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을 향해 빛나는 별 10화

10화 : 지옥

by 이원호

Chapter 10: 지옥






찰리는 아비규환이 된 도심에 섰다. 도시의 심장부는 평소의 고요함을 오간데 없이 잃어버린 상태였다. 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을 때를 회상했다. 그때도 전투경찰들은 진압봉과 방패로 공포감을 조성했고, 시위대는 생존을 위한 두려움을 용기로 포장해놓고 있었다. 그 격앙된 감정과 시가전이라도 벌어지는 것 같은 살벌한 소리는 어린 찰리를 공포로 몰고 갔었다.

도심은 그 당시와 비슷한 색조를 띄었다. 단, 이번에는 경찰들이 되려 겁에 질려 용기를 내야 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이 달랐을 뿐이다. 그들은 잔해가 비처럼 쏟아지는 감정탑을 완전히 봉쇄하는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해보다 앞선 감성은 탑 위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은 공포를 가져왔다.

찰리는 경찰들을 지나쳐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누구도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찰리는 아주 잠시간의 대화를 통해서도 경찰들이 하고 있는 생각을 모조리 읽을 수 있었고, 감정 에너지 농도가 평소보다 몇십 배는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찰리는 봉쇄당한 감정탑 입구를 빠져나와 란에게 질문했다.

- 여기론 못 들어가. 어디로 가야 해?

란은 빠르게 도면 하나를 화면 위에 띄웠고 찰리는 그것이 감정탑의 평면 전개도라는 것을 눈치챘다. 감정탑 지하는 마치 거대한 나무의 뿌리처럼 땅 밑으로 깊게 뻗어있었는데 란이 가리켜 보인 것은 그 지하세계로 통하는 여러 통로 중 하나였다.

- 감정탑 가장 지하에는 발전시설이 놓여있어. 그리고 그 시설은 도시의 지하수로와 맞닿아있지. 지하수로의 입구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찰리는 이미 궁궐에 들어갈 때 도시 지하수로로 통하는 입구를 보았었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다시금 빨래터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하수로의 입구는 몇 주 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음습했다. 찰리는 하수도 깊은 곳에 온갖 범죄가 저질러지는 슬럼지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애써 하수도 입구는 지하수로에서도 찾기 어려운 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찰 리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수로의 입구와 감정탑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궁궐 벽이 있는 빨래터에서 탑의 입구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였고, 감정탑의 지하층이 넓게 뻗어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머지않아 수로를 벗어나 감정탑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수평적인 거리가 아니라 수직적인 거리였다. 찰리는 란이 보내준 지도를 보며 적어도 400~500미터의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찰리는 눈을 질끈 감고 수로를 걷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수로 안에는 불빛이라곤 찰리의 작은 손전등에 물빛이 반사되는 것뿐이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습하거나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찰리는 제 그림자에도 놀랄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찰리는 마지막으로 이 곳에 왔을 때에 명아와 함께여서 두려움을 잊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명아의 곁에선 당연한 감정들이 새삼스러워지고 특별해지는 일이 잦았다. 그토록 감정에 예민한 자신마저도 스스로를 잊고 감정을 놓쳐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잦았던 셈이다. 찰리는 어쩌면 그것이 사람다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채 50m를 걸었을까, 찰리는 눈 앞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 눈에 익은 만년필은 명아가 글을 쓸 때마다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펜 촉에 작은 연꽃이 복각되어 있어서 찰리가 신기해하던 물건이기도 했다. 찰리는 그처럼 애착이 담겨있던 물건에는 오래된 감정이 묻어 나온다는 것을 알아서 면밀히 감정해보았지만 이상하게 펜에서는 명아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찰리는 지난번 궁궐 무단침입 때에 명아가 이곳에 떨어트린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같은 펜을 누군가가 이곳에 떨어트린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명아의 것이라고 보기엔 아주 사소한 감정의 단서마저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찰리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명아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품에 넣자 왠지 조금 용기가 났다. 찰리는 저 위에 반드시 명아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는 미적거리는 발걸음을 그러모아 수로의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수로 속의 공기는 탁해지고 어두워졌다. 만지면 묻어 나올 것 같은 어둠이 찰리를 온통 다 둘러싸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있었고, 찰리는 빛이 없는 세상에서 본연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아도 수로 속에선 무언가 자꾸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길은 끊임없이 더 깊은 지하로 향했다. 찰리는 기나긴 계단들을 오고 내리며 이렇게 깊게 수로가 형성되어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높은 탑을 짓기 위해선 지하 기반 시설도 크고 단단하게 지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간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물은 어디서 모여드는 것인지 자꾸만 가락이 합쳐지며 더 크게 변했다. 찰리는 호수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저수조를 지났고, 작은 시내를 이루고 있는 물길들을 따라서 걸었다. 찰리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손전등은 멀리까지 비춰주지는 못했고, 찰리는 극히 제한된 시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찰리는 주변에서 호곡성이 들려온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갇혀있는지라 찰리는 그것이 환청인지, 감정의 메아리인지 아니면 실제로 무언가가 우는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극도로 긴장한 찰리의 팔뚝에는 소름이 천천히 돋아났다.

찰리는 다시 한번 물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귀신같은 울음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찰리는 살아있는 무언가가, 감정을 가진 무언가가 수로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슬피 울면서 말이다. 찰리는 옆으로 흐르고 있는 물에 손전등을 비추어보았다. 검은 물 밑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흐르고 또 흐르며 죽어있었을 뿐이다. 찰리는 그 검은 흐름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득하니 죄여 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검은 물 수면 아래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스윽 지나갔다. 찰리는 기겁을 해서 뒷걸음질을 쳤고, 그 와중에 손전등을 물에 빠트리고 말았다. 찰리는 끝없이 가라앉는 손전등 불빛 사이로 명계의 유령 같은 것들이 수영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들은 입을 벌리고, 끔뻑거리고, 손짓을 하며 찰리를 불렀다. 찰나였지만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것들의 모습은 찰리의 마음을 낚아챘다. 찰리는 수로 벽에 기대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완벽하게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찰리는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어둠 저편에서 계속해서 느껴졌고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찰리는 이제 그것들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에게 접근한다는 것을 느꼈다.

찰리는 어떤 종류의 빛이라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란을 꺼냈다. 란에게서는 메시지가 잔뜩 와있었는데 찰리는 진동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찰리는 허겁지겁 란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 날 잡고 감정을 집중시켜.

찰리는 란이 시키는 대로 했고, 그 순간 밝은 빛이 손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크리스털로 빚어진 것 마냥 란은 내부로부터 투명한 빛을 뿜어냈다. 찰리에게 점차 다가오던 괴생명체들은 그 빛을 보더니 높은 하이톤의 울음소리를 내며 물속 깊은 곳으로 다시 사라져 갔다. 찰리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란은 다시 깜빡이며 메시지를 출력했다.

- 저것들을 쫓아가. 저 방향이야.

찰리는 생각을 가다듬지 않은 채 란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랐다. 희끄무레한 물체들은 육안으로는 포착되지 않았지만 확실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찰리는 직감적으로 그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쏜살같은 속도로 물속을 움직이는 그것들을 따라 찰리는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채 100m도 뛰지 않아서 찰리는 거대한 공터를 마주쳤다. 찰리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그 검은빛 바닥이 고인 지하 담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빛이 다 닿지 않을 만큼 넓고 바닥의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어두운 그 지하 호수는 마치 블랙홀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을 찰리에게 선사했다. 찰리는 희끄무레한 물체들이 그 담수 안에서 떼 지어 헤엄치는 것을 느꼈다.

담수 지역의 천장은 뻥 뚫려서 무언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찰리는 그것들이 물고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찰리는 감정탑 지하에 엄청난 크기의 수족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아무래도 감정탑 폭발의 여파로 수족관에 균열이 생기며 지하수로가 침수된 것 같았다. 수로를 돌아다니던 생명체들은 민물 돌고래나 듀공 같은 종류의 생명체인 것이 분명했다. 찰리는 지도를 보며 수족관을 통해서 감정탑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지하 저수조 끝자락에는 수족관으로 통하는 통로가 하나 표시되어 있었다. 문제는 수족관과 수로 지역이 붕괴하며 경계가 불투명해져 있어서 길을 찾기가 영 어려웠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돌고래들과 듀공들은 끼룩거리는 소리로 무언가 열심히 소통을 하고 있었다. 찰리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는지라 상당한 위협을 느끼며 걸었다.

백귀와 같은 움직임으로 돌고래들은 물길 가장자리를 걷는 찰리를 맴돌았다. 찰리는 마치 그들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찰리는 감정 통역기인 란을 꺼내서 그들의 가까이에 대보았지만 란은 –너 뭐하냐? 내가 짐승 언어 통역기인 줄 알아?라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비록 통역할 수는 없어도 찰리는 그들에게서 장난스러운 고등 생명체 특유의 감정과 약간의 위기감 같은 것을 읽었다. 그것은 마치 눈 앞에 절벽이나 폭풍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감정이었다.

위험을 먼저 눈치챈 것은 란이었다. 란은 갑자기 붉은빛으로 요란하게 변했다. 화들짝 놀란 찰리는 황급히 옆으로 피했고 무언가 거대하고 진득거리는 것이 그가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물속의 돌고래들은 경고 대형으로 빙빙 돌면서 헤엄치고 있었다.

찰리는 저 깊은 물속에서 거대하고 사악한 것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음습한 그것은 여러 개의 다리를 꿈틀대며 붉은 눈을 빛냈다. 찰리는 신화 속의 크라켄이 아니고서야 그 무엇도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고래들은 재빠르게 유영하며 그것의 느리고 거대한 촉수를 피하며 그것의 부상을 방해했지만 그 괴물은 서서히 찰리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란은 붉은빛으로 감정을 출력했다.

- 뛰어 멍청아!

찰리는 수족관으로 통하는 출구를 향해 숨 가쁘게 질주했다. 그의 곁으로 촉수들이 벽에 부딪히는 질퍽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것에 발목이라도 잡히는 날에는 그대로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그 생명체에 깃든 악의와 살해욕은 일반적인 생명체가 갖는 감정들과는 달랐다. 찰리는 해치고 싶어 하는 의도가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찰리는 미끄럽고 어지러운 물가를 달려 통로 입구를 향하는 사다리를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쾅쾅대는 촉수들은 광포한 몸짓으로 찰리가 매달린 사다리를 물어뜯었다. 찰리는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것을 느꼈다가 차가운 바닥에 입맞춤했다. 허파에서 공기가 다 빠져나갔지만 적어도 가쁘게 숨을 쉬며 물에 빨려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찰리는 기다시피 움직여 가까스로 통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밖에서는 분노로 가득한 굉음이 들려왔지만 더 이상 찰리를 쫓아 무언가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찰리는 물을 툭툭 털며 일어나 란에게서 새어 나오는 빛을 의지하여 수족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감정탑 지하의 수족관은 한 때 수만 종의 수상 생명체들이 유영하는 신비로운 공간이었지만 탑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사라진 현재에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와 펄떡이는 물고기들이 가득했고, 대수족관의 5M 두께의 강화 아크릴 벽에는 큼지막한 균열이 생겨 언제라도 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찰리는 깊게 파인 수족관의 흉터를 예의 주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너머에는 고양이 눈을 한 거대한 상어들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찰리는 고요한 해저 밑바닥 같은 수족관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바다거북과 고래상어와 작은 물고기들과 상어들은 여유로운 듯 함께 공존하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도망치고 잡아먹어야 하는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찰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놀라운 평온이 함께 공존하는 그 생태계에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 사실에 대해 평온한 듯 보였다. 죽음을 거부하면서도 정해진 결말이 있기 때문에 평온한 것 같았던 것이다. 찰리는 죽음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거대한 곰치가 콱 물었을 때, 해마는 분명 몸부림치기는 했다. 찰리는 거의 해마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볼 수 있다고 착각할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찰리는 약간의 순응을 느꼈다. 해마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 짧은 찰나의 참회의 눈물에는 해마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깃들어있었고, 그 시간에 대한 후회는 남아있지 않았다. 찰리는 곰치의 감정 역시 느꼈다. 포만감 사이로 느껴지는 둔탁한 감정은 아무리 봐도 죄책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슬픔 비슷한 것이 있었다. 찰리는 그 감정은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무게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찰리는 어두운 바닷속을 걸었다. 가장 밑바닥에는 고대의 괴물 같은 해파리들과 문어, 넙치와 가오리들이 느지럭대며 움직였고, 그 바로 위에는 거대한 상어와 고래들이 세상을 진동시키는 힘찬 지느러미질로 물살을 갈랐다. 인공 햇살에 가까워질수록 물고기들은 다양해지고 풍부해 졌으며 더 복잡한 먹이사슬에 얽혀갔다. 찰리는 영원한 두려움을 잠시 엿보았다. 도망치는 정어리떼들은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그 작디작은 심장 한 켠에 고이 품고 있었다. 그 두려움이 모여 그들을 무리로 만들었고, 무리가 된 감정은 거대하고 광포한 백상아리마저도 쫓아냈다. 찰리는 어슴푸레한 바다를 주름잡는 백상아리의 눈빛에서도 사나운 두려움을 읽었다. 그것은 영원한 고독이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먹이사슬의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그 어느 생명체던지 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바다 안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침묵으로 그 두려움을 포용하고, 포용하여 살아가는 용기를 얻었다.

찰리는 삶은 영원히 고통받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언제 빼앗길지 모른다는 점에서 삶의 고리는 무한한 두려움을 생성해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간에서 말하는 ‘지옥’과 ‘삶’은 그렇게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삶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죽어 지옥에 가면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고 그랬다. 하지만 영원한 삶 역시 영원한 고통인지도 모른다. 찰리는 수족관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물고기들을 보며 어디엔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지옥을 엿보았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그것은 희망이기도 했다. 삶은 영원한 고통이기는 했지만, 고통스럽다 하여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곰치에게 잡아먹힌 해마도, 거북이에게 뜯어 먹힌 해초도, 상어에게 먹히는 물범이나, 그 물범에게 먹히는 참치도 다 고통의 삶과 예견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로 인해 의미로 가득한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찰리는 더 오래 살아남은 생명체가 반드시 더 큰 삶의 의미를 간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해저를 걸으며 깨달았다. 햇살에 가까워질수록 삶은 더 치열해졌고 죽음은 더 가까워졌다.

찰리는 매 걸음마다 자신이 스스로의 트라우마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동시에 자신의 본질로 회귀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가장 짙은 상처는 가장 자기 자신의 본연에 닿아있는 법이다. 찰리는 그동안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트라우마에 닿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은 서술되지 않는다. 감각과 감정마저도 무너지는 세계의 경계에서 언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언어만이 소통과 공감의 유일한 수단인 것은 아니었다. 찰리는 빛을 내는 감정 통역기를 가슴에 꼬옥 품었다. 지하세계의 어둠 속에서도 감정은 별처럼 빛났다. 그리고 말없이도 꽃피고 전해져 오는 감정은 찰리를 닿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통하는 유일한 길을 열어주었다.

찰리는 란을 품에 꼬옥 안고 빛이 사라진 수족관을 걸었다. 삶도 지옥도 통과하는 방법은 걷는 것뿐이었다. 그의 감정이 그를 천상으로 이끌고 있었다.

두 시간쯤 걸었을 때 찰리는 란이 깜빡이는 것을 느꼈다. 대수족관을 지나 파충류들과 벌레들이 가득한 구역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그곳은 폭발의 피해를 받지 않았는지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유리 감옥 안에 온전히 갇혀있었지만, 찰리는 거미 같은 게 목덜미를 기어 다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확인하며 걸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유일한 등불마저 깜빡이기 시작하자 찰리는 겁에 질렸다. 찰리는 황급히 란에다 메시지를 적어 넣었지만 란은 반응이 오지 않더니, 급기야 꺼져버렸다.

찰리는 자신이 완전한 어둠 속에 남겨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란의 빛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어려웠다. 수족관에서 거주구역으로 통하는 통로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래서야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가 않을 것 같았다.

찰리는 멀리서 수십 개의 등불처럼 무언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걸어간 찰리는 그것이 수면 위로 빛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악어들의 눈이라는 것을 알았다. 거대한 욕조에서 꿈틀거리는 악어들의 눈에는 형광색 개구리들의 주황색 불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차갑고 사악해 보이는 파충류 특유의 눈으로 악어들은 찰리를 가만히 주시했다. 찰리는 어디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느꼈다. 행여나 악어 수조가 열려있다면 보통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찰리는 숨죽여 수조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찰리는 란을 어르고 달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해 보았지만 전혀 켜질 생각을 안 했다. 찰리는 란이 참 이상한 기계라고 생각했다. 란은 감정을 통역해야 하는 기계 주제에 자아에 준하는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미래와도 모종의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았다. 찰리는 마지막 환상이자 예지 속에서 보았던 황금빛 감정탑과 그 꼭대기에 올라 별이 되는 란을 떠올렸다. 그걸 보면 란은 지금 이 순간을 넘어서 미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했는데 어쩐 일인지 중요한 순간마다 꺼져서 찰리는 겁에 질리게 만드는 것이다. 찰리는 저번에도 란이 이렇게 꺼졌을 때를 기억해보려고 애썼다. 그때에는 왜 꺼졌더라? 그때는 뭘 하고 있었지? 그때 찰리는 한여름 여사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었고, 은하 누나와 저녁을 먹고 나온 뒤였다. 그리고, 명아를 만나기 직전이기도 했다. 찰리는 란이 꺼지고 난 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명아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당시에 자신이 명아가 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알았다. 찰리는 어둠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어쩌면 두 사건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찰리의 생각이 그곳까지 미쳤을 때, 순간 찰리의 눈앞에서 잘 보이지 않던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찰리는 갑자기 쏟아지는 빛과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문 너머로 밀려오는 빛을 받으며 내려온 검은 실루엣은 손을 내밀어 찰리를 잡아주었다.

나풀거리는 머리카락과 익숙한 향기 사이로 찰리는 명아의 손을 잡았다.





11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