것 같아요. 반성하는 그들도 겉으론 인간이겠죠.”
그게 무슨 뜻인지 묻기에 앞서 나는 평화가 더 많은 결례를 저지르기 전에 빨리 재워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목사님 내외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반쯤 혼수상태인 평화를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오자 평화는 목에 팔을 두르고 달콤하게 입 맞추어 주었다.
“잘 자.”
“너도.”
불을 끈 지 3분도 안되어 평화는 새근새근 잠들어버렸지만 내 머릿속에는 황금빛 탑과 그 위의 천국, 그리고 인간보다 완벽한 신에 대한 생각들이 떠돌고 있었다. 그 생각은 어지러움으로 나를 휘감아 잠으로부터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희한하게도, 둘 중 어느 누구도 꿈을 꾸지는 않은 밤이었다.
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