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향해 자라는 나무 5화

5화 : 하늘 위에 피는 꽃

by 이원호

5 화 : 하늘 위에 피는 꽃




평화와 나는 몇 가지 도움이 될 사진과 자료들을 인쇄한 뒤에 도서관을 떠났다. 더 눌러앉아서 책을 읽고 싶기도 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은 영겁의 세월만큼이나 많았고,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없었다. 아쉬움을 어설프게 남길 바에야 내려놓고 떠나는 편이 나은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돌아와 며칠이고 밤을 새울 것을 약속하며 그렇게 대도서관을 떠나왔다.

연어초밥과 롤을 사들고 우리는 도심의 공원에 앉았다. 날씨는 좋았고, 푸른 잔디밭을 뛰노는 아이들은 사람보다 더 큰 비눗방울들을 만들며 놀고 있었다. 점심시간인지라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침에 봤던 ‘Menschliches’들도 꽤 많았는데, 그들은 둥그렇게 모여 앉아 노래를 하고 기타를 치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화에게 아침에 패트리샤와 나눈 대화들에 대해 얘기해주었더니, 그녀는 연어를 날름 삼키곤 눈을 굴리며 말했다.


“이상해.”

“뭐가?”

“아무래도 처음 도착했을 때 내렸던 평가를 정정해야 할 것 같아. 하늘도시는 생각했던 것만큼 이상적이지는 않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사람들이 친절하고 예의 깍듯해서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단순히 수많은 가치들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었던 것 같아. 끊임없이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깨끗하게 하고 다녀야 한다, 남에게 친절해야 한다,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가족에게 성실해야 한다, 일에 성실해야 한다, 관계와 사회와 국가와 신에 성실해야 한다. 결국 성실함에 구속되어 있는 세상인 셈이야. 그건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걸.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

평화는 손을 들어 Menschliches들을 가리켜 보였다.

“저런 것이야.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낮잠 자고, 생각하고, 본능에 의해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잠이 드는 것.”

그 말을 하는 평화의 표정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아마도 인간의 본능적 욕망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조금 부끄러워졌던 것일 듯싶다. 그리고 나는 바로 거기에 그녀의 모순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금 혼란스러워.”

“왜?”

“나도 평화 네가 말한 것처럼 이 하늘도시의 ‘성실함’에서 알 수 없는 경직을 느끼기는 해. 무언가 설명할 수는 없는데 인간답지 못한 게 느껴지고, 평등한 척하면서 평등하지 못한 게 느껴지거든. 그리고 'Menschliches' 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기도 하고 말야. 그런데 참 헷갈리는 건 뭐냐면, 하늘도시는 내가 그동안 꿈꿔온 이상의 결정체 같은 곳이란 말야? 그런데 막상 그런 곳에 실제로 와보니 불편한 게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가.”

평화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나는 평생 사람들이 서로에게 친절하고, 배려할 줄 알며, 책임감 있게 행동해주길 기대해왔어. 사람들이 무례하고, 이기적이며, 남에게 상처를 줄 때 나는 더없이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거든. 사실 우리가 살던 나라는 더없이 많은 폭력적인 모습과, 비인간적인 삶의 형태를 끊임없이 견뎌내며 살아야 했던 곳이잖아. 난 그런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어딘가에 있기를 기대했던 거야.

난 사람들이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고, 서로를 배신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서로 마음에 상처 주지 않았으면 좋겠고, 서로 사랑했으면 좋겠어. 가치 없는 일에 눈물을 흘리지도, 웃음을 흘리지도 않았으면 좋겠고, 지나치게 난잡한 성적인 욕망에 굴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그래서 더 깊이 있고 건강한,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늘 그게 인간다운 것이고, 그것이 인간을 넘어서 신에 닿는,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사회에 닿은 지금, 나는 불편함을 느껴. 내가 타락한 걸까? 인간다웠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다만 허망하고 기만적인 가치들처럼 느껴지고 있어.

물론 나는 지금도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본능과 쾌락을 좇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면 세상엔 텅 빈 욕망과 눈을 번들대는 짐승 같은 인간들만이 남게 될 거야. TV에서는 헐벗은 여자들과 자극적인 연예 프로그램만 나올 거고, 남자들은 틈만 나면 사창가로 달려갈 거야. 깊이 있는 대화도, 아름다운 책들도,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질 거야. 그런 건 싫어.

그래서 나는 딜레마를 느껴. 더 이상 인간다운 것도, 인간답게 사는 것도 무엇인지 모르겠어.”

공원은 조용했다. 너른 잔디밭은 잘 관리된 것인지 잡초 한 터럭, 민들레 한 포기 섞여있지 않았다. 그 위의 하늘도 그처럼 티 없이 맑았다. 간혹 갑작스럽게 일어나며 회개를 외치는 하늘도시의 신민들이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원은 꽤 평온한 곳이었다. 평화는 잡티 하나 없는 푸른 잔디밭에 드러누우며 한 참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하긴, 내가 너였어도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

“왜?”

“하늘 도시는 너와 참 많이 닮은 도시인걸. 네가 말한 대로 네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닮은 도시이기도 하고. 너는 늘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약속을 지키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세상을 용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잖아.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도, 폭력적인 것도, 지나치게 쾌락적인 것도 거부하지. 그래서 하늘도시에 대해서 문제점을 찾는 게 더 어려웠을 거야. 아마도 혼란스럽고, 뭐가 그릇되었는지 본능적으론 알고 있는데 부정하기 더 어려웠겠지. 이 세계가 너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세계를 부정하며 너를 부정하기 어려운 거야.”

평화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하지만, 네가 바라는 이상은 인간다움을 향한 길은 아니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 너 자신도, 이 도시도, 삶과 이상을 향한 강박관념 속에서 오히려 인간다움에서 멀어지고 있어. 이해는 가. 발밑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으니 미몽에 휩싸인 인간은 언제나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지.”

그 말은 놀라운 충격으로 내게 당도했다. 이 해묵은 구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모든 이야기 속에 녹아있던 가장 튼튼한 고정관념이었다. 적과 아, 흑과 백, 죽음과 삶, 지혜와 광기, 옳고 그름. 모든 대립과 갈등과 이데아와 극복이 이 뼈대 속에서 이루어지고 돋아나다가 스러지곤 했다. 이것이야 말로 사회를 이루는 뼈대이자,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구조였다. 그리고 동시에, 평화의 말대로 오히려 인간적이지 못한 삶이었다.

평화는 가만히 드러누운 채로, 단조로운 어조로 계속해서 지혜를 말했다.

“적(敵), 악마(Evil), 희생양(Scapegoat), 제물(祭物),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하나야.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이유지. 어떻게 보면 ‘사회’를 구성하는 유일무이한 힘이기도 하고, 가장 오래된 통치기반이기도 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비인간적인 구조를 띄기도 하고 말야. 사실 ‘적이 있으니, 하나가 되어야 한다-’ 라는건 효과적이기는 해도 끔찍하잖아. 거기에 창공 위에 존재하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신의 존재, 이데아, 만들어놓은 천국까지 합쳐놓으면 이 구도는 거의 원시적이면서 조야한 구조야. 발밑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머리 위에는 천국이 있는데 사람들이 어디로 가려고 하겠어 위를 향하려고 하지. 그리고 그 위를 향하는 의지가 아래와의 차이를 만들고, 계급을 만들고, 구조를 만드는 거야. 차이가 생기고, 불평등이 생기는 거지. 교묘하게 평등을 가장하면서도,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체제, 정교하게 지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등장한 거야. 그리고 이건 무척 위험한 일이야.”

“위험? 왜 위험해?”

“아주 단순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확실하게 휘어잡는 체제니까 그렇지! 니체의 초인주의가 파시즘의 원료가 되어 홀로코스트를 낳았다는 점이나, 고대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어 수십 세기 동안 박해와 불통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봐. 아니면 석가모니의 불교가 호국불교로 변질되어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을 떠올려도 되겠네. 이토록 단순하면서 확실한 신념들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거대한 에너지를 낳아. 사람들을 집단적인 선행으로도 이끌 수 있지만, 집단적인 광기로도 이끌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하늘도시의 신민들도 이미 단순한 종교인의 모습이 아니라 광신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Menschliches'에 대한 그들의 비난과 두려움을 보면 아주 명백한 일이야. 이미 자신과 다른 종류의 삶, 다른 종류의 믿음, 다른 종류의 신앙! 을 가진 이들에게 적개심과 거부감을 품고 있어. 그것도 지독히 단결된 상태로 말야. 내가 보기엔 파쇼적인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의 과도기인 것 같은걸. 옳은 삶, 인간다움, 절대적 도덕성을 위해 인간을 학살하고, 삶을 저버리며, 도덕을 짓밟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야.”

그 말에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담겨있어서 그 순간의 평화는 마치 빛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평화에게 대답했다.

“그럼 그래서 세상엔 악마가 있고 신이 있는 걸까. 그래서 천국이 있고 지옥이 생겨나고 선과 악과 높음과 낮음, 계급과 불평등이 있는 걸까. 그래야지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같이 살 수 있는 구조, 체제가 생기는 거잖아. 모두가 순응할 수 있는 높음과 낮음을 사람이 만들어 내는 거잖아. 그 통제와 권리와 규칙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일까.”

“응. 하지만 그렇게 함께 사는 동안에 우리는 가축떼 같은 인간일 뿐이야. 그리고 가축 떼로서의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며 신 앞에 우리의 삶과 목숨을 바쳐야 하지. 사람다운 것은 그런 게 아냐. 어쩌면 우리는 인간을 초월할 필요도, 신에 닿을 필요도 없는지도 몰라. 사람이기에 아름다운 걸지도 몰라. 난 별로 신 같은 게 되고 싶지는 않아.”

그 말에 나는 웃으며 응수할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아마도 가끔 신을 꿈 꾸어서 이렇게 혼란스러운가 보다.”

그러자 평화는 부드럽게 웃으며 입술에 키스해주었다.

“그렇게까지 도덕적일 필요는 없어.”









그렇게 공원에 드러누워 함께 삶을 이야기했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2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믿기지 않았다. 다시 하늘도시로 돌아올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돌아오게 될 이유가 평화를 찾기 위해서 일거라곤 더더욱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많은 대화와 교감을 나눠놓고 그녀는 왜 혼자 떠나가야만 했던 걸까. 가장 인간적이었고, 그래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그녀는 왜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떠나야 했던 걸까. 나는 무엇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그 공원 앞에서 더 외로웠다. 2년 전에는 따스하기만 했던 그 공원의 바람이 지금은 마음의 구멍에서 일렁이며 시리게 불어대고 있었다.

2년 만에 돌아온 하늘도시는 그리 많은 게 변해있지는 않았다. 탑은 여전히 느리게 돌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경건하고 신실했다. 도시 사이로 흐르는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용은 여전히 죽음 그대로였다. 아도르노의 말대로 세상은 여전히 느리게, 너무나도 느리게 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의 거북이 같은 속도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도 급격하게 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응을 어려워했다. 목사님을 다시 만나 뵈었을 때 그 사실은 보다 극명해지고 말았다.

평화의 실종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목사님 내외분께도 큰 충격이었다. 목사님네 집은 그새 5층이나 위로 올라가 거의 90층에 도달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그리 더 행복해 보이지는 않으셨다. 위와 아래가 있으면 언제나 계층과 구조가 생기는 법이고, 그 사이에서 평등해질 리 없는 인간은 더 행복해질 리도 없었다. 그리고 사실 목사님 내외의 불행은 평화에 대한 내 소식에 아마도 더 크게 기인하기는 했을 것이다.

“평화가 없어졌다는 말이니?”

미리 연락을 드리고 찾아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두드린 내게 목사님이 던진 일갈은 저런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2년 전처럼 그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습니다. 혹시 여기 오지는 않았나요?”

패트리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걱정된다는 말투로 말했다.

“아뇨. 여기엔 들린 적 없어요. 어디로 가는지 말도 없이 사라진 건가요?”

“네. 어디로 가는지 제가 알고 있을 거라는 알쏭달쏭한 말만 남겼더군요.”

“그럼 넌 평화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단 말이니?”

목사님은 자꾸 대화를 자르고 들어오며 소리를 치셨고, 그건 참 인간적이면서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아뇨. 아직은 잘 몰라요. 하지만 갔을 법한 장소가 한 곳은 생각나서 일단 이곳으로 왔죠.”

“그게 어딜까?”

“도서관이에요. 그녀는 그곳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목사님 내외는 평화를 찾을 때까지 손님방에서 신세를 지는 것을 허락해주셨고, 2년 전 평화와 함께 머물던 손님방에 이제는 혼자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와 똑같은 모습의 하얀 방에 들어가니 문득 지난날들의 추억들이 바위 위의 정처럼 마음을 때렸다.

마지막 날 밤, 같은 침대에서 끌어안고 자며 평화는 고개만 이불에서 빼꼼히 내민 채 쫑알거렸었다.

“목사님이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걸 알면 당장 쫓아내겠지?”

“아마 패트리샤는 우리 보고 Menschliches!라고 욕을 할 거야.”

“그래도 좋다.”

평화는 그렇게 말하며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품에 꼬옥 안겼다. 그 순간의 뭉클하고 따스한 감촉은 지금까지도 내 피부에 닿아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남겨진 내가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이라곤 외로움뿐이라 그리도 서글픈 밤을 홀로 보냈을 뿐이다.







아침에 별들과 함께 일어나 길을 나섰다. 패트리샤나 목사님이 따라오는 걸 원치 않았던 것도 있고, 2년 전 평화가 홀로 걸었던 아침의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발걸음을 따라 걷다 보면 왠지, 평화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도 같았다.

아직 채 깨어나기 이전의 도시는 바스락거리는 고요의 장소였다. 내 발자국 소리만의 새벽녘을 가르는 것을 들으며, 바지런한 걸음을 도서관으로 꾸준히 옮겼다.

너무 이른 아침인지라 도서관에는 아무도 없었고, 덕분에 아무런 제지도 제약도 없이 그 지식의 보고를 마음껏 헤집고 다닐 수 있었다. 물론 평화에 대한 단서는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평화가 읽었을 법한 책들을 펼쳐보고, 그녀가 앉았을 법한 자리에 앉아 보았지만,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도 따라갈 수도 없었을 뿐이다. 심지어는 뭐라도 나올까 싶어서 지구본 모양의 홀로그램 검색대에 평화의 이름을 불러보기까지 했지만, 나온 것은 수만 권에 이르는 평화 관련 논문과 서적들뿐이었다. 평화가 했던 것처럼 두 팔을 쫙 벌리며 ‘열려라 참깨!’ 하고도 외쳐보았지만, 별달리 신통한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정말로 흔적도 없이, 옅은 공기 중으로 증발해버린 것만 같았다. 그 부재가 나의 존재감을 건드려 세상을 빙빙 도는 슬픔으로 바스러지고 있었다. 어떤 깨달음이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슬픔의 틈새에서였다.

그것은 어떤 예지나 직감 같은 것이었다. 수년을 가장 가까이서 지낸 사람들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특별한 교감이 생긴다. 끊임없이 만나며 저도 모르게 쌓아온 그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인 이해가 가장 직관적이고 가장 정확한 추론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내 예감은 나무를 찾으라고 말하고 있었고, 그곳에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한 것이어서 평화는 정말로 그곳에 있었다.

적어도, 그녀가 어느 시점에는 그곳에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나는 나무를 찾아갔고, 그 나무가 그려진 동화책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의 어릴 적 기억을 장식하는 그 그림 동화책을 펼친 순간, 책장 사이에서 메모 한 장이 툭 떨어졌다. 메모를 접은 방식도, 그 안의 단정한 글씨체도 의심할 여지없이 세상 누구와도 다른 평화만의 것이었다.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ammerung ihrn flug.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땅거미가 질 무렵 비행을 시작한다.)

‘잘 찾고 있을까? PH'



그 메시지, 그 쪽지, 그 두 번째 편지가 남겨진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어쩌면 바로 어제 쓰인 것 일 수도 있고, 몇 주 전부터 그곳에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면 2년 전, 새벽녘에 먼저 도서관에 와있던 평화가 나를 기다리며 썼을 메시지인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쪽지에는 날짜가 없었고, 도서관의 서고는 문서를 보존하는 데 있어선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했다. 쪽지의 상태는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해서 추측에 별달리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알쏭달쏭하기는 첫 번째 편지에 맞먹는 내용 역시 머리만 어지럽혔다. 마침내 단서를 찾았음에도 왠지 더 큰 혼란의 보따리를 열어젖힌 기분이었다. 갈 길을 잃은 기분으로 그림책 속의 아름다운 나무를 머엉하니 바라보았다. 너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어디에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질문들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쪽지 위의 문구는 헤겔의 말이었다. 철학이 과거를 돌아보는 어포스테오리(a-posteori)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그 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에 새겨져 있는 유명한 문구이기도 했다. 어쩌면 평화가 향한 곳은 그 다리가 있는 도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돌아보는 데 있어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아드는 ‘끝나지 않는 잠의 도시’ 다 더 적합한 곳은 없었다. 그곳은 헤겔의 문구로 지배받는 도시이자, 과거를 추앙하는 도시이며, 세상의 마지막 햇살이 날아드는 도시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2년 전 여행에서 평화와 내가 하늘 도시를 떠나 그다음으로 향했던 목적지이기도 했다. 그곳 말고는 그 문구를 읽고 떠오르는 장소가 그 어디도 없었다. 내가 추리가 맞기를 기원하며, 도서관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늘도시를 떠나던 날, 궤도 열차가 출발하기 1시간 남짓을 남기고 평화와 나는 터미널 안 공원에 앉아 있었다. 공원은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쉬어가도록 짙은 녹빛의 잔디와 드넓은 플라타너스 나무로 잘 가꾸어져 있었고, 벤치에 앉아 한두 시간쯤 여유를 만끽하기 딱 알맞았다. 평화는 잡티 하나 없는 그 잔디밭들이 꼭 하늘 도시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평했다. ‘잡종을 용납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단편 일률성’이라는 그녀의 냉혹한 평가는 별로 반박할 부분이 없었다. 훈제 연어가 가득 든 샌드위치를 입 한가득 우물거리며 평화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재미있었어! 이런 세상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래. 그래도 천천히 먹어. 기차에서 체할라.”

“이데아에 또 이만큼 가까워질 수는 없겠지!”

“꼭꼭 씹어 먹으라니까? 체한다구.”

“이데아는 좋기만 한 게 아닌데 사람들이 왜 그리 특별한 것처럼 얘기하는지 모르겠어. 희망찬 꿈, 부서지지 않는 희망, 영원한 사랑, 무한한 용기 같은 것들! 무의미한 것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허망한 가치들인데 마치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진정으로 인간다울 수 있다고 포장하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한데도 꿈을 꾸고 굶주리는데도 희망을 가지고 신에게 매달리면서까지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마치, 스스로에게 가치가 없다는 마냥! 그렇게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고, 스스로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가. 인간다운 거랑은 거리가 멀어! 저항하고, 반항하고, 뒤집어야 해! 우리가 향할 곳은 이상의 하늘이 아니라 관능과 전투의 땅 위야!”

냅킨을 꺼내서 평화의 입가에 묻어있는 빵조각을 닦아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왜 이렇게 흥분을 했어. 많이 묻었잖아. 이제 하늘을 떠나니까 진정하라구.”

그래도 평화는 방방 뛰며 영 진정할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귀엽게 날뛰는 그녀를 다독거리며 나는 다시 한번 물어봐야만 했다.

“그래도 재미있었지?”

“응! 무척! 도서관은 언젠가 꼭 다시 오고야 말 거야!”

그 작은 주먹을 꽁꽁 쥐고 흔들며 눈을 빛내는 게 귀여워 평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만든 이데아를 떠나며 하고 싶은 작별인사는 없어?”

“있어!”

평화는 벤치 아래로 기어 내려가 주섬주섬하더니 기어코 작은 민들레 꽃대를 하나 찾아내고 말았다. 하늘도시 신민들에게 끊임없이 잔인한 관리를 당하는 이 잔디밭에서 그 민들레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웠지만, 그렇게 기필코 살아남은 그 꽃은 아름다웠다. 그 민초(民草)의 끈질긴 생명력은 어느새 하얗고 하늘하늘한 씨앗을 머리털마냥 몽글몽글 품어내고 있었고, 그 모습 안에는 박동하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했다. 평화는 그 수줍은 꽃대를 간절한 기도 마냥 두 손 모아 든 채로 작별인사를 말했다.

“도달해야 하는 곳이 있어서 애벌레처럼 탑을 오르는 하늘도시의 신민들에게 이 꽃을 바칩니다. 묵념!”

평화는 비눗방울을 불 듯 당차게 민들레를 불었고, 하얀 씨앗들은 몽실몽실 하늘 위로, 그보다도 넓은 우주로, 온 세상의 틈새로 퍼져 나갔다.

“이데아 안녕! 꿈도 희망도 기대도 안녕! 이제는 우리를 구속하는 꿈과 사랑과 도덕과 희망마저도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질 차례야. 우리가 떠나는 이 하늘 위에 조금 더 많은 보헤미아가 퍼져 나가길 바라.”

평화의 외침은 세상에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하늘도시를 떠났다. 청명한 햇살이 부드럽게 웃어주던, 여행 3일 째의 오후였다.








평화가 ‘끝나지 않는 잠의 도시’로 향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즉시, 목사님께서는 궤도 터미널로 나를 태워주셨다. 그날 오후에는 1주일에 1대밖에 없는 서부 대륙행 궤도열차가 있었다. 가까스로 표를 구하고, 목사님께 황급히 인사를 드린 뒤에 터미널을 가로질러 뛰어갈 수 있었다. 넓은 터미널을 정신없이 뛰던 중, 무언가 특이한 전경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2년 전 평화와 내가 머물던 잔디밭이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잡티 하나 없던 그 푸른 잔디밭에는 곳곳에서 황금빛 민들레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햇빛 속에서 금화처럼 빛나는 그 꽃송이들은 질서 정연하지도, 자로 잰 듯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타오르는 듯한 삶의 감동을 품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시민은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평했다.

“민들레가 불꽃처럼 번지네 그려.”

그 말에 나는 민들레씨를 염원을 담아 호호 불던 평화가 왠지 뿌듯해져서 행복하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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