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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호 Nov 20. 2019

두 개의 섬

프롤로그 : 사람 사이의 섬

프롤로그 : 사람 사이의 섬






그는 책을 참 좋아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었다. 읽고 또 읽는 그는, 전혀 읽지 않는 내겐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그 거대한 기억의 회랑 속에서, 차곡차곡 쌓아둔 수많은 책들의 서고 사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가 무엇이었느냐고 말이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망설임 없이 뽑아내는 그의 모습은 물론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마치 세상의 뼈에서 나라를 이룰 왕검을 뽑아내듯 제왕의 기상으로 문구를 뽑아내었고, 그 문구는 나의 젊은 날을 온통 지배했다. 마치 제신과 가신들처럼 나는 노왕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 문구 그대로, 그는 어느 날 섬으로 훌쩍 떠나기로 결심했다. 가진 것을 다 내려놓은 채 떠나겠다는 그의 모습은 석가모니와 장자의 태도를, 자라투스트라와 예수의 기백을 모두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물어야만 했다. 왜 떠나는 것이냐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다 내려놓고 사라지는 것이냐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답했다.


태곳적부터 사람들 사이에는 망(望)이 있었다. 희망이 명멸하고 절망이 얽혀들며 명망이 빛나고 인망과 갈망과 욕망이 그물코처럼 성글게 얽혀 하늘을 담고 사람을 담았다. 그 모든 것을 포용하는 거대한 망태기는 얽혀 마음이 되고 인연이 되고 삶이 되고 섬이 되었으며, 그 성긴 그물코에 잡힌 고기들은 나라를 이루고 문학작품을 빚고 문화를 만들고 왕을 세우며 별이 되곤 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태양, 지구, 달을 한 직선 위에 두어 망을 이루듯 서로를 직선에 두고 망하여 의미를 빚었다. 그는 그러한 인간의 황금기를 내게 얘기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비탄에 잠긴 채로 다시 말했다. 그토록 찬란했을지언정 이제 사람들은 망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었다. 소망하고 절망하고 욕망하며 사망하는 건강하고도 사랑스러운 방법들이 불타버린 미네르바의 서고처럼, 알렉산드리아의 지혜의 보고처럼 깡그리 사라져 있었다. 타지도 못한 찌꺼기와 잔재들은 나라와, 문화와, 왕과, 인연의 그림자 같은 것들을 인간의 품에 남겼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은 영영 사라진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사람은 어느덧 서로에게 닿고 이해하는 방법을 잃었다고. 비극으로 전락했으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고. 한없이 탑을 오르는 비참함이 되었으며, 그 비참함을 그는 견딜 수가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섬을 찾아 떠난다고 말했다. 사람다움을 찾기 위해서, 소망과 욕망을 되찾기 위해서, 길고도 신비한 섬을 찾아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미를 찾는 그의 마음은 분명 고독하고도 고결한 것이었다.


탑과 탑으로 이어진 끝없는 수직의 세계에서 그는 홀로 수평을 탐구하는 선구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선구자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섬과 섬 사이에서 그가 찾던 진리의 조각들과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과 마음을 이을 모듬살이의 지혜들을 글로 적어주고 싶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위해 여행을 떠난 이를 위해서 건넬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고마움이었다.


떠나기 직전, 공항에서 그는 오래된 소설의 가장 첫 번째 구절을 읊었다.


"이슈마엘이라고 불러다오."


그는 웃으며 그 문장을 말했지만, 그건 분명 웃으며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아 무지했던 나는 그 문장의 뜻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알겠노라고, 이슈마엘이라고 부르겠노라고 말이다. 그가 돌아올 때 무엇이 되어있을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떠나는 순간의 그는 분명 이슈마엘이었다.






1화에서 계속



매주 수요일, 토요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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