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향해 자라는 나무 4화

4화 : 운해어들의 신전

by 이원호

4화 : 운해어들의 신전




아침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하늘 위의 아침햇살은 내가 알고 있던 햇빛보다 몇 배는 더 눈부신 것이었고, 말 그대로 ‘아침이 너무 찬란하여’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하늘도시의 신민들이 경건하고 신앙심 어린 생활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아침의 햇살이 저리도 찬란하니 모두들 삶에 대한 경외심과 신을 향한 찬양 속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득 어젯밤에 평화가 인간의 참회를 깊이 없는 사색이라고 평했던 것이 생각나서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평화는 자리에 없었다. 아침 녘의 평화는 늘 그렇게 갑작스레 사라지는 경향이 있는 법이다.

간단하게 씻고 나와 목사님 아내에게 물어보니, 평화는 새벽녘에 혼자 도서관으로 출발했다고 그랬다. 참 부지런히도 바쁜 소녀라고 생각하며 준비를 마치자, 목사님 아내 분께서도 장을 보러 나가신다고 함께 동행 하자는 제안을 건넸다. 잘 모르는 이와 함께 다니는걸 그렇게 내켜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예의는 하늘도시에서 상당히 중요한 덕목인 듯했고, 요청에 응하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그리 수락하고 말았다.

목사님 아내분은 패트리샤(Patricha)라는 강한 이름과, 그 이름과는 모순된 여리여리한 외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패트리샤는 말수가 그리 많지도, 감정을 표면에 쉽사리 드러내는 성격도 아닌 듯했고, 그 덕분인지 온화한 미소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도서관이 위치한 도심으로 걸어가는 내내 우리는 차분하고 단조로운 대화들을 나누었는데, 단 한번, 패트리샤는 격한 감정을 보여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말았다.

그것은 도심 속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공원을 지나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공원 벤치에는 한가로워 보이는 젊은 남자가 누워있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이고 옷도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상하리만큼 자유로워 보였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눈을 감고 흥얼거리는 콧노래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의 곁을 노니는 햇살과 산들바람 때문이었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그의 입가에 나른하게 걸려있는 싱그러운 꽃대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꽃대는 하늘거리는 바람을 타고 느릿느릿 시간의 축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패트리샤는 그 모습을 보며 격분했다.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그 뜻을 알 수는 없음에도 그 안에 담긴 경멸과 분노는 분명한 것이었다. 사실 그 남자의 자유로움을 내심 부러워하던 차였기에 패트리샤의 일갈은 나를 무척 놀래키고 말았다. 남자는 패트리샤의 일갈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공원의 여유를 즐겼지만, 패트리샤는 그 뒤로도 계속 그 단어들을 되풀이하며 화를 냈다. 문득 그 단어의 뜻이 궁금해지고 말았다. 패트리샤가 욕처럼 사용하고 있는 그 단어는 하늘도시에 도착한 이후로 여러 번들은 단어였다. 궤도 열차 터미널에서 경찰들에게도 들었고, 거리에서 할머니에게도 들었던 단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묘한 모욕감과 경멸을 담아 사용되는 그 단어의 의미가 무엇일지 알고 싶었던 나는 패트리샤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어떤 거 말씀이세요?”

“방금 전에 저 공원의 남자에게 하신 말이요. Menschlich- 하는 말.”

패트리샤는 그 말을 듣자 또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Menschliches - 부랑자, 돼지 같은 인간, 신이 되길 포기한 자 라는 뜻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가축떼 같은 사람들이죠. 저들은 삶에 대한 경건한 의지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실한 사랑도 없는 끔찍한 이들이에요!”

“그래요? 제가 보기엔 저 남자는 그냥 보헤미안 같던데.”

그 말에 패트리샤의 콧구멍이 분노로 열렬하게 벌름거렸다.

“그 말이 그 말이죠! 저 작자들은 자유를 추앙한다면서 방종하고 방탕해요. 제대로 씻거나 차려입지도 않고, 격식이나 예의, 품격 같은 건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작자들이라고요. 무작정 방탕한 것이 자유로운 게 아닌데 저들은 그저 저렇게 식량과 햇살을 축내는 버러지 들일뿐이죠.”

내가 가만히 있자 패트리샤는 열성적으로 ‘Menschliches'가 얼마나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족속들인지 도서관 앞에 도착할 때까지 찡얼거렸다.

“수호 씨는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그게 신이 인간을 만든 이유고, 그것이 신이 인간을 사랑한 이유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신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가장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니까요. 영화에서 나오는 초인들과 전기에 나오는 영웅들, 위대한 선지자들은 우리와 그렇게 다른 존재들이 아니에요. 다만 깨달은 이들인 뿐인 거죠. 바로 사랑하는 방법을요! 그런데 자유를 갈망한다는 저 지저분한 치들은 그런 좋은 사람, 위대한 사람, 옳은 사람! 이 되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그저 우리 안의 돼지처럼 뒹굴며 쾌락을 추구할 뿐이죠. 저들은 지저분하게 잘 씻지도 않는답니다. 사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가꾸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잘 먹고, 잘 씻고, 예쁘게 꾸미는 거잖아요? 하찮은 고양이 같은 동물도 그렇게 할 줄 아는데 저 사람들은 동물만도 못한 거죠. 심지어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조차 않는다니까요! 참회하는 꼴을 정말이지 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 또 죄는 얼마나 많이 짓는지! 나원참. 저번에는 공원에서 저 부랑자 같은 꼴을 한 남녀가 부둥켜안고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을 봤다니까요? 애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렇게 부도덕한 만행을 저지르는지 이해가 안 가요. 성숙함과 인간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이들이에요.”

패트리샤는 계속해서 하늘도시에 Menschliches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이 끼치는 해악이 넘쳐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하늘도시의 품격과 자유로움이 곡해받을 것이고, 인간의 품위는 땅에 떨어질 것이라는 식의 푸념을 반복적으로 토로했고, 덕분에 도서관 앞에서 그녀와 헤어질 때쯤 해선 그놈의 고결한 타령에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저녁때 보자는 그녀의 우아하고 격식 갖춘 인사를 받으며 나는 기묘한 이중성과 하늘도시의 모순을 느꼈다. 세계 최첨단의 도시, 가장 문화적이고 성숙하고 진보했다는 기적의 도시에서 나는 왠지 중세 시대 귀족들의 잔향을 맛보고 있는 듯했다. 고결하고 우아하지만 웃을 줄 모르는 패트리샤보다 어쩌면 공원의 꽃대와 한량과 친해지는 게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도서관으로 후딱 도망쳐버렸다.







자유로움과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하느라, 그리고 되도록 빨리 패트리샤로부터 도망치는데 집중하느라 대도서관의 위용은 조금 늦게 내게 인지되었다. 도서관의 그 웅장한 그림자에 발끝을 담근 뒤에야 고개를 뒤로 젖혀, 그리고 조금 더 뒤로 젖혀 그 거대한 지혜의 보고를 눈에 담을 수 있었을 뿐이다. 더 아카이브, 문명의 보고, 인류 지적 능력의 연대표 등 각양각색의 찬사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도서관의 이름은 ‘운해어들의 신전’이었다. 대도서관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높아서 한참을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아야 그 끝자락을 볼 수 있었다. 도시 위의 창공을 가르는 전철들과 비행차들 보다도 높이, 구름 위의 운해어들이 노니는 높이까지 뻗어있는 이 위대한 건축물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큰 흔적을 남기곤 했다. 화살처럼 내리 꽂히고 거울처럼 부서지는 햇살 사이로 크고 작은 운해어들이 도서관의 에메랄드 빛 지붕을 타고 노닐고 있었다. 청록색 아름다운 빛으로 칠해진 거대한 지붕의 네 모서리에는 폭풍을 타고 노는 네 마리의 운해어가 웅장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벼락을 먹고 천둥을 토해낸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운해어인 그 천둥치들의 모습은 도서관 지붕의 에메랄드 색조와 어우러져 이루 말 못 할 신비감을 자아냈다. 천둥치의 입에서 흘러내린 구름과 폭우는 우람한 석주가 되어 도서관의 화려한 구조물을 지탱했고, 천둥치의 매끄러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비늘들은 찬연하고 아름다운 도서관의 유리창이 되어 햇빛을 희롱했다. 그 안에 가득 차 있을 수백, 수천만 권의 책, 인류의 문화유산, 역사적 기록물들을 생각하니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높다란 계단을 한껏 들뜬 채 뛰어 한달음에 도서관 정원을 가로질렀다. 책 읽는 자의 천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서관은 입구부터 대단한 곳이라 한동안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발코니의 천장은 거의 지붕까지 올라가 있는 듯했는데, 그 공간으로 수백 층에 달하는 서고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수백 층을 내려오는 듯한 샹들리에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났고, 고풍스러운 문들은 나이를 짐작할 수조차 없는 고목의 나뭇결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리석 계단은 세월의 흔적으로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고, 황금빛 문손잡이는 왠지 모를 위엄을 풍겼다. 세상의 모든 지혜가 다 모여 있다는 전설 속의 미네르바의 도서관이 이럴까, 참으로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곳이었다.

수백 층에 달하는 도서관 안에 들어서니 문득 평화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잠시 막막해져 왔다. 평화의 관심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이었다. 그녀가 이 도서관에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평화는 그 나무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를 찾기 위해서 향해야 하는 곳은 뻔했다. 오래 전의 선지자인 예수는 ‘평화는 아이들 곁에 머문다.’라고 했는데,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만큼은 참 들어맞는 말이었던 셈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3번째 층까지 올라가자 아이들의 그림동화책을 모아놓은 서고들이 나왔다. 아담한 창문들 사이로 하늘빛이 새어 들어오는 홀이 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이들의 키를 고려했는지 서고의 높이는 기껏해야 가슴까지 밖에는 오지 않았지만, 그런 책장이 족히 수백 개는 있었기 때문에 33층은 거의 책장과 동화 속의 미로였다.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아름다운 그림 동화책들이 그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꽃들에게 희망을’, ‘무지개 비늘’ 같은 유명한 작품들도 보였고, 조금 특이한 실버스타인의 작품들이나 쉘비 아저씨 같은 그림책들도 있었다. 동대륙이나 북대륙의 소수 민족들의 이야기, 민화를 다룬 아름다운 수공예 그림책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이제는 살려 고해도 살 수 조차 없는 ‘하늘을 향해 피는 꽃’, 이나 ‘가을밤을 향해 빛나는 별’ 같은 특별한 작품들마저도 서고에 비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잊고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책 속에서 길을 잃어 대었다. 덕분에 하마터면 서고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던 평화에게 걸려 넘어질 뻔 한 뒤에야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얏!”

“앗! 미안! 괜찮아?”

“응. 네가 다섯 번째야.”

“뭐가?”

“오늘 나한테 걸려 넘어질 뻔 한 사람이.”

“그러게 왜 거기에 그러고 앉아 있어. 위험하잖아.”

“한 번쯤은 책 속에서 길을 잃고 언덕에 주저앉은 채 사람을 기다리고 싶었거든.”

“그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야 제인 에어야?”

“둘 다 아냐. 잘 찾아왔네?

“응.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아서.”

“똑똑해. 참 아름답지 여기?”

햇살은 시간을 타고 고요히 도서관의 침묵을 물들였다. 내려앉는 오래된 먼지 하나에도 햇빛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다. 평온이 온 세상을 물들이는 그곳에 책이 있고 평화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토록 아름다운 햇살과, 많은 책과 고요가 있는 곳에 평화가 깃든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응. 여기라면 언제까지고 머물 수 있을 것 같아.”

평화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레 손을 잡아왔다. 장난스러운 오전의 광선들이 그녀의 미소만큼 화사하게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연코 그 순간에 만큼은 그녀가 가장 사랑스러웠다.

“어쩌나. 우리는 해야 할 여행이 있고 찾아야 할 의미가 있어서 이 도서관도 도시도 떠나야 할 텐데.”

“괜찮아. 더 멀리 여행하다 보면 더 아름다운 것들, 더 의미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보겠지.”

그러자 평화는 폴짝 뛰며 환히 웃었다.

“맞아! 이 도서관에 와보니 세상은 참 넓고, 보고 배워야 할 건 그보다도 더 많더라!”

“뭐 새로 알게 된 사실이라도 있어?”

“응!”

“가령?”

“도시 아래의 용이 정말 죽은 건지 확인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 알아? 어쩌면 죽은 게 아니라 잠든 걸지도 몰라!”

“그건 용은 원래 죽었다가도 깨어나는 종류의 생명체라 확인이 의미가 없어서 안 한 거야. 그렇다고 저 무지막지한 괴수를 옮겨놓을 방도도 없으니 저기에 내버려 둔 거지.”

“에.. 이미 알고 있었다니 시시하다. 그럼 이건 어때? 순환하는 기표의 탑을 구성하는 조각들은 500년에 한 번씩 원래 자리로 돌아온대!”

“응. 그래서 철학자 아도르노의 명언이 자주 인용되곤 하잖아. ‘다만, 아주 느리게 변화하기에 또 다른 획일화가 생길 뿐이다.’ 모든 게 변화하고 흐름을 만들지만, 때때론 그 변화가 진화의 발걸음만큼이나 느릿느릿한 것들이기에 또 고정된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

“베에. 그건 첫 번째 보다도 더 재미 없다아. 그럼 마지막으로 네가 정말 몰랐을 만한 걸 가르쳐줄게!”

“좋아. 그게 뭔데?”

“이리 와봐!”

평화는 다정다감하게 내 손을 잡은 채로 도서관의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둥그렇게 도서관이 모여드는 그곳에는 느릿한 속도로 돌고 있는 거대한 지구본이 있었다. 놀라우리만큼 거대하면서도 정교해서 모든 대륙과 주요 도시들, 생명의 요람 같은 강줄기, 위협적인 바다와 파도가 다 보이는 그 지구본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평화는 그 앞에 서서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고대의 마법주문을 외웠다.

“열려라 참깨!”

외침과 함께 두 팔을 쫙 펼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구본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고, 조각들에서는 정교한 홀로그램이 입체적으로 허공에 수놓아지기 시작했다. 별빛 같은 홀로그램 광선들이 겹치고 얽히며 만들어내는 생생한 모형들은 거의 생명의 탄생만큼이나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 빛 가운데서 생명의 여신이라도 된 마냥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는 평화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 짓고 말았다.

“멋지네. 이런 광경은 상상도 못 했어.”

“아냐. 아직 끝이 아냐. 보여주려고 했던 건 훨씬 더 멋진 거였단 말야!”

평화는 ‘찾고 싶은 게 있어!’ 하고 외쳤고, 그러자 홀로그램은 거대한 물음표와 검색창을 만들어 그녀에게 응답했다. 평화는 어린아이 마냥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서관 안의 생명의 나무들을 보여줘!”

그러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홀로그램이 검색하여 우리 앞에 보여주는 생명의 나무에 대한 데이터 값은 정말이지 엄청난 것이었다. 어릴 적 봤던 동화책의 그 웅장한 그림은 나무의 전부가 아니었다. 또 다른 동화책에서도, 역사적인 예술 작품 속에서도, 뛰어난 문학작품이나 심지어는 고대의 벽화 속에서도, 황금빛 가지를 뻗고 대지와 창공을 아우르는 그 나무의 모습은 반복해서 등장하는 모티프였다. 표현방식이 다르고, 질감과 색채가 다르고, 시대와 거장의 이름이 다르더라도 그 모든 작품들이 하나의 대상, 같은 대상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겉모습은 달라지더라도 끊임없이 순환하며 그 의미를 남기는 메타포처럼, 그 나무는 인류 역사의 배경에서 끊임없이 그 의미를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그 나무를 주제로 한 수많은 예술작품들에 손을 뻗어보며, 평화에게 경이롭다고 말해주었다.

“대단해..! 이런 건 상상도 못 했어 정말.”

“놀랍지? 그 나무는 비단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그리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던 것은 아니었나 봐!”

“그러게. 이건 정말 아름답다.”

“이렇게 많은 동일한 주제의 작품들이 나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제야 어떤 깨달음이 전율과 함께 내 뒤통수를 헤집고, 솜털들을 온통 일어서게 만들었다. 놀라움과 경악으로 평화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자, 평화는 장난기 가득한 그 미소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래. 우리가 찾고 있는 그 나무가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같은 나무라면, 그건 이 세상 어딘가에 바로 이 나무가 있을게 분명하다는 의미야.”

그 말은 선언이 되어 우리의 여행을 두드렸다. 보잘것없고 모호하던 의미는 그제야 약간의 견고함을 띄며 방향이 되었다. 그날의 그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우리는 참 중요한 많은 것들을 잉태시켰던 셈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무모하고 바보 같았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사람보다도 더 많고, 사람보다도 더 드문드문 떨어져 자라는 세상 수억 그루의 나무들 중에서, 단 한그루의 나무를 찾겠답시고 여행을 출발했던 셈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무모하고 바보 같음이 어쩌면 우리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방식인걸지도 모른다.




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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