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향해 자라는 나무 6화

6 화 : 바다를 향한 강하

by 이원호

6 화 : 바다를 향한 강하





지상으로 내려오는 궤도 열차의 분위기는 하늘로 올라갈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아직 채 해가 완전히 지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에 커튼을 치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잠이 든 새 누가 가방을 들고 가기라도 할까 봐 꼭 부둥켜안고 자는 그 모습에는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하늘도시의 신민들은 원래 지상의 거주자들을 믿지 않았고, 지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압박을 견뎌야만 하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여러모로 올라올 때 보다 힘든 여정이 될 것이 분명했다. 쉽지 않은 잠을 청하며 지상으로의 하강을 시작했다.


역사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하강, 추락, 천공으로부터의 추방은 장구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카로스의 추락은 이상을 향하던 인간의 추락이었고, 사탄은 날개와 이름이 뜯긴 채 천공에서 던져진 가장 아름다운 천사였다. 톨스토이는 인간다움을 알기 위해 천사를 구두수선공에게 보냈으며, 환웅과 길가메시, 케찰코아틀과 무이긴은 천상에서 내려와 인간 세상에 신화와 계급과 권위를 만들어 내었다. 수많은 추락으로부터 악과 석과 구조와 신화와 환상이 탄생된 것이다. 이데아로부터 내팽개쳐진 것들은 관능과 욕망의 땅으로 추락하며 뭉치고 흩어지며 각자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었다. 아직 그 의미가 무엇인지 나도 평화도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 엄청난 강하 속에서 추방된 천사들과 영웅들의 지혜를 엿볼 수는 있었다.

관성중화장치가 최대치로 켜져서 깜빡거리고 있음에도 지상으로의 강하는 끔찍한 경험이었다. 차체는 폭풍을 만난 버들잎처럼 끊임없이 흔들거렸고, 그 안의 우리들도 이가 덜덜 떨리는 여정을 경험해야 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수백만 톤에 달하는 쇳덩이를 내던진 셈이니 솜털처럼 가볍게 내려오기 힘들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가 부딪혀 머리가 울리는 그 느낌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좌석에 파묻힌 채로 딱딱 부딪히는 이를 어떻게든 붙들어보려고 애쓰며 평화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으으.. 뇌가 튀어나오는 것 같아.”

“좀만 참아. 정수리에서 미네르바가 튀어나오느라 그래.”

“왜 지혜가 하늘에서 왔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

“왜?”

“추락하면서 두개골 속의 뇌가 믹서기 속의 호두처럼 떼굴떼굴 굴러다니니까 똑똑해질 수밖에 없겠다야. 이 정도면 도롱뇽도 용으로 진화시킬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웃어주고 싶었지만, 나도 온몸이 진동하고 있는지라 제대로 웃을 수조차 없었다. 이런 흔들림 속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태연히 잠을 자고 있었으니 참으로 신비한 일이었다. 흔들리다 지쳐서 죽어버린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평온히 잠든 사람들마저도 꽤 눈에 띄었다. 인간의 능력은 여러 차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잠과 꿈의 세계는 가장 추측 불가한 부분들이었고, 그 열차 위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하늘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시간이 덜 걸려서 궤도 열차는 약 20 시간 만에 지상에 도착해 주었다. 내내 덜컹거린 여정과는 달리, 착륙은 부드러운 것이었다. 마침내 덜컹거림이 멎고, 평온한 지상의 느낌이 발끝에서 전해져 온 그 순간, 평화도 나도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플랫폼에 짐을 들고 내리니 짭쪼롬하고 쌉싸름한, 그러면서도 그리운 바다의 내음이 물씬하게 풍겨왔다.

“바다다!”

평화는 소리쳤고, 멀리서 날아오는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화답했다. 피곤에 찌들고 머릿속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침내 끝나지 않는 잠의 도시와 그 앞의 침묵의 바다에 도착해 있었다.

잠의 도시의 궤도 터미널은 사시사철 푸른 것으로 유명한 고요의 바닷가에 지어져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석처럼 번쩍이는 아열대해를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고, 평화와 나는 피로도 잠도 잊은 채 바다를 바라보며 쭈욱 기지개를 켰다. 끝없는 물결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바람이 노닐고 있었다. 멀리 수평선에 다다르는 곳에는 도시의 탑과 건물들이 솟아 있었고, 가까운 해변에서는 끝없는 해안 절벽들과 파라슈터들, 서퍼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어렴풋한 형체가 일렁거렸다. 날씨는 완벽했고 마음에는 평온이 깃들었다. 덕분에 20여 시간의 추락 끝에도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입국 수속을 밟는 것은 하늘도시에서 만큼 파란만장하지는 않았다. 심사원들은 온화했지만 특별히 더 친절하지는 않았고, 친절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쉽게 말 걸고, 쉽게 친해지지만, 유대감을 맺거나 지속되는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는 않는 그들의 모습은 하늘도시의 신민들과 묘하게 대조되며 새로운 느낌을 남겼다. 그것은 조금 덜 구속하고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의 자세처럼 느껴졌다. 닿을 때 닿고 멀어질 때 멀어지는 잠의 도시 사람들은 오히려 닿아 있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하늘도시의 사람들보다 진솔하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야자수가 하늘거리는 궤도 터미널 출구를 나서자 몇 대의 택시들이 느긋하게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택시 기사들은 그다지 급할 것이 없다는 태도로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농담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택시기사들은 대개 무언가에 쫓기듯 불편하고 급한데 비해 이곳의 택시기사들은 한직(哻職)이라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이 여유로워 보였다. 덕분에 양국의 택시기사가 모두 불친절하다는 신비로운 결과가 생기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차이점은 관찰할 의미가 있을 만큼 흥미로웠다. 덕분에 택시를 잡으면서도 우리는 왠지 기사의 한가로운 오후를 방해하는 몹쓸 사람들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정당한 노동과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데도 부담을 받아야 했으니 평화와 나는 참 기묘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택시기사는 우리가 짐을 실건 말건 상관도 없다는 태도로 다른 택시기사들과 만담을 나누었고, 평화와 나는 택시가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혼란을 느껴야만 했을 뿐이다.

택시는 바닷가 고속도로를 따라서 신나게 달렸다. 궤도 터미널은 도심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40분간의 그 여정 동안 우리는 이대륙의 향취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살던 곳과 차도의 모양이 달랐고, 운전할 때의 예의나 좌석의 방향이 달랐다. 또 길거리 가로수의 종이 달랐고,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양새가 달랐으며, 공기의 감촉마저도 달랐다. 사람의 냄새도 달랐고 건물들의 높이마저도 달라서 정말이지 새로운 세계에 도달한 느낌이 가슴 벅차게 느껴졌다. 하늘도시에서는 오히려 모든 것들이 너무 달라서 새로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었던 반면에, 잠의 도시는 익숙함에 닿아 있으면서도, 또 미묘하게 달랐기에 더 생경했던 것이다. 그렇듯, 다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차이가 아닌 닮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택시는 씽씽 달려서 도시로 들어갔고, 곧 도시 중앙의 거대하고 울창한 공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족히 수백 년의 수령은 됨직한 나무들과, 너무 빽빽이 자라 햇빛마저 허락하지 않는 힘 있는 덩굴들, 아무런 규칙도 동일성도 없이 만개한 꽃들을 보며 평화와 나는 숨 가쁜 경탄을 쉴 새 없이 토해냈다. 이곳이라면, 이런 곳이라면 우리가 찾는 그 나무에 대한 실마리가 분명히 더 있을 것 같았다. 생명이 짙게 태동하여 공기마저도 짙어지는 그 밀림이라면, 삶과 인간의 비밀을 담고 있는 그 나무에 대한 단서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는 잠의 도시는 사막 위에 지어진 것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몇 백 년 전의 서대륙인들은 금을 찾아서 대륙의 서단 끝가지 왔고, 금광 대신에 사금을 채취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만을 발견했었다. 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역사적으로도 비견될 만한 것이 없는 유별난 것이었는지라 곧 수십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대륙의 서단 끝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마을이 생기고, 도시가 생기고, 문화가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금을 찾고 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끝나지 않는 잠의 도시는 욕망이 가진 그 무한한 힘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사막과 그 불타는 모래 위에 도시를 세우는 불가능한 위업을 실현해 내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여서 수천 km 떨어진 곳의 나무를 캐와 공원을 만들었고, 수 km 깊이의 수로를 파 생명수를 도시의 혈관 속에 흐르게 만들었다. 먼 대륙의 돌들이 도시의 기반이 되었고, 끝없는 모래 밑으로 기나긴 석굴들과 암반 구조물들이 건축되었다. 도시를 세우기 위해 복토한 흙만 해도 작은 산 수십 개를 만들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잠의 도시의 타오르는 욕망과 힘은 영원히 쇠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적어도,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공원은 대지진 이전의 잠의 도시의 무한한 힘을 상징하는 동시에, 대지진을 견뎌낸 생명의 힘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사막 위에 지어졌음에도 세월이 다듬은 그 밀림은 울창한 생명을 간직하고 있었다. 공원을 지나는 내내 평화와 나는 이해할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적막한 평온을 느끼고 말았다.

택시는 공원을 가로질러 그 맞은편에 있는 아담하고 예쁜 골목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공원도, 그 곁의 값비싼 주거지역도 도시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에 계획되고 지어졌던 것들이었기에 꼼꼼하고 효율적으로 지어져 있었다. 골목들은 정확한 격자무늬로 공간 낭비 없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으며, 집들은 가장 효율적인 높이와 형태로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언뜻 보기엔 비좁아보였지만, 그 안에는 묘한 질서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처럼 닭장 같이 답답한 느낌도 아니었고, 하늘도시의 기표의 탑처럼 인간의 세월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질서가 어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아담한,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해 만들어놓은 질서 같았다.

택시비를 내는 과정에서 평화와 나는 여행 중 두 번째로 다투고 말았다. 터미널에서도, 하늘도시에서도 나는 환전을 하는 것을 깜빡했었다. 덕분에 50분의 거리를 달려 꽤 부담이 될 정도로 나온 택시비는 평화의 지갑에서 나오고 말았다. 더군다나 잠의 도시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괴상한 ‘팁’ 문화가 있었다. 우리는 안 그래도 비싼 택시비에 15%를 가산해서 더 주어야만 했고, 그것은 평화의 주머니를 가볍게, 그리고 분노를 치솟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고 말았다. 그래서 사실, 택시가 떠난 이후에 평화가 소리 지르기 시작한 것을 반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환전 왜 안 했어!”

“미안. 금방 ATM에서 뽑아다 줄게. 네가 다 내게 하려고 한 거 아냐. 진짜 미안해.”

물론 이런 식의 사과는 화를 가라앉히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당시의 나는 잘 몰랐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아까 터미널에서도 시간 있었고 하늘도시에서도 시간 있었는데 왜 환전 안했냐고! 한다며!”

사실 나는 꽤 당황했었다. 내겐 현재의 상황이 그리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ATM에 가서 돈을 뽑아다 주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당분간 현금을 급하게 쓸 일은 없었고, 나는 평화에게 덤터기 씌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돈이 부족해서 오는 짜증이라면, 돈을 주면 풀릴 것이라는 게 내 논리적인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평화의 짜증은 단순히 돈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을 뿐이다.

평화에게 현재의 상황은 신뢰와 책임감의 문제였다. 낯선 나라, 낯선 장소에 온 불안감과 믿고 기대고 싶다는 욕망이 환전 하나 책임감 있게 해내지 못한 내 행동에 큰 불안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황한 나는 그녀의 투정을 제대로 받아 주지조차 못하고 논리적인 이유들을 대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다툼은 늘 그렇듯, 하나의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쟁점을 갖는데서 비롯된다. 여성에게 문제란 대부분 감정적인 원인에 기인하는데 비해, 남성에게 문제란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해결’ 해야 하는 종류의 일이니 말이다.

“아까 터미널에서는 내가 바빴잖아. 빨리 택시를 타고 가고 싶기도 했고, 돈은 나중에 줘도 되니 일단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시간을 보내면 좋잖아. 도시를 헤매다가 돈을 뽑을 수도 있는 거고 말야.”
“터미널 전에도 할 수 있었잖아!”

“하늘 도시에서는 출발 직전에 점심 먹고 터미널 둘러본다고 바빴고. 솔직히 그때는 너랑 돌아다니느라 신나서 환전을 할 생각이 나질 않았어. 너도 같이 신나 있었잖아.”

그것은 상당히 논리적인 접근이었고, 평화는 그에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논리에서 밀렸다고 해서 불처럼 치솟은 감정이 순순히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 평화의 문제는 논리적인 문제가 아닌 감정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뒤로 평화는 씩씩대며 나와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 들었고,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답이 안 나오는 고민을 계속해야만 했다.

우리가 택시에서 내린 곳은 삼촌네 집 앞이었다. 아버지네 막냇동생인 작은 삼촌은 거의 20년 전에 서쪽 대륙으로 넘어와 정착을 했었다. 몇 년 전 서쪽 대륙 여성과 결혼까지 하여 예쁜 딸을 얻은 삼촌은, 이번 내 여행을 가장 적극적으로 응원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가서 묵어도 되냐는 내 조심스러운 제안에 삼촌은 흔쾌히 승낙했고, 우리는 결국 삼촌네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잔뜩 골이 난 평화와, 덕분에 엄청나게 긴장해버린 마음을 안고서 말이다. 평화는 곧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약간 떨리는 손으로 삼촌이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다행히도, 삼촌은 집에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정면에 붙어있는 커다란 쪽지가 우리를 반겼다.

-Welcome to the City of unending sleep! We have family meeting to attend, and will be back afore 8ish. See you soon! (잠의 도시에 도착한 걸 환영합니다! 우리는 가족 모임이 있어서 8시쯤 도착할 예정이에요. 곧 봐요!)

삼촌이 아직 집에 안 왔다는 것은 현 상황에서는 무척 다행인 일이었던 게, 나는 평화의 기분을 풀어줄 시간을 적어도 5시간은 벌었다고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삼촌네 집에 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삼촌은 친절하게도 안내를 하는 이메일을 사전에 보내주었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며칠 동안 머물 방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우리가 머무를 방은 따스하고 햇살 잘 드는 응접실이었다. 잠의 도시의 집 구조는 상당히 특이한 편이어서 1층은 차고와 창고,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2층에 주거시설이 지어져 있었다. 앞마당과 가까운 쪽에는 응접실이 있었고, 뒷마당 방향으로 향하는 긴 복도를 따라 거실, 주방, 식당, 아기 놀이방, 삼촌 숙모 침실이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가 자는 곳은 삼촌네 가족이 실제 주거하는 공간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방이었던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꽤 큰 배려를 보장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응접실에는 큰 통짜 유리로 된 창이 있어서 햇살이 풍부했을 뿐만이 아니라 바깥세상을 한가로이 내다보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TV와 음향시스템, 수많은 영화 필름들이 갖추어져 있었으니 지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곳이었을 뿐이다. 구석의 벽에는 오래된 벽난로와 피아노가 있었고, 삼촌은 소파를 변형시켜 안락한 침대를 2개 만들어 주었었다. 침대에 누워보니 푹신푹신한 것이 곧 잠이 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평화는 여전히 뾰로통하게 화가 나 있었기에 감히 조는 시늉이라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벽난로 옆에다가 짐을 푼 뒤에 평화는 냉랭한 표정으로 씻으러 갔고, 나는 햇살 좋은 소파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거리를 졸음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세상은 죽은 듯 조용했다. 하얀색과 노란색 나비 두 마리가 거리를 아지랑이 같은 궤적으로 수놓는 것마저도 봄날의 졸음을 유발하고 있었다. 길 건너편의 고양이는 나무 밑을 뒹굴 거리며 나른한 울음소리를 내었고, 창문 틈새로 보이는 건넛집 아저씨는 이른 오후인데도 TV를 틀어놓은 채로 낮잠을 평온하게 즐기고 있었다. 나와 평화를 제외하곤 온 세상이 다 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잠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불안하고 아픈 마음을 조금 가다듬을 수 있었다.

평화가 냉랭한 표정으로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나는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며 말했다.

“같이 걸으러 가자.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어.”

평화는 꼼지락대기는 했지만 포옹을 뿌리치고 도망가지는 않았다.

“나 아직 화 안 풀렸어.”

그 말에 그녀를 빙글 돌려세워 얼굴을 바로 바라보았다. 놀란 듯 커진 눈과 아직 덜 마른 고운 머릿결의 달콤한 향기가 마음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알아. 뭣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이제 알고.”

“뭔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은데?”

“미안해. 낯선 곳에 처음 왔는데 당연히 불안하고 무서웠겠지. 잠을 못 자서 피곤하기도 했을 거고, 밥을 못 먹었으니 예민하기도 했을 거야. 그런 와중에 나는 책임감 없고 너에게 기대려는 듯한 모습만 보였으니 참 무서웠을 것 같아.”

평화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게 두려웠다면 미안해. 이 여행에서 내가 너의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할게.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거야.”

평화는 그제야 냉큼 돌아서며 후다닥 옷을 챙기곤 말했다.

“알면 됐어! 산책 가자 이제!”

바다로 가는 길은 하늘하늘 늘어지며 아름다웠다. 언덕의 굴곡을 따라 지어진 오밀조밀한 집들은 언뜻 보기엔 다 비슷해서 헷갈리면서도 자세히 보면 또 각자 다른 저마다의 매력이 숨어 있었다. 건물은 높지 않아서 좋았고, 하늘은 저 멀리 드높아서 좋았다. 언덕의 꼬불꼬불한 결 사이로 짙푸른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다시 숨었다가 했다. 마치 바다와 숨바꼭질을 하는 것만 같아서 함께 걷는 우리의 마음에도 유쾌함이 깃들었다. 폭풍 속의 코스모스처럼 우리는 흔들리며 걸었다. 머리 위에 어지러이 얽힌 전선들이 흩날리는 꽃잎처럼 기억의 한 조각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우리의 왼편으로는 울창한 공원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끝없는 격자모양의 골목들이 펼쳐져 있었다. 앞으로는 바다가 일렁였고, 뒤로는 도시가 치솟았다. 좋을 수밖에 없는 발걸음이었다. 마주치는 작은 식물 하나, 작은 돌쩌귀나 푯말 하나하나마저 새로워서 평화는 끊임없이 사진을 찍고, 웃음을 터트리며 걸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평화의 모습을 기억 속에 고이 담아놓을 수 있었다.

평화는 가만히 걷다가 말했다.

“사실 아까는 놀랐어.”

“왜?”

“내가 그런 것들 때문에 예민해져 있었고, 그런 것 때문에 불안해서 화가 났다는 걸 나도 잘 몰랐거든. 그냥 돈 문제로 화난 줄 알고 나도 서운했는데, 네가 말한 걸 듣고 보니 내가 왜 혼란스러웠는지 알 것 같아.”

“원래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건 내 전문분야야.”

“베에.”

평화는 혀를 쏙 내밀고 도망가서 전신주 위의 까마귀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바다 까마귀라는 이 특별한 검푸른 새는 잠의 도시의 상징이자 수호수인 동물이었다. 우리나라나 북부 세계에서는 죽음을 따라다닌다 하여 흉조(凶鳥) 취급을 받는 까마귀였지만, 서부 세계, 특히 잠의 도시의 주민들은 까마귀를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바다 까마귀는 친척인 구관조나 까치, 해가마귀들보다 2배는 더 큰 체격과 거대한 날개, 짙고 탄탄한 부리를 가지고 있는 위풍당당한 새였고, 특히 신비로운 검푸른 빛깔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곤 했다. 구관조와 더불어 까마귀는 조류 중에서 가장 똑똑한 종에 속했고, 바다까마귀는 그중에서도 특별하여 심지어 어린아이와 비슷한 지능지수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전신주 위의 바다까마귀 역시 영롱하고 똘망한 눈빛으로 평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녀석의 움직임에 신이 난 평화는 주의를 끌어보려고 손을 흔들고 박수를 쳤지만, 까마귀는 그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평화를 가만히 바라보았을 뿐이다.

“새를 위해서 재롱을 떨 필요는 없어.”

“너는 가끔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

그 말은 왠지 대답치곤 이상한 것이라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대답해야만 했다.

“콘텍스트를 줘야 대화를 하지. 갑자기 생각나는 걸 막 던지면 곤란해져.”

“대화는 구조와 기저에서 생긴다!”

“그러니까 이런 걸 막 던지는 걸 말하는 거라구.”

“소쉬르의 말이었어!”

“그건 알아. 떠오르는 대로 주제를 막 건너뛰면서 말하지 말라는 거였어 난.”

“그전에 했던 말은 그 이전의 대화에서 가져온 거야. 나도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를 때도 너는 열심히 고민해서 나를 알려고 하는 것 같길래.”

“비교, 분석, 관찰, 타당한 결론 역시 내 특별한 능력이지.”

“또 자뻑 한대요! 잘났다 그래.”

물론 나는 살면서 평화만큼 지혜로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그런 사람을 더 알고 싶고 더 이해해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지혜로운 만큼이나 톡톡 튀는 매력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을 뿐이다.


골목 사이로 20여분을 걸으니 장대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푸르고 넓기는 했지만, 잔잔하고 아름다운 바다는 아니었다. 회색에 가까운 긴 모래사장 너머에서 광폭한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파도는 해안을 휩쓸 듯 다가왔고, 바람은 그 너른 소금기와 모래의 광장 위에서 강풍이 되어 불고 있었다. 죽은 미역과 조개껍질과 알 수 없는 해저 생명체들의 사체가 모래 위를 기괴한 모자이크처럼 수놓았다. 그곳은 흔히들 말하는 ‘생명의 바다’ 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새들마저도 춥고 외로운지 바위 뒤에 웅크려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푸르긴 한데, 이건 내가 상상하던 바다와는 다른걸.”

“도시 서쪽의 바다는 난폭하고 황량하다고 하더니 사실인가 봐.”

“그럼 북쪽과 동쪽의 바다는 다르대?”

“서쪽 연안에서 북쪽 연안으로 이어지는 대륙의 모서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불리는 황금의 문 다리가 있어. 황금 다리로부터 도시의 남쪽까지의 해안은 ‘황금의 만’이라고 불리는 내해 지역인데, 그쪽의 바다는 잔잔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해. 우리가 공항에서 내려서 본 잔잔한 바다가 황금의 만과 침묵의 바다가 만나는 지역이기도 해. 그곳은 옛날 번영의 시절 때 사금을 채취하고 해저 금광을 발굴하던 지역이라 매우 풍요로운 곳이야.”

“금? 요새도 금이 나와?”

“아니. 대지진 이후엔 안 나온대. 내가 알기론 서쪽 바다가 난폭해진 것도 대지진의 여파였다는 말이 있어.”

해안가 연안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절벽들이 줄지어 솟아있었다. 족히 40~50m는 될 법한 그 엄청난 절벽 위에는 수많은 독수리들과 행글라이더와 파라슈트를 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광풍이 부는 바닷가를 옷깃을 여미고 걸으며 머리 위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안전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을 경탄으로 바라보았다.

“저러다가 죽을까 봐 무섭지도 않나 저 사람들은?”

“대지진 이후로 잠의 도시 사람들은 영원한 잠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추앙하고 숭배한대. 저 사람들도 그 문화에 영향을 받았겠지.”

200년 전 서쪽 바다 끝자락에서 덮쳐온 강도 12.5의 강진은 당시에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부유한 도시이던 잠의 도시를 송두리째 박살 내어 놓았다. 당시에는 도시의 이름마저도 ‘끝나지 않는 잠의 도시’가 아닌 ‘성스러운 부귀의 도시’였다. 부귀의 도시는 문화와 권력과 상징이었고, 부유함과 영화의 상징이었다. 적어도 바다 너머의 죽음이 모든 걸 앗아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대지진은 바다가 석양을 삼킨 저녁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도시의 거주민들은 그 당시에도 가정적인 경향이 짙었고, 대부분 귀소 하여 사랑하는 이들과 따스한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행복했던 저녁 시간은 난데없는 참변으로 변하고 말았다. 바다 깊숙한 곳의 몸부림은 거대한 파장이 되어 가장 높은 빌딩들을 흔들고, 전봇대를 엿가락처럼 구부렸으며, 자동차들을 딱정벌레처럼 뒤집고 터트려놓았다. 도로는 종잇장처럼 찢겼고, 한 때 행복했던 주거지들은 전쟁터로 변했다. 그날 밤은 죽음이 무희처럼 춤추는 밤이었다. 하지만 지진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바다는 무지막지한 진동만으론 분이 덜 풀렸는지 성난 해일을 보내왔다. 고층건물보다도 더 드높고 포탄보다도 더 위험한 그 바다의 분노는 해안을 성난 들소 떼처럼 들이받아 형태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대부분의 연안은 병풍 같은 해안가 절벽들이 잘 보호해 주었지만, 황금빛 부귀의 도시는 절벽으로 보호되지 않은 부드러운 땅 위에 지어져 있었다. 해일은 절벽을 타고 노도처럼 치달려 서쪽 해안가를 강타하는 동시에, 만 안쪽까지 타고 들어와 동쪽과 북쪽 해안가도 때렸다. 항아리처럼 생긴 만의 모양은 심지어 해일을 공명 시키며 재차, 삼차의 피해를 중첩시켰다. 그 결과는 끔찍한 것이었다.

수십만이 죽었고, 수백만이 가족을 잃었다. 아름답던 부둣가와 도시의 상징과도 같던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고, 비탄과 절망, 분노가 온 도시를 채웠다. 구조 과정에서 발굴된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들만 해도 엄청난 수였기에 드넓은 황금문 공원이 온통 방수포에 덮인 시신과 실종된 이들을 찾은 가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참혹한 죽음의 광경이 도시를 뒤엎었다. 절망과 슬픔 속에서 도시의 모든 부분들이 마비되고, 썩어가고, 문드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도시는 그 주민들과 함께 죽어가는 듯했다. 시에서 기적적으로 사람들을 다시 삶으로 이끌지 못했다면, 아마 그대로 잠의 도시는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시는 합동장례식을 추진했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게 아름다운 시청 건물 안에서, 결혼식을 열 듯 화려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사망하고 실종된 모든 이들을 위한 그 장례식에서 도시민들은 그들의 일부를 묻는 듯한 상실감과 동시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기분을 맛보았다. 사망자들은 도시 지하의 카타콤브(catacomb)에 묻혔다. 도시 아래에는 금을 찾기 위해 고대 광부들이 판 긴 터널들이 숨겨져 있었고, 그 미로 같은 길들은 아름다운 석조 무덤들로 바뀌었다. 고대 수도사들의 지하 묘지의 이름을 딴 그곳은 죽음을 칭송하는 예술과, 떠나간 이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갔다. 수많은 시신들이 그곳에 안치되었고, 도시는 그렇게 가장 깊은 곳에 죽음을 품었다. 도시민들이 그날 떠나보내고 장례를 치른 것은 비단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도시 자체의 부귀영화이기도 했다. 황금의 만 밑바닥에서 잠자던 마지막 금광, 대보고(大寶庫)라고 불리던 그곳 역시 대지진 이후로 다시는 도달할 수 없는 무저갱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금광이 있던 해저 터널에는 깊은 흉터 같은 균열만이 아득한 입을 벌린 채 남았고, 그 누구도 그 아래로 내려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지하도시의 주민들은 땅 속 깊은 곳에 영광을 묻고, 사랑을 묻고, 슬픔을 묻었다.

추모가 계속되고 지하묘지가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는 동안 도시의 주민들은 천천히 일어나는 방법을 배웠다. 그 누구도 희망에 대해 노래하지 않았고, 재기와 과거의 영광에 대해 들뜬 목소리로 얘기하지도 않았다. 다만, 사람들은 조용한 방식으로 상실을 받아들였으며,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을 분이다. 서서히 재건되기 시작한 도시는 예전의 화려하고 활발했던 황금의 도시와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황폐해진 서쪽 해안과 흉터가 생긴 황금의 만이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던 것처럼, 도시의 사람들도 다시는 상실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변했던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비단 내가 상실되는 것이 두려운 것뿐만이 아니라, 내 안의 수많은 타인이, 그리고 타인 안의 수많은 나를 잃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상실을 겪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며 도시의 사람들을 죽음을 포용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있었다. 삶은 내 안의 남이 사라지고 남안의 내가 사라져도 계속해서 흐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삶은 지속되고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 사실을 되새기며 도시의 주민들은 세상 그 어느 곳과도 다른 ‘끝나지 않는 잠의 도시’를 서서히 만들어갈 수 있었다.

평화와 나는 한껏 추워질 때까지 바다를 걷고, 금문공원을 통해 다시 삼촌네 집으로 걸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장구한 세월을 견딘 공원은 두 아름도 넘는 울창한 나무들과 짙은 수림의 음영 때문에 비밀스러운 기운을 간직하고 있었다. 셀 수없이 많은 솔방울과 도토리들이 짙게 깔린 오솔길을 걷고, 머리 위로 짙은 다람쥐들의 천국을 만끽하며 우리는 조잘조잘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고 인간과 자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계와 사회, 꿈과 계획, 희망과 절망,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대화 주제였다. 세상은 우리 사이로 얽혀와 뿌리가 되고 가지가 되고 수많은 열매가 되어 맺혔다. 우리의 줄기는 여리면서도 질겼고, 힘들고 버겁고 웃기고 찬란한 그 모든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들의 가장 인간다운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손잡고 대지와 밀림과 바다를 거닐 수 있었다.







공원의 미로를 뚫고 다시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해는 서쪽 바다로 넘어가고 있었고 차고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삼촌 것임이 분명한 하얀색 자동차를 보며, 우리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 집으로 향했다. 약간의 긴장과 부끄러움이 서툰 우리의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복도를 쿵쾅거리며 뛰어왔다.

“Daaddyy!(아빠아아!)”

4살 남짓의 갈색머리 소녀는 돌풍처럼 복도를 주파하여 나타나선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Daddy?(아빠?)”

물론 우리는 그 소녀가 찾고 있는 아빠가 아니었고, 수상한 사람들의 모습에 혼란에 빠진 소녀는 윗옷을 길게 잡아당기며 당혹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평화가 엉거주춤하게 건넨 인사 앞에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안녕?”

“Mommmmie!!!(엄마아아!!)”

그 앙증맞은 모습에 평화도 나도 쿡쿡 웃으며 신발을 벗고 소녀를 쫓아 들어갈 수 있었다.

소녀를 따라 고소한 냄새가 나는 부엌으로 향한 우리는 삼촌네 가족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잠의 도시 태생이신 숙모는 크고 침착해 보이는 큰 눈과,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 머리카락의 소유자셨고, 막 뒷문으로 스테이크를 구워오던 다부진 체격의 삼촌은 이가 드러나는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셨다.

“어서 와요. 비행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평화는 다소곳하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편하게 날아서 왔어요. 힘이 넘쳐서 벌써 바다까지 갔다가 왔답니다!”

삼촌은 그 말을 숙모에게 통역해주었고 숙모는 화사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식사로 초대해주셨다.

“Well, you must be awful hungry then. Please come join us for the dinner. We've been anticipating you a lot! (바다까지 갔으면 무척 배가 고프겠네요. 와서 함께 식사해요. 많이 기대하고 있었답니다.)”

숙모는 저녁식사 준비가 10분 안에 끝날 테니 잠시만 쉬며 기다려달라고 하셨고, 우리는 응접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우리의 뒤에는 눈이 땡그란 갈색머리 소녀가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었다. 소녀는 문 앞에 서서 수줍게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I want to play with you guys..(나 너네랑 놀고 싶어..)”

그러자 평화는 방긋 웃으며 이리 와서 같이 놀자고 유쾌하게 손짓했다.

“이리 와! 같이 놀자!”

소녀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쪼르르 달려와 평화에게 안아달라고 팔을 뻗었다. 소녀는 아직 너무 작아서 도움 없이는 소파에 혼자 기어 올라오지도 못했다. 평화는 소녀는 끌어안아 소파 위로 올려주었고, 소녀는 그곳에서 두 손을 모은 채 다소곳이 인형처럼 앉아 그 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평화는 소녀를 끌어안고 소파 위를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에구 이 귀여운 것! 이런 애교는 어디서 배웠니?”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수줍게 눈을 돌렸다. 그건 참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행동인 동시에 수천 번을 연습해야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표정이었다. 여우 같지도 않고, 계산적인 행동도 아닌 그 자연스러운 애교를 이 소녀가 어떻게 익혔는지는 가족 중에서도 그 누구도 몰랐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매력을 타고 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희야는 이제 갓 만 3살이 된 삼촌네 외동딸로, 이렇게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희야가 예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딸바보인 삼촌의 의례적인 자랑으로 생각했었는데 눈앞의 희야는 그 모든 찬사들마저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생의 매력으로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희야는 몇 살이여요?”

희야는 긴가민가한지 손가락을 스스로 세어보며 3개를 수줍게 들어 보였다. 평화는 희야의 뺨에 코를 부비며 그 작은 소녀를 놓아줄 줄을 몰랐다.

“희야, What's this? (희야야, 이게 뭐게?)”

평화는 장난스레 희야의 코에 손가락을 올리며 질문을 던졌고, 희야는 제 코가 없어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손으로 앙증맞게 코를 움켜쥐며 대답했다.

“Nose?(코?)”

“아이 예쁘다! 그럼 요고는?”

“Lips?(입술?)”

“요건 뭐게!”

“My pinky finger! (내 새끼손가락!)”

“새끼손가락을 핑키 핑거라고 해? 왕죵 귀엽다! 희야야 이거 봐라? 너는 이거 못하지롱!”

평화는 새끼손가락을 기묘한 모양으로 예쁘게 구부리며 희야에게 자랑을 했고, 희야는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띠며 그것을 따라 해보고 있었다. 사람은 어리건 나이가 많건 여자건 남자건 똑같이 사랑받아야 한다는 평화의 박애주의가 이런 곳에서 발현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평화는 깔깔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

“희야는 피부가 왜 이리 좋을까아? 목욕을 뽀닥 뽀닥 잘하나?”

“Yeah! I love bath time! (맞아! 나 목욕 좋아해!)”

“그래? 나도 너만큼 예뻤으면 좋겠다!”

나는 못 들은 척을 하며 평화의 유치함을 눈감아 주어야만 했는데, 평화는 기어코 나를 불러 해괴망측한 질문을 던졌다.


“수호!”

“응?”

“내가 예뻐 희야가 예뻐?”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질투야.”

“원래 다 질투나!”

“세 살짜리 소녀도? 내 사촌동생인데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삐진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 몰라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우리를 해맑게 바라보는 희야를 앞에 두고,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못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가 더 예뻐.”

“히히.”

“좋아?”

“응! 엄청! 경쟁자를 한 명 따돌렸어!”

무척 어처구니가 없기는 했지만 어쨌든 희야와 평화 모두를 데리고 저녁식사를 하러 갈 수는 있었다.







저녁식사는 만찬이었고, 특히 고기가 풍부하게 많았다. 그릴로 구운 소고기 스테이크, 오븐 닭구이, 토실토실하고 바삭바삭한 돼지고기 소시지가 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광경은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꿀이 쳐져 있는 샐러드와 싱싱한 토마토도 있었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흰쌀밥도 있었다. 심지어는 갈비탕과 햄치즈 샌드위치까지 차려져 있었으니 정말 대단한 수라상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음식의 재료가 완벽하게 죽어있었고, 죽음이 화려하게 요리된 그 식탁에서 우리는 모두 배가 터질 것 같은 풍족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숙모와 삼촌은 희야가 어떤 행동을 하던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희야는 소시지를 물어뜯었고, 갈비를 손으로 잡고 흔들었으며, 숟가락을 작은 손 가득 움켜쥐고 밥을 퍼먹었다. 하지만 희야의 그 어떤 행동도 평가되지 않았고 제제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삼촌은 희야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고, 그것이 나이와 상관없는 태어날 때부터 함양되는 가장 인간적인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밥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 정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편이었다. 특별한 규율도, 훈계 없이도 희야는 무리 없이 밥을 잘 먹었다. 물론 조금은 게걸스럽거나 탐욕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꼭꼭 씹어 먹었으니 그마저도 박동하는 삶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삼촌과 숙모는 우리의 여행의 이유를 듣곤, 소개해 줄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함께 일하는 분의 딸 중에 앨리스라는 아이가 있어요. 대학을 졸업하곤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죠. 이곳의 자연사 박물관은 세계적으로도 빼어난 수준의 동식물학 연구를 하고 있으니 어쩌면 한번 만나보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만나보겠다고 그랬고, 숙모는 일단 한 번 연락을 해본 뒤에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여행의 우연한 발견들 속에서 점차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서 무척 행복해졌을 뿐이다.

긴 저녁 식사가 끝난 뒤에는 평온한 밤이 찾아왔다. 잠의 도시 주민들은 일찍 밤을 맞이하는 편이었고 고작 8시 반쯤 되었을 뿐인데도 집집마다 부드러운 TV 불빛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TV의 웅얼거림은 외로움을 달래고 인간을 부드러운 잠의 세계로 이끈다. 평화와 나는 TV를 켜지는 않았지만 온 세상이 점차 평온한 잠의 물결로 뒤덮이는 모습을 보며 말 못 할 행복을 만끽했다.

9시가 되자 복도 쪽에선 또다시 엄청난 질주의 소리가 들려왔다. 희야는 목욕을 마치고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뛰어와 문틈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뭔가 놀고 싶어 하는 눈치이기는 하면서도, 희야는 귀엽게도 수줍어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평화는 머뭇거리는 희야에게 정답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Goodnight 희야! Sleep tight! (잘 자 희야! 푹 자렴!)”

희야는 눈도 못 마주치고 우당탕쿵탕 복도를 뛰어가며 사라졌다.

“Goodnight guys! Mommiee!!(잘 자 얘들아! 엄마아아!)”

멀리서 숙모가 깜짝 놀라며 ‘그래도 옷은 입고 다녀야지 희야야!’ 하고 타이르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다.

희야가 다녀간 뒤에는 고요가 밤을 물들였다. 밤은 평온과 함께 찾아들어 갖가지 잔상을 남긴다. 때론 행복하고 때론 기괴하며 때론 아름다운 그 꿈들 사이에서 우리는 인간이 되기 위한 침묵을 배울 수 있었다. 나른하고 행복한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안긴 채로 평온한 첫날밤을 보냈다.




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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