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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호 Nov 26. 2019

두 개의 섬 2화

욕망에 대하여

2화 : 욕망에 대하여






안내원의 말을 들으며 그는 단순히 가인이 많다고 해서 환락가가 성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백주대낮에 환락가 광고가 버젓이 상영되는 일 역시 미녀의 숫자와는 관련이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살던 곳에도 아름답고 멋진 여성들이 많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환락가나 유흥가의 성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곳에 환락가가 자리를 잡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고, 곧 빛과 어둠의 대비가 분명한 곳에, 그러니까 인간의 절망이 더 짙게 자라는 곳에 환락가가 많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빛이 비치는 밝은 장소들에서는 화려한 희망이 싹트곤 했다. 부와 명예, 권력과 소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빛을 양분 삼아 새싹처럼 자라곤 했다. 그 모습은 물을 머금은 수선화가 햇살 속에서 맹렬히 피어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영원히 빛 속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어난 모든 것들은 어느 순간에는 빛에서 밀려나 어둠으로 떨어졌다. 수선화에게도 밤이 찾아오고 월면에도 어둠이 드리우듯 욕망 역시 밝았을수록 어두운 곳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높은 곳에서 더 강렬한 빛을 받던 존재일수록 어둠 속에 감춰졌을 때의 고통은 극적이고 거대한 것이 되었다.


그 고통과 절망 속에서 환락이 싹트었다. 강렬한 욕망과 그것의 산물인 선명한 절망 속에서 봄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욕망을 위로하는 위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의 생각이 어떤 깨달음에 채 미치기 전, 안내원은 마치 관광상품을 건네듯 그에게 말했다. 


"한 곳 추천해드릴까요? 요즘 관광객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업소가 있거든요. 겨울의 섬에 와보신 기념으로 추억을 만드실 수 있을 거예요."


그는 호기심에 기어코 물어보았다.


"어떤 곳이죠?"


안내원은 밝은 미소로 대답했다.


"바니걸 업소랍니다. 토끼옷을 입은 아리따운 여성분들과 시간을 보내실 수 있어요."






[토끼굴]이라는 괴이 망측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업소는 관광안내소에서 채 십 분도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번화가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업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많은 것을 새로이 배웠다. 특히 그를 다채로운 생각으로 이끌었던 것 중에는 '풍속점'과 '유흥주점'의 차이가 있었다. 언뜻 듣기엔 별 차이 없어 보이는 환락의 일부였지만, 이 세상에는 불법적인 퇴폐업소와 법으로 보호받는 건전한 업소가 구분되어 있었다. 불법적인 업소에서는 비인간적인 수준의 짐승 같은 향락마저도 제공한다면, 건전한 업소에서는 노출이 많은 의상과 성적인 대화가 오고 가기는 해도 오락과 담소가 주 제공 품목이었다. 그는 의당 더 자극적인 수준의 향락이 제공되는 불법 업소가 가격이 더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 생각을 고쳐야 했다. 건전한 업소들은 퇴폐적인 업소들보다도 시간당 가격이 족히 2배 이상 더 비쌌으며, 그는 이것을 대화의 가치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법의 보호 덕분이라고 믿어야 할지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답게 겨울의 섬은 오후 3시가 넘어가자 해가 뉘엿뉘엿 사라지기 시작했다. 커튼이 드리워진 가게 안쪽에선 아른거리는 불빛과 함께 토끼귀 여인들의 실루엣이 서서히 햇살의 빈자리를 메워가고 있었다. 비로소 어둠과 향락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막상 가게로 들어가 볼 시간이 되자 불안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말이 안 통하면 어떡하지? 내게 비난이나 평가의 눈초리가 돌아오지는 않을까? 내가 비난이나 편견이 담긴 시선을 건네지는 않을까.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이 곳에 답이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마치 혈액처럼 그를 타고 흘렀다. 그가 나고 자란 나라는 반쪽 짜리 반도로 섬과는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장소였다. 특히 성에 대한 사회적인 보수성은 반도와 섬의 지리적인 차이 그 이상으로 골이 깊었다. 평생을 성에 대해선 인지하지도, 얘기하지도 원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우스꽝스러운 강박관념을 주입받으며 자라온 그는 불쌍하게도 눈앞의 유희에 대해서 마저도 편안히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의 눈앞에서는 나체라고 하기는 어려우면서도 눈길을 어디다가 둬야 할지 곤란하기는 한 정도의 옷을 입은 묘령의 여성들이 춤추듯 사뿐사뿐 걸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장소에서 되려 부도덕해 보이거나 잘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사슴같이 사뿐한 걸음걸이를 가진 그녀들이 아닌 부끄러워하는 그였을 뿐이다. 하지만 둘 중 어느 누구도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생각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썼다. 그 무엇도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는 온갖 안간힘을 다 써야만 했다. 어쨌든 그녀들은 속이 비친다 뿐이지 옷을 안 입은 것은 아니었고, 속옷은 물론 엉덩이에 붙은 하얀 토끼 꼬리와 토끼귀 등 다양한 장식으로 몸의 구석구석을 가리고 있었다. 도마뱀이 내장이 비친다 하여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작이 깃털이 화려하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듯, 이 여성들 역시 스스로를 하찮거나 부도덕하게 여길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건 어쨌든 선순환은 아니었지만, 그는 적어도 마음껏 부끄러워할 이유는 찾아내는 데 성공했던 셈이다.


그런 그에게 붉은 토끼가 말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야 말로 사실 부끄러워야 할 일일지도 모르죠."


밀가루를 곱게 입혀놓은 것 같은 붉은 토끼의 흰 피부 위에선 붉은 토끼털 액세서리들이 매혹적인 플라밍고처럼 춤을 추었다. 그는 붉은 토끼를 보며 참 예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붉은 입술이 꽃잎처럼 오밀조밀 움직이는 것만 지켜보아도 시간이 절로 흘러갈 정도였다. 그는 술에 취했을 때 마냥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약간의 경각심을 느꼈다. 그 시간 사이로 붉은 토끼는 달콤한 독설을 퍼부었다.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 부끄러움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염치가 있으면 부끄러움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여기선 일하는 사람도 찾아오는 손님도 모두 염치를 잃은 지 오래인 것 같네요."


이 신랄한 자기비판에는 놀랍게도 스스로에 대한 증오는 깃들어있지 않았다. 오만하게 고개를 세운 그녀의 고운 머리카락 위에서 나풀거리는 토끼귀는 장닭의 벼슬처럼 보였다. 그는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며 질문했다.


"그럼 당신은 부끄러우신가요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당연히 부끄럽죠. 겨울로 가득한 이 나라에서 이렇게 꼬랑지 내놓고 엉덩이가 빨개질 정도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는 걸요. 이렇게 일하는 게 부끄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외람된 질문이겠지만, 그렇다면 당신의 '몰염치한' 동료들과 당신은 왜 다른 거죠?"


그녀는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다리를 꼬우며 말했다.


"저 몰염치한 것들과는 달리 제겐 꿈이 있으니까요."


그는 헐벗은 여러 마리 토끼 중에서 붉은 토끼가 가장 오만하게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 업소에 대한 그녀의 평가가 시궁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건 확실히 독특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매력 역시 그에 근거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싸움닭처럼 붉은 깃을 세운 채로 토끼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여기서 행복해하는 애들은 대부분 꿈을 포기한 애들이에요. 치열하게 꿈을 위해 싸워보고 싶었다면 동쪽에 있는 섬들로 가지 겨울섬 같이 한적한 곳에 남아있을 리가 없거든요. 적당히 편하게 몸 팔아 돈 벌다가 적당히 잘해줄 사람 만나서 일찍 결혼하려는 것이 인생 목표일 테죠. 그러니 이런 일을 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거고요."


그녀는 입술로 위스키 하이볼을 가져가 축인 후 말을 이었다.


"사람답기 위해서 부끄러울 줄 알아야 한다는 건 아직 되어보지 못한 나에 대해서 아쉬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꿈에 닿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자신을 채찍질해서 나아가는 것이 인간다움인 거죠. 이 숨 막히고 변태 같은 환경에 안주하고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요. 여기는 멈춰버리고 실패한 패배자들로 가득해요. 스스로에 대한 경멸도, 경멸로 인한 존엄성도 없는 곳이죠."


그는 그녀의 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숨 막히는 안주를 벗어나 치열한 삶의 전장으로 달려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느꼈다. 삶이 으깨져 곤죽이 되고 바닥에 찰박거리며 흐르는 그 선홍빛 전쟁터에서 존재 의미를 찾고 싶은 것이다. 그는 사실 그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봐왔기에 교묘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 말이 익숙하신데 공부도 열심히 하셨나 봐요? 꿈을 위해서였나요?"


붉은 토끼는 콧방귀를 팩 뀌면서도 마침내 약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공부한 것이 아니에요."


그는 그녀의 태도와 행동에서 이미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그럼 어떻게 이렇게 다른 나라 말을 잘하세요?"

"그건 '우리'나라 말이니까요. 저는 겨울의 섬 출신이 아니에요."


그가 업소에 들어선 순간, 겨울의 섬 언어에 능숙지 못한 여행객을 눈치챈 토끼 포주는 (정확한 직책명을 알 수 없었기에 그는 임의로 그 덩치 큰 사내에게 '토끼 포주'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이 통하는 토끼를 붙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결과 그는 겨울섬까지 와서 동향민을 만나는 촌극을 연출할 수 있었다. 그는 붉은 토끼의 열정과 비판적인 태도는 높게 평가했지만 마치 레콘 분리주의자 같은 투쟁적인 태도를 존경하지는 않았다. 꿈과 목표가 있건 없건 토끼는 토끼였고, 되려 화합을 이루는 것은 꿈을 좇는 사나운 토끼 한 마리가 아닌 꿈도 색채도 없는 다른 토끼들이었다. 완성되기 위해서 스스로의 본질을 부정하고 비난해야 한다면 그 완성은 덧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토끼굴에는 완성되지 않은 채, 완성을 꿈꾸지 않는 토끼들로 살아 숨 쉬는 공동체가 만들어져 있었다.


어두운 조명 사이로 희번득한 욕망이 오고 갔다. 때론 위험하고 때론 지루한 그 욕망들은 단 한순간도 희망처럼 가벼워지거나 부드러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욕망은 사람을 덜 행복하게 하거나 더러워지게 만드는 것 역시 아니었다. 망사 사이의 살결을 희번득하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 욕망이라면 자신만의 별을 쫓겨 꿈을 꾸게 하는 것 역시 욕망이었다. 그는 촛불처럼 일렁이는 욕망 사이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것 역시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아가야 할 이유는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분노로 찬 채 욕망을 부정하는 붉은 토끼에게서 눈을 돌려 다른 토끼 떼들을 바라보았다. 입가의 점이 매혹적인 검은 토끼는 회사원의 넥타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사이로 여러 가지 욕망의 눈길이 얽혀 들었다. 소유욕, 명예욕, 과시욕, 금전욕. 그들이 행복해 보인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은 그 욕망의 불씨들 사이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초록색 토끼는 희미한 미소로 대머리 아저씨의 마음에 춘정을 지피었고 흰 토끼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눈망울로 젊은 학생의 애타는 구애를 받아내었다. 어떤 이들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으로, 어떤 이들은 금전적으로 자유롭고 싶은 욕망으로, 저마다의 생의 색채로 빛났다. 그는 그것이 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술을 홀로 홀짝이며 반응을 기다리는 붉은 토끼의 붉은 입술을 보았다. 그 입술은 불만과 매혹을 가득 담고 있어 모두의 욕망을 오만하게 자극했다. 다른 토끼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욕망과 꿈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행복한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살아있음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는 붉은 토끼의 욕망과 화해하고, 자기 자신의 불편함과 화해했다. 무언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살아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흥미를 잃은 붉은 토끼에게 그는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담은 질문을 건네었다.


"저는 무언가를 찾아서 이 섬에 왔어요."


붉은 토끼는 귀를 쫑긋 세웠다. 처음에는 민망하여 말 걸기조차 어려웠던 그 옷차림도 보다 보니 익숙해진다는 사실에 그는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찾고 있어요. 행복의 비결을 찾는 건 아니지만, 그 비슷한 거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저에게 이 겨울의 섬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인 거예요?"

"네. 홀로 행복해진 사람이라서 야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녀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묘수가 생각난 바둑 초심자의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럼 한번 푸른 호수로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쓸만해 '보이는' 행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는 잔을 비우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다음 말을 하기 위해서 약간의 욕망과 찔끔의 용기를 섞어야 했다.


"감사합니다. 다녀와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붉은 토끼는 눈웃음을 짓기는 했지만 대답을 만들지는 않았다.






3화에서 계속


매주 수요일, 토요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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