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향해 자라는 나무 1화

1화 : 여행을 출발하는 어려움

by 이원호

Chapter 1 : 여행을 출발하는 어려움





나의 아버지께서는 평화학자셨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래서 평화학자가 뭐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평화를 공부하는 사람이요-’라는 식의 궁색한 대답밖에는 내어놓지 못했다. 그럼 당연히 사람들은 ‘평화가 무엇인데?’라는 질문으로 괴롭혔고,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아직 나 자신과 세상의 화해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데 평화가 뭔지 제대로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많은 사람들이 아이러니하다며 웃어대곤 했다.

“네가 평화를 모른다면, 세상에 평화를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다. 그치.”

“그럴지도.”

“평화는 참 슬프겠다.”

그럴 때면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온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쏘아붙이고 싶기는 했지만, 옆에서 생글거리며 웃는 평화의 모습 앞에서는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평화는 탁자 밑으로 가만히 손을 잡아주며 얘기해주었다.

“굳이 다 이해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왜?”

“이해받으려고 곁에 있는 건 아냐.”

“그럼?”

“나 자신을 이해하려고 너와 함께 머무르는 걸지도 모르지.”

그럴 때면 평화의 눈빛은 12월의 별보다도 더 반짝거려서, 넌 참 이해하기 힘든 아이야- 라는 농조차 던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내 곁에 머물던 평화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짧은 한 통의 편지와 알쏭달쏭한 니체의 문구만을 남긴 채로 어딘가로 떠나버렸던 것이다. 나는 정말로 평화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내겐 평화가 떠난 이유도, 향하는 장소도 전혀 알 수 없는 일들이었고, 그래서 괜히 그녀에게 속상해지고 말았다. 행여나 내가 사랑할 줄도, 이해할 줄도 몰라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뱃속에서 비단뱀처럼 꿈틀거렸고, 그녀를 영영 잃은 것은 아닐까-하는 오래된 두려움이 목을 죄였다. 그 불안에는 니체의 오래된 문구가 큰 작용을 했다. 그 문구는 언제나 떠나감의 전조였다. 인간을 극복하려는 자는 언제나 인간 사이에서 스러져가곤 했다. 이미 오래전 사랑했던 친구를 떠나보냈던 나는 나는 평화마저도 그렇게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평화네 어머님을 만나 뵈었을 때, 그분께서는 본인도 평화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도 잘 모르겠네요. 어딜 간다 말도 없이 떠나버려서.”

“혹시 짐작 가는 장소나 이유도 없으신가요?”

“전혀 없어요. 하지만 사라지기 전날 밤 이렇게 말했던 건 기억나요.”

“그게 무엇이죠?”

“자신이 사라졌을 때 수호 씨가 물어본다면, ‘이미 어딘지 알고 있을 거야.’라고 말해달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평화를 찾아올 수 있나요? 아니면 어디에 있는 지라도 혹시 알아낼 수 있을까요. 물어볼 사람이 저로선 수호 씨 밖에는 없네요.”

나로선 일단 노력해보겠다고 말할 수밖엔 없었다.







2년쯤 전에 평화와 나는 긴 여행을 떠났었다. 그 여행은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젊음을 관통한 도전적인 모험이었다. 인간다움과 행복을 찾아 떠난 그 여행 속에서 우리는 먼 곳을 향하는 발걸음을 내딛었었다. 하늘을 건너고 바다를 넘던 그 여행 속에서 더없이 생경한 삶의 감각들을 맛보았던 것이 아직까지도 마치 어제만 같았다.

평화가 떠난 곳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면 그곳은 바다 건너의 그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평화는 여행이 끝난 뒤에 말했었다. 비록 목적한 바를 이루지는 못했었지만, 반드시 돌아가고 싶은 여행이라고 말이다. 그 뒤로 적막한 평온과 아찔한 삶의 설렘이 찾아오는 섬전 같은 순간마다 평화와 나는 그 여행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리곤 서로에게 속삭였었다. 다시 돌아가 보고 싶다고, 다시 훌쩍 떠나보고, 세상과 부딪히며 나를 찾고 삶을 알고 싶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홀로 점쳐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혼자 떠난 곳 그곳은 우리가 함께 걸었던 그 여행길 위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혼자 걷고 있을 평화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비록 말로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부드러운 그리움과 한 통의 문구로 손짓하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오라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그녀는 속삭이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던 ‘인간’을 그녀는 비로소 찾아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던 걸지도 모른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출발해야만 했다.

2년 전, 여행을 출발하기 전의 나는 대단히 지쳐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찾아온 것은 긴 방황의 시기였고, 그것은 어떤 면에선 처절했던 사춘기와도 비슷한 것이었다. 사춘기 때는 닿지 못할 수많은 것들을 향해 마음이 온통 갈대처럼 흔들린다. 사랑하는 이를 향해 해바라기처럼 필 때도 있고, 꿈을 향해 한없이 애달픈 갈망을 하늘에 날려 보낼 때도 있다. 대학 후에 찾아온 것은 그와도 비슷한, 닿지 못할 많은 것들에 대한 갈망이었다. 꿈에 닿지 못할 것 같은 허망함과 이미 닿아버린 사랑과 관계들에 대한 익숙함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끊임없이 흐르는 삶 속에서 많은 것들이 익숙해지고, 무던해지며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던 순간들이었다.


대학 졸업 직후에 취직을 한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삶의 모든 부분이 쉴 새 없이 급박하게만 흘러가기만 했고, 그것은 알게 모르게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간다고 머리 터지게 공부를 했고, 대학 때는 취업을 한다고 죽어라 노력했건만, 취업을 한 뒤에는 일에 치여 숨 막히는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차라리 조금 쉬며 여유롭게 삶을 돌아보았다면 나았을 텐데,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착각되는’ 삶의 가치들 때문에 마음도 발걸음도 조급하기만 했던 것이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한들 삶의 많은 부분은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부족하고 불안해야지만 사람은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불안하고 초조해야 한다니, 당시의 삶은 그 자체로도 모순이었다.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나는 아주 피곤해야만 했다.

인간관계는 점차 삐거덕대었다. 안 그래도 사람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높고 고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즈음해서는 모든 이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도록 알아왔던 친구들과 멀어지기도 했고, 직장 사람들과도 학교 선후배들과도 영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관계라는 것은 나를 규정하는 가장 큰 의미인 동시에, 나를 구속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삶에 머무르기 위해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야만 했지만, 또 동시에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야만 하기에 삶은 무겁고 힘들었다. 같이 머문다는 것은 늘 희생을 전제로 삼는다. 끊임없는 상호 희생 속에서 내 영혼은 메말라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훌쩍 떠나고 싶었다. 지치게 하는 인간관계를 떠나고 싶었고, 삶의 비어있는 조각을 채울 특별함을 찾고 싶었다. 떠남을 통해서 사람다움과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고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고달픔을 내려놓고 휴식하기 위해서라도 이 여행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해 9월, 지하철역 앞 작은 카페에서 평화는 내가 왔다는 걸 눈치 채지도 못한 채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나도 평화도 수십 번도 넘게 본 드라마였다. 6명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남녀 주인공들이 펼치는 애틋한 삶의 이야기는 늘 우리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끔 해주곤 했다. 드라마 속에서 남주인공 피트가 여주인공 모니카에게 고백하는 신이 아른아른 빛났다.

“I know I'm no John BonJovi, but-(내가 존 본 조비만큼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평화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인사하자 마주 부드럽게 웃어주며 평화는 귓속에서 하얀 이어폰을 스르르 뺐다. 그 곁에 편안한 마음으로 앉자, 평화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아이스크림 먹을 거야?”

“무슨 맛?”

“녹차 맛!”

평화는 배시시 웃으며 미리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내 앞으로 밀어놓고, 나는 부드럽게 녹는 시간을 살짝 삼키며 평화에게 말했다.

“여행을 가려고.”

갑작스러운 선언에 예쁜 평화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갑자기 웬 여행이야? 어디로?”

“서쪽 세계.”

“거기엔 갑자기 왜 가려고?”

“음, 뭐랄까. 잠시라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나는 늘 인간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해지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은 단순히 노예처럼 일해서 많은 돈을 벌거나, 다른 사람들 머리 위에서 장난칠 수 있는 권력을 얻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행복의 관계는 봄볕의 고양이와 나비 같은 것이라 움켜쥐려고 해 보아도 모호한 날갯짓으로 손아귀 사이를 빠져나간다. 때로는 우울 속에서 행복이 잊히고, 때로는 바쁨 속에서 행복을 놓치곤 한다. 대학을 가면, 취업을 하면, 사랑을 하면 행복해질 줄 알지만 행복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선, 진정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했고, 그것이야말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다워지고 싶다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내가 말하고 싶었던 진정한 이유였던 걸지도 모른다.

“행복? 어떻게 행복을 찾으려고? 그리고 왜 행복을 찾으러 저 멀리 서쪽 세계까지 가?”

평화의 그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질문은 내 마음속에 긴 파문의 동심원들을 그렸다.

내겐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 가장 소중한 곳에 박혀 있는 행복의 원형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는 서점을 하셨었다. 손님들이 몰려서 서점이 시끌벅적 해질 때면 부모님은 나를 책 가판대 위에 올려놓고 손님들을 상대하셨는데, 가판대 위는 당시 3살이던 내겐 어마어마한 높이의 절벽처럼 느껴지던 곳이었다. 내겐 아직도 그 당시의 장면들이 안갯속의 등대처럼 선명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들이 모두 책으로, 이야기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멀리서 일렁이는 책장들은 고대의 선산 같았고, 곳곳에 솟아있는 가판대들은 바다 위의 섬 같았다. 조금 멀리 뛴다면 다음 섬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섬과 섬 사이의 깊고 너른 계곡들은 어린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었다.

그곳에서 나는 최초의 책을 폈었다. 책들 사이에는 기묘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숨을 쉬었고, 반짝이는 비늘을 가진 물고기들과 웅장한 공룡들의 모험기들이 튀어나올 듯 마음을 간지럽혔다. 우주탐사선과 위인들의 대단한 업적들을 헤매고, 역사 속에서 사라진 전설적인 이야기들 사이에서 나는 최초의 행복을 찾곤 했다. 그리고 그때의 이야기들 가운데는 그 마법 같은 책이 있었다.

그 책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그런 책이 그곳에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무슨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끝없는 애벌레의 탑을 오르는 이야기나, 사과나무를 심는 노인 이야기에 비해선 그다지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장을 펼쳤을 때부터 그 책은 나의 행복이었다.

책장 사이에서는 거대한 황금빛 나무가 빛났다. 그 나무의 잎사귀는 짙은 하늘빛 바람을 타고 일렁거렸고, 세월의 힘줄이 얽혀 만들어진 것 같은 우람한 나무 등줄기는 억겁의 고난과 외로움을 버텨낸 것처럼 보였다. 너른 가지 위에선 이름 모를 찬란한 새들이 노래를 불렀고, 석양이 부서지는 나무 꼭대기의 잔가지들 사이에서는 보석 같은 희망이 빛났다. 멀리서 바다가 노래로 부서지며 나무로 다가서고 있었다. 땅이 맺어지고 바다가 태어나는 그곳에, 그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나의 이상향이었다.

제목조차 모르는 그 책, 다시는 보지 못한 그 그림은 내 삶의 영원한 동경으로 남았다. 어린 나는 그 나뭇결 사이에서 꿈꾸고 잠들었으며, 달콤한 상상과 아름다운 환상들을 맛보곤 했다. 수많은 위인전기들의 위대한 영웅들보다도, 우주비행사와 탐험가와 과학자들보다도, 나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었다. 슬픔을 견디는 둥치와, 바다와 땅과 하늘을 하나로 엮어주는 너른 뿌리를 가진 나무, 햇살을 마시고 새들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그런 너그러운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건 참 이해할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때때로 어린 영혼에 강대한 발자취를 남기는 일들은 그렇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낙인보다도 강렬한 흔적으로 삶 전반을 지배한다. 어린 시절의 막연한 갈망은 무의식 속에 틀어박혀 그 뒤로 다가올 억겁의 세월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내겐 그 나무는 더없이 인간적인, 가장 행복한 것으로 기억되었다. 내가 닮아야 하고, 내가 향해야 하는 가장 완전한 이데아였던 것이다.

물론 그 느낌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느낌을 여행의 이유로 삼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 모호한 바람을 설명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항상, 왜?라는 질문을 맞닥트리게 되면 대답이 곤궁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특히 더 그랬다.

“나도 ‘왜’ 인지는 확실하게는 모르겠어. 행복을 깨닫기 위해선 찾아야 할 게 있다는 확신이 들뿐이야.”

“그게 뭔데?”


나는 어렸을 적의 동화책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을 했다. 나는 그 동화책이 서부 세계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 나무가 분명 서쪽 대륙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안 되는 추측 역시 들려주었다. 사실 말하면서 나 스스로도 완벽하게 용납하고 있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녀 역시 어처구니없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화는 예상을 뛰어넘은 채, 그보다 현명한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뜨곤 대답했다.

“그 나무는 나도 알아.”

“안다고?”

“응. 나도 어렸을 적에 그 나무를 마음에 담았어. 네가 말하는 황금빛 광채도, 알게 모르게 행복에 닿게 해 줄 것 같은 그 느낌도 잘 알고 있어. 무언가 비밀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도달하면 나를 괴롭혀온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올 것 같은 그 느낌도 알아. 설명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조차도 말야. 그 동화책에는 그 마법 같은 힘이 있었어.”

“그럼 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이해해줄 수 있겠네?”

평화는 숟가락을 입안에 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 가면 언젠가 돌아올 테니까. 잘 갔다가 와. 너만의 사람다움을 찾아오길 바라.”

머뭇거리다가 눈을 질끈 감고 물어보았다.

“같이 가주지 않을래?”

“응?”

주머니에서 바다의 땅으로 향하는 궤도 열차 티켓 2장을 꺼냈다. 티켓 위에 인쇄되어 있는 날짜는 9월 7일, 우리가 만나기 시작한 지 딱 6년째 되는 날이었다.

“네가 같이 가주면, 아니, 네가 같이 가주어야 내 행복을, 내 사람다움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평화는 할 말을 잊은 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비록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나기엔 삶의 많은 부분들이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저 먼 곳을 향하는 사람다움의 여정을 시작할 수는 있었다.






평화가 여행을 같이 가는데 동의한 뒤에도 여행을 출발하는 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나이가 찰 만큼 찼다고 생각했음에도 삶에는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른이 될 줄 알았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도 어른이 될 줄 알았지만, 막상 모든 걸 다 졸업한 지금 나는 여전히 어른이 아닌 건지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허락을 구해야만 했다. 다니던 직장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부모님에게도 말씀을 드리는 것도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을 조금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내가 떠나가고 싶어서 떠나가는데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니! 더군다나, 어느 누구 하나 설득하기 쉬운 상대가 없다는 점이 아직 어설픈 내 모습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고 말았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에 대해선 대단히 예민한데 비해 남이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쓸데없는 짓이나 시간낭비로 여기곤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말을 죄책감이나 자기변호와 함께 꺼내 놓아야 하는 이상한 곳이었다. 그저 행복을 찾고 싶어서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요새 행복하지 않느냐고, 혹시 힘든 일이라도 있느냐고 갖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특별히 불행하지는 않았기에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았고, 삶은 어딘가 무미건조하고 텅 빈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불행이었던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삶의 조건은 괜찮은 편이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것이야 몇 번 겪기는 했지만, 그런 종류의 상실은 살아가는 모두가 겪는 일인 데다가, 내겐 특별한 병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 사람들은 해괴망측한 표정 속에서 또 다른 질문들을 던져댔다. 그럼 왜 여행을 가는 거냐고, 왜 하필 그렇게 잘 사는 나라로 놀러 가야 하냐고, 왜 하필이면 여자와 함께이냐고, 엉큼하다고 말이다. 갖가지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대답을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건네주는 대답이 구미에라도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배고픈 이리처럼 마구 물어뜯고 괴롭혀댔다. 세상에 적당한 이유를 대는 것만으로도 참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지경이었다.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구조와 공식들이 있어서 곧이곧대로 따르다간 정신병이 오기 십상이라는 걸 새삼 실감해야 했던 나날들이었다.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삶의 공식 따위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의 공식을 보면서는 틀렸다거나, 이건 고쳐야 한다는 식으로 지적하길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한 친구도 여행을 떠나려는 내게 괴상한 지적들을 보따리로 안겨주어 큰 실망을 건네었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 아주 많은 20대 후반을 보내고 있던 그 친구는 비싼 카페에 앉아서 비싼 커피 잔을 기울이며 왜 하필 서쪽 대륙이냐는 둥, 그런 식으로 돈을 쓰는 여행을 해서야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둥의 설교를 해댔다. 그 친구는 내 여행 계획에 대해선 비난하면서 자신이 가고 싶은 여행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줄기차게 해댔다.

“그것보단, 중부 세계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에 가보는 건 어때? 거기엔 돌고래와 함께 수영할 수 있는 바닷가가 있는데, 돌고래들하고 같이 대화도 나누고 수영도 하다 보면 마음속 불안이 다 사라질걸.”

그 친구는 영묘하고 아름다운 포유류들과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치유될 것이라고 1시간도 넘게 설교해댔고, 나는 눈앞의 냅킨을 잘게 찢어놓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냅킨에는 값비싼 커피집의 로고가 초록색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하루 수억 잔이 소비되는 뻔한 커피를 마시며 돌고래들의 감수성과 소통, 그리고 마음의 치유에 대해서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친구의 모습은 어쩐지 말도 안 되게 모순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뻔한 것과 특별한 것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사람의 마음을 받아주는 그 돌고래들은 얼마나 힘이 들고 아플까, 물속에 있어서 눈물이 흘러도 아무도 몰라주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든, 말 못 하는 동물이든 남의 마음을 받아주는 게 그리 쉬울 리 없다. 누구도 돌고래에게 자살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돌고래가 아직 자살을 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대화가 끝날 때 즈음해서는 냅킨 3장이 가루가 되어있었고, 친구는 그 꼴을 보며 당장 심리상담 치료가 필요한 것 같다고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 괴상한 돌고래 얘기를 들으며 한 대 쥐어박지 않으려고 냅킨이 그 꼴이 된 것은 모르고 말이다. 꼭 행복을 찾아오라고 말하는 그 친구의 뒷모습에다 대고 한숨을 내쉬며, 내 행복은 내가 알아서 찾겠다고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애써 억눌러 참았다. 나마저도 내 세상 속에서 오만해질 것이 못내 두려웠던 셈이었다.

여행에 있어서 부모님도 꽤 큰 걸림돌이 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기대치가 대단히 높으셨던 부모님은 항상 내가 뭔가 특별한 일을 하길 원하셨다. 그것은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된다거나, 돈을 잘 벌었으면 좋겠다거나 하는 수준 낮은 기대와는 차원이 다른 기대들이었다. 부모님은 보다 모호한 바람들을 가지셨다. 보다 깊이 있고 보다 행복한 사람이 돼라- 라는 그 말은 아직도 내겐 잘 와 닿지 않는 바람들이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부모님은 그런 기대들을 담아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왜 그런 안일하고 평온한, 배울 것이 없는 세계로, 하필이면 쓸데없는 나무 한그루를 찾는 여행이냐는 것이었다. 언제나 내가 좀 더 고생하며 세상을 겪어보기를 원하셨던 부모님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나 나름대로의 성장을, 평온을 원하며 출발하는 여행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두에게 쉽게 이해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설득하다 보면 지쳐서 그냥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모질지도 못했고, 그렇게 행복하지도 못했기에 애써 꾹꾹 눌러서 참았다. 그리고 그건 평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출발하기 직전까지의 내 여정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며 겪는 갈등이었다면, 평화는 스스로와도 갈등하며 꽤나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게 가능한 여행이기는 한지, 말이 되기는 하는 건지, 사람들이 용납해주기는 할지 정신없이 혼란스러워하는 그 모습 앞에서 나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국 어떻게 보면 내 여행에 끌고 가는 셈이었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참견하는 것은 옳지 못했다. 결국 평화가 납득도 명분도 스스로 만들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꽤나 이기적이었다. 내가 제대로 설득할 줄 알았던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평화의 부모님께서도 여행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시지는 않으셨다. 그럴 수밖에, 애지중지 키워온 보물 같은 딸아이를 낯선 나라에, 낯선 남자아이와 보낸다는 것은 어떤 부모에게라도 그렇게 반가울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평화와는 긴 시간 동안 알아오기는 했고, 때때로 평화의 부모님과 마주치기도 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사이라는 것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가장 풋풋하고 순수한 모습들을 곁에서 겪어보았다는 것이야 장점이겠지만, 또 고달픈 성장기를 겪으며 흔들리고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 역시도 알고 있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내 아들 곁에, 내 딸 곁에 안정적이고 믿을만한 사람이 있기를 원하기 마련인데, 흔들리고 아파하고 방황하는 성장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비쳐질리 없는 탓이었다. 먼 미래에 아무리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해도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엔 유별난 순간들의 모습들뿐이다.

나는 평화에게 내가 직접 부모님을 찾아뵙고 설득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평화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거절했다. 내가 설득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나는 그런 면에 있어서는 꽤나 낙천적인 편이기는 했다. 나는 내가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을 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평화는 그건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던, 우리 나이의 두 배 이상을 살아오신 부모님의 가치관, 삶의 태도는 확고하기에 아무리 성실하게 설득한다고 해도 코트 옷깃만큼은 항상 여미어져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독선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설득하려는 내 모습과, 부모님의 요지 부동하는 모습 사이에서 평화는 꽤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결국 평화는 지혜롭게도 자신만의 이유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이유도 찾아내었다. 평화는 어릴 적 보았던 그 나무의 모습에는 자신의 꿈이 깃들어 있다고 그랬다. 그 나무를 직접 본다면 등불 같은 의미가 되어 삶의 방향을 밝혀줄 것이라는 그녀의 말은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우리 여행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 너무나 어리고 어설퍼서 삶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모호한 견해만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삶의 지혜와 마법이 담긴 풍경을 눈에 머금는다면, 어쩌면 모든 응어리가 울컥하며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의 생각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1달 만에 서쪽 대륙으로 출발하는 일정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물론 한 달이라는 시간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엔 꽤나 짧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누구를 만나야 할지도 확실하게 몰랐다. 우리는 그렇게 계획적이지 않았고, 그렇게 조급하지도 않았다. 대신 우리에겐 어리석은 젊음과 유쾌한 긍정성이 있었다. 우리는 걷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할 것이라고 믿었고, 찾다 보면 많은 지혜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했다. 바닷가를 걷는 것은 꼭 해변의 끝에 다다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조개껍질을 줍고, 파도에 발도 담그며, 햇살 속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일궈지기 위해 걸을 때가 더 많은 것이다. 여행도 그와 같았다. 꼭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아도 우리는 가는 길에 많은 반짝이는 의미들을 주울 수 있을 것을 믿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건 삶을 함께 끝까지 여행하는 좋은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만히 서로에게 기대며 말없이 여행을 출발할 수 있었다.





여행을 출발하는 날 아침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있었다. 십 수년을 걸어온 거리였음에도 새벽녘에는 왠지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안갯속에서 세상이 새로이 태어나고 있었다. 첫 햇살 이전의 그 침묵 속에서 생의 감각을 더듬어보았다. 많은 여행을 떠나보았지만 늘 첫 번째 발걸음이 가장 새롭다. 무거워진 가방을 드르륵드르륵 끌며 길거리를 걷자, 생경한 감각이 마음을 종처럼 때렸다. 차도에는 자동차 한 대, 버스 한 대도 없었다. 아직 차가 다니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었고 천천히 아침을 만끽하며 발걸음을 옮기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새들도 안개비에 촉촉이 젖은 둥지에서 서로 오순도순 부둥켜안은 아침을 보내는 건지, 그 흔한 새 노래 한 조각 깃들지 않은 아침의 고요 속을 거닐을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그 순간은 언제나 그렇듯, 마음을 다잡아 볼 수 있는 좋은 순간이었다. 반쯤은 떠나기에 설렜고 반쯤은 편안하고 익숙한 일상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아렸다. 사람과 삶에 지쳐서 떠나고 싶었는데, 사람과 삶을 그리워하기에 아련한 마음이 남기도 했다. 늘 그렇게 어설프게 흔들렸고, 그렇게 머뭇거리며 사랑해왔다는 묘한 자각이 다가왔다. 언제쯤 제대로 사랑할 수 있고 언제쯤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질문을 안갯속에다가 던져 넣었고, 대답은 날아오지 않았다. 여정의 끝에는 대답이 날아올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평화와는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평화네 부모님께서는 그녀를 궤도 터미널까지 태워주신다고 하셨고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없었다. 불안하셨던 것일까, 아니면 참 많이 사랑하셨기 때문일까. 내가 해본 적 없는 사랑을 짐작하는 척 애쓰지는 않았다. 다만, 채 그저 그러려니 넘겼을 뿐이다. 차마 나까지 태워달라고 할 염치도 없었을뿐더러, 계속 함께 있을 여행을 홀로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혼자 궤도 터미널로 향했다.

어느덧 출발은 조용히 설레는 일이 되어있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아니면 그때보다는 조금 자라났던 탓일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여리고 어리기에 설레고 아파하며 떠날 수 있었다. 아직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민들레 씨였다. 발이 닿고 마음이 닿는 그곳이 뿌리내릴 자리일 것이다. 그 자리를 찾아 다시 한번 세상을 헤매어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졸다가 일어나 보니 어슴푸레한 궤도 터미널에 도착해있었다. 궤도 터미널은 매번 올 때마다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먼 곳으로 떠나보냈고, 이곳에서 설레며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기다리곤 했었다. 몇 시간이고 제자리에 서성이며 기다리던 순간들도 있었고, 찰나 같은 작별인사로 긴 추억들을 떠나보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내가 떠나갈 차례였다. 비록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출국 게이트로 들뜬 발걸음을 옮길 수는 있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궤도 터미널의 시간은 세상을 초월한 듯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큼지막한 입수속 게이트 번호를 보며 짐을 옮기거나, 한껏 들뜬 여행의 분위기로 시간의 결 사이를 흘렀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0분, 아직 출발까지는 2시간 남짓이 남아있는 시점이었다.

-어디야? 난 도착!

약간 설레는 초조함을 담아 보낸 문자에는, 삶의 모든 중요한 것들이 그렇듯 즉각 답장이 오지는 않았다. 아마도 오는 길에 졸고 있겠지 싶어서 주머니에 손을 꽃은 채로 평화가 올 때까지 터미널의 이곳저곳을 쏘아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상용화된 지 어느덧 50년이라는 시간이 넘어가는 궤도 열차는 각 대륙의 수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운송수단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운송수단들이 있었지만, 대륙과 대륙을 가로지르고 위험한 침묵의 바다를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운송수단은 흔치 않았다. 바다 위는 비행을 하기에도, 물속을 지나가기에도 여전히 위험한 곳이었다. 땅 위의 수많은 비밀을 밝혀낸 인간은 바닷속만큼은 여전히 채 10%도 알지 못했다. 수천만 톤에 이르는 보호 장치를 이고 있는 무거운 쇳덩어리를 바다 너머로 ‘비행’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 쇳덩어리를 집어던지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었다. 궤도 열차는 3천 명에서 5천 명에 이르는 승객을 태우고 화살처럼 궤도 정거장까지 쏘아진 뒤, 그곳에서 다시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지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궤도 정거장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50시간이 걸렸으며, 다시 궤도 정거장에서 바다 건너의 땅에 도착하기 까지는 30시간이 걸렸다. 총 80시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여정이었지만, 마음속에선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박동했다. 시작이 길다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인 걸지도 모른다. 같은 종류의 설렘을 안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감정을 공명 시키며 더 많은 에너지를 받을 테니 말이다.

게이트 앞은 벌써부터 티켓을 확인받으려는 승객들로 긴 줄을 이루고 있었고 나는 주머니에서 여권과 티켓을 꺼내며 약간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2장의 궤도열차 티켓은 생각보다 싸게 구한 것이었다. 우연히 둘러보던 경매 사이트가 운 좋게 좋은 매물을 던져주었던 것도 있고, 통장에 우연히도 돈이 조금 남아 있었던 탓도 있었다. 그 베팅은 운 좋은 성공을 겪었고 티켓은 내 손에 들어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꽤 뿌듯해 할 수 있었다.

그 저리에 서서 티켓을 만지작하다 보니 고작 몇 년 전에 있었던 작은 사건이 하나 떠올랐다.

몇 년 전에도 평화와 함께 여행을 가려고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둘 다 참 어려서 여행을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를 몰랐었고, 표를 나중에 예매하기로 하고 먼저 일정을 잡았었다. 당연하게도 서로 하고픈 일과 가고픈 일이 달랐었다. 한참을 알았다고 한들, 모든 취향과 선택마저 같을 수는 없었다. 평화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했고, 그에 비해 나는 어디를 가는지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출발하고만 싶었다. 그럴 수밖에, 그때도 지금도 나는 어디를 가든 같이 여행을 간다는 사실만이 중요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매번 표를 예매하려던 시간은 미뤄지기만 했고, 결국 3개월 전에는 90만 원이던 기차표를 300만 원을 주고도 못 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심하게 다투었고, 결국 여행에 가지 못했다.

그때는 잘 몰랐다. 일단 표를 사고, 그 뒤에 일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의 모든 일정을 함께 짜지는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말이다. 함께 있다고 해서 같은 것을 보지도, 같은 생각을 하지도 않을진대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몰랐다. 여행에 있어서 굳이 모든 것을 함께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는 걸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삶은 애쓰지 않는대도 함께 머무르고, 함께 나아간다는 걸 우리는 한 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 비하면 많은 것이 변했고, 많은 것이 성숙해져 있었다. 시간 속에서 어느덧 함께 여행하는 방법을 조금 배웠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야 핸드폰은 딩동! 하고 울렸다.


- 졸았어! 이제 도착! 어디에 있어?

- K 터미널 아래에 많은 짐들과 함께 있어.

평화는 곧 큼지막한 가방들을 들고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다가왔다. 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조금 보호적인 심정을 토해내고 말았다.

“다 잘 챙긴 거지? 여권도? 옷도?”

“응! 다 잘 챙겼습니다!”

“어젯밤 내내 짐 쌌으니까 잘 챙겼겠지 뭐. 여권 줘봐.”

“잠깐만. 가방에서 꺼내야 해.”

평화가 건넨 여권을 받으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여권 케이스는?”

“응? 무슨 여권 케이스? 아! 맞다!”

전자여권은 해킹에 꽤나 취약한 물건이었다. 조금 과잉 걱정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불안했던 나는 평화에게 보호 기능이 있는 여권 케이스를 선물로 주었었다. 여행 준비로 이모저모 바쁜 와중에도 꽤나 신경을 써서 준비했던 선물이었다. 하지만 막상 출발하려는 공항에서 주머니에서 나온 평화의 여권에는 내 선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놓고 왔어?”

“응. 미안해.”

“어쩔 수 없지 뭐. 해킹당하면 집에도 못 돌아오고 국제 미아가 되겠지만 그건 내 잘못은 아니지.”

“나쁘다.”

“예쁜 건데. 비싼 건데.”

“치졸해.”

“치졸하다니. 말이 심하네.”

“너도.”

“미안. 긴장해서 그래.”

긴장한 건 피차 마찬가지였다. 날카로워진 말투와 퉁명스러운 행동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먼 곳으로 여행을 처음으로 떠나는데 마냥 여유롭고 편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조금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이 깃들었고, 그 초조함 속에서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 마음을 초월한 채로 사랑하고 싶었고,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한들 다 이해해주고 싶었지만, 아직도 많이 성숙하지 못해 그렇게 끝없이 사랑해 주지 못했다.

웃음으로 퉁명스러움을 풀 수 있을까? 속상함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애써 웃음을 건네어보았다. 아쉽게도, 평화는 긴장한 웃음만을 마주 건네어주었을 뿐이다. 출발이 쉽지 않은 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날 출발 전 터미널에서 우리는 2번을 더 싸웠다. 평화의 철제 가방은 보안검사가 2단계나 강화된 그날의 검문대를 통과하질 못했고 우리는 다시 화물칸에 짐을 맡기러 뛰어다녀야만 했다. 짐을 맡긴 뒤에도 평화는 가방이 긁히거나 분실될까 봐 끊임없이 걱정했다. 괜찮을 것이라고 위로를 해보았지만, 평화는 그다지 안심한 표정은 아니었고 그 퉁명스러움에 출발이 소중하고 특별하길 기대하던 나마저도 결국 속상해지고 말았었다.

가방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꽤 많이 걸렸고 결국 수속이 30분 정도 늦어진 우리는 결국 면세점에서 쇼핑할 시간도 없이 열차를 타러 가야만 했다. 궤도 터미널은 말도 안 되게 넓었고, 출입국 심사소에서 열차 탑승장 까지만 해도 30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렸다. 평화는 면세점을 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쳐야 하는 상황이 되자 상당히 날카롭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네가 면세점 들릴 시간 있을 거라며!”

“미안. 출국 수속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지.”

“다 계산했다고 하지 않았어?”

“응. 잘못 계산했어. 미안해. 돌아오는 길에 꼭 들리자.”

“무책임해.”

이쯤 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시간 계산을 잘못한 것이 내 잘못이긴 했지만, 이 상황을 내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크게 속상해져 버렸고, 침묵을 입안에 머금어야만 했다.

속상함은 언제나 미안함을 낳는다. 더 사랑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기에 더더욱 그렇다. 언제고 한없이 너그럽게 다 포용하고 싶기에 아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을 하고, 그래서 싸우는 순간들이야말로 자신의 한계를 가장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궤도 열차 탑승 직전에 우리는 뒤늦게나마 문제의 철제 가방을 다시 마주칠 수 있었다. 너무 늦게 맡겼기 때문에 다른 화물들과는 달리 승무원이 직접 들고 화물칸에 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평화는 철제 가방에 ‘취급주의’ 사인을 대여섯 개 붙여놓고도 안심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곤 승무원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이 가방 혹시 취급할 때 조금 더 주의해주실 수 있을까요?”

승무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는 서쪽 대륙어만 할 줄 안답니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당혹을 표시하다가 나도 결국 서대륙어로 말했다.


“이 가방을 특별히 조심스럽게 취급해주실 수 있나요? 여기 있는 제 친구가 아끼는 가방이거든요.”

승무원은 다 알겠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문제없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으쓱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며 평화에게 웃어주자, 평화는 그제야 조금 환하게 나를 향해 미소 지어주었다.

“무슨 얘기 나눴어?”

“가방 조심히 다뤄달라고 그랬어.”

“내가 가방에 신경 쓰는 거 알고 있었어?”

“그렇게 눈여겨보는데 어떻게 몰라.”

“내가 뭘 보고 있는지 다 알고 있네.”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뭘 원하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 같기는 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는 건 어째 이상해질 것 같아서 관두었다. 그래도 작은 노력으로 서로 마음을 풀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기뻤을 뿐이다. 평화는 어깨에 부드럽게 기대오며 말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서대륙어도 잘하네?”

“그냥, 조금. 처음 듣나?”

“응!”

“너도 잘하잖아.”

“아니!”

“외국어 고등학교 나온 거 아니었어?”

“아닌데. 어느 여자랑 헷갈린 거야.”

“미안. 하도 여자가 많아서.”

“너 되게 낯설다. 남자가 별로 없는 나는 이만 집에 가야겠어.”

“농담이야.”

“나도.”

서대륙어는 언제나 내 비장의 무기였다. 혹독한 고등학교 때의 단련은 내게 마지막 반격의 카드로 언어 실력을 쥐어줬었다. 1, 2학년 때의 방황을 마치고 마침내 대학을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내게 남아있던 건 끔찍한 등급의 내신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뿐이었다. 내게 다양한 것을 가르치길 포기하신 선생님들은 극단적인 조치로 나를 언어특기자반에 넣으셨고, 그 반에는 나만큼이나 구제불능인 아이들도 많았지만 언어 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대단한 수준의 언어 실력자들에게 서대륙어 토론과 면접 방법을 배우며 나는 언어능력을 혹독하게 단련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무사히 대학교도 가고 직장도 구한 채로 이렇게 잘 살게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대륙어를 하는 것은 늘 내키지만은 않는 일이었다. 자국어를 이렇게나 능숙하게 할 수 있는데 굳이 다른 나라말까지 잘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낳는 거부감이었다. 마치 생 쑥을 씹는 듯한 그 여운이 서대륙어로 말할 때면 언제나 입안에 머물렀다. 앞으로는 서대륙어를 할 일이 많이 늘어날 것이 분명했고, 덕분에 입 안에 쌉싸르한 쑥의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이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궤도 열차 안으로 들어서자 기장과 승무원들이 다 제각기 다른 언어로 인사를 했다. 인사를 눈웃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으며 지나가는 평화를 보며 마음속에 이는 경탄을 감출 수 없었다.

“자연스럽네.”

“많이 해봐서 그래.”

“외국 여행을?”

“아니. 인사를. 외국여행은 처음인걸.”

그러자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간 기억의 단편이 머릿속을 스치는 것 같았다.

“외국여행이 처음이라고? 예전에 갔다 온 적 있지 않아?”

“언제? 난 왜 기억을 못 하지?”

“학교 후배랑 갔던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하는데, 어느 아가씨랑 헷갈리시는 거예요? 누구야 대체 그 외고도 나오고 학교 후배랑 해외여행도 가고 하는 그 여자는.”

“아 미안. 뭐지. 오늘 이상하네. 꿈을 꿨나.”

평화는 내가 늘 사랑했던 새하얀 눈꽃 같은 표정을 짐짓 새침하게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 슬슬 삐질 거야 조심해.”

“오늘 저녁 식사는 스테이크 디너에 레드 와인입니다. 기분을 푸시지요 여왕님.”

“오냐. 안내해 보거라.”

열차의 좌석은 기대 이상으로 넓고 편안했다. 조금만 더 넓었으면 일등석으로 착각할 뻔했을 정도였다. 앞좌석에 붙어 있는 모니터는 상상외로 넓었고, 게임용 핸들까지 달려있었다.

“90만 원에 이 정도면 대단한 것 같은데. 티켓을 잘 구한 것 같아.”

“그러게. 침대칸을 못 구한 건 아쉽지만.”

“50시간뿐인데 뭐. 궤도 정거장에 도착해서 푹 자면 될 것 같아. 이 좌석도 편해 보이고.”

“있다가 게임할까?”

그 말에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두 오누이가 눈빛을 반짝반짝 빛냈다.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그 초롱초롱한 눈빛이 사랑스러웠다.

“네가 게임하자고 하니까 이 아이들이 눈빛을 빛내잖아.”

평화는 아이들을 보더니 부드러운 어른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 모습에는 영락없이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세상을 다 보듬어줄 것 같은 성숙함이 깃들어 있었다. 평화는 짐을 올릴 생각도 안 하고 깡총 뛰어 옆자리 의자에 턱을 괴고 아이들을 올려다보았다.

“안녕? 나는 평화라고 해. 너희는 이름이 뭐니?”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짐을 올리기에 정신이 없는 중년 여성을 흘깃 올려다보다가 말했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한테 이름 알려주지 말랬어요.”

평화는 짐짓 허리에 손을 올리고 엄하게 말했다.

“얘는. 모르는 사람이라니. 누나야. 예에쁜 누우나. 어서 해봐.”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가방을 떨어트릴 뻔했다. 평화도 말해놓고 부끄러웠던지 씨익 웃고 있었다. 그 광경은 참 사랑스럽다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었다. 물론 아이들이 웃어야 할지 누우나아 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일 테지만 말이다.

평화는 금세 아이들과 친해져서 같이 그림을 그리고 놀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은 오누이를 위해 크레파스를 2개 가져다가 줬고, 평화는 자기도 한 개 가져다 달라고 항의했다. 승무원은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크레파스를 영어로 주문하며 부끄러워 발갛게 변하고 말았다. 평화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편하다.”

“뭐가 그리 편해.”

“모르는 척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다 해결해주거든.”

“너 일부러 안 한 거지. 이 정도는 다 할 줄 알면서.”

“응. 대신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떠넘기지 않을게.”

“그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고,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말아.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든든해.”

궤도 열차는 곧 덜컹거리며 출발을 알렸다.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본 열차는 10분 뒤, 궤도 정거장을 향해 급속 출발할 예정이니 모든 승객께서는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시길 바랍니다.”

평화도 나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안전벨트를 꽁꽁 부여 매었다.

“설마 출발하다가 죽지는 않겠지?”

궤도 열차에 오른 것이 처음도 아니면서 평화의 표정 때문에 나도 덩달아 잔뜩 긴장하고 말았다.

“응. 설마 죽기야 하겠어. 맘 놓고 한 잠 푹 자면 도착해 있을 거야.”

“50시간이나 자라고?”

“응. 할 수 있어.”

평화는 내 시답잖은 농담을 받아주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았다. 옆 자리의 아이들만큼이나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눈을 꼬옥 감고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평화나 아이들이나 똑같아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출발했다.








그렇게 출발의 설렘 속에서 하늘로 박차 올랐던 그 날처럼, 나는 지금도 그렇게 출국 게이트 앞에 서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날의 아침햇살은 오늘의 짙은 석양이라는 것이라는 것과, 지금은 혼자라는 것, 그뿐이었다. 설레는 것도 두려운 것도 내 앞의 거대한 세상 앞에 작고 초라한 느낌이 드는 것마저도 그 날과 같았다. 모든 것이 다 같았다. 그렇게 또다시 출발해야만 했고, 지금은 곁에 평화가 없었다. 문득, 혼자라는 사실이 천 개의 고원보다도 외롭게 황량한 가슴에 메아리치고 말았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