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향해 자라는 나무 7화

7화 : 황금문 다리

by 이원호

7화 : 황금문 다리





희야는 해가 뜨자마자 복도를 우당탕쿵탕 달려와 평화에게 덥썩 안겼다. 머리가 부스스한 평화의 모습과 곱슬곱슬한 희야의 갈색머리가 묘하게 잘 어울려서 아침을 향해 하품을 하며 두 소녀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잘 어울리네. 아무래도 희야는 사촌인 나보단 네가 더 좋은가 봐.”

“내가 여자라서 본능적으로 더 친밀감을 느끼나 보지.”

“그런가? 원래 여자아이들은 남자를 더 좋아하지 않나?”

“아니면 너보다 내가 더 예뻐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나도 경쟁 대상이었어?”

평화는 배시시 웃었고, 희야는 제 배꼽이 여기 있다며 옷을 걷어 올리고 동글동글한 배꼽을 가리켜 보였다. 웃음 속에서 잠의 도시의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서구식 아침을 먹으며 숙모는 오늘 중으로 앨리스의 연락처를 알려 주겠다고 하셨고, 앨리스를 만나는 것 외에는 이 도시에서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평화와 나는 오늘 하루는 이곳저곳을 탐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삼촌은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보셨고,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황금의 문 다리라고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도 불리는 황금문 다리는 황금만의 북쪽과 서쪽을 이어주는 잠의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었다. 길고 긴 만을 가로지르는 그 위용에도 불구하고 황금문 다리는 단 2개의 기둥만으로 바다 위에 떠있었고 때문에 간결하면서도 예술적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다. 잠의 도시까지 와서 이 아름다운 다리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 될 것 같았기에 우리는 황금문 다리를 첫 목적지로 잡았다.

삼촌은 우리에게 자전거를 타고 가라고, 마침 삼촌과 숙모용으로 자전거 2대가 차고에 있다고 하셨다. 요즘 아이들 답지 않게 평화와 나는 둘 다 자전거를 탈 줄 알았고, 덕분에 무척 신나는 마음으로 자전거 여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삼촌은 "이 헬멧은 평화 씨 머리엔 안 맞겠는데요? 평화 씨는 머리가 크시니까." 하고 무리한 농담을 던졌고, 덕분에 평화는 격분한 채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았다. 잠의 도시에서의 첫 여정은 평화를 쫓는 나의 부단한 노력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격자무늬의 계획도시라는 것은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여러 가지 이점이 있었다. 일단 방향만 잘 잡으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점이 그랬고, 차가 다니는 주도로와 한가한 보조 도로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 그랬다. 우리는 서쪽으로 방향을 설정한 뒤에 꺾거나 커브를 틀 필요도 없이 쭉 앞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었고, 또한 주도로를 피해서 달린 만큼 자동차와 위험하게 마주칠만한 일도 별로 없었다. 또한 대부분의 상점가나 버스 노선들이 주도로로만 다닌다는 사실 덕분에 우리는 점심때 먹을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서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서쪽으로 5 격자(5 blocks)를 달려가면 도심과 부두가로 향하는 대로가 있었고, 평화와 나는 그곳에서 샌드위치와 물을 산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달리는 자전거 위에선 화가 난 평화를 달래는 것도, 말을 거는 것도 그렇게 용이한 일은 아니었고, 결국 샌드위치를 사려고 대로에 도착한 뒤에나 얘기를 나누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평화는 어마어마하게 화가 나있었고, 그 어떤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로에 도착해서 식료품 가게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도 혼자서 쌩하니 들어가 버렸을 뿐이다. 괜스레 미안해져 버린 나는 삼촌댁에 괜히 머물자고 했나-? 하는 죄책감을 느끼고 말았고, 그 죄책감은 모든 죄책감이 그렇듯 모든 의욕을 가져가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물론 내게 있어서 삼촌댁에 머물기로 한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선택이었었다. 평화와 나는 여행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는 입장이었고, 잠의 도시의 숙박시설은 말도 안 되게 비쌌다. 삼촌네 집에는 방과 침대가 남았고, 워낙 손님을 들이는 걸 즐겨하시는 분이라 아마도 우리가 다른 곳에 묵었다면 크게 섭섭해하셨을 것이 분명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한 논리적인 결론은 당연히 삼촌댁에 묵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늘 그렇듯, 단순히 논리적인 결론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멀리서 샌드위치를 사들고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걸어오는 평화를 보며, 감정적인 부분들을 고려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로 마음먹었다. 원한다면, 그렇게 불편하다면 다른 숙소를 잡자고도 말해주고 싶었다. 대부분의 여성은 가장 합당한 결론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감정적으로 이해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평화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나는 그 말들을 하려고 했다. 하필이면 그때 그 순간에 그 사건이 터지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아마 그 말을 제대로 전달했을 것이다.

우리가 잠시 정차해있던 주도로에는 다니는 차도, 바삐 걷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주 분주하고 거대한 도로였는지라 4차선 도로에 뛰어들기 위해선 아주 큰 용기, 혹은 제정신이 아닌 정신상태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도로에 백발이 성성한 아주머니께서 뛰어드셨을 때, 제정신이 아니실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차분하던 거리는 삽시간에 경적소리와 도로 위의 여성을 피하려는 위태로운 자동차들로 가득 찼다. 다행히 다들 느리고 달리고 있었기에 교통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참으로 위험한 순간이어서 평화도 나도 엄청난 긴장 속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혼란스럽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도로 위를 헤집어 놓더니 돌연간 도로 한복판에 풀썩 쓰러져 버렸다. 당연히 찻길 위는 난리가 났지만 그 누구도 달려가서 여성을 부축하거나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차들은 빵빵 대기는 했지만 쓰러진 인영을 지나쳐 갈 길을 갔고 거리의 행인들은 웅성웅성 대기는 했지만 달려가서 쓰러진 이를 도와주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표정에 떠올라 있는 것은 이기주의도, 귀찮음도, 심지어는 무관심도 아닌, 익숙함이었다.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사람들의 표정 앞에 우리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도로 위로 가장 먼저 뛰어오른 것은 평화였다. 평화는 쓰러진 여성의 머리를 받쳐 들고 응급실에 전화를 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아주머니는 무척 비루한 몰골이셨다. 머리카락에는 새치와 비듬이 새하얗게 뒤섞여 있었고, 비싸 보이는 옷에는 며칠이나 빨지 않은 듯한 퀴퀴한 냄새가 났다. 닦지 않은 이는 누랬고, 팔뚝은 수많은 주삿바늘 자국과 멍으로 얼룩덜룩했다. 한눈에 봐도 마약 중독자인 것이 확실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여인의 손에 끼워진 황금 가락지들과 비싼 구두가 그녀의 초췌한 몰골과 묘한 비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죽은 듯 쓰러져 있으면서도 여인은 이상하게도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화는 다급하게 말했다.

“어떡하지? 숨을 안 쉬어! 응급소생술이라도 해야 할까?”

“자격증 있어? 심폐소생술은 자격증 없는 사람이 보호자 동의 없이 하면 불법이야!”

“사람 살리는데도 자격증이 필요해? 뭐라도 좀 해봐!”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은 지켜보지도 않고 한 차례 목례를 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채 몇 번 보호자를 찾으려고 시도해보기도 전에 앰뷸런스는 도착했고, 여인을 태우고 곧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모든 사건들에 평화와 나는 아연실색한 채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로가에 있는 주정차 요금기 밑에 주저앉아서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사건이 건넨 충격은 꽤 대단한 것이어서 잠시 동안 그 어떤 생각도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세상은 무정한 듯 보였다. 그 누구에게도 관심 없는 무덤덤한 시간과, 차가운 삶이 흐르고 있었고, 그 귀결은 결국 죽음이었다.

평화는 내게 말했다.

“왜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기적인 걸까?”

“내가 보기엔 이기적인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던데. 마치 그렇게 죽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느끼는 것만 같았어.”

“하지만 인간이기 위해선 살아 있어야 하는 거잖아! 그게 인간이기 위한 최소의 조건인 거잖아!”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고 다리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상념들이 헬멧 위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잠의 도시 곳곳에는 죽음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주거 공간 한복판에 공동묘지가 경건하게 세워져 있는가 하면 죽음을 찬양하는 표식이나 상징물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때때로 거리엔 점성술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상담을 해주는 마술사/마녀의 집 같은 것이 있기도 했고, 생각보다 많은 장례용품샵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조금 신기하고, 조금 무서웠으며,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리까지 가기 위해선 거의 산에 가까운 울창한 언덕을 하나 넘어야만 했다. 해안가 절벽들과 이어져있는 언덕이었기에 여태까지 달려온 평탄한 거리들과는 달리 구불구불하고, 가파르며 어딘지 모를 숲 속 미로를 닮아 있는 그런 길이었다. 그 언덕 꼭대기에는 대지진 당시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거대한 박물관이 있었다. 언덕을 지나치며 그곳을 우연히 발견한 우리는 잠시 쉬어가며 풍광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박물관 입구의 높디높은 추도비에는 대지진 때 실종된 이들의 이름과 추도문이 아름다운 글씨체로 새겨져 있었다.


석양은 서쪽 바다 밑에서도 빛난다. 산자의 심장에는 죽은 이의 이름이 언제까지고 새겨져 있다. 사랑하는 이들이 오늘 떠났기에 우리는 지혜로 과거를 돌아본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겸허하다. 우리는 그렇게 지혜를 얻는다.


평화는 추도문을 한참 동안 찬찬히 읽어보다가 말했다.

“이상한 일이야.”

“왜?”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데, 죽음에 대한 슬픔도, 상실에 대한 슬픔도 아니야. 뭐라 설명하기는 힘든데, 마치, 마치......”

“그저 뒤에 남겨졌기에 슬퍼하는 것 같지?”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

“잠의 도시는 대지진 이후로 죽음도 상실도 두려워하지 않아. 죽음은 삶의 대립점도, 마지막 종착역도 아니야. 20대가 지나면 30대가 오듯 자연스럽게 겪어야 하는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거지. 그래서 잠의 도시는 죽은 이들을 또 다른 생의 부분을 살러 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그것도 심지어 지금 이 세상보다 훨씬 편안하고 행복한 곳일 거라고 생각하지. 동경에 가까운 감정일 거야 아마.”

“죽음 이후의 삶을 훨씬 편안하고 행복하게 본다고?”

“응. 이승에서의 삶은 여러 가지 가치들에 구속되어 있잖아. 돈도 벌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지. 사람들하고의 관계도 원활히 유지해야 하고, 집도 사야 하며, 적당히 예의도 갖추고 법도 지켜야 해. 그에 비해 죽음은 진정한 자유이자 해방이라는 거지.”

평화는 미심쩍다는 듯이 나를 흘겨보았다.

“너는 이걸 어떻게 안거야?”

가방에서 여행책자를 꺼내 보이며 씨익 웃어줄 수 있었다.

“조사했거든. 황금의 다리까지 가는 길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나오더라.”

평화는 대견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예쁘네. 잘했어요! 준비도 잘해오고!”

우리는 그곳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벽 위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먼 곳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먼 서쪽 바다는 여전히 거칠고 난폭했다. 사나운 바람이 이는 해랑 위에선 회색빛 먹구름이 빛났고, 파도는 높고 날카롭게 내리치고 있었다. 그 단조로운 폭력 사이에서 대지진이, 언제나 다가오는 죽음이 잉태되고 있는 것 같았다. 대륙의 서쪽 반도인 이곳은 대지진 이후에도 항상 지진 위험 지역이었다. 대지진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들이 근 200년 동안 잠의 도시를 덮쳤었다. 어쩌면 도시의 주민들이 죽음에 익숙해진 것은 그것이 그만큼 그들의 삶 곁에 자주 머물러 있는 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선, 죽음에 익숙해져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과격한 서쪽 바다와는 달리 만 안쪽의 동쪽 바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빛으로 찬연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인 마냥, 동쪽 바다의 모든 부분이 아름답고 찬연해 보였다. 하얀 백금빛 사장은 보서진 구름 결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대리석처럼 빛났고, 해변가 아담한 흰색 집들은 마치 동화의 한 풍경인 것만 같았다. 서퍼들과 크루즈, 요트와 돌고래들이 노닐고 있는 그 장면은 한 편의 푸른 천국이었다. 근접해 있는 두 개의 바다가 이토록 다른 느낌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매력적인 일이라 우리는 그 모습을 한참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바다를 가르는 것은 붉은빛의 장엄한 다리였다. 다리 우측으로는 평온한 황금의 만이 흘렀고, 좌측에서는 사나운 서쪽 바다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세계가 밀고 당기는 모습은 이상하면서도 아름답고, 괴이하면서도 놀라웠다. 저곳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조금이라도 저 세계의 분열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속을 점차 채워나가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다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면서도 평화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마도 죽음과 삶에 대한 갖가지 고민들이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하늘 도시에서 내가 괴리를 느꼈던 것처럼, 평화에게는 잠의 도시가 잘 이해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항상 삶으로 박동하는 이 소녀에겐 죽음의 개념이 생경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관념 자체가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늘 죽음은 두려워하는 것이고 피해야 하는 것이며, 슬퍼해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으니 말이다. 죽음이 그토록 애달프게 아름다운 것이라면, 왜 세상이 자살하는 이들로 가득 차지 않는 것인지 우리로선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의 도시는 그 모순을 실재하는 삶으로 증거하고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잠의 도시는 세계 다른 모든 곳에서는 불법이지만, 유일하게 이곳에서는 합법인 것을 3가지나 가지고 있었다. 그 3가지는 바로 존엄사와 자살, 그리고 마약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자살은 가장 특별한 종류의 자유에 속했다.


처음 자살을 합법화시키는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도시는 외부에서부터의 비난여론으로 뭇매를 맞았었다. 죽음을 권장하는 도시라는 둥, 비인간적인 살인 법안이라는 둥, 각지에서 조소와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잠의 도시의 자살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의 시장 코고 데 씨는 이렇게 평했었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선 자신의 권리와 선택으로 죽음의 두 눈을 직접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그것은 오만한 발언이었고, 자살이 완벽하게 사라졌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죽음에 대한 종말의 철퇴였다. 코고 데 시장은 죽음이야 말로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그 뒤로 잠의 도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죽음을 섣불리 바라지도 않으며 삶 자체를 침착하게 응시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도시가 제2의 부흥기와 서부 대륙 예술의 중심지가 된 것은 그러한 죽음에 대한 그들의 태도 덕분이었을 수도 있다.







다리로 향하는 길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삶의 미로 같은 오솔길들과 폐허가 된 군부대를 헤맸고, 너른 잔디 평원과 해안가 절벽들을 달렸다. 3시간이 넘게 자전거를 타다 보니 체력 고갈이 빈번하게 찾아왔고, 우리는 꽤 자주 경치 좋은 곳을 찾아서 쉬어야만 했다. 나비 가득한 잔디밭에 털썩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낙원이 따로 없었고, 절벽 위의 벤치에 앉아 파도치는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온갖 번뇌와 고민이 다 사라져 갔다. 바다는 물결치는 죽음이었다. 그 억겁의 파도와 격랑 속에서 모든 것은 부서지고 무너져갔다. 하지만 그 고통과 무너짐 속에선 생명이 태동하고 삶이 역동했다. 바로 그곳에 죽음이 있기에, 모든 걸 부서트리고 가져가는 파멸이 있기에, 인간은 모든 괴로움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의지로 삶을 향할 수 있었다. 죽음은 그렇게 삶의 의미가 되어가고 인간을 만드는 중요한 골자를 이루었다. 아주 어렴풋하게, 그 긴 여정 속에서 우리는 그 사실들을 깨닫고 있었다.

마침내 다리 앞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가슴에는 벅찬 설렘이 가득했다. 한쪽으로는 폭풍 치는 바다와 안개가, 다른 한쪽에는 황금빛 물결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 사이를 거대한 붉은빛의 다리가 관통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개를 막는 성벽이요, 황금의 물결을 담아두는 댐인 그 건축물은 여태까지 눈에 담아온 그 어떤 인간의 걸작보다도 유려하고 장대한 의미로 세상과 세상을 소통시키고 있었다. 다리 위로는 수많은 차와 행인과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오고 가고 있었다. 다리 건너편은 짙은 안개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마법적인 무언가가 살아 숨 쉬고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두 개뿐인 기둥과 고래 심줄 같은 쇠밧줄들 사이로 헤겔의 기묘한 문구가 마법처럼 빛났다.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ammerung ihrn flug.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땅거미가 질 무렵 비행을 시작한다.



다리 가장 꼭대기에 새겨져 있는 그 문구는 세상의 마지막 석양을 받는 글자들이었다. 지리적으로 따지면 황금의 다리보다 더 서단에 위치한 인간의 건축물은 없었다. 마지막 해가 떨어지면 지혜의 부엉이가 날아오르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

잠의 도시의 주민들은 대지진이 끝난 직후에 이 문구를 다리에 새겼었다. 지진과 해일에 막중한 피해를 입기는 했고, 그리고 그 다리 위를 지나던 모든 것들이 실종되기는 했어도 결코 무너지지는 않았던 다리에 대한 헌사였던 셈이다. 황금의 다리가 무너지지 않았기에 수많은 구호물자와 지원이 잠의 도시로 들어올 수 있었고, 도시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문구는 3가지 의미에서 그곳에 새겨져 있었다. 죽은 자를, 그리고 대지진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잊지 않겠다는 의미와, 지나간 일에서 지혜를 찾겠다는 의미, 그리고 도시의 석양에 서서 여명이 귀소(歸巢)할 때 가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3가지 의미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의미들은 지금까지도 다리에 찾아오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저기 봐! 미네르바의 부엉이야!”

평화가 가리켜 보인 것은 다리 위로 날아드는 위풍당당한 바다 까마귀였다. 안개를 가르고 햇살을 삼키며 날아든 그 거대한 새는 마치 지혜로운 눈빛으로 오고 가는 모든 인간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다 까마귀네. 아직 석양이 질 무렵이 아니라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날지 않나 봐. 그런데 헤겔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어?”

“응. 좋아하는 문구야. 뭐든지 그 끝을 보아야 지혜를 알 수 있는 법이야!”

“그래서 ‘죽음은 지혜의 보고’라고 하는 걸까.”

“글세. 그건 잘 모르겠네. 나는 아직 인간이 죽음을 반추하며 지혜를 얻는지, 죽음에 다가서며 지혜를 얻는지 확실히 결정 내리지 못했거든.”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확실히 결정한 바가 없어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만 있었다. 우리는 박동하는 삶으로 두려운 죽음을 마주하며 지혜를 얻는 것일까, 아니면 스러져간 수많은 삶의 일부로서의 죽음을 반추하며 지혜를 얻는 것일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두 가지 의미 모두를 내포하고 있는 듯했고, 그것은 잠의 도시와 인간 모두가 그대로 물려받은 특징이기도 했다. 우리는 앞을 보며 모닥불을 향할지, 뒤를 보며 조개껍질을 주울지 갈등하는 혼란스러운 인간이었다. 다리 이편에 서서 저편을 꿈꾸고, 닿지 못한 모든 것에 미련을 가지는 가련한 인간이었다. 갈등하고 또 갈등하며 인간은 그렇게 여명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논리적인 이유는 지쳐서 돌아오기 힘들 것 같다는 것이었지만, 그보다 깊은 기저에서는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그렇기에 잘 이해되지 않는 이유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이 세상의 너머를 탐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우리에겐 베르길리우스도, 뱃사공 카론도 없었고, 단테나 헤라클레스 같은 무한한 의지와 용기도 없었다. 우리에겐 강 건너에서 기다리는 칠월칠석의 직녀나 유리디체도 없었으니 시간이 깃든 세상 끝의 다리를 건너기에 우리는 너무 미약한 달빛이었을 따름이다. 그날 우리는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 언제고 세상의 피안을 넘어설 또 다른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웅장한 다리의 모습만을 마음에 고이 간직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해는 이미 어둑어둑하게 지고 있었고, 우리는 긴 자전거 여행의 여파로 온 몸이 쑤셔옴을 느꼈다. 집에서는 고소한 저녁식사의 향기와 따스한 불빛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온기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며, 집과 가족이 참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숙모께서는 오늘은 삼촌이 좀 늦게 오시니 우리끼리 식사를 하자고 하셨다. 뱃가죽이 등에 닿을 지경이었던 우리에겐 참 감사한 제안이라 우리는 후딱 손을 닦고 식탁에 앉았다. 희야와 숙모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우리는 그 날 하루의 모든 모험담을 숙모에게 들려드렸다. 숙모는 차분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턱을 괴고 앉아, 우리의 이야기에 몇 가지 생각을 덧붙여 주셨다.

“적, 희생양, 악마에 대한 생각은 평화 씨가 말한 게 맞아요. 나는 그 말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을 만큼 동의해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적’을 만들어 내야만 했죠. 대부분의 경우엔 ‘파괴’, ‘약탈’, ‘노예’, ‘굶주림’, ‘강간’ 등으로 상징화되는 ‘죽음’이 인간의 적이 되었고 말예요. 이웃나라나 초자연적 현상, 신화적 괴물들이 그 적의 메타포가 되었죠. 하지만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자본주의 사회가 찾아오며 여태까지 인간이 알아온 적과는 다른 특별한 ‘적’이 등장하게 되어요. ‘결핍’이나 ‘빈곤’ 이 그런 것들이죠. 그리고 새로 등장한 이 악마들은 아쉽게도 인간이 예전처럼 뭉쳐서 싸울 수 있는 게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의 내부에서 파생되는 부산물 같은 것들이었어요.”


평화는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숙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빈곤과 결핍 등의 복잡한 갈등, 복잡한 적과 싸우는 데는 예전의 모든 방식들, 모든 전략들이 통하지 않았어요. 마치 총과 칼로 무장하고 있는데 암세포를 만난 격이죠. 예전처럼 가상의 적, 희생양을 만들어내어 사람들을 결집시키려 해 봐도 뭔가 이상하게 이치에 맞지 않았고, 빈곤과 결핍을 학살하고 근절하려고 해 봐도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이 병이 사라질 리 없었어요. 그럴 수밖에, 사람들이 모여서 살기 위해선 누군가는 빈곤해야 했고, 누군가는 결핍감을 느껴야 했으니까요. 어쩌면 그 모두가 결핍감을 느껴야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걸지도 몰라요. 모든 걸 가지고 있어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처럼 착각해야 사람들은 함께 있어야 할 이유, 함께 일할 필요성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창세 이후로 인간은 언제나 적이 필요했지만, 마침내 가장 복잡하고 가장 진보된, 가장 고차원적인 적, 없어져서는 안 되는 적이 등장해버린 거예요.”

숙모는 천천히 물을 한 모금 들이키시고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그 적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우리가 알고 있던 사회의 구조 자체를,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 방법을, 적 없이도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 바로 이곳, 잠의 도시 사람들이죠. 그리고 도시 주민들은 그 사실에 대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 말은 꽤나 신기한 것이라 나도 밥 먹기를 멈추고 가만히 숙모의 말을 경청하였다. 나와 평화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집중하는 모습이 신기했던지, 희야도 제 숟가락을 내려놓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숙모는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희야에게 먹여주셨고, 희야는 아기새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넙죽 받아먹었다. 평화는 그 행복한 모습에 미소 지으며 숙모께 질문을 했다.

“잠의 도시는 어떻게 그런 사회로 나아가게 된 거죠? 빈곤과 결핍이 사라졌나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어서 그렇게 된 건가요?”

숙모는 차분히 대답하셨다.

“만약 삶이 전투였다면, 그 무기는 돈이었겠죠. 하지만 삶은 전투가 아니에요. 삶은 다만 투쟁일 뿐이죠. 그리고 투쟁은 반드시 목적이 있지도, 반드시 과격하지도 않아요. 잠의 도시의 주민들은 좀 더 평화적인 투쟁을 선택했고, 무기도 대립도 다 내려놓았어요. 그래서 승리도 패배도 없는 삶과, 그에서 비롯되는 평온을 얻은 거예요. 그럴 수밖에, 죽음이라는 거대한 종착역 앞에서 삶의 모든 것은 사소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죠.

결핍이 사라졌던 것은 돈이 많아져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인간이 행복해지거나 풍족해지는 것은 돈이나 물질의 양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조 속에 갇힌 인간은 결핍감을 느끼고 무력감을 느껴요. 가령, 5살 때를 기억해보면 500원짜리 동전 하나만 있어도 세상을 다 살 수 있을 듯 행복해지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때요? 그 열 배의 돈이 있더라도 큰 결핍감을 느끼죠? 사야 할 것도, 유지해야 할 상태도, 필요한 물건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돈을 벌던지 상관없이 그 양에 따라서 소비해야 하는 것, 가져야 하는 것은 계속해서 늘어날 거예요.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고, 인간이 갇혀버린 구조죠. 그 구조 속에서 생겨나는 결핍감은 돈의 양과는 상관없이 항상 그곳에 있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기준을 정하거나 마음을 비우는 거예요. 기준을 정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죠.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공존한다는 것이죠.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집을 짓는 거예요. 옆에서 누가 스포츠카를 타고 개인 비행기를 사든, 나는 편안한 자전거 한 대면 충분하다고 딱 잘라 생각하며 사는 거죠. 그런데 이게 사실 말은 쉬운데 또 그렇게 생각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아요. 온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사람 귓속에 자신의 기준을 속삭이기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또 기준을 흔들어 놓는 욕망의 매개체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예를 들어 TV 광고들이나 잡지가 그렇죠. 요새 나오는 광고나 잡지를 보면 하도 잘 만들어져서 나도 모르게 그 물건을 사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들곤 해요. 나도 사진 속의 저 남자처럼 멋지고 싶고, 여자들에게 인기 많고 싶고, 나도 광고의 저 여자 모델처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하는 본능적 욕망이 마구 샘솟게 되는 거죠. 그렇게 결핍감이 또 생겨나는 거예요. 약점을 찌르고 들어오는 수많은 매체들을 접하며 기준을 굳건히 유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숙모는 다시 잠깐 생각에 잠기셨다가 말을 이어나가셨다.

“그래서 잠이 도시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두 번째 방법이었어요. 마음을 비우고 적과 화해하며, 포용하고, 초월하는 거죠.”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사실 생각보다 간단해요. 우리가 포용한 첫 번째 적은 죽음이었어요. 익히 알다시피 잠의 도시의 주민들은 더 이상 죽음을 생의 대립점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죠. 모든 지혜는 그에서 비롯되었어요. 죽음이 더 이상 빼앗으려 드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고, 삶은 더 이상 소유해야 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죠. 무엇도 지켜야 할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도시의 주민들은 그렇게 성공하지 않아도, 남보다 대단한 무언가를 꼭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랑할 만한 게 없더라도 삶은 이어지고 순환하며 맥동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죽음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진정한 삶의 의미였죠. 죽음을 기다리며 비우고 또 비우는 그 겸허의 과정에서 인간은 비로소 초월에 다가서요. 그리고 죽음에 닿는 그 순간 훌쩍 모든 것을 넘어 진정한 평온에 다가서죠. 이 도시의 사람들은 그래서 돈도 명예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아요.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이나 디지털 산업의 심장 같은 곳이 곳곳에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수수하게 입고 다니고, 텐포드 대학이나 버클 대학 같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문대학교가 지근거리임에도 명예나 지위를 티 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걸요. 돈이 많든 적든, 고학력이든 일용직 노동자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유일한 도시죠. 덕분에 성공에 대한 갈망도 그리 크지 않고, 욕심도 그리 많지 않아요. 물론 그래서 범죄도 꽤 적은 편이구요.”

“마음을 비우고 규칙도 가치도 욕심도 다 내려놓았더니 행복이 찾아왔다는 거네요. 죽음만이 삶의 진정한 진리를 향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거라고 봐도 될까요.”

“비슷해요. 고대 불교라는 종교에는 공(空)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이 개념은 비어있을 공(空)이라는 글자로 나타나는데, 실제로는 다시 가득 차기 위해서 비어있는 일시적인 상태를 의미해요. 비는 것은 다시 차기 위함이고, 차는 것은 비워지기 위함이라는 거죠. 결국 모든 것을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니, 진리를 위해서는 비워내야 다시 진정한 가치를 함양할 수 있어요.”

우리는 밥을 다 먹고 치운 뒤에도 한참 동안 잠의 도시와 도시 주민들이 이룬 평온에 대해 한참 동안 고민을 해야만 했다. 모두가 욕망하는 사회에서 홀로 비워지려 애썼다면야 힘들었겠지만 잠의 도시민들은 모두가 비슷한 종류의 의지로 공명하고 있었고 그것은 꽤나 멋진 일이기는 했다. 도시 전체가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사소한 문제라는 태도로 욕망을 비워냈으니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죽음과 삶을 공존시킨 도시인들의 태도는 일견 매우 현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잠들 때 까지도 골똘한 생각에 잠겨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뿐이다. 짙은 꿈이 나를 사로잡기 직전, 평화의 혼잣말이 저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 아직 더 경험해 보고 판단해야 해. 뭔가 석연치 않아.”

그 말을 곱씹어보던 나는 어느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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